인생은 아름다워(586) - 온 겨레가 즐긴 가을방학
온 겨레가 처음으로 누린 열흘간의 가을방학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연휴의 주일예배에서 ‘하늘이 문을 연 개천절, 오곡백과가 풍성한 열매 맺는 추석, 겨레의 얼이 담긴 한글날로 이어진 황금연휴를 뜻깊게 보내자’고 기도하였다. 휴식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재충전의 기회, 먼 길 걷느라 지쳤을 때 잠시 쉬었다가 걸으면 새 힘이 나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하였다. 모처럼의 긴 휴식으로 새 힘 얻어 우리 앞에 놓인 무거운 과제들을 슬기롭게 풀어갔으면. 가을방학의 소묘를 간추려 새긴다.
1. 4349주년 개천절
이번 개천절은 4349주년, 반만년의 역사가 응축된 상징이다. 이른 아침 경건한 마음으로 태극기를 게양하며 평화로운 한반도가 웅비하기를 염원하였다. 수백가구 아파트단지에 국기를 내단 곳이 두세 군데뿐인 것이 아쉽다.
오전 10시, TV로 중계되는 세종문화회관의 기념식을 지켜보았다. 경축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반만년 우리 역사는 고난과 시련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굴하지 않고 도도히, 도도히 흘러왔다. 여기에서 멈출 수 없다. 우리 앞에 놓인 만만치 않은 도전들을 이겨내면서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어진 경축공연의 ‘찬란한 겨레의 빛, 세상을 밝히다’는 제목과 ‘우리기운 되찾아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 만드세’라는 대합창의 가사가 마음에 닿는다.
이날 오후 프로야구 최종일 경기가 여러 곳에서 펼쳐졌다. 6개월간 치열한 경쟁을 벌인 상위 각팀의 순위도 이날에 결정 날 만큼 격전을 치른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이 대견하다. 23년간 국민타자로 활약한 이승엽 선수는 은퇴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결연한 모습을 보여주어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의 고별사, ‘초등학교 때부터의 꿈을 이루고 은퇴할 수 있어 너무나 기쁘다. 그간 영광, 슬픔, 슬럼프도 있었지만 다 잊고 지금은 행복하다. 23년간 성원해준 모든 분께 감사하며 이 함성, 응원 잊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 그의 성취가 유구한 역사 속에 영광과 좌절, 슬럼프를 견디고 오늘의 번영과 성공을 이룬 우리 모두의 표본이 되면 좋으리라.
2. 곳곳에 몰린 인파들
추석날, 광주에 사는 사촌들과 고향의 명소인 선운사를 찾았다. 고속도로는 오전부터 귀경하는 차량으로 붐비고 사계절이 아름다운 산사는 명절인파로 북적인다. 추석을 맞아 고속도로 통행료가 무료인 터에 사찰도 무료입장, 이래저래 가벼운 발걸음들이다. 선운사 가는 길목에 생태습지로 가꾸는 운곡저수지가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취수지로 조성한 호반을 끼고 점심을 드는 것이 운치 있을 것 같아 그곳을 먼저 찾았다. 인적이 드문 넓은 저수지를 휘돌아 가는 길목에 밤나무들이 많다. 차를 멈추고 길가에 떨어진 밤을 줍는 재미가 쏠쏠하다. 호반의 끝자락 큰 돌 판에 앉아 드는 점심이 맛있고.
선운사는 백제시대 건립한 오랜 사찰, 많은 이들이 입구에서 가까운 대웅전 오가며 즐기는데 더러는 오솔길 따라 3km쯤 오르는 도솔암을 찾는다. 우리 가족은 도솔암 행, 초등학교 수학여행 코스이기도 한 이곳을 찾는 감회가 별다르다. 어려서부터 고향에서 바라본 큰 바위(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큰 바위 얼굴이 떠오르는)를 암자에서 가까이 살피는 것이 신기하고. 도솔암에서 내려와 대웅전 앞 만세루에 앉아 차 한 잔 마시고 훈훈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초등학교 동문인 사촌들과 함께 도술암에서 바라본 큰 바위(가운데 우뚝 솟은 곳)
추석 지내고 주말, 대구에서 다니러 온 처제랑 기차 타고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이기도 한 벌교를 찾았다. 늘 한산하던 경전선 열차는 가족단위 명절나들이 승객들로 붐빈다. 벌교에 내리니 12시가 넘었다. 벌교는 꼬막산지로 유명한 곳, 시내 곳곳에 꼬막전문식당들이 즐비하다. 이름이 알려진 식당을 찾으니 번호표를 받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이 많다. 30여분은 기다려야 할 듯, 번호표를 뽑은 후 인근을 둘러보니 식당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인파가 넘친다. 참고로 꼬막정식 1인분은 2만원.
점심을 들고 강변길을 따라 산책에 나섰다. 잠시 걸으니 길 건너로 채동선 음악당이라 적힌 건물이 보인다. 비좁은 골목 지나 음악당에 이르니 휴일이라 문이 굳게 잠겨 있다. 발길을 돌려 강변의 홍교를 찾았다. 홍교는 벌교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세 칸의 무지개형 돌다리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뗏목다리가 있는데 이를 벌교(筏橋, 뗏목으로 잇달아 놓은 다리)라 한다. 뗏목다리의 벌교가 고유명사의 지명으로 바뀐 것을 홍교의 설명문에서 익혔다. 조선 영조 때인 1729년에 처음 세운 이 홍교는 소설, 태백산맥에도 등장하는 벌교의 상징이 되었다.
홍교 인근에 벌교성당이 있다. 조용한 시골성당, 내부를 둘러보니 스태인드글래스가 품격 있고 성당 외벽은 국내에 별로 없는 모스크 형식으로 인상적인데 별채의 카페도 운치 있다. 아끼는 제자가 한 때 벌교에서 살았는데 이 성당이 영세를 받은 곳이란다. 카페에 앉아 먼 산 바라보며 휴식을 취한 뒤 터미널까지 30여분 걸어서 버스 타고 광주로 돌아오는 주변의 가을풍경이 아름답다.
3. 빛나는 문화유산, 한글
어제(10월 9일)는 571돌 한글날, 이날을 맞아 한글의 독창성과 합리성 및 실용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어 기쁘다. 나라의 글을 만든 시기와 경위가 한글처럼 뚜렷이 기록된 유례가 세계 어느 나라도 없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이를 확인하듯 유네스코는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1997년 10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60년 전에 ‘조선어 큰 사전’을 편찬한 한글학회는 한글이 예의를 갖춘 말과 글의 표본이라고 내세운다. 한글날 경축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읽은 순우리말로 순화한 축하말씀이 인상적이다. 세종 큰 임금은 곱고 따뜻한 말을 쓰는 후예들이 되기를 원하였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이 땅에 전쟁이 없어야 할 것, 모든 어려움을 평화적으로 풀어야 할 것임을 다짐하는 메시지도 적절하였다.
개천절과 한글날에 즈음하여 아침에 부른 찬송 한 구절(어둔 밤 헤치고 동 튼다. 환한 빛, 보아라 저 빛)이 우리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켜주는 큰 빛으로 다가온다. 그 빛 더 밝게 빛나라.
* 얼마 전 일본의 지인이 팔을 다쳐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더니 며칠 전에 수술이 잘 되어 재활 중에 있다는 답신이 왔다. 이에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
‘수술 후 재활한다는 소식 접하여 반가웠습니다.
재활 잘 끝나서 건강한 모습으로 뵙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한국은 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연휴기간인데 어제 오늘은 비가 내려서 한가위 보름달을 보지 못하여 아쉽습니다.
일본 출신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 축하합니다. 오늘은 노벨평화상을 발표할 예정이라는데 세상이 늘 평화로웠으면좋겠습니다. 그래서 인류 모두가 평화상을 받았으면.’
곧바로 답이 왔다.
‘존경하는 김태호 선생님,
똑같은 마음입니다~
평화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깊이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서로 속이지 말고
싸우지 말고
진실 가지고 사귀는 것
雨森芳州(*조선과 일본의 성실우의를 강조한 일본학자)
즐거운 한가위를 보내세요.
가미조 메이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