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강서구 지사과학단지에 자리 잡은 풍력발전기 부품업체 평산 공장. 대부분 주변 회사가 쉬는 토요일에 방문했는데도 이 공장은 '쿵' '쾅' 소리로 가득 찼다. 엄청난 크기의 프레스가 시뻘건 불꽃을 튀기며 풍력발전기 핵심부품 메인샤프트(풍력 날개와 연결된 동력 전달축) 제작용 강철 덩어리를 담금질하고 있었다. 지름 1m가 넘는 이 부품은 세계적인 풍력발전기 회사인 스페인의 가메사(Gamesa)로 전량 수출된다.
공장을 안내한 평산 신동수 대표는 "1조6000억원어치 주문물량을 확보해 놓고 주말에도 공장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3년치 물량에 해당한다.
- ▲ 신동수(왼쪽에서 네 번째) 평산 대표와 임직원들이 모형 풍력발전기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풍력발전기 부품업체인 평산은 한국·독일·중국공장에서 1조6000억원 상당의 일감을 확보해 놓고 있다./부산=김용우 기자 yw-kim@chosun.com
평산은 풍력발전기 종합 부품 회사로, 타워플랜지 분야에서 세계 1위 업체(32%)이다. 타워플랜지는 풍력발전기 몸통을 서로 이어주는 이음새 부분을 말한다. 풍력발전기 몸통 길이가 80m에 이르기 때문에 10m 높이마다 이음새를 둬야 한다. 또 다른 풍력발전 핵심부품인 샤프트·베어링(풍력 날개가 바람에 따라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 부품)·기어박스(풍력 날개가 일으킨 기계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장치) 분야에서도 매출을 늘리고 있다.
최근 평산의 실적은 불황을 무색하게 한다. 지난해 5800억원(영업이익 15%)의 매출을 거두고 올해는 8700억원을 내다보고 있다. 2002년 매출 449억원에 불과했던 평범한 조선 기자재 기업이 불과 5~6년 만에 10배 이상 급성장한 것이다.
◆세계 최대 풍력발전 부품업체가 되는 것이 꿈
신 대표는 "전 세계 풍력발전 사업이 매년 20% 이상 성장하면서 '공급자가 수요자보다 힘이 더 센 시장(seller's market)'이 됐다"고 했다. 평산 본사는 GE·베스타스(Vestas)·가메사·지멘스(Siemens) 같은 풍력발전 사업자들로 붐빈다. 풍력발전기 부품을 구하러 글로벌 대기업들이 앞다퉈 방문하는 것. 지난 1월에는 새로운 중국 공장을 다 짓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의 한 풍력발전업체와 1500억원 상당의 베어링 수출계약을 맺었다. 신 대표는 "우리 기술력을 믿고 일본 업체에서 공장 문을 열기도 전에 물건을 사들인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평산은 2002년만 해도 부산지역의 평범한 조선기자재 부품회사였다. 신 대표는 "
현대중공업과 같은 대형 조선업체의 납품결과에 일희일비하는 현실을 보고 세계를 무대로 경쟁력 있는 분야를 파고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성장 동력을 찾던 중 덴마크의 세계적인 풍력발전업체 베스타스를 방문한 것이 비즈니스 모델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됐다. "풍력발전이 막 꽃피우려는 유럽을 보고 '바로 이거다' 하고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공장구조를 바꾸고 본격적인 풍력발전 부품회사로 변신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2003년 13%에 불과했던 풍력발전기 부품 비중이 지난해에는 60%로 올라섰다. 그 사이 대형 투자도 잇따랐다. 지난해
독일의 기어박스 생산업체 야케(JAKE)를 인수하고 2000억원을 투입해
중국 다롄(大連)에 베어링 공장을 지은 것이 대표적이다. 1년 사이 전 세계 공장에서 일하는 평산 직원 수가 300여명에서 1200명으로 급증했다. 신 대표는 "타워플랜지·베어링·기어박스를 망라한 세계 최대 풍력발전 부품업체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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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조선업체 기술이 풍력발전기 제조에서도 두각
신 대표는 또 "풍력발전 산업은 한국업체에 기회"라며 "조선산업을 세계 1등으로 키운 것처럼 풍력발전 제조분야에서도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엔진을 돌려 프로펠러를 가동시키는 것이 조선업이라면 풍력발전은 이와 반대로 풍력 날개를 돌려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조선산업에서 익힌 노하우를 풍력발전기 제조과정에 적용하기가 수월하다는 설명이다.
실제 평산뿐 아니라 태웅·현진소재와 같은 조선기자재 공급 업체들이 최근 들어 풍력발전 비즈니스에서도 쟁쟁한 실력을 보이고 있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효성·
두산중공업과 같은 대기업들도 전 세계 풍력발전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이들 부품업체와 활발히 접촉 중이다.
풍력 컨설팅 회사인 메이크(MAKE) 컨설팅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전 세계에서 2만4000메가와트(MW) 규모의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것으로 추정했다. 2MW급 풍력발전기가 1만2000개 들어섰다는 얘기다. 시장 규모로 보면 40조원에 이른다. 이웅렬 평산 부사장은 "풍력발전기 시장은 3~4년마다 두 배로 커지고 있다"며 "시장규모가 얼마나 더 커질지 예측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