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기지 해외이전으로 산업공동화, 모듈화로 무노조 비정규직 공장 확산, 노조운동의 대안은 무엇인가?
막오른 자동차업종 구조조정 (1)
산업 공동화와 내수 부진, 생산기지 해외 이전
소리없는 전쟁이 한국 자동차산업에서 진행되고 있다.
97년 외환위기 직전 삼성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부도, 98년 현대자동차 대규모 정리해고 구조조정, 2001년 대우차 대규모 정리해고 등 엄청난 구조조정의 피해를 입었던 자동차산업. 그러나 현대차 정리해고 이후 자동차업종은 비교적 ‘원만한’ 노사관계를 유지해왔고, "분쟁은 끊이지 않았지만 결코 심각한 분쟁을 벌이지는 않는" Give & Take 관행이 현장에 정착되어 왔다.
그러나 이 ‘고요한 시기’는 자동차산업 자본가들 입장에선 아주 은밀하게 대규모 구조조정을 준비해온 시기라고 얘기할 수 있다. 이제 고요한 적막이 닫힌 말문을 열고 구조조정의 회오리를 예고하고 있다.
이미 현장의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이 위기를 직감하고 있다. 말없이 묵묵하게 생산에 종사하고, 노동조합의 파업 지침이 떨어지면 역시 묵묵하게 지침을 따라 파업에 동참해온 조합원들, 그러나 그들 마음 속은 아주 복잡한 계산과 추측으로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도대체 자동차산업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국내 민주노조운동 최고의 파괴력과 조직력을 자랑하고 있는 완성차 4사 대규모 노동조합이 버티고 있는 곳이 한국 자동차업종이 아니던가? 정규직 조직노동자만 10만에 달하는, 명실상부한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선두주자들이 아니던가?
퇴직금 중도청산 바람
"우리 선거구 조합원들 중 아마 반쯤은 퇴직금 중도청산 신청을 했을거예요.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
현장의 노동자들은 최근 위기를 직감하고 너도나도 퇴직금 중도청산을 하고 있다. 다달이 잔업과 특근은 들쭉날쭉, 신차가 개발되면 과연 그 차를 어느 라인에서 생산하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혹시 신차를 다른 공장에 빼앗기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 공장에서는 잔업도 특근도 못하고 하루아침에 "유휴인력"이 되어 정리해고 1순위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에서는 각 사업부별로 근무시간이 들쭉날쭉해졌다. 1공장과 2공장 정도에서만 토요, 일요 특근이 있을 뿐이고, 3공장은 지난달까진 잔업조차 없다가 최근부터 잔업이 이뤄졌고, 포터와 스타렉스를 생산하는 상용차 생산라인인 4공장에선 조만간 잔업조차 없어질 판이다. 최근 판매 호조를 기록하고 있는 <투산>을 생산하는 5공장은 생산물량이 밀려 매일매일 라인이 팽팽 돌아가는 형편이다.
조만간 북미EF(현재 팔리는 상품명은 New EF)가 앨라배마 공장으로 생산이 이전되면 곧 고용불안에 휩싸이는 아산공장의 경우에도, 회사에 부탁하고 부탁하여 겨우겨우 잔업을 실시하고 있는 형편이다. 아산공장 주차장에는 팔리지 않고 쌓여있는 EF 쏘나타가 무려 만여대에 이른다. 출고센터로 나가지 못하는 1만여대의 자동차를 매일매일 쳐다보며 출근하는 아산공장 노동자들에게 위기는 이미 충분히 체감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3공장과 4공장 조합원들은 최근처럼 잔업을 할 수 있는 날이 또 언제 오겠냐 하면서, 그나마 잔업이라도 해서 퇴직금의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이 높을 때 빨리 퇴직금을 중도청산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현상은 비단 3, 4공장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잔업특근으로 연일 공장이 잘 돌아가는 1,2,5공장의 경우에도, "우리 역시 언제 3, 4공장 노동자들의 처지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으로, 역시 퇴직금 중도청산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GT-5 (Global Top 5.) : 세계 자동차생산 5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현대자동차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게 믿기는가?
매년 수출은 신기록 갱신, 내수는 부진 기록 갱신
자동차 수출 ‘날개’ 내수 ‘추락’ 장기화
자동차 2월 판매가 수출 급증에 힘입어 호조를 보였으나 내수는 20% 이상 줄며 장기 침체 국면을 나타냈다. 수출 ‘맑음’, 내수 ‘흐림’의 판매 기상도가 계속되면서 현대.기아.GM대우 등 수출업체와 쌍용.르노삼성 등 내수주력 업체간 희비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2일 국내완성차업체 5개사에 따르면 지난달 자동차 판매는 내수 8만9천909대, 수출 24만3천7대 등 총 33만2천916대로 작년 동월(27만1천553대) 대비 22.6% 늘었다.
수출은 60.0% 급증했으나 내수는 24.9% 감소, 국내 경기침체 장기화를 그대로 반영했다. 올 1-2월 누계 판매(61만716대로)도 작년 동기(55만5천114대) 보다 10.0% 늘어난 가운데 수출은 43.4% 증가한 반면 내수는 32.3% 감소했다.
<한겨레신문 3월2일자>
‘자동차 재고 쌓여만 간다’
자동차 재고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상당수 완성차 업체가 조업 시간 일부 단축을 통해 생산물량을 조정하고 있으나 내수가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재고 물량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GM대우.쌍용.르노삼성 등 국내 완성차업체 5개사 의 재고량은 지난 20일 현재 현대차 6만3천289대, 기아차 2만2천237대, GM대우차 3천743대, 쌍용차 6천641대, 르노삼성차 7천350대 등 총 10만3천260대에 이른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1분기의 12만대 수준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던 지난 2월(11만8천500대) 보다는 다소 감소했지만 적정재고치(10-15일)인 5만-6만대를 크게 상회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 업체들은 잔업.특근 축소 등을 통해 생산량 조절 작업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차는 스타렉스를 생산하는 4공장의 경우 잔업.특근을 실시하지 않는 등 일부 공장 잔업.특근 조정을 통해 생산량을 조정하고 있으며 매그너스를 생산하는 GM대우차 부평2공장도 근무일수를 월 4일 정도 단축하고 있다.
르노삼성차는 지난해 2월 2교대 체제로 전환했으나 12월 초부터 다시 1교대 체제로 후퇴, 5개월여째 1교대 체제로 가동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4월25일자>
내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는 결국 자동차를 구매해야 할 한국의 노동자 서민의 호주머니에 돈이 없다는 얘기이다. 신용불량자가 날로 늘어만 가고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하는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가계형편은 매일매일 악화되어가고 있다.
과거 내수가 줄어들더라도 수출라인을 뚫어서 수출물량을 확보함으로써 생산물량에 변동이 없도록 조정하는 사례도 있었으나, 이제 그러한 상황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자동차산업에서는 현대-기아자동차를 필두로 하여 너도나도 해외 생산기지를 만들어 수출물량을 해외공장으로 이전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인도공장의 생산 능력을 확충하는 등 유럽 및 제3국가를 향한 수출 전진기지로 적극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21일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첸나이에 있는 현대차 인도공장을 방문해 “인도공장을 동서남 아시아 및 중남미와 유럽 시장 수출 거점으로 키워나가겠다”고 밝혔다고 현대차가 전했다.
또 현대차는 인도공장의 판매(내수+수출) 목표를 연초 19만대에서 21만5천대(내수 14만5500대, 수출 6만9500대)로 높였다. 이는 지난해 실적 대비 42.6%(내수 20.9%, 수출 128.4%) 증가한 것이다. 현대차가 100% 투자해 지난 98년 세운 인도공장은 현지 진출 3년만에 인도의 2대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했다.
<한겨레신문 3월22일자>
<사진> 현대·기아차 디자인&테크니컬센터 준공식. 미국에서 생산할 차량의 디자인과 구조를 설계할 예정이다.
현대-기아자동차의 해외생산기지 확보는 거의 광적인 수준이다. 인도 공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생산이 가동된 곳에 속한다. (본래 한국에서 ‘VISTO’로 알려진 경차는 한국에서 판매되기 전부터 인도에서 ‘쌍트로’란 이름으로 생산되던 차종이었다) 여기에 제국주의 본국인 미국 앨라배마 공장, 중국 ‘북경자동차’와 합작을 얘기하고 있는 중국 현지생산공장, 유럽전진기지 구축을 위해 비교적 노동계급의 힘이 약한 것으로 알려진 터키로의 진출, 베트남 공산당 정부와 합작 논의가 상당히 진척된 베트남 현지생산공장 등등 .....
그래서 유럽 쪽 판매차량은 터키와 인도에서, 동아시아 쪽 판매차량은 베트남과 중국에서, 북미 쪽 판매차량은 앨라배마 공장에서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일단 현대자동차 측의 목표가 생산대수 상으로 세계 5위 입성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기술력 개발이나 신차종 개발에 의존하기보다는 전세계에 현대자동차의 생산라인을 건설하는 쪽으로 추진되고 있다.
대우자동차는 이미 부도가 나기 이전부터 해외생산기지 확보에 열을 올렸던 자본으로 유명하다. 특히 김우중 회장의 <자금 현지조달 원칙>과 <현지화 프로젝트> 등은 전세계 자본가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결국, 그 자금 현지조달 원칙에 발목이 잡혀 부도라는 참사를 맞이했지만 말이다.
그러다보니 국내 생산공장에서는 멀지 않은 미래에 오직 내수용 차량만을 생산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될 경우 외환위기 전후로 나타났던 국내 자동차산업의 위기가 재현될 조짐마저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당시의 위기와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당시에는 자본 입장에서도 괴로운 비용을 일정하게 부담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모든 부담이 노동자에게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자본 측은 수출물량만으로도 충분한 이윤을 뽑아내기 때문에, 그저 국내 공장에서 말 안듣고 노조의 위력이 센 곳을 중심으로 공장 폐쇄나 정리해고로 대응하면 되기 때문이다.
산업공동화, 내수 부진, 생산기지 해외 이전 .....
이미 언론에서도 자주 다루고 있는 이 현상으로, 국내 자동차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엄청난 위기를 직감하고 있다. 당장 내년만 되어도 생산물량이 대폭 줄어들 것이란 사실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오른 자동차업종 구조조정 (2)
현대모비스를 통한 부품업체 통폐합, 모듈화 통한 조립공장 인원 감축
해외생산기지 이전, 내수 부진으로 인한 국내생산 감축은 언론에서도 많이 다루어진 바 있다.
그런데, 현대-기아자동차의 구조조정 계획 중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분야가 하나 있다. 바로 현대모비스를 통한 구조조정 계획이다.
현대자동차의 실질적인 지배자로서의 <현대 모비스>
사람들은 대충 현대모비스를 <부품 전문 회사>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러나 현대모비스는 단순히 현대-기아자동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부품회사가 아니다. 현대모비스는 엄연히 현대자동차의 최대 주주이자 현대자동차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지주회사>이다. (오른쪽 ‘현대차 주요주주 현황’ 참조)
이는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정씨 일가 내부 사정만 알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원한 포니맨> 정세영 前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경영하던 시절, 정몽구 회장은 현대자동차 바로 옆에 현대정공을 세워 갤로퍼 등 자동차를 생산하며 호시탐탐 현대자동차 경영권 쟁탈을 벌여왔다.
결국 98년 구조조정 직후, 정주영 명예회장은 동생보다는 큰아들 편을 들기 시작했는데 현대자동차-현대정공-현자써비스 3사 법인을 통합하여 (주)현대자동차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정세영 회장이 물러나고 정몽구가 드디어 현대자동차의 모든 경영권을 장악하게 된다.
3사 통합의 과정에서 부품과 물류를 담당하던 현대자동차와 현대정공의 부문은 별도법인으로 통합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현대모비스>이다.
간단하게 말해, 정몽구 회장의 <고향>과도 같은 현대정공의 후신이 현대모비스이며, 그래서 정몽구 회장의 오른팔 왼팔들은 모조리 현대모비스에서 성장하여 현대자동차나 기아자동차로 투입되곤 한다. (지금 현재 현대자동차 사장으로 가있는 전천수 사장 또한 현대정공 출신으로서 정몽구 회장의 오른팔에 해당한다)
부품업체 먹깨비 귀신으로서의 현대 모비스
현대모비스가 설립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하기에 이른다. 당시 기아자동차 계열사 중 부품회사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이 부품회사들은 모조리 현대모비스 차지가 되었다.
그 뿐이 아니다. 현대모비스는 부품업체란 부품업체는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는 <먹깨비 귀신>이다. 부품 전문회사로서 현대 모비스는, 자신의 기술력 필요나 물류적 필요에 따라 어떤 부품업체도 잡아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밀어주는 풍부한 자금력, 여기에 한국의 자동차 부품업체 치고 현대와 기아에 밉보여서 살아남을 재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모비스 인수를 거부하면 앞으로 납품하지 마!" - 이 한마디에 중소부품업체는 물론이고 대형 부품업체도 모조리 현대모비스의 귀하신 품에 몸을 바쳐야 했다. 최근에는 경주 아폴로산업까지 잡아먹는 식욕을 과시하기도 했다.
현대 모비스는 크게 보아 <부품(모듈)생산> 파트와 <물류> 파트로 나뉘어진다. 부품(모듈)생산은 그야말로 생산공장으로서, 울산과 천안에 각각 1천여명의 모듈 생산공장을 갖추고 있으며, 전국 각지에 물류를 담당하는 업체들을 소유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전국 각지에 생산라인을 갖고 있고, 또 부품 물류까지 감안하면 물류 부문에서 현대-기아차 그룹은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 모든 일을 현대 모비스가 수행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거대한 자동차왕국의 물류를 모조리 독점하고 있다 보니, 현대 모비스 물류 파트는 아주 작은 인원으로 한해 수조원대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이윤을 내고 있다.
"(자동차) 껍데기만 빼고 다 만듭니다" - 모듈 생산
<물류> 부문 말고 <모듈> 부문을 설명할 차례이다. 사실은, <모듈> 부문이 구조조정의 핵심이기도 하다. 여기서 생소한 개념을 설명하고 가야 하겠다. "도대체 <모듈>이 뭔데?"
자동차 부품이라 하면 참으로 광범위하다. 볼트와 너트 하나도 따지고 보면 부품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볼트던 너트던 아주 간단간단한 것들 몇 개를 조립한 것을 단품(單品 - 아세이)이라 한다. 이를테면 핸들이나 기어, 범퍼 등은 단품(아세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이 단품들 몇 개를 조립하여 좀 더 큰 형태의 부품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 바로 이것을 <모듈>이라 부른다. 예를 들어 핸들과 앞차축에 연결된 부품들을 모조리 조립한 것을 <프론트 모듈>이라 부른다.
문제는, 기존 자동차 조립의 패턴은, 핸들이나 기어를 앞차축에 고정시키고 최종 조립하는 과정이 완성차 조립공정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제 그 공정의 상당수를 <현대모비스>의 모듈생산파트가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모듈화>라 함은, 이렇게 부품조립공정의 상당수를 완성차 조립공장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모비스 같은 모듈생산 전문 회사에 맡기는 것을 말한다.
모듈화 - 구조조정의 핵심!
그럼 여기서 아주 미련한 질문 하나 : "모듈화가 완성차 조립공장에 미치는 영향은?" 답은 너무 쉽다. 완성차 조립공정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필요없어지게 된다!!
부품을 상당히 완성된 형태로 완성차 조립공정에 투입하는 것이 모듈화의 핵심이므로, 현재 완성차 공장에 존재하는 공정 상당수가 필요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모듈화가 울산공장, 아산공장에서 착착 진행되고 있다. 모듈화가 가장 잘 진행되어 생산되는 차종이 바로 현대자동차 2공장, 5공장에서 연일 철야특근으로 생산되고 있는 SUV 차량인 <투싼>이다.
아산공장의 경우 이미 직접조립공정만을 제외한 나머지 공정에서 거의 완벽하게 모듈화가 끝마쳐졌다. 이제 조립공정만 남은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수준높은 질문 하나 : "모듈화가 완성차노조에 미치는 영향은?"
이 답은 조금 기초적인 설명을 요한다. 기존 완성차노조운동의 핵심주력동력은 거의 모두 최종조립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필요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인위적인 정리해고를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배치전환을 통해 최종조립라인에 남은 노동자들 숫자가 대단히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자, 기초 설명을 들었으면 이제 답을 알게 될 것이다. 완성차노조의 핵심주력군들이 완전히 해체되게 된다!
현대모비스를 통한 모듈화가 더욱 착착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완성차 공장에서 해야 할 일이란 4~5개의 모듈을 장착하고 도아와 차체를 씌운 후 도색을 하게 되는 <껍데기 만드는 공정> 뿐이다.
현대모비스의 광고 문구 : "(자동차) 껍데기만 빼놓고 다 만듭니다" 이 문구가 핵심적으로 상징하는 내용이란, 바로 "모듈화를 통해 완성차 공장을 껍데기만 남는 조립공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의 모듈화 계획이 완성되면, 현재 완성차 조립공장에 남아있는 인원 중 단 1/3의 인원으로도 완성차 조립이 가능해진다. 즉, 2/3 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현대모비스가 현대정공 시절부터 꾸준히 이데올로기화해온 <모듈화> - 첨에는 말이 참 멋있어서 뭔가 차량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완성차 조립라인을 해체시키고 고용불안을 부추김으로써 <말 잘 듣는 노동자>로, <온순한 노동자>로 만들려는 자본의 구조조정 계획이었던 것이다.
2000년 당시 현대정공의 광고. "세계적인 기술과 품질로 자동차 부품을 모듈화하여 완성차 메이커의 경쟁력 향상은 물론이고 완벽한 파트너쉽을 구현하는 자동차 부품 전문회사" - 이것으로 보았을 때, 현대모비스의 전신이 현대정공임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련한 질문 하나 더!
"그럼 모듈화를 반대해야 합니까? 자본 입장에서는 그게 신기술 도입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것인데, 무턱대고 반대만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 이놈의 ‘반대 무용론’ 땜에 완성차노조 대다수 집행부들이 모듈화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본의 모듈화를 뒷구멍으로 용인해주는 대신,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에만 몰두해왔던 것이다.
답이 무엇이냐고? 그 답은 여기서 내릴 문제가 아니다. 이 시리즈의 마지막에 <노조운동의 대안> 파트에서 다룰 문제이니까 말이다.
힌트라도 달라고? 그래, 무조건 반대만 하고 있는게 대안은 아니다. 그러나 자본의 의도가 명확하게 보이는 상황에서 <저지투쟁을 통한 시간벌기> 전술조차 구사하는 것을 포기해선 안된다.
우리 노조운동의 정책역량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노동자적 대안을 내놓을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아주 조금의 시간이라도 벌어준다면 그 시간을 통해서라도 대안을 찾아낼테니 말이다.
막오른 자동차업종 구조조정 (3)
무노조 비정규직 생산공장 확산 - 현대모비스, 동희오토 ..... 그 다음엔?
2001년쯤 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현대모비스가 생산라인 전체를 하청화하여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만을 고용한 채 생산을 하고 있다는 소문.
당시에는 ‘모듈화’가 뭔지 ‘모비스’가 무슨 회사인지조차 생소한지라, "과연 그 소문이 사실일까?" "에이, 설마 ... 정규직 없이 비정규직만으로 생산하면 불량률이 어마어마할텐데 ..." 뭐 이런 추측만 무성하게 나오고 있었다.
그만큼 새로운 공장이 들어서도 그곳에 노동조합 결성을 한다든지 혹은 그 공장 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떠한지에 대해 대다수 활동가들이 무감각해진 탓도 있으리라. 이미 2001년부터 정규직 대공장 노조운동의 하락은 누구에게나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 현대모비스 모듈생산공장에서 정규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사무실 관리직 몇 명만이 정규직이었고, 울산과 천안공장 약 2,000 여명의 생산라인 작업자들은 모조리 하청 노동자들이었던 것이다. 현재 현대모비스 울산과 천안공장에는 약 30여개 하청업체가 들어앉아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자본가들의 ‘꿈의 공장’ - 무노조 비정규직 생산공장
주야맞교대 하루 12시간 노동을 하는 현대모비스 생산라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입사 후 처음 받는 초임은 시급기준 2,600원. 그나마 군필자들의 경우이고 미필자들은 2,550원을 받는다.
현행 법정최저임금이 시급기준 2,510원임을 감안하면, 이들이 받는 임금수준이 얼마나 저열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시급도 이것보단 셀 것 같은데?
값비싼 자동차에 고급 부품덩어리인 모듈 생산을, 이토록 저임금을 받는 하청 노동자들을 사용한다면 자본가들 입장에선 이 얼마나 즐거운 소식인가? 게다가 물량이 줄어들면 언제든지 업체와 계약해지를 하든지 아니면 정리해고를 통해 비용을 줄일 수도 있고 말이다.
■ 해외에 수출할 자동차 모듈 부품 전시회 : 현대모비스는 이미 해외 수십만대의 모듈을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 역시 모조리 시급 2,600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것이다.
중국이나 인도로 공장을 옮길 이유도 없다. 비정규직만 채용하다보니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가능성도 대단히 낮다. 즉 노사관계 뒷감당하는 비용이 일절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말 잘듣는 비정규직만 사용하는 무노조 생산공장 - 그야말로 자본가들 입장에서는 ‘꿈의 공장’이 아니겠는가?
개발 및 설계는 현대차가 하고, 생산은 무노조 비정규직공장 동희오토가 하고, 브랜드는 기아차로 출시된 모닝(Morning)
올해 1월부터 양산에 들어간 기아차 모닝.
이 차는 아주 재미있는 뒷배경을 갖고 있다.
언론에서도 이 차가 현대차 아토스 및 기아차 비스토 후속모델이라 소개하고 있다.
사실 기아차 비스토 역시 현대차가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생산만 기아에서 한 차량인데, 알고보면 아토스와 거의 차이가 없는 차종이다. 아토스보다 차체 높이가 8cm 정도 차이나는 것만 다를 뿐.
즉, 본래 경차 연구개발은 현대차 쪽 전문 소관이다. 기아차 모닝 또한 연구개발 및 설계는 모조리 현대차 쪽이 담당했다.
그런데 모닝은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 기아자동차 생산공장에서는 모닝이라는 차종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모닝은 충남 서산에 있는 (주)동희오토라는 곳에서 전량 생산된다. 동희오토는 (주)동희산업과 기아자동차가 60 : 40 의 비율로 출자하여 작년부터 서산에 짓기 시작한 공장인데, 지난해 말부터 시험생산에 들어가 올 1월19일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현재 연산 약 15만대 규모의 생산 캐파를 갖고 있는데, 조만간 30만대 수준으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동희오토 생산현장을 들어가면 역시나 이곳의 모든 노동자들이 하청 노동자, 즉 비정규직임을 알 수 있다. 좀 과장하면 동희오토는 공장장만 정규직이요, 나머지 직원들은 모조리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라는 것이다.
동희오토 신규사원채용 공고들을 보면, 주야맞교대 근무형태에 남자의 경우 월 초임 70만원을 보장한다고 되어 있다. 이 또한 시급으로 환산하면 약 2,500원대에 해당한다. 즉, 법정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위 사진과 오른쪽 기사는 기아자동차 회사 측이 동희오토를 방문하여 <협력업체 탐방> 기사를 작성한 것이다.
기사에는 위 노동자들이 마치 동희오토의 정규직 노동자들인 것처럼 착각하게끔 작성되어 있으나, 오른쪽 기사 인터뷰 상대를 보면 <파이널라인 윤종원 소장>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정규직 관리체계는 조장, 반장, 기사 순으로 되어 있는게 보통이며, 하청업체는 보통 사장 밑에 소장을 두어 작업자 관리를 맡기게 된다. 즉, 오른쪽에 인터뷰한 사람은 파이널라인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하청업체의 소장이라는 뜻이다.
또한 이 기사가 <협력업체 탐방>용임을 감안할 때에도, 위 기사의 주인공들은 모조리 하청 노동자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기사만으로도, 동희오토에 약 900여명의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기아차 모닝을 전량 생산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완성차 조립공정과 엔진기아공장까지 무노조 비정규직 공장으로!
기아차 모닝의 사례는 더욱 위험한 사실을 경고해준다. 적어도 완성차 조립공정만큼은 기존 현대나 기아자동차 생산공장에서 독점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이제 드디어 조립공정까지도 외주하청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경차만을 동희오토라는 외주업체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언제 어느때에 소형차, 중형차, RV 차량, 상용차 등으로 옮아갈지 모른다.
모닝 생산을 위한 프레스 작업은 현재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차체 작업부터 도장, 의장조립까지 모조리 동희오토에 넘어가 있는 상태이다보니, 결국 조립공정의 외주화는 현재 존재하는 정규직 생산공장을 <껍데기만 남는 조립공장>으로 만들겠다는 전형적인 의도를 잘 드러내주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출자하여 서산에 <현대파워텍>이라는 공장을 보면 이러한 과정이 더욱 세밀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파워텍은 엔진과 기어를 생산하는 공장인데, 기존에 현대차와 기아차는 자체적으로 엔진기어 생산공장을 갖고 있었으나 이제는 이마저 외주화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그렇게 되면 현재 현대와 기아에서 엔진기어 사업부에 존재하는 정규직 조합원들은 모조리 쓸모없어지게 된다. 게다가 현대파워텍 또한 전형적인 무노조 비정규직 공장임을 감안하면, 자본 입장에서 괜히 돈 들여서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즉, 조만간 현대와 기아에서 생산하는 모든 차종의 엔진과 기어를 현대파워텍이 생산하게 되면, 현대차 울산과 아산, 전주공장 및 기아차 화성공장의 엔진사업부, 기어사업부 노동자들은 완전히 용도폐기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노조 비정규직 공장이 들어설 즈음에 많은 정규직 활동가들이 안이하게 생각했던 사실 - 비정규직만으로 생산공장을 채우면 숙련도 부족으로 불량률이 현저하게 늘지 않을까? - 이런 존만한 정규직 우월의식도 깨지고 있다. 동희오토와 현대모비스, 현대파워텍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세계 최고의 품질의 상품을 <이미> <지금 당장>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노조 비정규직 공장의 확산 -- 현대모비스, 동희오토, 서산 파워텍 ....
도대체 이 끝은 어디일까? 자동차 업종 모든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비정규직 철폐"를 그저 슬로건으로 외치고 있다면, 자본 진영은 아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물밑작업을 거쳐 "정규직 철폐"라는 과업을 현실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막오른 자동차업종 구조조정 (4)
그렇다면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 측의 대안은?
벌써부터 현대-기아자동차 안에서 비정규직을 짤라내는 구조조정의 신호탄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울산공장에서는 범퍼조립공정을 정규직 공정으로 전환한다는 미명 아래 2차 하청 여성노동자들을 고용불안으로 몰아넣고 있다. 아니, 공정을 정규직화한다니? 자본이 미쳤나? 아니다. 모듈화를 꾀하면서 범퍼를 포함한 후반부 모듈이 들어오다보니 범퍼만 조립하는 공정 자체가 필요없어진다는 것이 진실이다. 대신 후반부를 조립하는 정규직들이 그 공정을 맡아서 하게 되니 비정규직이 쫓겨나야 할 판이다.
아산공장에서는 차체 공정 전체를 자동화하는 과정에서 그 공정에 일하는 비정규직들이 쓸모없어졌다면서 얼마전 아산사내하청지회 간부를 포함한 4명의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 예고통보를 한 상태이다.
위기는 예감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눈앞에 와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앉아서 당할 것인가? 그럴순 없다.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야 한다. 그런데 무슨 슬로건으로? 일자리가 아예 소멸된다는데 무슨 수로 해고를 막아낸단 말인가? 그냥 대가리 쳐박고 가기만 하면 되는가? 노조운동의 대안은 없단 말인가?
지난 4월21일 현대자동차아산공장 앞 비정규직철폐 금속노조 결의대회. 아산공장은 모듈화로 인해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위기 앞에 직면해 있다.
1. 근무형태 변경-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나누기)
대단히 일반적인 대안이어서 별 실효가 없어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동차산업에서 근무형태변경과 실노동시간 단축은 실질적인 고용창출효과가 있다.
근무형태를 어떻게 변경한다는 것인가?
현재 자동차산업 근무형태는 일반적으로 주야맞교대 근무이다. 주간조는 오전 8시 출근하여 오후 8시에 퇴근하고, 야간조는 오후 9시에 출근하여 다음날 오전 8시에 주간조와 교대한다.
이 근무형태 하에서는 한달 400시간 이상 노동이 불가피하다. 그러고도 정규직 연봉은 휴일근로까지 다해봐야 5천만원을 왔다갔다 한다. 하루 8시간 노동으로는 20년차 정규직 연봉도 3천만원을 넘기 힘들다. 잔업특근철야휴일근로까지 다해야 4천만원을 넘어서는 현실이다.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기 위한 대안은 대략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주간연속2교대제 : 주간1조는 오전 7시에 출근하여 오후 3시까지(점심시간 1시간 제하면 7시간 노동), 주간2조는 오후3시 출근하여 밤11시까지(석식시간 1시간 제하면 7시간 노동) 일한다. 그리고 야간에는 콘베아를 돌리지 않는다. 즉, 지긋지긋한 야간노동을 폐지하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4조 3교대제 : 근무형태가 복잡하니 설명은 생략. 야간노동이 폐절되는 것은 아니지만 휴일이 상대적으로 늘게 되어 피로회복과 여가활용이 가능해진다. 한때 유한킴벌리 사례가 언론에 대서특필되어 각광을 받은 바 있다.
자본 입장에서는 생산량을 유지해야 할 강한 의욕을 갖게 되므로 이러한 근무형태로의 변경은 불가피하게 콘베어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혹은 새로운 라인을 증설하여 생산량을 맞춰야 한다. 콘베어속도를 빠르게 할 때에는 반드시 기존 콘베어라인에 신규인원을 충원해 주어야만 하며, 새로운 라인을 증설해도 그 라인에서 일할 노동자들을 신규고용으로 채워넣어야 한다. 즉, 근무형태 변경은 - 만약 생산량이 불변이라고 가정할 때 - 반드시 고용창출을 낳게 되어 있다.
2. 모듈화가 가진 양날의 칼을 활용하기
모듈화가 자본의 구조조정 일환이기도 하지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항상 양날의 칼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구조’를 ‘조정’한다 함은, 어쨌건 현재의 구조를 그대로 두지 않고 뭔가 변화를 준다는 것인데, 그 변화의 근거에는 자본의 요구도 있지만 노동 측의 요구도 개입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부도사업장을 해외에 매각하거나 재벌에 넘기려 할 때, 아주 미약한 목소리이긴 했으나 "노동자 자주관리"라는 대안이 조심스럽게 얘기되기도 했다. 매각에는 항상 내외독점자본에의 특혜를 수반하기 마련인데, 국민 혈세를 들여 회생시킨 기업을 헐값에 팔아치우느니 차라리 비용을 댄 국민들이 직접 소유하고 경영하자는, 아주 자연스런 발상이었다.
신자유주의가 화물차 노동자들을 ‘지입차주’ 즉 자영업자로 만들어갈 때, 그 자영업자들이 뭉치기만 하면 한 사회의 물류 전체를 마비시킬 수도 있음을,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이 스스로의 조합을 결성하면 그 어떤 자본의 힘보다 세기가 큰 조직체를 결성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모듈화가 주는 새로운 가능성은 무엇일까?
앞선 글에서 밝혔다시피 모듈화와 부품 아웃소싱은 무노조 비정규직공장의 양산을 낳고 있다고 했다. 무노조 비정규직공장은 기존 정규직 위주 생산공장에 비정규직이 혼용되어 일하는 시스템보다, 비정규직노조운동의 파고가 더 높게 차오를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없기 때문에 비정규직노조운동이 정규직노조운동의 방해나 여과를 거치지 않고 직접적인 분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듈화와 부품 아웃소싱이 상당부분 진행된 덕택에, 현대모비스와 서산파워텍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독자적인 파업만으로도 전국의 자동차공장 생산을 모두 멈출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된다. 엔진이나 기어없는 자동차를 생산할 수는 없지 않는가? 모듈화된 부품없이 자동차 생산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렇기에 더더욱 민주노조운동 역량들이 이곳, 무노조 비정규직 공장 쪽에 시급하게 투입되어야 한다. 그곳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고 강하게 단련시켜가야 한다. 게다가 모두들 젊고 활력있는 노동자 계층들이다! 쉽게 말해 민주노조운동 차세대 주자들로서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3. 완성차 정규직, 비정규직, 부품사 3주체의 공동대응
한국 자동차산업은 완성차회사와 부품사로 나뉜다. 그중 완성차에는 사내하청의 형태로 비정규직이 광범하게 존재하며, 부품사 중 최근 들어선 모비스와 파워텍 등 무노조 비정규직 공장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가 현대모비스의 시식대상이 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조정에 맞서기 위해서 부품사들만이 주체가 되어 나선다는 것은 자본 입장에서는 헤비급과 플라이급의 대결과도 같다. 완성차노조들이 쏙 빠진 상태에서 부품사노조 상대하는 것이야 누워서 떡먹기이니 말이다.
그러나 완성차노조 입장에서도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에 맞서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완성차 조립라인이 껍데기만 남을 뿐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부품사로 불똥이 떨어지고 있지만 결국 그 칼끝은 완성차 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취지에서 자동차업종 노동조합의 3주체, 즉 완성차 정규직노조와 완성차 비정규직노조, 부품사 노조, 이 3주체가 일치단결된 대응을 해야만 최소한의 승산이 있다.
구조조정에 맞서 3주체가 공동의 요구를 내걸고 자동차산업 자본가 전체를 상대로 공동교섭을 요구하며 공동임단투를 전개하는 것이 가장 위력적인 방식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1999년 초반, 현대-기아 구조조정에 맞서 현대-기아 완성차와 부품사 19개 노동조합이 뭉쳐서 <기아-현대 공대위>라는 형태로 이러한 공동투쟁을 경험한 바 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4. 자본의 구조조정에 맞서 노동의 대안을!
모듈화는 생산합리화인데, 자본 측에게 이것을 무턱대고 하지 말라고 싸울 수는 없지 않는가? 맨 첫번째 글을 쓸 때 나는 이 문제를 맨 나중에 다루겠다고 얘기한 바 있다.
그렇다. 무턱대고 반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내가 자본가라도 부품을 덩어리째 조립해서 들여오면 완성차 최종조립라인을 최대한 슬림화할 수 있을텐데, 내가 왜 그 길을 포기하겠는가?
하지만 우리 민주노조운동진영은 지금까지 모듈화에 맞서서 대단히 지엽적인 대응만을 해왔다. "일단 반대하고 보자"는 심리에서 반대하다가, 사측에서 "아니 이건 생산합리화고 경영파트니까 교섭대상이 아니다"라며 강경하게 나오면 잔업거부나 특근거부 정도 해보다가, 막판에 사측에서 "대신 다른 떡고물 하나 줄께" 하며 인원을 늘려주거나 생산피치를 다운시키거나 현안 문제 몇개를 제시하면 그것과 바꿔치기하는 식으로 협상은 끝났다. 즉, 자본 측은 별 어려움에 부닥치지 않고 모듈화를 착착 진행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생각은 할 수 없을까?
모듈화 자체는 자동차 생산시스템 전체를 뒤바꾸어놓는 생산방식의 변화이다. 그렇다면 차제에 자동차 생산과정에 노동조합 혹은 집합적 노동자들이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모듈화만을 놓고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고용의 유지확대를 위해 자동차 생산 전반을 놓고 노사가 함께 논의를 해보자고, 그것을 의제로 놓고 단체교섭을 해보자고 하는 방식은 어떠할까?
이를테면 자꾸 사외에 무노조 비정규직 모듈생산공장을 짓는 자본 측에게, "아니 라인 옆에다가 모듈생산라인을 가지고 와라.(사내모듈생산) 그렇게 되면 물류비용도 감축되지 않느냐"며 사내모듈원칙을 제시한다면 자본 측도 여기에 대응하기가 만만치 않아진다.
생산의 흐름과 물류 흐름까지 경영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하고, 총 고용을 늘릴 수 있는 방안과 무노조 비정규직 공장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할 수 있는 방안을 노동조합 차원에서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아닌가? 그리고 마음만 제대로 먹는다면 생산과정 전반에 노동자들이 개입, 통제할 수 있는 루트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구조조정은 자본에게만 기회가 아니라 노동에게도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어느 분이 리플을 달아주신 것처럼, 노동의 구조조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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