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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운에세이] 불가능은 없다
근자 나는 하루에 한자를 평균 수백 자씩을 써 본다. 날이면 날마다 수십 번도 넘게 국어사전을 찾고 옥편을 뒤진다. 그게 나의 하루 일과 중에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내 시간의 대부분을 거기에 할애하고 있는 셈이다. 한자는 머리로 눈으로만 익히는 글자가 아니다. 한자는 입과 손으로 익히는 글자다. 말로만 듣던 그 이야기의 의미가 지금의 나에게는 실제 내 피부에 절실히 와 닿는다. 그것은 내가 한자를 흑판에 써보이는 시연을 통해 직접 지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두 주 동안 10회에 걸쳐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내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기초한자교실이라는이름으로 한자를 가르쳤다. 이번이 네 번째다. 여름, 겨울 매 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사단법인 대한노인회에서는 아이들에게 예절지도를 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노인회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필요한 예산도 책정이 되어 있고 신청을 하면 소용경비는 하달이 된다. 그러나 강사 수당으로 지급되는 나의 몫은 전액 경로당에 희사한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영어에도 그런말이 있다. " To know is one thing and to teach is another." 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나는 한자를 정식으로 알고 있지는 못했다. 그냥 한문 글자만 좀 알고 있었지 한문이라는 문자의 생성원리며 필순, 필법, 획수, 어법 등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이를테면 좌(左)자와 우(右)자의 처음 두 획의 필순이 다른 줄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자 읽을 줄 아는 것만 믿고 가르쳐 보겠다고 나섰던 때가 2년 전이었다. 한자에 대한 인식이 지금 같았으면 그때 그런 만용은 부리지 못했을 것이다.
잘 된 일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잘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그 일이 내게는 커다란 의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나의 한문 실력도 조금은 쌓였고 무엇부터 어떻게 유도해야 할 것인가 하는 나름대로의 교수법, 노하우도 생겼다. 자신감도 붙었다. 직접 가르쳐 보는 것이 배우는 최선의 길이다. 아이들 앞에만 서면 나는 물 만난 고기가 된다. 배워 놓은 도둑질이라더니 나도 배워 놓은 거라고는 가르치는 일밖에는 없는 사람이다. 학기 중에는 두어 군데 근처 학교에 가서도 교육봉사라는 이름으로 아동들을 지도한다. 우리말, 기초한자, 영어까지 동원되는 수업은 꼬마들도 흥미 있어 한다. 그러니 한문을 지도하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는 짐작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우선 내가 좋고 재미가 있어서 그렇게 한다. 예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발견이다. 한문 글자를 한 자 한 자 정성껏 맘에 들도록 써본다는 것은 참으로 의의가 있는 일이다. 시작할 때보다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한 게 틀림이 없다. 그러나 써 놓고 보면 대부분의 글자들이 아직은 썩 맘에 들지는 않는다. 100% 만족하려면 죽을 때까지 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발전은 있다. 추사나 한석봉 같은 사람이 되는 게 목표는 아니다. 남 앞에서 자신 있게 쓸 수 있게 되는 것이 목표다. 그래야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
옥편도 한때는 내 서가에서 구색을 맞추기 위해 그냥 꽂혀 있었던 한 권의 책에 불과했다. 나의 전공과는 거리가 먼 책이라 치워버릴까 생각한 적도 없지 않았다.내일 일이란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다. 그러나 그 옥편이 지금은 가장 많이 펼쳐보는 소중한 나의 필수 서적이 되어 있다. 사람 팔자만 알 수 없는 게 아니라 책 팔자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옥편이 나의 애장서가 되다니. 옥편의 수도 이것저것 한 대여섯 권은 된다. 최신판 우리나라에서 나온 자전 중 제일 큰 것에서부터 특수 목적의 옥편까지.
한자는 쓸 줄 모르면 아는 것이 아니다. 한자의 3요소라 할 수 있는 형(形), 음(音), 의(義) 세 가지만 알아서 될 일이 아니다. 214개 부수가 8가지로 분류된다는 것도 알아야 하고, 한자 생성의 원리 여섯 가지, 육서(六書)에 대해서도 숙지해야 한다. 필순을 알면 획수는 저절로 나온다. 물 수(水), 인간 세(世), 거느릴 솔(率), 이끌 견(牽)자를 바로 쓸 줄 알아야 하고, 거북 귀(龜), 뚫을 착(鑿)과 답답할 울(鬱)자의 획수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한자를 공부했다 할 수 있다. 무리 중(衆), 버금 아(亞), 신하 신(臣)자도 마찬가지다. 그런 예들이 너무 많아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나의 무지만 드러내는 결과가 되어버릴 것이다.
아무런 재주도 재능도 기술도 갖고 있지 못한 터라 나는 시간을 즐겁게 보낼 줄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 결과 한문공부에 이처럼 몰입하게 된 것인 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따지고 보면 한문공부가 아니라 우리말 이해요 공부다. 우리말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를 어원으로 바탕으로 뿌리로 하고 있다. 만시지탄이 없지는 않으나 지금부터라도 우리말 뜻을 바로 알고 바로 쓰고 싶어서이다. 내가 좋아 시작한 일이고 보니 결과적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리라.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빠져들리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못했다. 한자쓰기는 빼먹는 날이 거의 없다. 지금은 혹한기요 눈까지 잔뜩 쌓여 있는 철이라 바깥 나들이 시간이 많지 않아서 더욱 그렇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도 자연 길어진다.
그렇다 보니 죽어 나는 건 종이요, 공책과 볼펜이다. 종이는 주로 A4용지를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번 사용된 용지 가운데는 이면이 비어 있는 게 다수다. 나는 그런 용지는 그냥 버리지 않고 모아 둔다. 내가 직접 활용하거나 손주들이 종이 달랄 때마다 준다. 볼펜도 새것을 하나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면 얼마 못 간다. 한꺼번에 몇 개씩 사 놓아도 이내 떨어진다. 볼펜 하나가 다 소모되는 날짜가 요즘은 금방금방이다. 다 쓴 것을 버리고 새것을 꺼내 드는 마음은 흐뭇하고 성취감마저 들기도 한다.
옛날 대학 다닐 때 진즉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아마 뭐가 되도 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대학시절에 전공인 영어가 나와 맞지 않아 공부를 포기하다시피 했던 사람이다. 그 결과 나는 좋은 접장이 되지 못했고 영어 가르치는 데 곤욕을 치뤘다. 그건 남이 장에 가는데 거름 지고 따라 갔기 까닭이다. 그런데도 영어교사로 영어로 밥을 먹고 살아왔고 대학교수까지 지냈으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건 엄연한 사실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바로 바보짓이었다. 나 같은 바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우리나라다. 우리나라는 참으로 좋은 나라요 고마운 나라다. 그래서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2013. 01. 21. 인천 송도에서/草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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