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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4일
높은 구름이낀 선선한 여름날 아침, 부산 시티투어 이층버스를 타고 높은 부산대교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여행하는 맛은 짜릿하다. 흰여울문화마을를 지나 태종대로 가서 유람선을 타보고, 많이 구경했기 때문에 내려서 구경은 안했지만 버스타고 지나가면서 오륙도와 송도를 구경하였는데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태종사 수국축제는 구경했기 때문에 패스.
부산 시티투어 버스는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코스와 해운대에서 출발하는 코스로 구분된다. 해운대에서 출발하는 시티투어 버스는 용궁사와 힐튼 호텔 등이 있는 기장 방향으로,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해운대 및 태종대 등을 둘러보는 코스로 운영되는데, 티켓을 발권한 날 하루동안 버스를 여러번 무료로 환승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유용하다.
우리들이 탑승했던 코스는 그린 라인으로 시간표마다 해당 정류장에서 횟수 제한없이 버스를 탈 수 있는데, 이날 갔던 곳은 흰여울 문화마을과 태종대, 오륙도, 송도를 도는 라인 이었다.
각 정류장에 내려서 그곳을 둘러보고 구경하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하는 식으로 하다보니 차편을 알아봐야하는 번거로움도 없었고 무엇보다 차량 자체가 워낙 편해서 노인들이타고 여행하기에는 딱이었다.
부산역에서 출발하는 일반 시티투어 코스는 2가지가 있다. 탑승 요금은 미리 예매하는 것은 안되며 탈 때 기사님에게 바로 현금 결제를 하거나 카드 결제를 하면 된다.
부산 시티투어 버스의 탑승요금은 성인이 15,000원인데 6월 23일부터 7월 19일까지 코스간에 환승요금없이 무조건 5000원이어서 코로나 시국에 당장은 여행을 가는 것이 꺼리지만 용기내어서 한바퀴 도는것도 괜찮을 것 같다.
구운몽 상- 김만중
천하에 명산이 다섯이 있으니 동쪽은 동악 태산이요, 서쪽은 서악 화산이요, 남쪽은 남악 형산이요, 북쪽은 북악 항산이요, 가운데는 중악 숭산이다. 오악 중에 오직 형산이 중국에서 가장 멀어 구의산이 그 남쪽에 있고, 동정강이 그 북쪽에 있고, 소상강 물이 그 삼면에 둘러 있으니, 제일 수려한 곳이다. 그 가운데 축용, 자개, 천주, 석름, 연화 다섯 봉우리가 가장 높으니, 수목이 울창하고 구름과 안개가 가리워 날씨가 아주 맑고 햇빛이 밝지 않으면 사람이 그 근사한 진면목을 쉽게 보지 못하였다.
진나라 때 선녀 위부인이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선동(仙童)과 옥녀(玉女)를 거느리고 이 산에 와 지키니, 신령한 일과 기이한 거동은 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다.
당나라 시절에 한 노승이 있어 서역 천축국에서 와 연화봉 경치를 사랑하여, 제자 오륙백 인을 데리고 연화봉 위에 법당을 크게 지었으니, 혹 육여화상이라 하기도 하고 혹 육관대사라 하기도 하였다.
그 대사가 대승법(大乘法)으로 중생을 가르치고 귀신을 다스리니 사람이 다 공경하여 생불(생불)이 세상에 나왔다 하였다. 무수한 제자 가운데 성진이라 하는 중이 삼장경문(三藏經文)을 모르는 것이 없고 총명한 지혜를 당할 사람이 없으니, 대사가 극히 사랑하여 입던 옷과 먹던 바리때를 성진에게 전하고자 하였다.
대사가 매일 모든 제자와 함께 불법을 강론하는데 동정(洞庭)용왕이 백의(白衣)노인으로 변하여 법석(法席)에 참예해 경문을 들었다.
대사가 제자를 불러 말하였다.
"나는 늙고 병들어 산문(山門) 밖에 나가지 못한 지 십여 년이니 너의 제자 중에 누가 나를 위하여 수부(水府)에 들어가 용왕께 보답하고 돌아오겠는가?"
성진이 두 번 절하며 말하였다.
"소자가 비록 불민(不敏)하오나 명을 받아 가겠습니다."
대사가 크게 기뻐 성진을 명하여 보내니 성진이 일곱 근이나 되는 가사(袈裟)를 떨쳐 입고 육환장(六環杖)을 둘러 짚고 표연히 동정을 향하여 갔다. 얼마 후에 문을 지키는 도인(道人)이 대사께 고하여 말하였다.
"남악 위부인(衛夫人)이 여덟 선녀를 보내어 문밖에 왔습니다."
대사가 명하여 부르시니 팔선녀가 차례로 들어와 인사하고 끓어 않자 부인의 말씀을 여쭈어 말하였다.
"대사는 산 서편에 계시고 저는 산 동편에 있어 떨어진 거리가 멀지 아니하지만 자연히 일이 많아 한번도 법석에 나아가 경문을 듣지 못하오니, 사람을 대하는 도리도 없고, 또한 이웃과 교제하는 뜻도 없기에 시비를 보내어 안부를 묻고, 하늘 꽃과 신선의 과일 그리고 칠보문금(七寶紋錦)으로 구구한 정성을 표합니다."
하고, 각각 선과(仙果)와 보배를 눈 위에 높이 들어 대사께 드리니, 대사가 친히 받아 시자(侍子)를 주어 불전에 공양하고, 또 합장하여 사례하며 말하였다.
"노승이 무슨 공덕이 있기에 이렇듯 상선(上仙)의 풍성한 선물을 받겠는가?"
하며, 이어서 큰 재(齋)를 베풀어 팔선녀를 대접하여 보냈다.
팔선녀가 대사께 하직하고 산문 밖에 나와 서로 손을 잡고 말하였다.
"이 남악의 물 하나 산 하나가 다 우리 집 경계인데 육환대사가 거처 기거하신 후로는 동서로 분명히 나뉘게 되어 연화봉 아름다운 경치를 지척에 두고도 구경하지 못한지 오래되었다. 이제 우리 부인의 명을 받아 이 땅에 왔으니 만나기 힘든 좋은 기회라, 또 봄빛이 좋고 해가 저물지 아니 하였으니 이 좋은 때를 맞아 저 높은 대에 올라 흥을 타며 시를 읊어 풍경을 구경하고 돌아가 궁중에 자랑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고, 서로 손을 이끌고 천천히 걸어 올라 폭포에 나아가 흐름을 보고 물을 쫓아 내려가 돌다리 위에 쉬니 이때는 바로 춘삼월이었다. 화초는 만발하고 구름과 안개는 자욱한데 봄새 소리에 춘흥이 호탕하고 물색이 사람을 붙잡는 듯하여, 팔선녀가 자연 몸과 마음이 산란하고 춘흥이 일어나 차마 떠나지 못하여 편안히 웃고 말하며 돌다리에 걸터 앉아 경치를 희롱하니, 낭낭한 웃음은 물소리에 어울리고 아름답고 고운 얼굴은 물 가운데 비치어 완전히 한 폭의 미인도라 하면 미인도를 잘 그린 주방(周昉)의 손 아래에 갓 나온 듯하였다.
온갖 희롱하며 떠날 줄 모르더니, 이때 성진이 동정에 가 물결을 헤치고 수정궁(水晶宮)에 들어가니 용왕이 크게 기뻐하여 몸소 문무(文武)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궁문 밖에 나가 맞아 들어가 자리를 정한 후에 성진이 땅에 엎드려 대사의 말씀을 낱낱이 아뢰니, 용왕이 공경하여 사례하고 잔치를 크게 베풀어 성진을 대접할 때, 신선의 과일과 채소는 인간 세상의 음식과 같지 않았다.
용왕이 잔을 들어 성진에게 삼배(三盃)를 권하여 말하였다.
“이 술이 좋지는 않으나 인간 세상의 술과는 다르니 과인(寡人)의 권하는 정을 생각하라.”
성진이 재배하여 말하였다.
“술은 사람의 정신을 헤치는 것이라 불가(佛家)에서 크게 경계하니 감히 먹지 못하겠습니다.”
용왕이 지성으로 권하니 성진이 감히 사양치 못하여 석 잔 술을 먹은 후에 용왕께 하직하고 수궁에서 떠나 연화봉을 행하였다. 연화산 아래에 당도하니 취기가 크게 일어나 갑자기 생각하여 말하였다.
‘사부(師傅)께서 만일 나의 취한 얼굴을 보면 반드시 무거운 벌을 내리실 것이다.’
하고, 가사를 벗어 모래 위에 놓고 손으로 맑은 물을 쥐어 얼굴을 씻는데, 문득 기이한 향내가 바람결에 진동하니 마음이 자연 호탕하였다.
성진이 이상히 여겨 말하였다.
“이 향내는 예사로운 초목의 향내가 아니다. 이 산 중에 무슨 기이한 것이 있는가?”
하고, 다시 의관을 정제하고 길을 찾아 올라가니, 이때 팔선녀가 돌다리 위에 않다 있었다. 성진이 육환장을 놓고 합장하여 재배하고 말하였다.
“모든 보살님은 잠깐 소승(小僧)의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천승(賤僧)은 연화 도량 육관대사의 제자로서 사부의 명을 받아 용궁에 갔다 오는데, 이 좁은 다리 위에 모든 보살님이 앉아 계시니 천승이 갈 길이 없어 부탁합니다, 잠깐 옮겨 앉아서 길을 빌려주십시오.”
팔선녀가 대답하고 절하며 말하였다.
“첩 등은 남악 위부인의 시녀인데 부인의 명을 받아 연화 도량 육관대사께 문안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다리 위에 잠깐 쉬고 있습니다. <예기(禮記)>에 ‘남자는 왼편으로 가고, 여자는 오른편으로 간다.’ 하였습니다. 첩 등이 먼저 와 앉았으니, 원컨대 화상(和尙)께서는 다른 길을 구하십시오.”
성진이 답하여 말하였다.
“물은 깊고 다른 길이 없으니 어디로 가라 하십니까?”
선녀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 달마존자(達磨尊者)라 하는 대사는 연 꽃잎을 타고도 큰 바다를 육지같이 왕래하였으니, 화상이 진실로 육관대사의 제자라면 반드시 신통한 도술이 있을 것이니, 어찌 이 같은 조그마한 물을 건너기를 염려하시며 아녀자와 길을 다투십니까?”
성진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모든 낭자의 뜻을 보니 이는 반드시 값을 받고 길을 빌려주시고자 하는 것이니, 본디 가난한 중이라 다른 보화는 없고 다만 행장에 지닌 백팔염주가 있으니, 빌건대 이것으로 값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목의 염주를 벗어 손으로 만지더니 복숭아꽃 한 가지를 던지거늘, 팔선녀가 그 꽃을 구경하니 꽃이 변하여 네 쌍의 구슬이 되어 그 빛이 땅에 가득하고 상서로운 기운은 하늘에 사무치니 향내가 천지에 진동하였다.
팔선녀가 그제야 일어나 움직이며 말하였다.
“과연 육관대사의 제자구나.”
하며, 각각 하나씩 손에 쥐고 성진을 서로 돌아보고 웃으며 바람을 타고 공중을 향해 갔다. 성진이 홀로 돌다리 위에서 눈을 들어보니 팔선녀는 간 곳이 없었다.
한참 후에 채색 구름이 흩어지고 향내가 사라지니 성진이 마음을 진정치 못하여 홀린 듯 취한 듯 돌아와 용왕의 말씀을 대사께 아뢰자, 대사가 말하였다.
“어찌 늦었는가?”
성진이 대답해 말하였다.
“용왕이 심히 만류하기에 차마 떨치지 못하여 지체하였습니다.”
대사가 대답하지 아니하고,
“네 방으로 가라.”
하였다. 성진이 돌아와 밤에 혼자 빈방에 누우니 팔선녀의 말소리가 귀에 쟁쟁하고 얼굴 빛은 눈에 아른거려 앞에 앉아 있는 듯, 옆에서 당기는 듯 마음이 황홀하여 진정치 못하다가 문득 생각하였다.
‘남자로 태어나서 어려서는 공자와 맹자의 글을 읽고, 자라서는 요순 같은 임금을 섬겨, 나가면 백만 대군을 거느려 적진에 횡행하고, 들어서는 백관(百官)을 장악하는 재상이 되어 몸에는 비단 두루마기를 입고, 허리에는 황금으로 만든 도장을 차고, 임금을 섬기고 백성을 달래며, 눈에는 아리따운 미색을 희롱하고, 귀에는 좋은 풍류 소리를 들으며, 영화를 당대에 자랑하고 공명을 후세에 전하면 그것이야말로 진실로 대장부의 일일 텐데 슬프다, 우리 불가는 다만 한 바리때 밥과 한 잔 정화수요, 수삼 권 경문과 백팔염주일 따름이요, 그 도가 허무하고 그 덕이 사라져 없어지니, 가령 도통한 들 넋이 한번 불꽃 속에 흩어지면 뉘 한낱 성진이 세상에 났던 줄을 알리오.’
이럭저럭 잠을 이루지 못하여 밤이 이미 깊었다, 눈을 감으면 팔선녀가 앞에 앉았고 눈을 떠보면 문득 간 데가 없었다. 성진이 크게 뉘우쳐 말하였다.
“불법(佛法)공부는 마음을 정하는 것이 제일인데 이 사사로운 마음이 이렇듯 일어나니 어찌 앞날을 바라겠는가?”
하고, 즉시 염주를 굴리며 염불을 하는데 갑자기 창 밖에서 동자가 급히 말하였다.
“사형는 주무십니까? 사부께서 부르십니다.”
성진이 크게 놀라 동자를 따라 바삐 들어가니 대사가 모든 제자를 거느려 있는데 촛불이 대낮 같았다. 대사가 크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
“성진아, 네 죄를 아느냐?"”
성진이 크게 놀라 신을 벗고 뜰에 나려 엎드려 말하였다.
“소자가 사부를 섬긴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조금도 불순불공한 일이 없었으니 죄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대사가 크게 화를 내며 말하였다.
“네 용궁에 가 술을 먹었으니 그 죄도 있거니와 오가다 돌다리 위에서 팔선녀와 함께 언어를 희롱하고 꽃 꺾어 주었으니 그 죄 어찌하며, 돌아온 후 선녀를 그리워하여 불가의 경계는 전혀 잊고 인간 부귀를 생각하니 그러하고서 공부를 어찌 하겠느냐, 네 죄가 중하여 이곳에 있지 못할 것이니, 네 가고자 하는 데로 가거라.”
성진이 머리를 두드리고 울며 말하였다.
“소자가 죄 있어 아뢸 말씀이 없지만, 용궁에서 술을 먹은 것은 주인이 힘써 권하였기 때문이요, 돌다리에서 수작한 것은 길을 빌리기 위함이었고, 방에 들어가 망령된 생각이 있었지만 즉시 잘못인 줄을 알아 다시 마음을 정하였으니 무슨 죄가 있습니까? 설사 죄가 있다면 종아리나 때리셔 경계하실 것이지 박절하게 내치십니까? 소자가 십이 세에 부모를 버리고 친척을 떠나 사부님께 의탁하여 머리를 깎아 중이 되었으니, 그 뜻을 말한다면 부자의 은혜가 깊고 사제의 분별이 중하니, 사부를 떠나 연화도량을 버리고 어디로 가라 하십니까?”
대사가 말하였다.
“네 마음이 크게 변하여 산중에 있어도 공부를 이루지 못할 것이니 사양치 말고 가거라, 연화봉을 다시 생각한다면 찾을 날이 있을 것이다.”
하고, 이어서 크게 소리쳐 황건역사(黃巾力士)를 불러 분부하여 말하였다.
“이 죄인을 압송하여 풍도(豐都)에 가 염라대왕께 부쳐라.”
성진이 이 말씀을 듣고 간장이 떨어지는 듯하였다. 머리를 두드리며 눈물을 흘리고 사죄하여 말하였다.
“사부, 사부님은 들으십시오. 옛적 아란존자(阿難尊者)는 창가(娼家)에 가 창녀와 동침하였지만 석가여래께서 오히려 죄하지 아니하였으니, 소자가 비록 근신하지 않은 죄가 있으나 아란존자에게 비하면 오히려 가벼운데, 어찌 연화봉을 버리고 풍도로 가라 하십니까?”
대사가 말하였다.
“아란존자는 비록 창녀와 동침하였으나 그 마음은 변치 아니 하였지만, 너는 한번 요색(妖色)을 보고 전혀 본심을 잃으니 어찌 아란존자와 비교하겠는가?”
성진이 눈물을 흘리고 마지 못하여 부처와 대사께 하직하고 사형(師兄)과 사제(師弟)를 이별하고, 사자(使者)를 따라 수만 리를 행하여 음혼관(陰魂關) 망향대(望鄕臺)를 지나 풍도에 들어가니 문을 지키는 군졸이 말하였다.
“이 죄인은 어떤 죄인이요?”
황건역사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육관대사의 명으로 이 죄인을 잡아왔노라.”
귀졸(鬼卒)이 대문을 열자, 역사(力士)가 성진을 데리고 삼라전(森羅殿)에 들어가 염라대왕께 뵈니 대왕이 말하였다.
“화상(和尙)이 몸은 비록 연화봉에 매였으나, 화상 이름은 지장왕(地藏王) 향안(香案)에 있어 신통한 도술로 천하 중생을 건질까 하였는데, 이제 무슨 일로 이곳에 왔느냐?”
성진이 크게 부끄러워하며 고하여 말하였다.
“소승이 사리가 밝지 못하여 사부께 죄를 짓고 왔으니, 원컨대 대왕은 처분하십시오.”
한참 후에 또 황건역사가 여덟 죄인을 거느리고 들어오자, 성진이 잠깐 눈을 들어 보니 남악산 팔선녀였다.
염라대왕이 또 팔션녀에게 물었다.
“남악산 아름다운 경치가 어떠하기에 버리고 이런 데 왔느냐?”
선녀 등이 부끄러움을 머금고 대답해 말하였다.
“첩 등이 위부인 낭랑의 명을 받아 육관대사께 문안하고 돌아오는 길에 성진 화상을 만나 문답한 말씀이 있었는데 대사가, 첩 등이 좋은 경계를 더럽게 하였다 하여 위부인께 넘겨 첩 등을 잡아 보냈습니다. 첩 등의 괴로움과 즐거움이 다 대왕의 손에 매였으니, 원컨대 좋은 땅을 점지해 주십시오”.
염라대왕이 즉시 지장왕(地藏王)께 보고하고 사자(使者) 아홉 사람을 명하여 성진과 팔선녀를 이끌고 인간 세상으로 보냈다.
각설이라.
성진이 사자를 따라 가는데 문득 큰 바람이 일어 공중에 떠 천지를 분간치 못하였다. 한 곳에 다다라 바람이 그치자 정신을 수습하여 눈을 떠보니 비로소 땅에 서있었다.
한 곳에 이르니 푸른 산이 사면으로 둘러 있고 푸른 물이 잔잔한 곳에 마을이 있었다. 사자가 성진을 기다리게 하고 마을로 들어간 후, 성진이 한 참 서서 들으니 서너 명의 여인이 서로 말하기를,
“양처사 부인이 오십이 넘은 후에 태기가 있어 임신한 지 오래인데 지금 해산치 못하니 이상하다.”
하더라.
한참 후에 사자가 성진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이 땅은 곧 당나라 회남도(淮南道) 수주(秀州) 고을이요, 이 집은 양처사의 집이다. 처사는 너의 부친이요, 부인 유씨는 네 모친이다. 네 전생의 연분으로 이 집 자식이 되었으니 너는 네 때를 잃지 말고 급히 들어가라.”
성진이 들어가며 보니 처사는 갈건(葛巾)을 쓰고 학창의(鶴氅衣)를 입고 화로에서 약을 다리고 있었다. 부인이 이제 막 신음하자, 사자가 성진을 재촉하여 뒤에서 밀쳤다. 성진이 땅에 업어지니 정신이 아득하여 천지가 뒤집어지는 듯하였다. 급히 소리쳐 말하였다.
“나 살려! 나 살려!”
그러나, 소리가 목구멍 속에 있어 능히 말을 이루지 못하고 어린 아이의 울음 소리만 나왔다. 부인이 이에 아기를 낳으니 남자였다. 성진이 다만 오히려 연화봉에서 놀던 마음이 역력하더니 점점 자라 부모를 알아 본 후로 전생 일을 아득히 생각지 못하였다.
양처사가 아들을 낳은 후에 매우 사랑하여 말하였다.
“이 아이의 골격이 맑고 빼어나니 천상의 신선이 귀양 왔다.”
하고, 이름을 소유라 하고, 자는 천리라 하였다. 양생이 십여 세에 이르러 얼굴이 옥 같고 눈이 샛별 같아 풍채가 준수하고 지혜가 무궁하니 실로 대인군자였다.
하루는 처사가 부인에게 말하였다.
“나는 세속 사람이 아니요, 봉래산 선관(仙官)으로서 부인과 전생 연분이 있어 내려왔는데, 이제 아들을 낳았으니 나는 봉래산으로 가거니와 부인은 말년에 영화를 보시고 부귀를 누리시오.”
하고, 학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갔다.
처사가 승천한 후에 양생이 이십 세를 당하여 얼굴은 백옥 같고, 글은 이적선(李謫仙) 같으며, 글씨는 왕희지(王羲之)같고, 지혜는 손빈(孫殯) 오기(吳起)도 미치지 못하였다.
하루는 성진이 모친께 아뢰어 말하였다.
“들어보니 과거 시험이 있다 합니다. 소자 모친 슬하를 떠나 서울 황성에 유학하고자 합니다.”
유씨가 그의 뜻이 본디 평범하지 않음을 보고 만리 밖에 보내기 민망하지만, ‘공명을 얻어 가문을 보전할까 한다.’ 하고, 즉시 봉황이 새겨진 금비녀를 팔아 행장을 차려주니, 양생이 모친께 하직하고 한 필 나귀와 삼척 서동(書童)을 데리고 떠났다.
한 곳에 도달하니 수양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작은 누각이 있어 단청은 밝게 빛나고 향기 진동하니 이 땅은 화주 화음현(華州 華陰懸)이었다. 소유가 춘흥을 이기지 못하여 버들을 비스듬히 잡고 <양류사(楊柳詞)>를 지어 읊으니 그 글은 다음과 같았다.
버드나무 푸르러 베 짠 듯하니,
긴 가지 그림 같은 누각에 드러웠구나.
원컨대 부지런히 심으세요.
이 버들이 가장 멋지다오.
또 하였으되,
버드나무 어찌 이리 푸르고 푸를까?
긴 가지 비단 기둥에 드리웠구나.
원컨대 그대는 잡아 꺽지 마오.
이 나무가 가장 다정하다오.
하고 읊으니 그 소리 청아하여 옥을 깨치는 듯 하였다.
이때 그 누각 위에 옥 같은 처자가 있으니 이제 막 낮잠을 자다가 그 청아한 소리를 듣고 잠을 깨어 생각하되,
‘이 소리는 필연 인간의 소리가 아니다. 반드시 이 소리를 찾으리라.’
하고, 베개를 밀치고 주렴을 반만 걷고 옥난간에 비껴서서 사방을 두루 볼 때, 갑자기 양생과 눈이 마주치니 그 처자의 눈을 초생달 같고, 얼굴은 빙옥 같으며, 머리 구비가 헝클어져 귀밑에 드리워졌고, 옥비녀는 비스듬히 옷깃에 걸친 모양이 낮잠 자던 흔적이었다. 그 아리따운 거동을 어디 다 헤아리겠는가.
이때 서동이 객점(客店)에 가 묵을 것을 잡고 와 양생께 고하여,
“저녁밥이 다 되었으니 행차하십시오.”
라고 하자, 그 처자가 부끄러워 주렴을 걷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양생이 홀로 누각 아래에서 속절없이 바라보니, 지는 날 빈 누각에 향내뿐이었다. 지척이 천리되고 약수(弱水)가 멀어지니 양생이 할 수 없이 서동을 데리고 객점으로 돌아와 애만 태웠다.
대개 이 처자의 성은 진씨요, 이름은 채봉이니 진어사의 딸이다. 일찍이 자모를 잃고 동생이 없어, 그 부친이 서울 가 벼슬하는 까닭에 소저가 홀로 종만 데리고 머물렀는데, 뜻밖에 꿈 밖에서 양생을 만나 그 풍채와 재주를 보고 심신이 황홀하여 말하였다.
“여자가 장부를 섬기기는 인간의 대사요 백년고락이라. 옛날 탁문군(卓文君)이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찾아갔으니 처자의 몸으로 배필을 청하기는 가하지 않지만, 그 상공의 거주지와 성명을 묻지 아니 하였다가 후에 부친께 고하여 매파를 보내려 한들 어디 가서 찾겠는가?”
하고, 즉시 편지를 써 유모를 주어 말하였다.
“객점에 가 나귀를 타고 이 누각 아래에 와 <양류사>를 읊던 상공을 찾아 이 편지를 전하고 내 몸이 의지하고자 하는 뜻을 알게 하라.”
유모가 말하였다.
“이후에 어사도가 노하여 물으시면 어찌하시렵니까?”
소저가 말하였다.
“이는 내가 당할 것이니 염려치 말라.”
유모가 말하였다.
“그 상공이 이미 배필을 정하였으면 어찌하시렵니까?”
소저가 한참을 생각다가 말하였다.
“불행히도 배필을 정하였으면 이 상공의 소첩됨이 부끄럽지 아니할 것이다. 또 그 상공을 보니 소년이어서 취처(娶妻)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니 의심 말고 가라.”
유모가 객점으로 가니, 이때 양생이 객점 밖에서 두루 걸으며 글을 읊다가 늙은 할미가 <양류사>읊은 나그네를 찾는 것을 보고 바삐 나아가 물어 말하였다.
“<양류사>는 내가 읊었는데 무슨 일로 찾는가?”
유모가 말하였다.
“여기서 할 말씀이 아니오니 객점으로 들어가십시오.”
양생이 유모를 이끌고 객점에 들어가 급히 물으니 유모가 말하였다.
“<양류사>를 어디서 읊으셨습니까?”
양생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나는 먼 지방 사람으로 지나다가 마침 한 누각을 보니 양류 춘색(楊柳春色)이 볼만하기에 흥에 겨워 시 한 수를 읊었는데 어찌 묻는가?”
유모가 말하였다.
“낭군께서 그때 상면한 사람이 있으십니까?”
양생이 말하였다.
“마침 하늘의 신선이 누각에 있어 아리따운 거동과 기이한 향내가 이제 까지 눈에 있어 잊지 못한다.”
유모가 말하였다.
“그 집은 진어사댁이요, 처자는 우리 소저인데 소저가 마음이 총명하고 눈이 밝아 사람을 잘 알아 잠깐 상공을 보시고 몸을 의탁고자 하되, 어사께서 바야흐로 경성에 계시니 이후로 매파를 통하고자 한들 상공이 한번 떠난 후에는 종적을 찾을 길이 없어 노첩(老妾)으로 하여금 사시는 곳과 성명과 취처 여부를 알고자 하여 왔습니다.”
생이 크게 기뻐하여 말하였다.
“내 성은 양씨요, 이름은 소유요, 집은 초나라 수주 고을이요, 나이 어려 배필을 정하지 못하였고, 노모가 계시니 혼례를 지내기는 서로 부모께 고하여 해하겠지만 배필 정하기는 한마디로 결단하겠다.”
유모가 크게 기뻐하여 봉한 편지를 내어드리자, 떼어보니 <양류사>에 화답한 글이었다.
그 글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누각 앞에 양류를 심기는
낭군의 말 매게 함입니다.
어찌 이 버들을 꺽어 채를 만들어
장대(章臺) 길로 가기를 향하시는지요?
양생이 이글을 보고 탄복하여 말하였다.
“옛날 왕유(王維)와 이백(李白)이라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즉시 채전(彩箋)을 빼어 한 수 글을 지어 써서 유모를 주니 그 글은 다음과 같았다.
양류 천만 실이
실마다 마음을 맺었습니다.
원컨대 달 아래 만나
즐거운 봄소식을 맺을까 하오.
유모가 받아 품 안에 넣고 객점 문 밖에 나가자 양생이 다시 불러 말하였다.
“소저는 진 땅 사람이요, 나는 초 땅 사람이라서, 산천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소식을 통하기가 어렵다. 하물며 오늘날 이룬 징표가 없으니, 생각건대 달빛을 타 서로 상대하여 굳게 약속하여 정함이 어떠한가?”
노모가 허락하고 가서는 즉시 돌아와 소저의 말씀을 양생에게 전하여 말하였다.
“성례(成禮)전에 서로 보기가 지극히 편치 못하지만, 내 그대에게 의탁코자 하는데 어찌 말씀을 어기겠습니까. 밤에 서로 만나보면 남의 말도 있을 것이요, 부친이 아시면 반드시 죄를 주실 것이니, 원컨대 밝은 날 길에서 만나 약속을 정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양생이 이 말을 듣고 탄식하며 말하였다.
“소저의 영민한 마음은 남에게 미칠 바가 아니구나.”
하고, 유모를 사례하여 보냈다.
양생이 객점에서 자는데 마음에 잊혀지지 않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 닭 우는 소리를 기다리더니, 한참 후에 날이 장차 밝으려 하자 생이 서동을 불러 말을 먹이는데, 갑자기 큰 규모의 군대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 문득 바라보니 천지가 진동하였다. 생이 크게 놀라 옷을 떨쳐 입고 문 밖에 내달아 보니 피난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달아나거늘, 생이 황망히 연고를 묻자, ‘신책장군(神策將軍) 구사량(仇士良)이란 사람이 나라를 배반하여 자칭 황제라 하고 군병을 일으키자 천자께서 진노하시어 신책의 대병을 단번에 쳐 파하니 도적이 패군하여 온다.’ 하거늘, 생이 더욱 크게 놀라 서동을 재촉하여 피난하여 도망할 때, 갈 바를 몰라 남전산으로 들어가 피하고자 하였다. 아이를 재촉하여 들어가며 좌우를 살펴 산수를 구경하다가, 문득 보니 절벽 위에 수간 초당이 있는데 구름에 가렸고 학의 소리가 들리거늘, ‘분명 인가가 있다.’ 하고, 바위 사이 돌길로 올라 찾아가니 한 도사가 자리 위에 비스듬히 앉았다가 양생을 보고 기뻐하여 물어 말하였다.
“너는 피난하는 사람이니 반드시 회남 양처사의 아들이 아니냐?”
양생이 나아가 재배하며 눈물을 머금고 대답하여 말하였다.
“소생은 양처사의 아들입니다. 아비를 이별하고 다만 어미를 의지하여 재주가 심히 미련하나 먕령되이 요행으로 과거를 보려 화음 땅에 이르렀는데 난리를 만나 살기를 도모하여 이곳에 와 오늘날 선생을 만나 부친의 소식을 듣기는 하늘이 명하신 일입니다. 이제 대인의 궤장(几杖)을 모셨으니, 엎드려 빌건대 부친은 어디 계시며 건강은 어떠하십니까? 원컨대 한 말씀을 아끼지 마십시오.”
도사가 웃으며 말하였다.
“네 부친이 아까 자각봉에서 나와 바둑을 두었는데 어디로 간 줄을 알겠느냐. 얼굴이 아이 같고 머리카락이 세지 아니하였으니 그대는 염려치 말라”
양생이 또 울며 청하여 말하였다.
“원컨대 선생의 도움으로 부친을 뵙게 하십시오.”
도사가 웃으며 말하였다.
“부자간 지극한 정이 중하나 신선과 범인(凡人)이 다르니 보기 어렵다. 또 삼산(三山)이 막연하고 십주(十洲)가 아득하니 네 부친의 거취를 어디 가서 찾겠는가, 너는 부질없이 슬퍼 말고 여기서 머물며 난리가 평정된 후에 내려가거라.”
양생이 눈물을 씻고 앉았는데 도사가 갑자기 벽 위의 거문고를 가리켜 말하였다.
“너는 저것을 하느냐?”
생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소자가 좋아하지만 선생을 만나지 못하여 배우지는 못하였습니다.”
<중략>
황상이 태후께 여쭈었다.
“두 누이의 혼사를 이미 결단 하셨으니 여중서 진채봉을 생각하십시오. 진채봉은 본디 조관(朝官)의 자식입니다. 그의 집이 비록 망하였으나 그 재주와 심덕이 기특하고 또 양상서와 언약이 있었다하니, 공주 혼사에 잉첩(媵妾)을 삼았으면 합니다.”
태후가 즉시 채봉을 불러 말하였다.
“너를 양상서의 첩으로 정하니 두 공주의 희작시(喜鵲詩)를 차운(次韻)하라.”
진씨가 즉시 글을 지어 드리니 의사(意思)와 필법이 신묘하여 태후와 황상이 칭찬해 마지 않았다.
하루는 영양공주가 태후께 아뢰어 말하였다.
“소녀가 들어올 때에 부모가 놀라 염려하였으니 돌아가 부모를 보고 이런 훌륭한 덕을 자랑하고자 합니다.”
태후가 말하였다.
“아직 사사로이 출입을 할 수 없다. 내 의논할 말도 있으니 최부인을 청하겠다.”
하고, 즉시 조서(調書)하였다.
최씨가 들어가 태후께 입조하자 태후가 말하였다.
“내 부인의 딸을 데려와 양녀를 삼았으니 부인은 염려 마시오.”
최씨가 사례하여 말하였다.
“첩이 아들이 없고 딸 하나만 있어 금옥같이 사랑하였는데 낭랑의 훌륭한 덕이 이렇듯 하니 시든 나무에 꽃이 핀 것과 같습니다. 이 은덕을 죽어도 갚을 길이 없습니다.”
영양과 난양이 부인을 보고 서로 반겨함은 헤아리지 못할 바였다.
태후가 말하였다.
“부인의 집에 가춘운이 있다 하더니 왔소이까?”
부인이 춘운을 불러 즉시 입조케 하자 태후가 말하였다.
“진실로 절대가인(絶代佳人) 이구나.”
하고, 두 공주와 진씨가 지은 글을 말한 후,
“차운하라”
하자, 춘운이 사양치 못하여 즉시 지어 드리니 태후가 보고 길게 탄복하였다.
춘운이 물러가 두 공주께 뵈고 앉으니 공주가 진씨를 가리켜 말하였다.
“이는 화음(華陰) 진가(秦家) 여자다. 그대와 백 년을 함께 할 사람이다.”
춘운이 말하였다.
“<양류사>를 지은 진씨십니까?”
진씨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양류사>를 어찌 아십니까?”
춘운이 말하였다.
“상서가 매일 <양류사>를 읊으며 낭자를 생각하시기에 들었습니다.”
진씨가 말하였다.
“상서가 옛일을 잊지 아니하시는구나.”
하고, 더욱 슬퍼하였다.
태후가 최부인에게 말하였다.
“양상서를 속일 묘책이 있으니 부인도 나가서 소저가 죽었다고 하시오.”
두 공주가 부인을 문 밖에 전송(餞送)하고 춘운에게 말하였다.
“네가 죽었다하고 상서를 속여라.”
춘운이 말하였다.
“전에 속인 일도 죄가 큰데 다시 속이고 무슨 면목으로 상서를 섬기겠습니까?”
공주가 말하였다.
“태후께서 명하신 일이니 마지는 못할 것이다.”
춘운이 듣고 갔다.
각설이라.
양상서가 돌아온다는 소문이 경성에 들어오자, 천자가 친히 위교에 나와 상서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만리 밖에 가 역적들을 깨끗이 쓸어버린 공을 어찌 갚겠는가?”
하시고, 바로 그날 대승상(大丞相) 위국공(魏國公)을 봉하고, 삼만 호를 끊어 주고, 화상(畵像)을 기린각(麒麟閣)에 그려놓게 하였다.
승상이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물러나와 정사도 집에 가자 정사도 일가가 다 외당에 모여 승상을 위로할 때, 양승상이 사도 부처의 안부를 물으니 정십삼이 말하였다.
“누이의 상사(喪事)를 만난 후에 항상 눈물로 지내시기에 나와서 승상을 맞이하지 못하니 승상은 들어가 뵙되 아프게 하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승상이 이 말을 듣고 질색하여 말을 못하다가 한참 후에 말하였다.
“소저가 죽었단 말이오?”
하고, 눈물을 흘리거늘 정생이 말하였다.
“승상과 혼인을 정하였다가 불행하여 이렇게 되니 어찌 우리 집 가문의 운수가 쇠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승상은 슬퍼 마십시오.”
승상이 눈물을 씻고 정생을 데리고 들어가 사도 부처께 뵈니 사도 부처가 별로 서러워하는 빛이 없었다.
승상이 말하였다.
“저는 나라의 명으로 만리 타국에 가 성공하고 돌아와 전생연분을 맺을까 하였는데, 하늘이 그르게 여기시어 소저가 인간 세상을 이별하였다 하오니 소자의 불행입니다.”
사도가 말하였다.
“사람의 생사는 하늘에 달려 있으니 어찌 하겠나? 오늘은 승상의 즐길 날이니 어찌 슬퍼하는가?”
정생이 승상에게 눈짓을 해 일어나 화원에 들어가니 춘운이 반겨 내달아 뵈자, 승상이 춘운을 보고 소저를 생각하여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
춘운이 위로하여 말하였다.
“승상께서는 과히 슬퍼 마시고 첩의 말을 들으십시오. 소저는 본디 천상에서 귀양왔는데 하늘에 올라 갈 때, 첩에게 이르되 ‘양상서가 납채를 도로 내어 주었으니 부당한 사람이다. 혹 내 무덤이나 내 제사를 지내는 대청에 들어와 조문(弔問)하면 나를 욕하는 일이니 아무리 죽은 혼령인들 어찌 노하지 아니하겠는가?’ 하였습니다.”
승상이 말하였다.
“또 무슨 말을 하던가?”
춘운이 말하였다.
“또 한 말이 있지만 차마 내 입으로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승상이 말하였다.
“무슨 말이었느냐?”
춘운이 말하였다.
“상서께서 춘운을 사랑하시라고 전하였습니다.”
승상이 말하였다.
“소저가 이르지 아니한들 어찌 너를 버리겠는가.”
하루는 천자가 승상을 이끌어 보시고 말하였다.
“승상이 부마를 사양하였지만 이제 정소저가 이미 죽었으니 또 무슨 말로 사양하겠는가?”
승상이 재배하고 말하였다.
“정녀가 죽었으니 어찌 항거하겠습니까만 소신의 문벌이 미천하고 재덕이 천하고 비루하오니 당치 못할까 합니다.”
천자가 크게 기뻐하여 태사(太史)를 불러 좋은 날을 가리니 구월 보름이었다.
상이 승상에게 말하였다.
“경의 혼사를 확실히 결정치 못하였기에 미처 이르지 못하였는데, 짐에게 과연 두 누이가 있으니 하나는 영양공주요, 하나는 난양공주이다. 영양 공주는 정부인(正夫人)을 정하고, 난양공주는 둘째 부인을 정하여 한날에 혼사를 행할 것이다.”
구월 보름을 당하여 혼례를 궐문 밖에서 행할 때, 승상이 비단으로 만든 도포와 옥으로 된 띠를 하고 두 공주와 예를 이루니 그 위엄 있는 거동은 다 헤아리지 못할 바였다.
이날 밤은 영양공주와 동침하고, 다음날은 난양공주와 동침하고, 또 다음 날에는 진씨 방으로 갔는데, 진씨가 승상을 보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흘리자 승상이 말하였다.
“오늘은 즐거운 날인데 낭자는 무슨 일로 눈물을 흘리는가?”
진씨가 말하였다.
“승상이 첩을 알아보지 못하시니 반드시 잊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연 슬퍼하는 것입니다.”
승상이 자세히 보고 나아가 옥수를 잡고 말하였다.
“낭자가 화음 진씨인 줄을 알겠군. 낭자가 벌써 죽은 줄 알았는데 오늘 궁중에서 볼 줄 어찌 알았겠는가? 낭자의 집이 참화를 본 일은 차마 말하지 못하겠군. 객점에서 난리를 만나 이별한 후에 어느 날인들 생각지 아니하였겠는가.”
하며, <양류사>를 서로 대하여 읊으니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슬펐다.
승상이 말하였다.
“내 처음에 베필을 기약하였다가 오늘날 첩을 삼으니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겠는가.”
진씨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처음에 유모를 보낼 때 첩되기를 원하였으니 무슨 원통함이 있겠습니까?”
하고, 서로 즐기는 정이 두 날 밤보다 백 배나 더하였다.
구운몽 상종(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