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시수도기념관
6·25전쟁 당시 대통령 임시청사
지금은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화려한 국제도시로 탈바꿈했지만 6·25전쟁 당시 부산은 전국에서 밀려든 피난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1950년 8월 18일부터 9·28서울수복 이후 10월27일까지, 그리고 1·4후퇴 때 서울을 내어준 뒤부터 휴전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부산은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다.
임시수도기념관(부산광역시기념물 제53호)으로 쓰고 있는 지금 건물은 일제강점기 진주에 있던 경남도청을 부산으로 옮기면서 건축된 도지사 관사로 6·25전쟁 당시 대통령 임시청사였다. 일대 광복동과 남포동의 화려함에 밀려 근처에 이처럼 아픈 역사의 현장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이가 뜻밖에 많다. 한국전쟁 때 정치·경제·국방 등 정책 수립과 전쟁 수행의 산실로 현대사를 담당한 장소다.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한 공간이다. 유럽식 르네상스 양식이 변형되면서 일본식과 서양식이 절충된 목조건축물이다. 대외 활동을 하는 대현관(大玄關)과 응접실 등은 서양식으로, 주거공간은 일본의 전통 주거양식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당시의 건축 경향을 알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2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이 야외정원과 어우러져 있다.
지금은 근·현대사 체험학습 장소로도 활용되는데, 전쟁의 폐해만큼은 열심히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을 마치 이승만기념관처럼 꾸며 놓은 것은 아쉽다. 이승만(1875~1965)이 대통령이기 이전에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인물인지를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민간인들이 억울한 죽임을 당한 보도연맹학살은 더없이 처참한 시대의 비극이다. 그 특명을 내린 사람이 바로 이승만이다. 그럼에도 전쟁의 비극만 강조하고 그런 학살에 관한 언급은 찾을 수 없다.
- 동아대학교 박물관
부산을 대표하는 근대 공공건축물
사람들이 북적이는 번화가에 박물관이 있다니 신선하게 느껴진다. 6·25전쟁 당시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로 쓰였던 곳에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가 들어오면서 지금은 동아대학교박물관(등록문화재 제42호)으로 바뀌었다. 건물 겉모습이 범상치 않다.
정면 한가운데 있는 현관에 포치(porch)가 툭 튀어나와 있고, 가운데와 양쪽 끝부분도 튀어나오게 하는 한편으로 양끝을 'ㅅ'자 모양으로 널빤지를 붙이는 박공지붕으로 처리하는 등 전체적으로 위엄을 세우고자 노력이 보인다. 식민지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사뭇 위협적이었겠다 싶다.
어쨌거나 근대 정치·사회적 변화를 감당했던 건물로 경남도지사 관사(임시수도기념관)와 더불어 부산을 대표하는 근대 공공건축물이다.
마당에 세워져 있는 탑들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한길과 한 뼘 거리를 두고 있을 뿐. 가던 걸음 멈추고 잠시 눈길을 주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안중근의사 유묵(보물 제569호)도 있다. 문구는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이로움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내어주라)’.
2층은 서화실·도자실·고고실·와전실·민속실·불교미술실 같은 상설전시실이고 3층은 부산 임시수도정부청사 기록실로 쓰고 있다.
- 부산민주항쟁기념관
부산의 민주화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곳
중앙공원에서 내려다보면 부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몰려들어 피난민 판자촌이 넘쳐났던 대청산이 부산 시민들의 휴식처로 거듭난 것이다. 70m 높이로 우뚝 선 충혼탑에는 부산 출신 전몰장병 영령 8954위가 모셔져 있다. 원래 용두산 충혼탑에 모셔져 있었는데 이곳으로 옮겨왔다. 그밖에 일제강점기를 돌아보는 부산광복기념관과 대한해협전승비도 있다.
중앙공원에는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중심노릇을 했던 부산의 민주화 열기를 느낄 수 있는 부산민주항쟁기념관도 있다.
둘러보면 한국 근·현대 역사 발전에 부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과 열정을 바쳤는지를 제대로 알 수 있다. 그래서 부산민주항쟁기념관을 비롯한 일대를 민주공원이라고 한다.
민주공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연이 깊은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2002년 5월4일 노무현은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 여기를 찾아 기념식수로 소나무를 심었다. 이런 인연으로 부산을 찾는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중앙공원에는 많은 조각상과 기념조형물이 있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원형 램프로 에워싸인 민주항쟁기념관 안쪽 마당에 세워진 높이 20m의 '민주의 횃불'이다.
부산광복기념관은 2000년 광복절에 맞춰 부산의 독립운동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문을열었다. 일본의 침략기지가 된 항구도시 부산의 독립운동은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등 여러부문에서 일찍부터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래 3·1독립만세운동과 구포장터 독립만세운동 등을 주제에 따라 전시하고 있다.
남포동·광복동의 거리는 일제강점기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근대와 현대가 만나는 공간이다.
일제강점이 끝나면서 일본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물자를 팔아 노자를 챙기기 위해 지금 국제시장자리를 장터로 삼으면서 새롭게 형성됐다. 한국전쟁 때는 미군이 부산에 주둔하면서 들여온 많은 통조림들이 나오는 바람에 깡통시장이라고도 하였다. 밀수품도 꽤 나왔는데 자유시장, 돗떼기시장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지금은 국제시장으로 일컫는 일대를 포함해 남포동·광복동 거리도 도심 공동화로 쇠락하다가 몇 해 전 다시 부활하기 시작했다. 광복동패션거리와 PIFF광장에는 모여드는 사람들로 주말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다.
용두산 공원과 국제시장 주변은 통째로 근·현대사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백산기념관도 그가운데 하나다. 경남 의령 출신 독립운동가 백산(白山) 안희제(1885~1943)를 기리는 백산기념관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옛 백산상회 자리에 지었다. 지하와 1·2층 전시실로 되어 있는데 입구는 독특하게 피라미드 모양이다. 민중계몽교육사업과 언론사 창설, 백산상회를 통한 독립운동자금 확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모로 힘썼던 백산의 흉상도 있고 친필 편지를 비롯해 책과 도장 등 유품과 독립운동 자료들이 있다.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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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갈치시장
아지매들의 활기찬 웃음 소리
자갈치시장은 새벽에 어판장에서 그 싱싱함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우렁찬 목소리와 부산스런 움직임으로 시작된다.
1924년 일본인들이 여기 바닷가에 시장을열면서 남쪽 물가를 뜻하는 '남빈(南濱)시장'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자갈치시장의 시원이다.
검은 자갈 해안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살아 있는 채로만 거래되는 자갈치라는 물고기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자갈치 아지매들의 활기찬 웃음소리에는 그들만의 삶의 애환과 고단함, 보람이 함께 뒤섞여 있다.
자잘치시장의 매력은 누가 뭐라 해도 그 역동성에 있다. 바다 사람 특유의 비릿함이 묻어 있는 거칠음은 오히려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이제 부산의 으뜸 명소다.
자갈치시장에서 명물은 생선구이다. 기름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생선구이 정식을 시키면 얼큰하게 끓인 순대국이 따라 나온다. 몇 번을 시켜도 공짜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포장마차에서 곰장어 구이 한 접시를 주문해 놓고 바다구경을 해도 좋다. 붉은 노을을 등지고 영도를 오가는 통통배들을 바라보면 그 풍경이 그만이다.
- 보수동 책방골목
헌책이라도 살 수 있으면 감지덕지였던 옛시절
보수동 책방골목에는 헌책방들이 60개 남짓 촘촘하게 들어서 있다. 가게마다 책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책방골목 또한 6·25전쟁의 산물이다. 중구·동구·서구·영도구 등에 살던 피난민의 자식들은 구덕산 자락 보수동 뒷산 등에 마련된 노천교실 천막교실에서 수업을 했다. 배움이 그이들에게는 절망을 견디게 해주는 강력한 희망이었다. 덕분에 보수동 골목길은 통학로로 붐볐다. 먹고사는 것도 빠듯한 시절에 헌책이라도 살 수 있으면 감지덕지였다.
한편에서는 피난 온 사람들이 먹을거리 살 돈조차 없을 때면 자기가 갖고 있던 책들을 여기에 내다팔았다. 여기 책방골목은 이런 수요와 공급이 맞물린 결과물이다.
이제 책방에 가지 않고도 인터넷에서 책을 사는 시대다.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서점 자리에는 술집과 옷가게가 들어선다. 이런 시절에도 보수동 책방골목은 찾는 이들에게 추억과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헌책은 정가보다 50~70% 싸게 살 수 있고 새 책도 다른 데 견줘보면 싸다. 이제는 책방 노릇을 넘어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명소이다.
- 부산근대역사관과 40계단 일대
외세의 수탈, 피난민들의 고달픔 생생
부산근대역사관(부산광역시기념물 제49호)은 외세의 침략과 수탈로 얼룩진 부산의 근·현대 역사를 담고있다. 부산의 근대 개항, 일제의 부산 수탈, 근대도시 부산, 동양척식주식회사, 근·현대 한미관계, 부산의 비전 등으로 전시가 짜여 있고 부산 근대거리도 모형으로 나와 있다.
일제강점기 착취와 수탈의 본거지로 1920년대 지어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건물이다. 해방 이후 미군숙소로 쓰이다가 1949년 미국문화원이 됐고 그 뒤 시민들의 끊임없는 반환 요구에 힘입어 1999년 대한민국 정부로 돌아왔다. 이로 말미암아 외세 지배의 상징이 됐고 부산근대역사관이 여기 들어선 까닭도 다른 데 있지않다.
40계단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피난민들이 살았던 판자촌으로, 바로 앞으로 보이는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로, 또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장소로 이름을 떨친 곳이다.
40계단문화관는 1950년대 피난민들의 힘겨운 생활상을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과 생활용품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미군 전투식량, 구호 밀가루, 화폐, 비누,전쟁 당시 학교 모형이나 교과서, 필기구,도시락 등이 전시되어 있다. 고난을 온 몸으로 견뎌내며 생활이 아니라 생존을 목표로 삼아야 했던 그 때 그 시절이 이제 와서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날의 향수에만 매달리지는 말 일이다.
일대 테마거리도 잘 짜여 있고 바로 옆에 자리잡은 동광동 인쇄골목도 여기 밀집해있는 인쇄공장들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안겨준다.
*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여행길]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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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자료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