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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 기자가 만난 사람] 시사평론가 정관용 / (대학원 정치외교 85 동문) 한국처럼 토론 어려운 나라 있을까요” 그가 수염이 텁수룩해 나타날 줄은 몰랐다. 면도질 잘된 미끈하고 팽팽한 얼굴에 깡마른 몸피가 바늘구멍 하나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던 그였다. 팍 차고 튀어나갈 듯 온몸을 빳빳하게 세우곤 “나 긴장한 인생이요”를 뿜어내던 그가 느슨한 산사람 모습으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다니 뜻밖이다. 세상을 향해 선 골키퍼처럼 날을 세우고 버팅기던 몇 달 전 방송토론 진행자 정관용(47·사진)씨는 어디로 간 것일까. “오랜만에 찾아온 쉬는 시간, 나를 위한 배려랄까요. 평소 해보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 몇 가지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수염 기르기, 히말라야 산 타기, 시계 안 보며 소파에 길게 누워 책읽기.” 개인 취향 문제이고, “이런 몰골로 앞으로 활동할 게 아니니 사진을 찍지 않겠다”고 고집피우는 그를 설득하면서 '토론 프로그램의 교과서'라 불리는 그 유별난 직업의식을 확인했다. 1년 365일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 12년을 매일 생방송 토론장에서 보낸 사람 소원이 '수염 한 번 길러보고 싶었다'라니 짠하다. 빠작빠작 신경을 죄어오는 몇 시간을 위해 하루하루를 맞춰 살았던 '생방송 인간'에게는 수염 기르기도 사치였던 셈이다. 정관용씨는 지난해 11월 16일 KBS 1TV '생방송 심야토론'과 KBS 1라디오 '열린 토론' 진행자 자리를 갑자기 내놨다. '심야토론'은 5년째 250여 회, '열린 토론'은 6년째 1600여회를 진행하며 '대한민국에서 토론 사회를 가장 많이 본 사람' 기록을 세워가던 중이었다. KBS 측은 제작비 압박에 따른 출연료 절감을 정씨 도중하차의 이유로 내세웠다. “제 출연료가 많았다 해도 요즘 예능 프로그램 MC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밖에서 온 사람이 KBS 토론 프로그램의 간판으로 불리는 데 대한 불쾌함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대답은 짧았고, 표정은 담담했다. 남 얘기 하듯 선선했다. '의견 차이나 이념 문제였느냐'고 물었던 입이 머쓱할 지경이었다. “제가 천년만년 움켜쥐고 있을 것도 아니고 세상만사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되묻는 목소리는 찬찬하면서도 쓸쓸했다. “제 경력이 복잡한 게 힘이라면 힘이고 화라면 화지요. 늘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부닥치면서 살아온 터라 순발력은 저절로 몸에 익었고 불물 가리는 법도 나이에 비해선 일찍 터득한 편입니다. 제 이름 앞에 붙은 '공정성'이란 말은 평생 시사 프로 전문 MC로 살고 싶었던 꿈을 위해 저를 갈고 닦은 결과 아닐까요.”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타는 정관용식 인생유전은 그가 만나는 사람들 면면에서도 읽을 수 있다. 매달 세 번째 월요일에 만난다 해서 '세월회'라 붙은 모임에는 원로 개그맨 전유성씨부터 건축가 이일훈씨까지 이른바 문화계 걸물이 총집합한다. 한때 시인을 꿈꿔 대학에서 '문학연구회' 동아리 생활을 했고, 연극반을 하던 형님 영향으로 연극 무대도 기웃거렸던 그인지라 자유를 향해 튀어 오르는 피를 어쩔 도리가 없다. 문화계 곳곳에 혈연보다 더 진한 인맥을 깔아놓고 살기에 “토론 프로에서 벌어지는 기(氣) 싸움을 눌러주고 키워줄 수 있었다”는 말이 실감난다. “10년 넘겨 해보니 한국만큼 토론하기가 어려운 나라가 있을까 싶어요. 막무가내 제 말만 하거나, 무조건 상대방 머리끄덩이를 잡아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많아요. 돈 받으면서 공부한 제 경험으로 보면, 토론은 '내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여유를 지닐 수 있는 자리'여야 합니다. 그런 자세를 갖추고 나온 분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야인이라면 야인이라 할 자리로 돌아간 정관용씨가 지금 꿈꾸고 있는 일이 바로 이 '토론쟁이'를 키우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그가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이라 부르는 훈련은 어린 시절부터 일상처럼 생활 속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일본 만화가 데츠카 오사무의 만화에 보면 교사와 가정과 학생을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에콤스(Educational Communication System)'가 나와요. 제가 해보고 싶은 게 바로 그거죠. 얘기만 제대로 통해도 우리 행복해질 것 같은데 어떠세요.” 이야기를 끝낸 그는 감기약을 챙겨들고 히말라야로 떠났다.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5&aid=0001996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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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중앙일보 기사입력 2009-02-16 01:56 |최종수정2009-02-16 0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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