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도리(道理)
임병식 rbs1144@daum.net
돌아가신 형수님의 상(喪)을 치르면서 도리를 생각한다. 도리는 통상 ‘방법이나 수단’을 말하지만 기본 의미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른 길’을 이른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마땅히 해야할 일을 실천' 하기는 녹록한 일이 아니다. 바빠서도 그렇지만 생각이 안일해지면 자칫 지나쳐 넘기고 마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그럴까. 속담에는 이 애경사 문제에 대해서 조금은 여유를 두지만 단호함도 주문한다. 즉, ‘세 번 연속 부주를 하지 않는 사람과는 연을 끊으라.’고 한 것이다. 적어도 한두 번은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것으로 보아서 넘어가지만 그 이상 선을 넘으면 상종하지 말라고 선을 긋고 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제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일찍이 농촌에서는 두레풍속이 정착되었다. 좋은 일이나 궂은일이 생기면 나서서 상부상조하며 살아왔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장례였다.
내가 어렸을 적에 본 광경이다. 동네 어느 집에서 초상이 나면 장례를 치를 때까지는 일을 하지 않았다. 들일은 물론이고 집에서 바느질 하는 것도 삼갔다. 그러면서 형편 따라 상가에 곡물을 건네고 부조금을 전달했다.
상여을 짓는 것도 메고 나가 무덤을 짓는 것도 함께 했다. 그것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았다. 바로 나의 일이고, 나중에 내 부모가 돌려받을 품앗이로 여겼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어떤가. 멀리 떨어져 살며,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히 한다. 그만큼 유대감도 예전과 같지 않다. 그러다보니 애경사시 부조를 기피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사람의 기억은 특별한 면이 있다. 어디 치부책에 적어 놓지 않아도 애경사에 찾아온 사람은 잘도 기억한다. 그것은 그만큼 인간사에서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기억력이 부족한 사람도 그것만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전 내가 직장생활을 하던 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 고을에서 가장 부자가 죽게 되었다. 그런데 제법 큰 마을인데도 불구하고 상여를 멜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노임을 넉넉하게 준다고 해도 외면을 해버려, 그의 치상은 다른 마을 인부를 사서 치르게 되었다.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았다. 평소에 남의 애경사에는 일절 외면을 하고 살고, 남을 돌아봄이 없이 도척이처럼 제 혼자서 배불리 먹고 사니 상종 못할 인간으로 낙인을 찍어버린 것이다.
마을 사람들도 지나친 감이 없지 않으나 그 사람의 생을 돌아볼 때 문제가 많은 인물임을 알 수가 있다.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동생이 전해주는 말 중에는 특히 감동을 주는 대목이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친인척이 죽으면 천리고 2천리고 1박 2일, 혹은 2박 3일을 달려와서 슬픔을 같이 한다고 한다. 그런 것이 하나의 장례문화로 정착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 나라에 사는 고려인들도 똑같이 그렇게들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함께하면서 서로 간에 유대를 강화하고 산다는 것이다.
소련 공산당 시절에 강제이주 당한 아픔도 있겠지만 그렇게들 끈끈하게 교류하면서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있단다.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아닐 수 없다.
형수님이 돌아가시자 집안의 친척 부고는 내가 주로 알렸다. 형편상 상가에 계속 상주할 수 없는 입장에서 그 일을 도운 것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알린 사람 중 단 한 사람도 부조가 빠진 사람이 없었다. 어느 분은 자식과 조카에게까지 알려서 조의금을 보내주었다. 고맙기 짝이 없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조카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반드시 명단을 공유하여 그런 집에서 애경사가 생길 시에는 부주를 하라고 당부했다. 형제 중 한 사람이 했으니 자기는 빠져도 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모두가 참여하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나도 새롭게 다짐을 해 본다. 부주를 해 준 사람은 마음이 없으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연락을 받았어도 내키지 않으면 외면할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함께 해 준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첫째는 형수님이 인심을 잃지 않고 잘 사신 것이고 나의 얼굴을 보고 해 준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도 지은 빚이 있으니 앞으로 잘 챙기며 갚아 나가려 한다. 그 행렬에는 나에 대한 믿음과 신뢰도 함께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최소한, 나를 신뢰한 사람들에 대한 마땅한 도리가 아닌가 생각한다.(2023)
첫댓글 물질 가는 곳에 마음이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질은 마음의 증표라고 할 수 있지요 상부상조의 실천에서 정도 두터워지는 것이지요 액수의 많고 적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직에 있을 때 어느 마을에 초상이 나 문상하라 갔더니 이장님이 그러더군요 서울이건 부산이건 객지에 나가있는 모든 이가 달려와 슬픔을 나누고 서로 힘을 보태 상을 치른다고.
겉치레 교류나 속정 없는 모임은 인생의 군더더기일 뿐이지요
내가 친인척 부고를 맡았는데 부음을 전한 사람 중에 사람한사람도 빠진 사람이 빠진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감동을 맏았습니다.
앞으로 장부를 잘 간직했다가 형제들이 나서서 꼭 갚으라로 일렀습니다.
나 또한 그분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두분을 글로대하면 함께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복짓는 좋은하루 되세요.
오랫만에 들르셨네요.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