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동곡 /박대홍
사무실의 창밖에 느티나무가 서 있다. 느티나무가 속옷 하나도 입지 않고 벌거숭이로 겨울을 나고 있다. 한겨울에 훌훌 옷을 벗어버린 까칠한 몸통이가 추워보였다. 느티나무의 앙상한 가지에 지난 가을에 못다 떨어진 잎 한 개가 외로이 달려 있었다. 서북풍이 마지막 잎 새에 몸살이 나도록 불어대고 있다. 하늘을 향해 살려달라고 흔드는 느티나무의 팔이 힘들어 보인다. 느티나무는 가슴 한가득 하얀 구름을 껴안고 있다. 높고 푸르른 겨울 하늘을 혼자서 바치고 있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느티나무의 팔뚝과 손가락 사이로 창공이 아름다운 무늬를 연출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이미 뿌리에서부터 여름의 시원한 그늘을 주기위해 힘찬 몸부림을 치고 있다. 느티나무는 여름에는 따가운 햇볕을 가려주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하늘로 힘차게 팔을 뻗어 그늘을 만들어 삶에 지친 사람들을 어머니의 품안처럼 포근하게 껴안아 준다. 느티나무의 억센 줄기는 강인한 의지를, 고루 퍼진 가지는 조화된 질서를, 단정한 잎들은 예의를 나타낸다. 옛날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당나무로 심겨져 사랑을 받아온 나무 중 하나이다.
느티나무는 햇볕이 잘 드는 곳이나 땅속에 물기가 다소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생장속도가 매우 빠르지만 가뭄이나 바닷바람에는 약하다. 나무를 잘라도 새 가지가 곧 나오나 자동차나 공장에서 나오는 배기가스 등의 공해에는 쉽게 피해를 입는다. 느티나무는 뿌리가 깊게 자라지 않으며 가뭄에 약하므로 옮겨 심을 경우 흙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자주 주어야 한다. 느티나무는 공원이나 길가에 흔히 심겨지며, 기념수로도 쓰이고 정원에 많이 심었다.
느티나무는 굵은 가지가 줄기의 밑 부분에서부터 갈라지고 키가 약 30m까지 자란다. 오래된 느티나무의 수피(樹皮)는 진한 회색으로 비늘처럼 떨어진다. 어린가지에는 털이 나기도 한다. 느티나무의 잎은 끝이 뾰족하지만 잎 밑은 둥글게 생겼다. 또 잎맥을 경계로 양쪽이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꽃은 5월에 피며, 그해에 나온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암꽃과 수꽃이 따로따로 핀다. 수꽃은 새 가지의 아래쪽에 피며 암꽃은 위쪽에 핀다. 느티나무 열매는 10월에 편평하고 둥글게 익으며 느티나무 잎은 가을에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게 한다.
어머니와 같은 느티나무를 안동의 하회마을에서 만났다. 기와집과 초가집의 좁은 토담 길을 깊숙이 따라 들어가니 마을의 당목인 느티나무가 있었다. 삼신당에 이르는 골목은 하회마을에서 가장 수준 높은 공간이었다. 삼신당은 하회마을 사람들의 모두의 공간이다. 하회마을의 중심부에 정사각형의 마당에 크고도 오래된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이 느티나무는 600년 이상 된 고목이다. 이 나무는 고려 말 풍산 유씨의 입향조(入鄕祖)인 유종혜가 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심은 것이다. 나무의 높이는 15미터, 둘레는 5.4미터에 이르는 거목이다. 마을의 중심이면서 세계의 중심인 삼신당에 느티나무가 서 있다. 이 느티나무는 하늘로 솟아서 영원한 우주의 중심인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사제(司祭)인 것이다. 삼신당은 마을신의 집이다.
정월 대보름과 음력 사월 초파일이면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洞祭)를 지내는 곳이다. 또한 하회 별신굿 탈놀이의 춤판이 제일 먼저 행해지는 곳이다. 인간의 출산과 성장을 빌던 곳이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조용히 와서 자식을 얻게 해달라고 빌기도 한다. 지금은 너무 가깝게 들어선 집들로 인해 삼신당 느티나무가 숨어 있다. 이곳은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더 할 나위 없이 소중한 공간이었다. 느티나무 등걸에는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종이쪽지들이 새끼줄에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나도 한지종이에 가족들의 건강과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적어 매달았다. 아리따운 아가씨 둘이서 한지종이에 무엇인지 열심히 써서 삼신당 느티나무의 새끼줄에 매달고는 픽픽 웃었다. 아마 잘 생긴 남자를 점지해달라고 하였는지 나를 보고 아가씨들은 쑥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구경 온 외국인들도 삼신당 느티나무를 구경하다가 자신들도 소원을 남겼다. 이제는 점점 잊혀져가는 풍속이기는 하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훈훈한 풍속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느티나무는 우리의 선조들의 삶 속에서 깊이 자리 잡은 슬픔과 기쁨을 함께한 가족이다.
느티나무가 심어진 대학교정의 보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 대학캠퍼스 안에 있는 행소박물관에서 대구지역 각 대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소장품의 특별 전시를 하고 있었다. 인당박물관의 소장품인 2층 장롱과 반닫이가 전시되고 있었다. 2층 장롱과 반닫이의 무늬가 아름다워 찬찬히 살피고 있는데, 느티나무로 만들어진 것을 알려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느티나무의 나무 결은 약간 거칠지만 재질이 강하고 질겨서 뒤틀리지 않고 무거우며 무늬와 광택이 아름답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은 느티나무로 2층 장롱이나 반닫이로 만들어 옷을 보관하는 가구로 사용하였다. 또한 느티나무는 잘 썩지 않으며 물에 잘 견디어 농기구의 자루나 가구를 만들거나 건축재로도 사용하기도 하였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느티나무는 부모님을 떠오르게 하는 존재이다. 고향마을을 찾아가면 느티나무가 언제나 반갑게 맞아준다. 느티나무의 몸통을 자세히 보면 울퉁불퉁 온갖 고난과 고통을 견디고서 꿋꿋하게 서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거나 천둥 번개가 내리쳐도 의연히 살아왔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난도 견뎌내는 강인한 부모님들의 의지와 느티나무는 참 많이 닮아 있다. 비록 말 못하는 나무이기는 하나, 살아가면서 우리가 배워야할 점도 많은 것이 느티나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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