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골호인(無骨好人)의 친구!
"진정한 친구(親舊)란?
세상(世上) 사람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그 사람이
진정한 친구다"
당신 친구가
몇이나 되시오?
사람좋은
'류진사(柳進士)'의
별칭은 천하의
무골호인(無骨好人)이다.
그는 한 평생(平生)
살아오며
남의 가슴에 못 한 번
박은 적이 없고,
적선(積善) 쌓은 걸
펼쳐 놓으면
아마도 만경창파(萬頃滄波)
같은 들판을 덮고도
남으리라.
그러다보니
선대(先代)로 부터 물려받은
그 많던 재산(財産)을
야금야금 팔아치워
겨우 제 식구들 굶기지
않을 정도의
중농(中農) 집안이 되었다.
류진사(柳進士) 그는
덕(德)만 쌓은 것이 아니라,
재(才)도 빼어났다.
학문(學問)이 깊고,
붓을 잡고
물 흐르듯이 휘갈기는
휘호(揮毫)는 천하(天下)
명필(名筆)이다.
고을 사또(使道)도
조정(朝廷)으로 보내는
서찰(書札)을 쓸 때는
이방(吏房)을 그에게
보낼 정도였다.
류진사(柳進士)네
사랑방엔 선비와
문사(文士)들의 발길이
문지방이 달아
길이 나도록 끊이지
않았다.
그의 부인과 혼기가
꽉 찬 그의 딸 둘은 남편과
아버지의 지인들을 위해
허구한 날 밥상,
술상을 차려 사랑방에
들락날락하는 게 하루의
일과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일이
매일 이어지던 어느 날,
오랜만에 유진사가
존경해 하며 모시던
허법(虛法) 스님이 그를
찾아왔다.
허법 스님은 류진사가
잊을만하면 발람결에
날아온듯이 나타나
고담준론(高談峻論)을 나누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허법 스님을 류진사는 전생의
인연이 있는듯이 깍듯이
스승처럼 모신다.
그날도 사랑방엔
친구인 문객들로 가득 차,
모처럼 찾아온 스님이
처마 끝 디딤돌에 앉아
기다리자,
친구들인 문객들이
눈치채고 우르르 몰려나갔다.
허법 스님과 류진사가
참으로 오랜만에
곡차상(穀茶床:막걸리)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허법 스님이 다짜고짜
류진사에게 묻는다,
류진사는 친구(親舊)가 도대체
몇이나 되시오?”
스님이 그렇게 묻자
류진사는
천장을 멍하니 보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나름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듯
이렇게 말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얼추 백명은 넘을 것 같고,
뜨문뜨문 보는 친구는
수백을 헤아립니다.”
허법 스님은
혀를 끌끌 찼다.
“류진사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고 세상 사람
어느 누구보다 딱하고
불쌍한 사람이오.”
그말을 들은
류진사는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고,
문을 활짝 열더니
허법 스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님, 한눈 가득 펼쳐진
저 너른 들판을
모두 남의 손에 넘기고,
가까이 지내는 친구
일백명을 얻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스님은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한참을 껄껄 웃으면서
한마디 하시는데...
"진정한 친구란
하나 아니면 둘, 많아야 셋,
그 이상 다섯만 넘어가면
진정한 친구가 아닙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며
밤새도록 주거니 받거니
맛 좋게 빚은 곡차를
마시다가, 삼경(三更)이
지나 고꾸라졌다.
류진사가 아침이 되어
눈을 떴을 때
허법 스님은 이미 류진사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허법 스님과 밤새
술을 마신 다음날부터
류진사네 대문(大門)이
굳게 닫혔다.
집안에서는
심한 기침소리가 들리고
의원(醫員)만
집안을 들락거려,
문객 친구(親舊)들이
대문 앞에서 제 갈길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열흘이 가고,
한달이 가도 류진사네 대문은
열릴 줄 몰랐다.
그러더니
추수가 다 끝난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밤에 류진사네
집안에서 곡(哭) 소리가
터졌다.
진사가 지독(至毒)한
고뿔(감기)을 이기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下直)한 것이다.
그많던 문전옥답을 팔아
친구들 대접하느라,
다 날린 류진사의 빈소(殯所)는
생각보다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부인과 딸 둘이
상복(喪服)을 입고,
머리를 떨어뜨린 채
침통(沈痛)하게 빈소(殯所)를
지켰다.
류진사 생전(生前)에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던,
글 친구들은 낯짝도
안 보였다.
그런데 한 친구가
문상(問喪)을 와
남보기도 안타까운듯
참으로 섧게섧게 곡을 하더니,
류진사 부인을 살짝이
불러냈다.
“부인(夫人),
상중(喪中)에 이런 말을 꺼내
송구(悚懼)스럽지만
워낙 중하고 화급한 일이라….”
그 친구는 품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류진사
미망인(未亡人)에게 건넸다.
봉투를 열어보니
차용증(借用證)이다.
류진사가 돈 삼백냥을 빌리고
입동(入冬) 전에 갚겠다는
내용(內用)으로,
진사의 낙관(落款)까지
찍혀있었다.
또 한 사람의
문상객(問喪客)은
중국 명필 중에 하나인
왕희지(王羲之) 족자(簇子) 값
삼백 냥을 못 받았다며
지불각서를 상중에 있는
류진사의 부인에게
디밀었다.
친구가 많은
류진사 이므로 그 친구를
다 맞이할 셈으로
구일장을 치르는데,
류진사 죽은지
여드레날이 되어가니
이런 빚받을 채권자(債權者)들이
류진사 빈소(殯所)를
가득 채웠다.
류진사가 생전에
그렇게 친구로서 잘 대접했던
인사들이 류진사가 죽자
이렇게 짐승으로 돌변하여
“내 돈을 떼먹고선
절태로 출상(出喪)도 못해,
출상하려면 빚부터
갚고나서 출상하라구”
“이 사람이
내게 진 빚도 안 갚고
저승으로 줄행랑을 치면
어떡해.”
류진사 빈소(殯所)에
죽치고 앉아 다그치는
문객들의 면면(面面)은
하나같이 모두
낯익었다.
그때 허법 스님이
목탁(木鐸)을 요란스럽게
두드리며 류진사
빈소(殯所)에 들어섰다.
미망인(未亡人) 손에
들려진 한 뭉치
빚 문서(文書)를 낚아챈 스님은
병풍(倂風)을 향해
고함(高喊)을 쳤다.
“천하의
불쌍한 친구 류진사!
벌떡 일어나서
그 많던 문전옥답(門前沃畓)을
팔아서 산
잘난 당신 친구들에게
진 빚이나 갚고 가시오~.”
그소리를 듣자마자
8폭 병풍(倂風) 뒤에서
‘삐거덕’ 관 뚜껑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천하의 무골호인(無骨好人)
류진사가 걸어 나왔다.
빈소를 지키고 있던
수많은 빚쟁이 친구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 놀라
신도 신지 않은 채
도망쳤다.
류진사의 만류(挽留)에도
불구(不拘)하고,
허법 스님은 빚 문서 뭉치를 들고
고을 사또에게 찾아갔다.
이튿날부터 사또(使道)의
호출장(呼出壯)을 받은 진사의
그 잘난 친구 빚쟁이들이
하나 둘씩 벌벌 떨면서
동헌(東軒) 뜰에 섰다.
“민초시(閔初試)는
류진사에게 삼백 냥을
빌려줬다지?”
사또의 물음에
꿇어앉아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린 민초시는
똥씹은 얼굴을 하며,
울다싶이 사또께 읍소했다.
“나으리,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곤장 삼백 대를
맞을 텐가,아니면 당신이
사기치려던 삼백 냥을
부의금(賻儀金)으로 류진사
빈소에 낼 건가?”
이렇게 죽은 류진사에게
사기치려했던 그가
평소에 좋아하며 교류하며
누구보다 믿었던 친구들
류진사는 나름
소중한 친구들을 얻느라
문전옥답을 팔아
그들을 대접하느라
다 날린 재산(財産)을
그 친구들을
버려서 다시 찾았다.
"진정한 친구(親舊)란?
세상(世上) 사람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그 사람이
진정한 친구다"
무골호인(無骨好人)
《의미》
뼈(가시)없이
참으로 좋은 사람
가슴이 바다같이 넓고,
덕이 많아
다른 사람과 잘
지내는 사람.
無 : 없을 무
骨 : 뼈 골
好 : 좋을 호
人 : 사람 인
無骨(무골)은
뼈가 없다는 뜻이고,
好人(호인)은
좋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무골호인은
뼈(가시)없이 좋은 사람
가슴이 바다처럼 넓고,
덕이 많아 다른 사람의 말을
깊이있게 잘들어 주고
평소에 주위사람과
있고 없고를 떠나 격이없이
정겹게 잘 지내는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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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가는방
"무골호인"의 친구
김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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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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