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뿌리 내린 것 / 김민주
남편이 퇴직했다. 삼십 년 넘게 몸에 밴 시간표와 타인의 기대 속에서 흘러가던 날들이 멈췄다.
“시골에 가서 텃밭이나 해 볼까.”
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많은 시간이 배어있었다. 나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시골이라는 말은 낭만보다 먼저 생활의 무게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흔들림 없었다. 그 표정을 보고서야 알았다. 지금 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멈추어 서 보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 밭에 갔던 날, 작은 개 한 마리를 만났다. 차가 멈추기도 전에 달려와 우리 앞에 앉던 녀석. 꼬리를 흔들며 올려다보던 눈빛. ‘뽀삐’라고 했다.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그 녀석은 이미 그 자리에 와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우리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겨우내 굳은 흙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삽날이 부딪힐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돌은 많았고, 흙은 깊었다. 모든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남편은 말없이 돌을 골라냈고, 나는 그 뒤를 따랐다. 가끔은 말이 끊긴 그와 나. 그 사이를 뽀삐가 맴돌았다. 우리가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고, 멈추면 함께 멈췄다. 부르지 않아도 서로의 자리를 알고 있는 듯했다. 그 조용한 동행이 이상하게 마음을 놓이게 했다.
고랑을 만들고 모종을 심었다. 연약한 잎들은 바람에도 쉽게 기울었다. 그것들을 지켜낸다는 일이 무엇을 견디는 일인지 알지 못한 채 물을 주었다. 일주일에 두 번, 도시와 밭을 오갔다. 밭에 도착할 즈음이면 햇살은 이미 기울어 있었다. 그때마다 뽀삐는 어김없이 달려 나왔다. 우리가 돌아오는 시간을 알고 있는 듯, 조금도 늦지 않게.
잡초는 비워둔 시간을 말해준다. 고랑은 금세 뒤덮인다. 쪼그려 앉아 풀을 뽑았다. 허리가 먼저 꺾였고, 눈은 땀으로 가물거렸다. 손끝은 점점 흙빛으로 굳어갔다. 뽀삐는 가까이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그 자리를 비우지 않는 방식으로. 그 존재가 이상하게도 우리를 덜 지치게 했다.
비가 밭을 오래 적셨다. 젖은 흙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낮게 깔렸다. 폭우가 지나간 다음 날, 고랑은 무너지고 모종은 흙 속에 묻혀 있었다. 남편은 지지대를 다시 세웠고, 나는 잎을 하나씩 끌어올렸다. 흙을 털어내며 손에 쥐어지는 연약한 줄기. 살아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그날 알았다. 농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일에 더 가깝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작물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가을이 오자 밭은 다른 결을 드러냈다. 삽 끝에 닿는 단단한 저항, 흙 속에서 밀려 올라오는 묵직한 감각. 그동안의 시간들이 그 자리에 고여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 곁에는 여전히 뽀삐가 있었다. 변함없이, 그러나 더 익숙한 거리에서.
밥상이 차려질 즈음이면 자리를 잡고 앉아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
“고기를 주니까 사료를 안 먹어요.”
주인집 할아버지의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결국 또 한 점을 내어주고 말았다. 뽀삐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한 해가 지나고 다시 봄이 왔다. 비어 있던 밭에 다시 기운이 돌고, 우리는 다시 삽을 들었다. 이제는 안다. 모든 씨가 자라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자라난 것이 모두 우리에게 남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손에 쥐어지는 것보다 흘려보내는 것이 더 많다는 것도.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심는다.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되는 일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우리는 다른 것을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다림과 견딤, 그리고 내어주는 일에 대해. 곁에 있는 것을 오래 바라보는 일에 대해.
어느 날 문득, 밭에 먼저 와 있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오기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들, 우리가 떠난 뒤에도 남아 있을 것들. 그사이에 잠시 머물고 있는 것이 우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뽀삐는 우리가 기른 어떤 것보다도 먼저, 더 깊이, 우리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리기 훨씬 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