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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무엇을 배웠나?
WHO는 공식적으로 코로나19가 박쥐에서 중간 숙주를 거쳐 사람으로 옮겨왔다고 추측합니다.
박쥐와 인간의 불편한 만남은 어떻게 가능했을지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중국 우한 상황 속에서 추리해보니, 박쥐를 보양식으로 먹은 음식 문화가 원인입니다.
둘째, 인간의 생활방식이 지구를 뜨겁게 했습니다. 이로써 기후가 달라졌고 동식물 분포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도에 따라 동식물이 이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박쥐가 사람 곁으로 다가와 빈번한 접촉이 이뤄졌을 겁니다.
셋째, 박쥐 서식지의 파괴에도 원인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숲을 ‘자원’으로만 보게 했습니다.
터전을 잃은 박쥐가 사람 사는 곳까지 내려왔습니다.
코로나19 원인이 이렇다면 이는 분명한 인재人災입니다.
사람의 욕심이, 우리 생활 방식이 원인입니다. 뭇 생명을 마구 가져다 쓰기만 했습니다.
이제 자연 생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인을 내버려 둔 채 현상에만 매달릴 수 없습니다.
문제가 터진 뒤 수습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터지기 전에 예방해야 합니다.
이제 모든 분야에서 환경을 생각해야 하는 때가 왔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도 비껴갈 수 없는 주제입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로 우리 일은 내버려둔 채 자연 생태 보호 활동에 뛰어드는 일은 막막해 보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람 사이 관계를 살펴야 하는 우리 정체성에도 맞지 않아 보입니다.
급하다고 모두 그 일로 나설 수 없습니다. 다시, 우리가 선 자리에서 환경을 생각합니다. 지금 맡은 일과 환경을 연결합니다.
자연 생태를 생각하는 실천
코로나19와 같은 재앙이 다시 오지 않게 하려면 ‘자연 생태’를 생각하는 실천을
사회복지사인 우리 실천 속에서, 우리 일로써 이뤄갑니다.
비닐봉지 한 장 평균 이용 시간 15분. 반면, 이 비닐이 분해되는 데는 500년이 걸립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83억 플라스틱은 110여 년 전 처음 발명 뒤 단 하나도 썩지 않고 지구 어딘가에 숨겨져 있습니다.
플라스틱이 서서히 인류를 향한 역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매년 3억 4,800만 톤에 이르는 플라스틱을 생산합니다.
전국 노인·장애인·종합사회복지관이 약 1,070개. 1,070개의 복지관에서 50명 정도 식사와 반찬을 배달한다고 할 때,
때마다 사용하는 플라스틱 그릇이 약 5만 개. 해마다 교체한다고 가정하면 10년간 50만 개의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겁니다.
또한, 반찬이나 용기 포장에 들어가는 비닐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한 사람이 1년에 생수병 10개만 덜 써도 5억 200만 개 정도 사용이 줄어듭니다.
만약 모든 복지관이 이런 생각으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인다면 그 효과는 작지 않을 겁니다.
플라스틱 세상에서 인류의 존재를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인간끼리의 복지와 우정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환경을 생각하는 사회복지사의 실천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당장 이런 주제를 붙잡고 자기 현장에서 변화를 이루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새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좋은 일이라도 부담입니다.
서울 어느 장애인복지관은 관내 플라스틱 사용을 복무규정으로 제안합니다.
비닐 테이프는 완전 금지, 대신 접착 점토(블루텍)를 사용합니다. 버려지는 종이가 없습니다.
업무일지 같은 서류는 반드시 이면지를 쓰게 합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이런 실천이 두루 퍼지면 좋겠습니다.
생활과 업무 속에서 생태 감수성이 바탕에 놓여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방식은 자연 생태를 생각하는 (복지관) 사회복지사의 ‘소극적 실천’입니다.
이 일도 귀합니다. 당장 해볼 만하고, 맡은 일 속에서 조금씩 시작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적극적 실천’을 생각합니다.
자연 생태를 생각하는 (복지관) 사회복지사의 ‘적극적 실천’은 공동체를 생동하는 일입니다.
사람 사이 관계를 생동하게 하는 복지관 본연의 일에 충실합니다.
사람 사이 관계가 살아나면 자연 생태에도 이롭습니다.
더욱 복지관답게, 사회복지사답게 일하면 자연스레 환경에도 이롭게 됩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결국, 코로나19로 사회복지사의 이상인 ‘이웃과 인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예를 들어,
반찬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이 계신다고 가정합니다.
어르신을 위하여 밑반찬 서비스를 계획하여 지원하는 여느 복지관의 방식은,
별도의 반찬을 만들기 위해 따로 ‘물’을 쓰고 ‘불’을 씁니다. 반찬 담을 ‘플라스틱 용기’를 따로 구매하고, 포장하는 데 ‘비닐’을 씁니다.
배달할 때 차를 이용하니 ‘기름’ 쓰고 이산화탄소를 만들어 냅니다.
이웃과 반찬 하나 나누는 일도 특별한 복지서비스로 따로 도우니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복지 서비스로 반찬 만들어 전달하는 방식도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의미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복지관다운 방식이라 하기는 아쉽습니다.
관계를 생각하고 이를 생동하는 복지관 사회복지사라면 이웃 사이 할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을 때 서로 나누고 얻게 거듭니다.
내 것 만들며 하나 더 만들어 나눕니다.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꾸준히 주선하면 이웃 공동체가 생동합니다.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주체가 되어 당사자와 지역사회의 것으로 이루니, 사회사업 했다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따로 ‘전기’ 쓰고 ‘물’ 쓰고 ‘불’ 쓰면서 반찬 만들 일 없습니다.
별도로 만든 반찬을 포장하며 ‘비닐’ 쓰고 배달하며 ‘기름’ 쓸 일이 없으니 자연 생태에도 이롭습니다.
이웃 사이 공동체성이 살아나고 생동하면, 자연스레 둘레 자연환경에도 덜 해를 주고, 나아가 뭇 생명도 이롭게 합니다.
모든 현장 모든 일에 바로 적용할 수 없겠지만, 당장 해볼 만합니다. 이미 여러 복지관에서 잘해온 일이기도 합니다.
전 지구적 흐름
최근 유럽 여러 나라 선거에서 녹색당이 약진했습니다.
환경을 생각하는 정당들의 세 가지 핵심 가치는 ‘생태, 연대, 건강’입니다. ‘연대’는 우리 복지관에게도 친숙한 주제입니다.
여기에 생태를 포함합니다. ‘생태’를 다루지 않는 정치인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겁니다.
유럽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 대륙을 이루는 걸 목표로 삼았습니다.
‘유럽기후법안’을 마련했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이 법안대로면 이제 유럽에는 석탄 에너지로 만든 물건은 수출할 수 없게 됩니다. 탄소배출을 없애기 위한 노력입니다.
생태 한국의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그래도 코로나19 이후 ‘그린뉴딜 green new deal’이란 이름으로 무언가 해보려는 시도가 반갑습니다.
우리나라도 2025년까지 국내 온실가스를 지금보다 20.1%, 약 1,229만 톤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사회복지계를 돌아봅니다.
코로나19의 사회적 대응도 아쉽지만, 환경을 이야기하는 곳이 없어 서운합니다.
우리는 약자도 살 만하고, 약자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 온다 해도 어울려 살아갈 땅이 없다면 무슨 의미일까요?
죽임·죽음의 문명을 살림·생명의 문명으로 만들어 가는 일에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환경의 문제는 약자에게 더 참혹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2022년 대한민국 수도권에 집중한 폭우로 13명이 사망하고 약 1500명이 보금자리를 잃었습니다.
이들 대부분 반지하와 같은 열악한 주거 공간에 거주하는 사회적 약자였습니다.
성장과 팽창의 시대가 끝나가는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코로나19에서 잠시 멈추어 확인했습니다.
이제 관계와 소통의 시대로 방향을 전환할 때입니다.
기후 위기 속 사회복지사의 역할
달라진 기후를 서서히 체감할 겁니다. 큰 비가 오거나, 재난 수준으로 더워집니다.
해수면이 상승하면 지대가 낮은 곳에 살거나 반지하 같은 곳에 사는 사람은 삶의 터전을 잃을 확률이 더욱 커집니다.
기후 변화를 생각하며 그런 환경 재앙 속에서 사회복지사의 역할을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정보원 온라인 카페에서 소개한 미국 사회사업 교과서
<Generalist Social Work Practice: An Empowering Approach> 속 기휘 위기 관련 글을 읽었습니다.
By serving mental health needs of the general population, social workers already operate on the front lines to help people manage environmentally induced stresses. The demand for support is high. For example, six months after Superstorm Sandy, more than 14 percent of survivors screened positive for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and 6 percent met criteria for major depression (Boscarino et al., 2013). Similarly, 17 percent of New Orleans residents reported signs of serious mental illness after Hurricane Katrina (Galea et al., 2007). Overall, more than half of post-disaster mental health services are provided by social workers (Bauwens & Naturale, 2017). Social workers offer key assets in disaster response including a trauma-informed perspective, skills in psychological first aid, and resource networking capabilities.
… 예를 들어, 슈퍼 태풍 샌디 이후 6개월간 생존자의 14% 이상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양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6%는 주요 우울증 기준을 충족했습니다. 비슷한 예로, 뉴올리언스 또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주민 17%가 심각한 정신 질환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런 재해 뒤 정신건강서비스의 절반 이상은 대체로 사회복지사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
재해 뒤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분명 사회복지사의 역할이 중요할 겁니다.
미국에서는 사회복지사가 긴급 구호나 물품 제공, 관련 서비스 제공 정도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인 어려움까지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대응을 준비해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우리 사회복지사의 전공 공부와 처지와 역량을 생각했을 때, 정신적 지원에 직접 나서는 일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할지 궁리하며 찾아보았던 자료에서 반가운 글을 읽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을 때, 그 지역사회는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본 <특별재난지역에서의 지역사회복지관의 역할>.
여기서는 어려움에 처한 이를 위해 활동한 전문가들의 애도 상담도 중요하지만,
평소 알고 지내는 이웃의 진심 어린 위로와 함께 울어주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사후 회복을 위한 활동 또한 지역사회 공동체성을 높이는 데 있었습니다.
“평상시에 이타성이 높은 사회, 친사회적 행동에 더 익숙한 사회가 되어야한다.
(…) 이웃이 전문가보다 재난상황에서는 더 중요하다.
(…) 재난을 사전 예방하고 재난 후 극복하는데 있어 평소 지역사회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평소 지역사회를 이웃이 있고 인정이 흐르는 곳으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기후 위기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 사회복지사들이 주력해야 하는 일임이 분명 합니다.
그렇다면 기후 위기를 준비하는 사회복지사로서,
자연환경 사업을 따로 벌이지 않더라도 사회복지사의 정체성에 들어맞는 ‘사람 사이 관계를 생동하는 일’을
더 성실하게 이뤄가기만 한다면 우리 몫의 역할을 다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의 대전환 시대
코로나19는, 자연과 관계를 상실한 채 거대한 자연 생태계 속에서
오직 사람과 사람이라는 한정된 관계로만 상황을 인식해서는 사람의 생존이 불가능해진 시대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끝없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자연환경을 자원으로 마구 가져다 쓴 시절의 종말을 말하는지 모릅니다.
사람을 위한 자원에 불과했다 여겨졌던 자연환경을 사람을 위해 공생해야 할 생명체로 보기 시작할 때입니다.
자연환경을 인간 생존의 대상 정도로 보기 시작하면 우리도 결국 타인을 그저 내 생존을 위한 대상,
즉 사물로 보는 시각을 갖게 할 겁니다.
아직도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일한다면, 이는 코로나19 고통에서 배운 게 없는 겁니다. 다시 반복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원인을 돌아보며 지나치게 쓰고 버려온 삶의 방식은 내버려 둔 채, 이미 변한 세상에 적응하게만 돕는 건 아쉽습니다.
사람은 그가 속한 환경 속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는 ‘생태체계이론’을 공부한 사회복지사로서,
이제 자연과의 공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끼리 관계를 넘어 뭇 생명과의 관계까지 살필 때가 왔습니다.
어쩌면 사회사업에서도 ‘공생’의 개념을 자연환경으로까지 확대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인지 모릅니다.
자연환경까지 확장한 사회사업의 ‘생태’, 사람 외의 다른 생명들까지 포함하는 사회사업 핵심 가치 ‘공생’.
그런데 이것은 따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사회사업 핵심 과업인
‘공동체’를 가꾸었을 때 자연스레 이뤄진다는 데 실마리가 있습니다.
사람 사이 애정과 인정이 생동할 때 덜 생산하고 덜 쓰는 삶이 가능할 것이며, 그렇게 둘레 자연환경에도 이로울 거로 기대합니다.
자연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살펴볼 때입니다.
앞으로 이어갈 사회복지사들의 교육과 공부가 ‘우리는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우리 역시 지구의 일부’라는 공생 가치 위에서 이뤄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