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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세 번째 예고
마태복음 20장 17-19절 / 17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려 하실 때에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세 번째로 예고해 주심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려 하실 때에 있은 일입니다.“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려 하실 때에”에서‘올라가려 하실 때에’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가시는 길에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위하여 채비하고 있던 때, 곧 예루살렘으로 출발하려는 때에가 아니고, 이미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가시는 중에 있었던 길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을 가시는 중에 가까이 곁에로 부르시고는 말씀해 주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1)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2)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3)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4)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5)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이 예고가 앞서 있은 두 번의 예고와 내용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대조를 통해서 보도록 합니다.
첫 번째 예고 :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1)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2)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3)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4)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
두 번째 예고 :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1)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 죽임을 당하고 (3)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마 17:22-23)
첫 번째 예고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말씀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예고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넘겨져 예고하신 죽음의 고난을 당할 것이지만 또한 예고하신 대로 반드시 삼일 만에 살아나는 부활에 있으실 것이나, 이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매우 근심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예고가 주어지는 것에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해를 갖지 못해서 인데 아직 감추어져 있어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세 번째 예고가 주어집니다. 이 예고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있으시다는 것이 언급되고 있어 시간적으로 예루살렘과 가까운 길에 있는 진행에 있어왔음이 염두에 두어지고 있습니다. 이 노정에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가까이 곁으로 불러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앞서 두 번에 걸쳐 해 주신 예고에 의해서 일어나게 되는 것인데, 이번의 예고에서는 이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니, 이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및 장로들이 갖는 음모에 결탁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함으로써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대제시장들이 보낸 무리들에 의해서 체포된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져 산헤드린 공회의 결의에 의해 사형에 처할 것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결의를 실행하기 위해서 이방인인 로마 정부에 예수님을 넘겨 사형에 처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게 로마 정부에 넘겨지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의 조롱을 받으며 채찍질 당한 후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것이 예고되었습니다. 마가와 누가는 예수님이 조롱당하시는 이 고난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해 줍니다.“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막 10:33-34),“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눅 18:32-3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예고해 오신 대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세 번째 예고에서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계획
지금까지 세 번에 걸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예고에서 이번의 세 번째 예고가 가장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을 미리 아신 예수께서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그곳을 향하여 나아가시면서 장차 일어날 일에 제자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처할 수 있게 하고자 해서입니다.
이번의 예고에서 알게 되는 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방문인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되면 예수님은 제자의 한 사람인 가룟인 유다의 배반으로 체포되어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손에 넘겨집니다. 이때 예수님은 열두 군단도 넘는 하늘의 군대를 이루는 천사를 동원해서 그들의 손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습니다만 그러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미 이 일이 일어나리라고 한 성경의 말씀을 이루시는 것에서 입니다(마 26:53-54). 그에 따라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일 것을 결의한 후에 그 결정을 관철시켜 사형 판결을 끌어내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로마 정부에 넘겨줍니다. 당시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함을 알면서도 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유대인의 요구에 따라 예수님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고 십자가형을 명합니다. 갖은 조롱을 당하며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6시간만인 우리의 시각으로 오후 3시경에 마침내 운명하십니다. 이 모두는 예수께서 예고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께는 죽음의 고난을 당하실 것과 함께 예고해 오신 대로 삼일 만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실 부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세 번째 예고에서는 두 번에 걸친 이전의 예고에는 감추어져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된 섭리인 조롱과 채찍질을 당한 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할 고난이 알려지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로 따르는 예수께 일어날 이 사실을 알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당하시며 죽으시는 것을 볼 때 (1) 이 죽음이 성경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있는 일임을 알고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당하시는 것임에 믿음을 가지고서 주님을 바라봄에 있어야 했습니다. (2) 그리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죽음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해 주셨던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시는 것이니, 이는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들 대신에 죽임을 당하시는 것임을 알고 그 믿음에서 주님을 바라봄에 있어야 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속죄는 제사 제도를 통해서 행하게 하신 짐승의 희생제물에 의해서 있어 오면서 장차 일을 가리켜 온 데 따라 마지막 희생제물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게 하실 것으로 정한 방법으로 하나님께 바치게 하였습니다. 그럼으로써 온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나중 된 자는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는 나중 될 것이다”(16절)는 말씀과의 연관성
예수님은 본문에 앞서 말씀하신 20장 1-16절의‘품꾼을 포도원에 들인 주인 비유’에서“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라고 하시며,“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를 말씀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나라의 서열이 앞뒤가 바뀐다는 것에서 아닙니다. 이 비유에서 뜻하신 작정은 하나님의 나라는 먼저 부름을 받은 자나 나중에 부름을 받은 자나 하나님이 정하신 뜻대로 받게 하신 것이니, 먼저 온 자로부터 나중 온 자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실 것을 정하신 주인의 뜻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받음에 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 전파를 위해 부름 받음에 가장 먼저 있는 자인 예수님의 열 두 제자나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로 부름을 받음에 있게 될 나중에 있는 자는 모두 같은 한 데나리온으로 비유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음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것에서 나중 된 자는 먼저 된 자가 되고 먼저 된 자는 나중 된 자가 됩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먼저 된 자의 자리에 나중 된 자가 있으며, 또한 나중 된 자의 자리에 먼저 된 자가 앉아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가 각각 따로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들을 위해서 준비된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며, 이는 다름 아닌 주님의 보좌와 함께 하는 영광스런 보좌인 한 자리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영광스런 보좌에로 부름을 받음에 따라 참여에 있을 것인데, 그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오직 택함을 입은 자 뿐입니다(마 22:14). 이렇게 오직 택함을 입은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신 후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에 있으시게 됩니다. 이 죽음과 부활을 온 세상에 전파되는 복음이 되게 하시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달아 알아차리는 귀에 있게 하시며 깨달아 알아보는 눈에 있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도와 부활의 복음은 생명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지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이 은혜로운 구속을 알고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복을 전파하는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도와 부활의 복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다른 말로 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였으며(고전 1:23-24),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으로 세우심(행 1:22)에 따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생명의 주이심을 전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전해져 우리를 주 예수께 믿음을 갖게 한 복음이 이것이니,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구속받은 것이 은이나 금같이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흘리신 오직 흠 없고 티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요(벧전 1:18-19),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신 것(벧전 1:3)임을 알고 그 은혜에 의존함에 있으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 있어야겠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사는 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죽음도 감수할 것입니다(빌 3:10-1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