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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사진편지 제2154호 (14/9/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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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秋分). 가을걷이. 국화(菊花).
오늘은 음력 9월 초이튿날입니다.
그제 23일 화요일은 음력 8월 그믐날이었고 24절기 중 열 여섯번 째 절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추분(秋分)이었습니다.
추분(秋分)이 오면 더위도 끝나고 점차 밤이 길어지기 때문에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추분과 춘분은 모두 밤낮의 길이가 같은 시기지만 기온을 비교해보면 추분이 약 10도 정도가 높습니다.
이는 여름의 더위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추분 무렵이 되면 백곡(百穀)이 풍성해지고 추수기가 시작됩니다.
한껏 자란 수수와 조는 고개를 숙이고 누렇게 익어가는 벼는 들녘을 황금빛으로 물들입니다.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 들이고 밭작물인 목화를 따고 고추도 따서 말립니다. 호박고지, 박고지, 깻잎, 고구마순도 이맘때 거두어 말립니다.
논에서는 피사리를 하며, 겨울에 먹을 산채를 채취하고 말려 이듬해 봄에 먹을 묵나물<뜯어두었다가 이듬해 봄에 먹는 산나물>을 준비합니다.
이밖에도 여러 잡다한 `가을걷이`가 시작됩니다.
가을에 다 여문 곡식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추수(秋收)라고도 합니다.
`가을걷이`는 곡식을 거두기 위해 이삭이나 열매만을 따거나 줄기까지 베는 일 <작물에 따라 따기, 꺽기, 베기>과
이를 말리는 일, 그리고 알곡을 떨어내는 타작 <`마당질`이라고도 함`>으로 구분합니다.
`가을걷이`는 벼, 콩, 팥, 기장, 조, 옥수수, 수수, 메밀과 같이 가을에 여무는 곡식을 줄기째 베거나 뽑아서 이삭만을 따서 말린 다음 알곡을 내는 타작까지 일련의 과정을 통칭합니다.
대부분의 곡식을 가을에 수확하기 때문에 일이 많고 또 추분(秋分)부터 시작해서 추위가 닥치기 전에,
갈무리가 끝나야 하기 때문에 재배 규모가 적은 작물이 아니면 `가을걷이`는 이웃과 품앗이로
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오늘은 주요 작물 중 어렸을 때 추억이 가장 많은 벼의 `가을걷이`를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예전에는 서리가 내린 다음에야 벼베기를 했습니다.
나락이 제대로 여물고 볏짚도 잘 말라 있기 때문입니다.
근래에 들어서 벼베는 시기가 다소 빨라지기는 했지만,
중부지방에서는 `한로(寒露)`가 제철이고 남부지방에서는 이보다 열흘 가량 늦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부지방은 추분(秋分)에, 남부지방은 `한로(寒露)`(금년 10월8일)에 벼베기를 합니다.
따라서 옛날보다는 빨리 추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벼 베기가 빨라진 이유는 기계화에 따라 모내기가 앞당겨진 데다가 품종에 따라서 조금의 차이가 있지만,
이삭이 패고 45일이 지나 나락이 90퍼센트 정도 여물었을 때 베어야 소출도 가장 많고 쌀의 품질이 좋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면서 벼를 베어서 단으로 묶어내는 바인더(reaper binder)라는 수확기를 사용하였으며,
지금은 대부분이 벼를 베어 탈곡까지 하는 콤바인(combined harvester)을 씁니다.
낫으로 벼를 벨 때는 보통 네 줌(뭇)을 한 단으로 묶는데, 한 단은 쌀이 한 되 가량 나오는 분량입니다.
그리고 논바닥에 볏단을 세워 말릴 때는 20단을 `한 가리` 또는 `한 광`이라고 하고, 이를 타작하면 쌀이 한 섬이 됩니다.
20단이 넘는 긴 가리를 ‘장광’이라 하고, 이때는 `한 광`마다 볏단을 거꾸로 세워 그 양을 표시합니다. 이를 `줄가리친다`고 합니다.
논둑에 세워서 보통 20여 일 간 말립니다.
그러나 충청도 일부와 남부지방, 특히 평야 지역에서는 벼를 벤 즉시 단으로 묶지 않고 논바닥에 깔아 일주일 가량 말린 다음 단으로 묶습니다.
그리고 묶은 단은 바로 논바닥이나 논둑에 쌓는데, 이삭이 안으로 가고 밑동이 밖으로 나오게 하여 열십(十)자 모양으로 쌓습니다.
50단을 `한 가리`라 하고 이를 `동가리친다`라고 합니다.
볏단이 다 마르면 타작할 곳으로 옮기는데, 보통 지게로 져 나르거나 발채나 달구지를 써서 소로 날랐는데, 지금은 달구지나 경운기를 사용하여 옮기고 있습니다.
옮긴 볏단은 마당이나 텃밭에 낟가리를 치는데, 바닥에 짚이나 거적을 깔고 밑동은 밖으로 이삭은 안으로 하여 동그랗게 쌓아
올리면서 위로 갈수록 넓혀서 배가 부르게 쌓습니다.
그리고 낟가리의 꼭대기에는 이엉이나 거적을 덮어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보통 `한 가리`에 3-4백단을 쌓지만 농사가 많은 곳에서는 5-7백단을 쌓기도 했습니다.
타작은 넓은 마당에서 하기 때문에 `마당질`이라고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금년 10월23일)무렵이면 타작이 끝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눈이 올 때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타작은 양이 많지 않으면 탯돌이나 절구통을 쓰지만 많을 때는 `개상`(볏단을 메어쳐서 이삭을 떨어내는데 쓰던 농기구)을 썼습니다.
`자리개`(옭아매거나 묶는데 쓰는 짚으로 만든 굵은 줄)를 두 손으로 쥐고 볏단을 감아 어깨 뒤로 돌려서 개상 위에 내려치면 나락이 떨립니다.
덜 떨린 것은 도리깨로 마저 떨었습니다.
그리고 빗처럼 생긴 날 사이에 이삭을 먹여 나락을 훑어내는 홀태(그네)도 사용했습니다.
근대적인 개념의 탈곡기가 도입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로 초기에는 사람이 발로 밟아 돌리는 `족답탈곡기`가 사용되었고,
뒤이어 발동기가 돌리는 `동력탈곡기`, 경운기가 돌리는 `자동탈곡기`의 순서로 발전하였습니다.
`동력탈곡기`가 사용되면서 낟가리나 전통적인 마당질은 사라졌으며, 지금은 콤바인이 벼를 벰과 동시에 탈곡까지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벼 베기나 탈곡하는 정겨운 광경을 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추분(秋分)이 지나면 우렛소리가 걷히기 시작하고, 굴속의 벌레들이 흙으로 틈을 막으며, 땅위 물이 마르기 시작합니다.
아침 저녁은 찬바람, 한낮에는 땡볕 가을햇살, 길었던 하루해가 나날이 짧아지면서 반바지 반팔은 옷장에 넣고, 긴바지 긴팔 옷을 꺼내는 철이 추분이 지나는 무렵입니다.
길가 연보랏빛 쑥부쟁이가 곱게 하늘거리면, 쑥꽃이 눈에 띄지 않게 피고집니다.
산에는 으름과 밤이 벌어지고 도토리가 함께 떨어집니다.
아침 해 뜨기 전에는 찬이슬이 옷을 적시고 저녁 해는 순식간에 떨어지니 `가을걷이`는 때를 맞춰 부지런히 마쳐야 합니다.
추분(秋分)에 부는 바람을 보고 이듬해 농사를 점치는 풍속이 지금도 있습니다.
그제 추분날 처럼 건조한 바람이 불면 다음해에 대풍이 든다고 합니다.
바람이 북서쪽인 건방(乾方)이나 남동쪽인 손방(巽方)에서 불어오면 다음 해에 큰 바람이 불고, 북쪽인 감방(坎方)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겨울이 몹시 춥다고 여겼습니다.
이때, 북서쪽(乾方)은 활동성이 뛰어난 방위로 사람의 출세나 입신양명에 영향을 주는 방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부터 본격적인 `가을걷이`가 시작됩니다. 여건이 허락되면 `가을걷이`를 하고있는 고향땅 순천을 찾아,
`새참`을 먹으며 60여 년 전 옛 시간 속 그리움을 만나고 싶습니다.
추분(秋分)에는 국가에서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노인성제(老人星祭)를 지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때부터 시행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소사(小祀)로 규정하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남극성(南極星),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 수성(壽星), 남극수성(南極壽星)으로 불리는 노인성(老人星)은 남쪽하늘의 별자리<용골(龍骨)>에 있는 카노푸스(Canopus)를 말합니다.
이 별은 `시리우스` 다음으로 밝은 별로서 남반구에서는 가장 밝습니다.
남반구의 별자리이므로 우리나라에서는 평소 보기가 어렵지만 남쪽 해안과 제주도에서는 볼 수 있는 별입니다.
일년 중 추분(秋分)에 나타났다가 춘분(春分)에 사라진다고 하여 추분(秋分)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노인성(老人星)이 나타나면 세상이 태평해지고 군왕이 장수하는 반면,
보이지 않으면 군주가 위험하고 전쟁이 일어난다고 여겼기 때문에 노인성(老人星)이 나타나면 백관(百官)이 왕에게 축하를 올렸습니다.
노인성(老人星)은 비단 국가와 군왕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장수를 가져다주는 신앙 대상이었습니다.
작은 키, 흰 수염, 큰 머리, 튀어나온 이마의 형상을 하고 발끝까지 덮은 도의(道衣)를 입은 노인의 모습을 그린 노인성도(老人星圖)는 세화(歲畵)의 한 종류였습니다.
-[세화(歲畵):조선시대에 새해를 축하하는 뜻으로 대궐안에서 만들어 임금이 신하에게 내려주던 그림. 선동(仙童)이 불로초를 짊어진 모습이나 태상노군(太上老君:노자)을 그린 그림]-
우리나라에서 노인성제(老人星祭)가 가장 성행하던 때는 고려시대였습니다.
조선시대에 소사(小祀)로 지내오다가 중종이후 페지 되었습니다.
정조 21년(1797)에 예조판서 민종현을 비롯한 여러 대신들이 복원을 주장하였고,
정조가 이를 받아들여 영성과 수성에 관한 의식인 「성단향의(星壇享儀)」를 직접 지었습니다.
그러나 정조의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수를 기원하는 노인성제(老人星祭)는 다시 복원되지 않았습니다.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은 10월말경에는 새벽 6시에, 11월말경에는 새벽 3시에, 12월 말경에는 새벽 1시에, 1월 말에는 밤 11시에,
2월 말에는 저녁 9시경에, 3월 말경에는
저녁 7시경에 남쪽하늘 수평선 위에서 보입니다.
지금도 민간신앙으로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찾고,
제주 서귀포문화원은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을 보고 장수하세요》-
<서귀포 남극 노인성 축제>를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을 뚜렷이 볼 수 있는 서귀포 삼매봉(해발 153m)에서 매년 열고 있습니다.
한사모 회원님 중 장수를 기원하는 회원님은 이번 가을에 노인성제(老人星祭)를 제주도에서 지내셨으면 합니다.
국화(菊花).
추분(秋分)무렵 피우기 시작해 늦은 가을에 서리가 와도 피어있는,
사군자(四君子:매화.난초.국화.대나무) 중 국화꽃은 군자의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 아닐수 없습니다.
동양에서는 서리에도 굴하지않는 꽃이라하여 군자라하지만,
꽃말은 <역경에서도 꺾이지않는 쾌할 함>입니다.
국화는 원산지가 중국이며 동양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국화는 가을에 피는 것이 정상인데 하국(夏菊)이라 해서 여름에 피는 것과 한국(寒菊)이라 해서 초겨울에 피는 것도 있습니다.
원래 국화는 중국이 그 산지라서 당대(唐代)에 우리나라에 이식되었다고는 하나,
신라국화(菊花)와 고려국화(菊花)가 중국 땅에 건너갔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벌써 이 땅에서의 국화의 역사는 오래 된 것같습니다.
백제(百濟)로 부터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색은 황,백 ,홍,자,흑 등이 있으나 황국(黃菊)이 많은 이유입니다.
그래서 <국화가 누렇게 피면 게도 살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속담에 <짚신에 국화 그리기>라는 말이 있는데, 밑바탕이 이미 천한 것인데 화려하게 꾸밈은 당치 아니하다는 비유입니다.
<국화는 서리를 맞아도 꺾이지 않는다>라는 속담은, 절개나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은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꿋꿋이 이겨 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서리가 내려야 국화의 절개를 안다> <국화는 시들어도 꽃이 떨어지지 않는다>
국화의 꿋꿋함과 절개의 굳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들입니다.
2014년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열리는 `2014 인천 아시아 경기대회`기간 중,
`인천드림랜드`는 `국화전시회`를 무료로 개방한다고 합니다.
아시아 경기대회도 보시고 국화전시회에도 가져서 깊어가는 가을을 국화 향 속에서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래 국화꽃 이미지를 감상하시면서 즐겁고 기쁜 주말이 되시기를 빕니다.
김태종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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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을이 다가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글,사진과 음악 그리고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 무어라 말씀드리기조차 어렵네요.매주마다 얼마나 힘드실까....혼자 중얼거려봅니다.감사합니다
가을 이야기에 그림과 꽃을 보니 이가을 무슨 수확을 할까를 돌아보게 됩니다. 시원한 밤공기가 눈을 바르게 합니다.
잊고 있던 귀한 것을 찾아내서 들려주시니 팔꿈치라도 들어 사라진 옛이야기를 잡아 끌어 당기고 싶어집니다
115첼로 협주곡을 들으며 국화향기 짙게 맡아봅니다.
가을걷이의 여러 가지도 익히가며 배움도 컸습니다.
귀한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