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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4.14. 주일오전예배 【부활 후 제2주일】 본문:마가복음12:41-44, 사도행전5:1-11
제 목 : 축복 받은 사람과 저주 받은 사람
찬 송 : 50, 211, 213, 216, 321, 327, 539.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신령하신 은혜와 평강이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과 가정 위에 충만 충만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또 근래에 들어서 부쩍 심해진 미세먼지가 우리나라 전역을 뒤덮어서 많은 불편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매년 봄철만 되면 중국으로부터 황사가 날아와서 우리나라에 큰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이 황사는 중국의 내륙지방에 사막화가 점점 심해져서 그 사막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을 타고 우리나라로 오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황사 현상이 일어날 때마다 중국의 산림정책이 잘못되어 이와 같이 세계 여러 나라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국제기구를 통하여 손해배상을 물릴 수 없을까 하는 황당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읽은 두 곳의 본문 말씀은 모두 헌금에 관한 말씀들입니다. 마가복음의 말씀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과 축복을 받은 헌금의 경우이며 사도행전의 말씀은 거액의 헌금을 하고도 책망과 저주를 받은 경우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상황을 볼 때마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생각과 우리 사람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축복받은 사람과 저주 받은 사람」오늘의 설교제목입니다. 이 말씀은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 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경우 액수로 따지면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마다 이 맘때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 대한 설교는 반드시 합니다.
왜 하게 되는지 저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은혜 인줄 믿습니다. 그냥 설교자는 주님이 새생명교회에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 사명일 뿐인줄 믿습니다.
사도행전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땅을 팔아서 드린 헌금은 예루살렘에서 홀로 사는 가난한 여인이 드린 두 렙돈에 비하면 천문학적 숫자입니다.
베드로로부터 성령을 속였다고 책망을 받았지만 끝내 거짓말을 하다가 저주를 받아 죽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드린 헌금이 몇 백배 더 많은 액수의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진 것 중 얼마를 하나님께 바치느냐 하는 것에 주목하십니다. 우리의 가진 시간, 재능, 물질, 힘 중 몇% 바치는가를 그 비중을 보시고 평가하십니다. 다 같이 복음 성가를 부르겠습니다.
1. 주님 것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며 살아왔네
금은보화 자녀들까지 주님 것을 내 것이라
아버지여 철없는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맡긴 사명 맡긴 재물을 주를 위해 쓰렵니다.
2. 천한 이 몸 내 것이라고 주의 일을 멀리했네
주신이도 주님이시오 쓰신 이도 주님이라
아버지여 불충한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세상유혹 다 멀리하고 주의 일만 하렵니다.
3. 주님사랑 받기만하고 감사 할 줄 몰랐었네
주님말씀 듣기만하고 실행하지 못했었네
아버지여 연약한 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명령 순종하면서 주를 위해 살렵니다.
오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홀로 사는 가난한 한 여인이 드린 두 렙돈의 헌금이 주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은 날마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던 날 호산나를 부르던 군중들 때문에 가뜩이나 긴장을 하고 있는 제사장들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주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헌금궤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일일이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별 사람이 다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겸손히 헌금을 드리는 한 여인을 발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로지 한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유심히 보시다가 그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그가 헌금궤에 넣는 돈은 겨우 두 렙돈이었으나 이것은 당시 동전 두 닢에 불과 하는 아주 작은 액수입니다.
어쩌면 그날 헌금궤에 넣어진 돈 중에 가장 적은 액수의 헌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사람보다 제일 많은 헌금을 했다고 칭찬까지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1) 그 여인은 곤고한 중에서 드린 헌금이었습니다.
홀로 사는 이 여인은 참으로 곤고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짝 잃은 기러기처럼 멀고 험한 인생행로를 혼자서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곤고한 중에서 감사하며 드린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내 생활이 넉넉하고 풍족할 때 드리는 헌금보다 나의 생활이 어렵고 힘들고 곤고한 중에 드리는 헌금을 하나님은 더욱 기뻐하십니다.
(2) 그 여인은 궁핍한 중에서 드린 헌금이었습니다.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활이 궁핍해지면 자연히 인심이 메말라 버리는 법인데 어떻게 감사의 봉헌이 나오겠습니까? 그럼에도 이 과부는 구차한 가운데서도 기꺼이 드린 것입니다.
(3) 그 여인은 생활비 전부를 드린 헌금이었습니다.
물론 부자는 이 과부보다 훨씬 많은 것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부자가 드리는 헌금은 생활의 일부에 지나지 못합니다. 자신의 생활비에 백분의 일, 천분의 일도 못되는 액수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자기의 소유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장 많은 헌금입니다. 문제는 생활의 일부분이냐 전부냐가 문제입니다.
교회에서 무슨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헌금하는 것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헌금 액수가 많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신앙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생활에 비추어 넘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는 헌금 때문에 시험 당하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도시 교회에서는 특별헌금 하자고 하면 다른 교회로 가는 교인이 많다고 합니다.
또 헌금 때문에 죄를 범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을 해 놓고도 종내 바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헌금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많은 액수의 헌금을 했다고 하여 교만해 져서 시험 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2.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왜 거액의 헌금을 하고도 책망과 저주를 받았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들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교회가 부흥되고 날마다 모이는 수가 늘어가고 성령과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여 부흥의 도상에 있던 교회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처음 예수를 믿기 시작한 초신자가 아닙니다. 그는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입니다. 「아나니아」 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은총이 깊다」 라는 뜻이며 「삽비라」 라는 이름의 뜻은「보석같이 아름답다」 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그들의 이름만 보아서도 그들은 부모님으로부터 신앙을 전수 받은 중견 신앙인의 가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가정의 신자가 그만 시험에 들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두 부부가 급사했습니다. 그러니 교회로서는 참으로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선교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초신자는 말썽이 없습니다.
항상 교회의 중직이라고 하는 성도들이 교회의 문제를 일으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항상 진실하고 순결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사기꾼이나 탐욕에 눈 먼 사람에게는 맡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③ 그리고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④ 교회의 부흥을 방해하는 원수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십만 대군의 적보다 교회 내부의 파괴를 조작하는 소수의 무리가 더욱 무섭다는 것입니다.
(1)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급사를 당한 것은 물질에 탐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질은 곧 돈입니다. 이 세상에서 돈이란 참으로 매혹적인 것입니다. 돈은 요술쟁이와도 같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이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주기도 합니다. 또 돈은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또 돈으로 선한 사업을 하기도 하고 복음전도에도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돈이면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돈은 점점 인간의 우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애쓰고 있고 돈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기도 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까지라도 악착같이 벌려고 하고, 무슨 일이든지 또 무엇이든지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돈은 불행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살인과 도둑질과 가정파괴가 일어나고 한평생 모은 재산을 모두 날려버리기도 합니다.
아나니아 부부는 물질에 탐욕 때문에 그들의 인생이 비참하게 종지부를 찍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아간이란 사람은 여리고성을 공격할 때 금덩이 하나와 은덩이 하나 그리고 시날산 값비싼 외투 한 벌을 감추었다가 그의 가정 모두가 아골 골짜기로 끌려가서 돌로 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발람 선지자는 물질에 눈이 어두워 모압 왕의 청탁을 받고 가다가 그만 나귀의 책망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초대 왕 사울은 아말렉과 전투에서 모든 것을 진멸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좋은 것을 빼돌렸다가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성령이 떠나고 악신에게 사로잡혀 고통을 당하다가 불레셋과의 전쟁에 나가 싸우다가 길보아산에서 아들 요나단과 함께 전사를 당했습니다.
(2)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믿음 없이 자신의 명예만을 생각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 중에 한사람인 바나바가 밭을 팔아서 사도들 앞에 드리니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게 된 것을 알고 아나니아 부부도 밭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얼마를 감추고 얼마를 사도 베드로에게 갔다가 드렸습니다. 밭을 판값의 얼마를 감추고 얼마를 드렸는지 정확한 액수는 기록되지 않아서 알 수가 없으나 아나니아는 자신도 바나바와 같이 명예를 얻고자 했습니다.그의 행동에서 믿음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결국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밭을 팔아서 드렸어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멸망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물질은 내 것 이면서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잘못 사용하면 죄가 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3)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성령을 속였습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에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고 하였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처음에는 자기의 양심을 속이고, 두 번째는 사도를 속이고, 세 번째는 성령을 속였습니다. 성령을 속인 것은 곧 하나님을 속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도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지 말라고 하였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속인 아나니아의 죄가 얼마나 중하겠습니까?
(4)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부부가 함께 공모하여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본문 2절 말씀에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고 하였고,
9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고 하였습니다. 결국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둘이서 공모를 하여 하나님을 속인 것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같이, 두 부부가 마음을 합하고, 힘을 합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두 부부가 공모를 하여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부부가 함께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을 망각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과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부부가 함께 공모를 하여 하나님께 범죄 한 사람들이 여러 명이 있습니다.
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함께 따먹었습니다.
② 다윗과 밧세바는 둘이 부부는 아니지만 불륜의 관계를 맺고 이를 감추려고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 최전선에 내보내 죽게 하였습니다.
③ 아합왕과 이세벨 왕후는 부부가 공모를 하여서 이스라엘 나라의 모든 선지자를 죽이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도록 하였습니다.
④ 헤롯왕과 왕후 헤로디아는 부부가 공모를 하여 세례요한을 죽였습니다.
(5)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돕는 배필로써 신앙의 도움이 되지 못하고 죄짓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고 하신 것처럼 아내는 남편의 신앙에 도움을 주는 배필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나니아의 부인 삽비라는 남편이 죄짓는데 함께 공모를 하고 동조를 하였습니다.
부부가 함께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참으로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중에서도 부부가 함께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큰 은혜와 축복을 받은 것을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부가 함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의 일을 힘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안 됩니다.
아나니아의 부인 삽비라는 남편이 헌금을 하기 위해 자신의 소유인 밭을 팔아 그 값의 일부를 감춘 남편의 잘못을 알고도 이를 묵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삽비라도 역시 베드로에게 거짓말을 하여 그도 죽고 말았습니다.
부부 사이는 선악 간에 모든 일을 서로 격려하고 또 잘못을 지적도 해 주어서 잘못된 길로 갈 때는 이를 바로 잡아 주어야 참된 부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아나니아나 삽비라는 회개할 기회가 몇 번씩 있었음에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죄의 값을 받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고 할 때에 즉시 회개하였더라면 아나니아는 죽지 않고 그의 죄도 용서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사1:18-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 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3. 그러면 오늘의 우리들은 어떤 헌금을 하여야 하겠습니까?
이미 정답은 나와 있습니다. 가난하게 홀로 사는 한 여인이 드린 두 렙돈 그 헌금은 비록 액수는 적으나 주님이 기뻐하시는 헌금이 된 것처럼 오늘의 우리들도 진정 주님이 기뻐 받으실 수 있는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말씀을 악용하여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예수님이 가난한 과부가 드린 헌금을 칭찬 한 것은 적게 드려도 된다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마6:20-21)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살아 계셔서 역사 하시며 우리들의 심은 골수까지 불꽃같은 눈으로 꿰뚫어보시는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헌금궤를 지켜보시고 계십니다. 헌금이라는 것 때문에 주님을 진노케 해서는 안 됩니다. 과부의 헌금처럼 주님으로 하여금 만족하게 하시고 기뻐하시도록 하여 드리는 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적은 두 렙돈이 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바쳐진 헌금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두 렙돈의 근본적 가치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앞에서 조용히 자기를 비추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 앞에 내 하는 일들이 칭찬 받을 만한 일인가 축복을 받을 만한 일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와 같이 축복은커녕 저주를 받아 마땅한 그런 상태는 아닌가 이 시간 냉철하게 자신을 한번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르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자녀다운 믿음의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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