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 용소계곡
(2022년 7월 23일)
瓦也 정유순
장마가 시작되어 비 소식이 오락가락하는 무더운 여름인지라 시원한 물이 그리워 우리가 지금 찾아가는 용소(龍沼)계곡은 강원도 홍천 9경 중 제 7경이다. 용이 승천하다 떨어져 움푹 페인 웅덩이가 있는 이 계곡은 내촌면 광암리에서 발원하여 두촌면 괘석리를 거쳐 천현리까지 16여km에 이르며,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우거진 숲과 곳곳에 펼쳐지는 소(沼)와 너래바위들이 어우러져 비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남쪽으로는 백우산(白羽山, 895m), 북쪽으로는 소뿔산(1,108m) 사이로 굽이쳐 흐른다.
<용소계곡 지도>
<용 조형물>
미세먼지 한 점 없는 하늘을 뒤로하고 계곡으로 들어가는 초입은 도로공사로 막혀 있고, 한참을 하류로 내려가야 임시로 만든 입구를 통해 내려가자 저 깊은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는 맑은 영혼을 부르는 소리다. 하늘을 가리는 녹음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온 몸은 푸르게 채색되어 풀이 되고 나무가 된다. 비탈을 이용한 벼룻길은 바위에 부딪히며 부서지는 물보라 퍼지는 소리와 발을 맞춘다. 개암2교를 지나면 백우산 군넘이고개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용소계곡 초입>
용소계곡 달마형상의 너래바위가 가슴을 활짝 연다. 달마(達磨)는 자연계의 법칙과 인간세상의 질서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옛날부터 집안에 달마상이 있으면 집안의 수맥을 차단해 주고 나쁜 액운을 막아주며, 마음이 불안정한 사람들 즉 시험을 앞둔 수험생, 사업이 부진한 사업가, 정서적으로 불안한 현대인들의 심신을 치유함은 물론 가정의 평화와 화목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있고, 달마의 혜안(慧眼)은 만사 대길할 수 있는 기운이 있다고 믿는다.
<용소계곡 달마바위>
길 옆에는 자이리톨(Xylitol)향이 물씬 풍기는 자작나무가 숲을 이룬다. 섭씨 영하 20∼30도의 혹한에서도 잘 자라는 자작나무는 종이처럼 얇은 껍질들이 겹겹이 쌓이고 기름기가 하얀 분가루처럼 축적이 되어 추위를 이겨낸다. 그래서 불쏘시개로 사용하고 타는 소리가 “자작자작”난다고 하여 자작나무다. 또한 결혼식 때 쓰는 화혼(華婚)도 자작나무 불꽃같다고 하여 얻어졌다. 즉 “자작나무로 화촉(華燭)을 밝힌다”라는 뜻이란다.
<용소계곡 자작나무 숲>
그리고 목질이 박달나무처럼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하여 벌레가 안 생기고, 오래도록 변질되지 않는 특성을 가졌다. 두드리면 금속소리가 난다고 하며, 껍질이 희고 매끄러워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쓸 수 있고, 닦으면 광택이 좋아져서 많은 공예품의 재료로 이용된다. 합천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의 일부도 자작나무로 알려졌고, 경주 천마총(天馬冢)의 말안장을 그린 천마도의 재료도 자작나무 껍질이라고 한다.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천마도 - 네이버캡쳐>
용소계곡은 기암절벽과 협곡을 이루며 용소, 너래소, 나들이소 등 소(沼)와 담(潭)이 이루어져 비경을 이룬다. 지금의 숲길은 2015년부터 옛길 중심으로 복원되었고, 굽이굽이마다 <흰 사슴과 소녀의 우정>, <산신령이 알려주는 탐방객 주의사항>, <우산바이킹이야기>, <도깨비로 인한 야간통행금지>, <가리산(1,051m) 아래의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아버지 묘인 한천자묘(韓天子墓)>,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 바위를 조각(彫刻)한 도깨비> 등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을 만들어 나그네의 발목을 잡는다.
<용소계곡>
<용소계곡 여울>
그 중 ‘너래바우의 소원’은 이곳을 지나가던 가난한 총각이 너래바우에서 낯 잠을 잘 때 꿈속에 선녀가 나타나 실뱀을 품속에서 꺼내주며 소원을 말하라고 하자 총각은 ‘내 주변 모든 사람이 건강하면 된다.’고 말했고, 선녀는 그의 고운 마음에 반하여 실뱀으로 서로의 손목을 묶자 잠에서 깬 그의 옆에는 아름다운 선녀가 함께 누워 있었다. 그렇게 하여 백년해로(百年偕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용소계곡 너래바우>
일제강점기인 1917년부터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해수(害獸) 구제 명목으로 맹수를 사냥했는데, 이곳 용소계곡 일대에 서식하는 산왕(山王) 호랑이도 1930년대 일본경찰의 사주를 받은 포수가 사냥으로 잡아온 후 홍천에서는 호랑이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그 일본경찰은 호랑이 가죽은 벽장식으로 뼈는 갈아서 보약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용소계곡>
또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들어와 살면서 경찰관서도 생겼으며, 해방 후 귀농한 부부가 방치된 경찰관서를 보수하여 살게 되었는데, 밤 낯으로 호랑이울음소리가 들려 소수문한 결과 감옥으로 쓰던 지하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지하실을 뒤진 결과 ‘虎(호)’라고 쓰인 호랑이 뼈 항아리를 찾아내어 용소계곡 상류로 올라가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자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용소계곡 상류>
용소계곡이 흐르는 군유동은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머물렀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왕건에게 쫓기면서도 신라왕조의 국권회복을 꿈꾸는 마의태자는 홍천군 동면 지왕동을 지나 왕터에서 며칠을 머물다가 공작산을 넘어 도관리 군넘이고개를 넘어 군유동에 머물면서 군유동이란 마을 지명이 생긴 것이다. 용소계곡에 위치한 군유동마을은 4∼50년 전만 하더라도 50여 가구 이상의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며 살던 전형적인 산촌마을이었다고 한다.
<용소계곡과 소나무>
괘석리삼층석탑(掛石里三層石塔)은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괘석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이다. 1984년 6월 2일 강원도의 문화재자료(제12호)로 지정되었으며, 아무런 무늬가 없는 지대석(地臺石)을 놓은 단층 기단(基壇)의 삼층석탑이다. 몸돌에는 모서리기둥을 돋을새김 조각을 했으며, 모서리 기둥 사이의 버팀기둥은 없다. 고려 때 수타사(壽陀寺)에서 세웠다고 전하고 있으며, 관청에서 탑을 옮기려 하였으나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막는 바람에 옮기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괘석리 삼층석탑>
용소계곡을 적시는 경수천을 따라 내려오면 가난한 집 아이들이 학교를 걸어서 오가며 길가에 쌓은 돌탑에도 정성이 스며든다.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쳐들어와서 먹을 것이 떨어지자 포로로 잡힌 주민들과 함께 천렵(川獵)을 하여 허기를 채웠다는 이야기, 복면도둑들을 짚불에 돌을 달구어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 먹는 삼굿구이로 잡았다는 이야기를 새기며 용소계곡 구름다리를 건넌다.
<용소계곡 선돌>
<용소계곡 구름다리>
구름다리를 건너면 계곡은 점점 멀어지고 복사열이 뜨거운 포장길을 걸어 돌고개를 마주한다. 돌고개는 ‘화전민이었던 엄마가 이 고개를 넘어 감자를 팔러갈 때 길동이라는 아이가 엄마 등에서 짐을 가볍게 하려고 감자 하나씩을 몰래 계곡으로 던지면 용이 받아먹었는데, 비 오는 날 바닥이 미끄러워 엄마가 계곡으로 떨어질 때 그 용이 나타나 엄마를 구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지금도 주민들은 돌고개를 넘을 때마다 음식 한 덩이를 던져 준다고 한다.
<용소계곡 돌고개>
돌고개를 넘으면 두촌면 천현리(泉峴里)로 용소계곡의 끝이다. 옛날 이곳 마을에는 말을 못하는 천치소리를 듣는 아이가 자라고 있어 사람들의 놀림을 받았는데, 어느 날 마을을 지나던 스님이 깊은 산 계곡물을 마시면 총명해진다고 하여 부모는 험난한 고개를 넘어 깊은 용소계곡의 물을 퍼다 먹여 말을 배우고 글을 깨우쳐 총명한 아이로 거듭났고, 훗날 과거에 급제하여 마을로 돌아오면서 이 마을이 천치리에서 천현리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두촌면 천현리>
<용소계곡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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