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삶에는 각자의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명”이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에 대해 언급합니다. “행복의 비결”이라는 책을 보면, 행복은 건강과 재물과 아름다움과 즐거움과 조화 등이 있어야 한다며, 갖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이 책을 읽은 유대인 랍비는, 그 많은 조건들이 다 갖추어져도 불행해질 수 있으며, 행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한 가지가 꼭 필요한 데, 그것은 바로 “평화”라고 했습니다. 성도인 우리는 이러한 평화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얻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개인의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고 준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음으로, 우리 안에 평화가 임합니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사명을 위해 준비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쫓겨남으로, 그에게는 행복과 평화가 임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막연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신기루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구체적인 실체이며 현존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와 비슷한 열 므나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수많은 반응과 태도 가운데 어떠한 태도와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가장 쉽게 이해시켜 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 그들 앞에 현실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최종적으로 이루셔야 할 일은, 십자가에서의 대속사건입니다. 그런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가 다시 재림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현실적으로 확실하게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충성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주인은, 종들에게 각기 1므나씩을 나누어 주며, 자신이 먼 나라로 가서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여 이윤을 남기라고 합니다. 1므나는 당시 노동자들의 100일치 품삯입니다. 주인은 종들을 불러서, 그들의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하지 않고, 모두가 균등하게 1므나씩 지급했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이 비유를 들어, 장사하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떤 이는 목사로, 어떤 이는 교사로, 어떤 이는 예언자로, 어떤 이는 장로로, 집사의 직분을 받았으나, 모두가 동일한 책임을 가지기에, 사명을 맡기신 하나님께 충성하라는 겁니다. 이 비유는, 당시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헤롯 왕이 죽을 때, 유대 왕국을 세 아들 안디바와 빌립과 아켈라오에게 분할해서 넘겨주었습니다. 이 가운데, 아켈라오는 헤롯 왕의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황제의 인준을 얻을 목적으로 로마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켈라오가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아 따로 50명의 사절단을 구성하여 로마로 파송합니다. 이때 로마 황제는 아켈라오에게 헤롯 왕이 지닌 모든 권한을 다 주지는 않았지만, 유대와 사마리아의 통치 권한을 인정해 주어 유대인들의 시도는 절반의 성공만 거둡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속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모함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게 함으로, 구속 사역에 실패를 가져오게 하고자 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완악함을 묘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희생과 수고로 완성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즉시, 메시야 정부를 세울 줄로 기대한 이스라엘의 그릇된 생각을 시정시키기 위한 비유입니다. 이러한 군중들에게 예수님은 먼 나라로 왕위를 받으러 간 어떤 귀인에 대한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 의와 사랑과 화평이 완벽하게 시행되는 나라입니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에 전폭적으로 순종하는 성도들이 모인 곳이,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각 자에게 주신 사명을 이룸으로 열므나와 다섯 므나를 남긴 종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3 - 14절을 보시면,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장사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귀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왕위를 받으려고 먼 나라로 났습니다. 당시는 이스라엘 분봉왕이 되려면 로마에 가서 황제에게 그 권위를 받아와야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당시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게 왕위를 받으러 갔지만, 백성들 사이에서는 그가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에, 그가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방해 사절단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예수님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 땅에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와 누룩처럼 점진적으로 확장되어 갑니다. 제자들과 무리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가까워지자 정치적, 군사적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것으로 오해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시기 위해 “열 므나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여기서, 먼 나라로 간 귀인은 “예수님”이며, 은화를 받은 종들은 “제자들과 성도”이며, 귀인이 왕 됨을 반대하는 백성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귀인은 때가 되어 돌아와서는, 종들이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는지를 확인합니다. 본문 앞의 11절에서,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라고 한 것은, 이 비유가 주어진 시점을 말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들려주신 곳이 광야가 아니라, 삭개오의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함께 들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본문 앞의 10절을 보시면,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장사하여 남긴 이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도 예수님처럼, 곳곳으로 다니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떠나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나오게 해야 합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 13절을 보시면,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성도된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구원받았음과 우리 삶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삶의 순간순간을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함으로, 예수님이 본문에서 열 므나와 다섯 므나를 남긴 종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다”는 칭찬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6 - 19절을 보시면,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상급을 주십니다.
본문 앞의 15절에서,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왔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합니다. 곧,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재림하심으로, 절대 왕권으로 세상과 세상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십니다. 그러기에, 본문 16절과 18절에서, 열 므나와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라고 하시며, 열 고을과 다섯 고을을 다스릴 권세를 주신다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성도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하여 감내하는 고통과 아픔을 아시는 예수님은, 이 땅에서 수고하고 충성한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왕 노릇하는 권세는,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절대적인 영원한 권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천국 잔치에 참석하게 되는 성도 중에는, 칭찬과 상급을 받는 영광스러운 성도가 있지만, 한 편, 불 가운데서 구원 받은 것처럼 부끄러운 처지에 놓이게 될 성도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그저 말씀에 따라 광야에서 쓸쓸하고 외롭게 사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황량한 사막 길을 예수님과 함께 터벅터벅 걸어가는 것을 상상하며 세상살이가 밋밋하다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정작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는, 그 누구도 맛볼 수 없는 영혼의 희열이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에게 주시는 포근한 보호와 깊고 따뜻한 위로가 있음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늘나라의 상급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받는 고난에 비해 영광이 크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롬 8: 18에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도바울의 이러한 고백과 함께, 본문에서 비유를 통해 약속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에 충성해야 합니다. 계 22: 12을 보시면,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합니다. 여러분, 잠시 소풍나온 이 세상에서의 기쁨과 만족보다는 영원한 세상,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히 살아갈 하늘나라에서의 일들을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은 본문에서 뿐 아니라, 계시록에서까지도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씀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한 므나로 열 므나와 다섯 므나를 남겨서 칭찬받은 종들처럼, 우리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며, 우리에게 주시는 큰 권세와 상급과 면류관을 받아쓰는 영광스러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6 - 27절을 보시면,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모르면,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본문 앞의 21절을 보시면, 한 므나로 한 므나를 그대로 남긴 종이 자신을 꾸중하는 주인에게 뭐라고 합니까?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 종이 주인에게 충성한 것으로 느껴지십니까? 그는, 주인의 엄격함을 핑계로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살았던 겁니다. 그에 대해, 마 25: 26을 보시면,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라고 합니다. 본문에서나 마태복음에서나 그는 주인이 자신을 믿고, 자신에게 베푼 은혜를 망각한 것은 물론, 주인을 악한 사람으로 몰았습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가운데, 어떤 이에게 은혜를 베풀었는데, 그가 이에 대하여 감사하기보다 불만불평을 하며, 핑계거리로 삼는 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머리를 싸매고 눕지 않겠습니까? 가슴치며 복장 터진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1므나를 남긴 종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주인에게 쓸모없는 게으르고 악한 종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잘못한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고, 은혜를 베푼 주인에게 돌렸습니다. 이것을 보며, 우리는 눅 16: 10절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보시면,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합니다. 이 종은,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또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악한 행위입니다. 또, 성도된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영광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누릴 영광에 대한 확신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늘에서 누릴 영광은 영원한 것임을 확신하고 어떤 처지에서도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충성을 다하는 성도가 되심으로, 신앙의 승리자, 인생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