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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타 스크랩 문학기행 1번지 보성 벌교
산사랑 추천 0 조회 110 12.01.26 23:0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오색빛깔 농어촌 I 문학기행, 그곳에 가면

 

 

태백산맥의 대장정을 따라…
문학기행 1번지 보성 벌교

 

 

글 | 이수근, 사진 | 한승호(홍보실)

 

 

 

벌교는 이름난 관광지가 아니다. 빼어난 경치도, 유구한 역사를 지닌 명승지도 없다. 모든 것이 투박하고 소박하다. 벌교 읍내를 하루 종일 걸어도 눈에 확 띄게 보이는 것은 없다. 일부러 찾아가서 봐야한다. 묻혀 있는 사연과 역사적 배경을 발굴해 내야 한다. 벌교로의 여행은 보는 것이 아니라 상처 많고 가슴 아픈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느끼고 공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벌교는 관광지가 아니라 기행지이다. 왜 벌교일까? 소설의 무대 벌교는 1943년 전남 승주군(현 순천시) 선암사에서 출생한 조정래 작가가 초등학생 시절을 보낸 곳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김범우, 염상진, 하대치, 소화 등은 실존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소설 속 가공의 인물들이 활
동했던 무대인 철다리와 중도방죽, 횡갯다리(홍교), 소하다리(부용교), 현부자네 등은 실제로 존재한다. 여기에 역사적 사건과 사실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태백산맥은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4년간 준비, 6년의 집필 끝에 써내려 간 16,500매의 육필원고에 쌓여있는 소설 태백산맥 대장정을 쫓아가기에는 아무래도 벌교읍 회정리에 세워진 태백산맥문학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이곳이 태백산맥 문학기행의 시작과 끝을 맺는 거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16,500매 원고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 넘나들어

 

작가의 땀 냄새가 배어있는 육필원고 등 159건 719점의 증여 작품을 통해 작가의 치열한 정신세계의 일부분이나마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태백산맥 문학관은 제석산 산자락을 10m 깊이로 파내 지었다. 땅속에 묻혀있던 역사적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를 건축가가 살려낸 것이다. 여기에 높이 8m 폭 81m에 이르는 백두대간의 염원을 벽화를 통해 이미지화함으로써 문학과 건
축, 미술의 조화를 통해 분단의 상처와 이념의 갈등과 대립을 하나로 이어가고 있다. 전시실에는 집필동기와 자료조사, 집필 등 태백산맥이 탄생하게 된일련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작가의 키보다 훨씬 높게 쌓인 육필원고와 이적성 시비의 발단과 무혐의 처리까지의 법적 공방과정 등 소설보다 더 흥미로운 실제 사건의 조각들도 널려있다, 소설에서의 무대와 배경이 되었던 이분법적 사상과 이념의 갈등과 대립이 소설 밖 무대에서 현실화되는 과정 또한 전시실에 고스란히 전시되고 있다. 소설 태맥산맥이 소설이되 소설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밤마다 스스로의 몸을 조금씩 조금씩 깎아내고 있는 그믐 달빛은 스산하게 흐렸다. (중략) 읍내 너머의 들녘이나 동네는 켜켜이 싸인 묽은 어둠의 장막에 가려 자취가 없었다. 끼룩, 끼룩, 끼룩….’유리벽 안에 자리잡은 소설 태백산맥의 육필 원고 첫 장을 두세 번 읽고서는 문학관을 나섰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방 셋에 부엌하나인’소화의 집. 소설 속 묘사처럼 방안에는 굿에 쓰이는 용품과 신당이 보인다. 바로 맞은편에 현부자네 집이 자리 잡고 있다. 중도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제석산 자락에 세워진 이 집과 제각은 곳곳에 일본식을 가미한 색다른 양식을 하고 있다.


 

 

 

현부자 집을 나서면 곧바로 제석산으로 오르는‘조정래 등산길’이 나온다.

겨울바람에 바스락거리는 댓잎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호남정맥의 준봉 조계산이 남동쪽으로 허리를 틀며 보성과 순천의 경계의 있는 높이 560m의 아름다운 바위봉우리가 빼어난 산이다. 빨치산이 오르내리고 그 빨치산을 쫓기 위해 토벌대가 오르내리고 빨치산을 잡은 토벌대를 쫓기위해 또 빨치산이 오르내리던 산길에는 왠지 모를 역사의 아픔이 스며있다. 서로가 서로의 동태를 감시했을 제석산 바위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정면에는 벌교 읍내가, 오른쪽으로는 낙안들판이, 왼쪽으로는 여자만으로 흐르는 벌교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려오는 길에 태백산맥 문학관 삼거리에서 홍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km남짓 산길을 지나 꾸불꾸불한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시간이 멈춰 버린 듯 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수탈의 상징‘금융조합’은 농민상담소로, 소설속 다양한 무대는 현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작은 집, 그리고 이미 무너져 버린 더 작은 집, 한나절이 지나도록 인기척조차 들리지 않는 한적한 좁은 동네 골목길에서 소설 속의 이름없는 군중들의 恨소리만이 들리는 듯 했다. 나즈막한 담 너머 세월의 때가 잔뜩 묻은 초라한 살림살이가 고스란히 속살을 드러낸 슬레이트집들을 지나면 대지주의 집임을 알 수 있는 김범우의 집이 보인다.

 

안채의 대문 옆에 딸린 아랫채에서 초등학생이었던 작가가 친구인 이 집 막내아들과 자주 놀았다고 한다. 주인은 간 데 없고 주인공의 고뇌와 시대적 아픔을 공감하려는 낯선 이방인만이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다. 김범우의 집을 나와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벌교천이 나온다. 바로 그곳이 벌교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세 칸의 무지개형 돌다리인홍교이다. 현존하는 아치형 석교 가운데 그 규모가 가장 크고 아름다워 보물 제304호로 지정되어 있다.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또 다른 다리, 소화다리라 불리는 부용교가 있다. 이 다리는 여순사건의 회오리로부터 시작해서 6·25의 대 격랑이 요동치면서 남긴 우리 민족의 비극과 상처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양쪽에서 밀고 밀릴 때마다 이 다리 위에서 총살형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는 소설 속 얘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 홍교, 소화다리(부용교)와 함께 벌교포구의 양안을 연결하는 세 개의 교량 가운데 하나인 철다리. 소설에서 염상구를 가장 인상적으로 부각시켜 주는 곳이 이 철다리다. ‘철교의 교각은 모두 아홉 개였는데, 그들은 중앙 교각 위에 서 있었다. 기차가“뙈액~” 기적을 울리며 검은 괴물처럼 철교로 진입했다. 그 순간 기차와 그들과의 거리는 교각 네 개의 간격으로 좁혀졌다...... (태백산맥 1권 188쪽)’철로를 따라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석양이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철길옆 중도방죽은 일본인 중도(中島, 나카시마)의 이름을 따 붙여진 간척지 방죽의 이름이다. 중도라는 사람은 일제강점기 실존인물로, 철다리 옆에 있는 마을에 살았었다. 작가는 소설에서 간척지의 방죽을 쌓던 때, 그 어렵고 뼈 빠지게 힘들었던 일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하여튼지 간에 저 방죽에 쌓인 돌뎅이 하나하나, 흙 한 삽, 한 삽이 다 가난한 조선사람덜 핏방울이고 한(恨)덩어린디, 정작 배불린 것은 일본눔덜이었응께, 방죽 싼 사람들 속이 워쨌겄소. (태백산맥 4권 306쪽)’벌교금융조합은 붉은 벽돌을 바탕으로 하고 그 사이사이에 돌을 깎아 박아 건물의 견고함과 장식적 효과를 동시에 노린, 일본인들이 관공서형 건물로 즐겨 지었던 그 모습이
다. 지금도 변함없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지난 역사를 반추하게 해주고 있다. 수탈의 상징이었던 금융조합이 지금은 농민상담소로 활용되고 있다.

 

소설에서도 여러 가지 행사와 사건들이 벌어졌던 벌교역은 지금도 광주-순천행 열차 이용객들의 다양한 사연을 안고 그때 그 자리에 묵묵히 서있다. 지금도 꼬막정식으로 유명한 국일식당이 소설에 등장하는 옛 술도가. 보성여관(남도여관·등록문화재), 남초등학교(현 벌교초등학교), 북초등학교(현 벌교여중), 포목점(현 신협), 자애병원(현 벌교어린이집) 등 과거와 현재의 주요 지점을 짚어보는 재미를 만끽하면서 작가가 어린 시절 소설가의 꿈을 키웠던 집으로 향했다. 작가는 이 집에서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 까지 살았었다. 어린 시절 여순사건과 6·25를 겪으면서 살육과 전쟁의 공포에 질렸던 소년이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고 처음으로 평온을 느끼며 작가로서 풍요로운 정서를 갖추게 해주었다는 곳이 이 집이다. 태백산맥의 대장정은‘끝 간데 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 적막은 깊고 무수한 별들의 반짝거리는 소리인 듯 바람소리가 멀리 스쳐 흐르고 있었다. 그림자들은 무덤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막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태백산맥 문학기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꼬막 캐는 벌교 아낙네들의 질곡의 삶의 무대이자 한의 종착지이기도 한 여자만. 그곳에서도 아낙네들의 그림자는 뻘밭을 벗어나고 있었다. 벌교로의 태백산맥
문학기행도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다향(茶香)과 함께 문학기행의 여운을 느끼는 것도 좋을 듯

 

벌교읍내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단어는‘꼬막’이다. 그리고 꼬막정식은 모든 식당의 공통메뉴이기도 하다. 방송에 나온 집보다 안 나온 집 찾기가 더 어렵다. 꼬막의 본고장답게 꼬막전, 꼬막무침, 양념생꼬막, 꼬막회무침 등 꼬막이 안 들어가는 음식이 없을 정도이다. 또 보성하면 녹차를 빼놓을 수 없다. 녹차향기 가득한 녹차밭도 둘러보고 한국차박물관에서 녹차의 다향(茶香)과 함께 태백산맥 문학기행의 여운을 느끼는 것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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