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요한 4-9; 루카 17,26-37
+ 오소서, 성령님
아침에 비가 왔는데요, 어제 아침에 안 오길 다행입니다. 어제 수능 시험을 치른 학생들과 부모님 모두 평안하시길 빕니다.
제가 어릴 때 외할머니께서 곧잘 해 주시던 말씀이 있었는데요, ‘공심판이 오면 누가 불러도 뒤돌아보지 말고, 아버지나 어머니도 따라가지 말고 그냥 앞만 보고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얘기는 ‘아가다 회장님’이라는 분이 해 주었다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이 말씀이 일단 너무나 무서웠고, 천주교가 혹시 이단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가다 회장님’이라는 분은 도대체 누구시길래 이런 걸 다 알고 계시나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사실 어제와 오늘의 복음 말씀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어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두 가지 차원 즉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와 ‘종말에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셨는데요, ‘종말에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말씀하시며, “보라, 저기에 계시다,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하더라도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사람의 아들의 날에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 하시며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먹고 마시는 것’은 종말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의미하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은 지상의 일에 몰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한 이들이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루카 20,35)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어서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라고 하십니다. ‘사고팔고 심고 짓는 것’은 재물의 사용과 관련됩니다.
사람과 재물에 묶여 하느님의 초대를 거절한 예를 우리는 루카복음 14장의 혼인잔치의 비유(14,15-24)에서 들은 바 있습니다.
또한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꺼내려 내려가지 말라”고 하시는데, 역시 재물에 집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말씀을 “영적인 삶에서 육적인 삶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롯의 아내는 자신이 두고 온 소유물을 돌아보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종말에 대해 무시무시하게 말씀하셨을까요. 우리는 분명 미사 때에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라고 기도드리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기다리며 ‘복된 희망을 품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지만, “주님의 자비로 저희를 언제나 죄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시련에서 보호해 주셔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죄에서 구원되어야 하고, 주님께로부터 멀어지려는 시련으로부터 주님께서 보호해 주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를 준비하며 깨어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기원후 66년에서 70년까지 제1차 유다-로마 전쟁이 일어났는데요, 70년 예루살렘이 로마 군대에 의해 짓밟히고 성전이 함락되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마치 종말의 때인 것처럼 경험되었습니다.
옥상으로 도피하였다가 세간을 꺼내러 집으로 내려갔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도망치던 중에 뒤를 돌아보다가 죽임을 당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한 침상에 있거나 맷돌질을 함께 하고 있던 두 사람 중 하나가 그 다음날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전쟁이란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이 일을 예고하시며 슬퍼하셨는데, 이 전쟁이 일어난 뒤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쓰인 루카 복음은, 백성들이 겪은 참혹한 현실 안에서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유다-로마 전쟁과 관련하여 이해하면, 독수리 조형물을 깃발 꼭대기에 장착하고 전쟁을 했던 로마 군대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학살할 것이라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썩은 고기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여들게 마련이기 때문에, 예수님 말씀은 ‘하느님 나라는 백성들이 하느니 말씀에 의해 모인 곳 어디에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한편, 키릴로스 교부는 ‘시체’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한다고 보고, ‘독수리’는 ‘의인들의 영혼’을 상징한다고 보아, 의인들의 영혼이 부활하신 예수님 주위로 모여든다는 뜻으로 해석했고, 암브로시오 교부는 성체성사 주위로 주님의 백성이 모여드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종말을 준비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제1독서가 말하는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는 ‘부인’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어떤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교회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요한2서는 이 공동체 전체에 두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머무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권고나 충고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따라 살아야 할 계명입니다.
초대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이단들이 있었는데, 요한2서는 이 이단들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오시지 않으셨으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도 없으며, 심판은 이미 일어났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복된 희망을 갖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기다리며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집 안에 두고 온 세간보다, 먹고 마시고, 심고 짓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데이빗 로버츠, 예루살렘 성전 포위와 함락 (1850년 작)
Clodagh Kilcoyne, 남이스라엘에서 본 불타는 가자 지구, 2023년 12월 15일, 로이터
출처: Desperate Gazans flee Israeli onslaught - December 18, 2023 | Reu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