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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질은 멈추지 않는다
추상과 형상 사이에서 ‘인간’을 붙잡은 일레인 드 쿠닝
일레인 드 쿠닝(Elaine de Kooning, 1918~1989)
20세기 미국 미술사를 이야기할 때 일레인 드 쿠닝(Elaine de Kooning)의 이름 앞에는 오랫동안 하나의 거대한 이름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습니다. 바로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의 거장 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1904~1997)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일레인 드 쿠닝을 단지 ‘빌렘 드 쿠닝의 아내’로 기억하는 것은 현대미술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절반만 읽는 것과 같습니다.
그녀는 화가였고, 뛰어난 초상화가였으며, 미술평론가이자 교육자였습니다. 무엇보다 추상표현주의의 격렬한 몸짓과 구상회화(Figurative Painting)의 인간적 형상을 하나의 화면 안에서 공존시킨 독창적인 예술가였습니다. 그녀의 회화에서 인물은 형태로 고정되지 않고 붓질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풍경 역시 정지된 자연이 아니라 화가의 몸과 감각을 통과한 하나의 사건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예술이 일상이었던 브루클린의 소녀
일레인은 1918년 3월 12일 미국 뉴욕(New York) 브루클린(Brooklyn)의 플랫부시(Flatbush)에서 일레인 마리 캐서린 프리드(Elaine Marie Catherine Fried)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미술과 친숙해진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일레인을 박물관으로 데려가 작품을 보여주고, 자신이 본 것을 직접 그려보도록 했습니다. 어린 시절 그녀의 방에는 미술작품의 복제품이 걸려 있었습니다. 예술은 특별한 날에 만나는 대상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보고 생각하고 그리는 하나의 언어였습니다.
일레인은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돈을 받을 만큼 인물에 대한 관찰력과 그림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브루클린의 에라스무스 홀 고등학교(Erasmus Hall High School)를 거쳐 헌터 칼리지(Hunter College)에서 잠시 공부했고, 이후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술학교(Leonardo da Vinci Art School)와 아메리칸 아티스츠 스쿨(American Artists School) 등에서 미술을 배웠습니다. 학업 중에는 미술학교 모델로 일하며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그녀의 예술에서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됩니다. 일레인에게 인체는 단순히 정확하게 재현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인물의 몸짓과 자세, 표정과 분위기를 통해 그 사람의 내면적 에너지까지 포착해야 하는 살아 있는 존재였습니다.
뉴욕 화단의 중심에서, 그러나 자신의 이름으로
일레인은 20세기 중반 뉴욕 미술계를 뒤흔든 추상표현주의의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뉴욕(New York)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의 전설적인 예술가 모임인 에이스 스트리트 클럽(The Club)의 일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곳에는 빌렘 드 쿠닝을 비롯하여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 한스 호프만(Hans Hofmann), 클리퍼드 스틸(Clyfford Still), 밀턴 레스닉(Milton Resnick) 등 전후 미국미술의 방향을 바꾸어놓은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과 철학, 사회와 문화에 관한 치열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추상표현주의의 세계는 압도적으로 남성 중심적이었습니다. 거대한 캔버스, 격렬한 붓질, 육체적 제스처와 영웅적인 예술가상이 강조되면서 여성 작가들의 성취는 상대적으로 주변부로 밀려나기 쉬웠습니다.
일레인에게는 더욱 복잡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바로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빌렘 드 쿠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을 지속하면서도 남편의 예술을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그 헌신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남편의 명성 뒤에 가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1951년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Sidney Janis Gallery)의 《예술가: 남편과 아내(Artists: Man and Wife)》전에 참여한 경험은 이러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일레인은 훗날 이 전시의 형식이 여성 예술가를 독립된 창작자라기보다 유명한 남성 예술가의 ‘아내’로 규정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비판적으로 회고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작품에 종종 자신의 이름 전체 대신 이니셜 ‘E. de K.’를 사용했습니다. 작품을 ‘여성적인 그림’이라는 선입견으로 판단하거나 남편의 작품과 혼동하는 시선을 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서명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나 자신의 그림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선언이었습니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허문 화가
1954년 일레인은 뉴욕의 스테이블 갤러리(Stable Gallery)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독립적인 화가로서 자신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녀의 회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추상과 구상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추상표현주의의 자유롭고 격렬한 붓질을 받아들이면서도 인간의 형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일레인의 화면에서 사람은 윤곽선으로 단단하게 고정되지 않습니다. 인물은 붓질 속에서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고, 색채 속에서 해체되었다가 어느 순간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떠오릅니다.
따라서 그녀의 초상화는 ‘닮음’을 기록하는 그림이면서 동시에 그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정신적 에너지와 존재감을 기록하는 그림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관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나는 스타일보다 캐릭터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캐릭터는 작품에서 나옵니다. 스타일은 작품에 적용되거나 강요됩니다. 스타일은 감옥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일레인 드 쿠닝의 예술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한 양식을 반복하여 자신의 상표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상과 만날 때마다 새로운 방식으로 반응하고, 그 만남이 요구하는 새로운 회화적 언어를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에게 회화는 완성된 공식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롭게 발생하는 경험이었습니다.
얼굴이 아니라 ‘존재의 속도’를 그리다
일레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 가운데 하나는 초상화입니다.
그녀는 시인 프랭크 오하라(Frank O'Hara), 존 애시버리(John Ashbery),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 작가 도널드 바셀미(Donald Barthelme), 미술평론가 해럴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 《아트뉴스(ARTnews)》 편집자 토머스 B. 헤스(Thomas B. Hess), 안무가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 미술상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 재즈 음악가 오넷 콜먼(Ornette Coleman), 축구선수 펠레(Pelé), 그리고 페어필드 포터(Fairfield Porter), 알렉스 카츠(Alex Katz), 빌렘 드 쿠닝 등 수많은 동시대 인물을 그렸습니다.
특히 네덜란드 출신 화가 조프 샌더스(Joop Sanders)와의 작업은 그녀의 초상화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1940년대부터 두 사람은 서로를 모델로 삼았고, 일레인은 그를 대상으로 수많은 드로잉과 회화를 제작했습니다.
그녀에게 초상화는 외모의 복사가 아니었습니다.
대상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빠르게 스케치하고, 기억 속에서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모델의 외적 특징과 자신이 느낀 인상을 하나의 화면 속에 결합했습니다.
따라서 일레인의 초상화는 한 사람의 얼굴을 그린 것이면서 동시에 그 사람과 마주한 순간의 속도와 긴장, 그리고 관계의 온도를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필과 잉크, 목탄(Charcoal), 구아슈(Gouache), 콜라주(Collage), 유화(Oil Painting), 혼합매체(Mixed Media)를 자유롭게 사용했고, 크로스해칭(Cross-hatching), 문지르기와 지우기, 얇은 워시(Wash), 두터운 임파스토(Impasto)까지 필요에 따라 동원했습니다.
선은 때로 인물의 윤곽이 되고, 때로는 인물 주변의 공기를 가르는 움직임이 됩니다. 색채는 피부를 묘사하는 수단을 넘어 감정의 온도가 됩니다.
그래서 그녀의 초상화에서는 ‘누구인가’와 함께 ‘어떻게 존재하는가’가 보입니다.
뉴멕시코, 풍경이 몸을 향해 다가오다
1958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일레인은 뉴멕시코 대학교(University of New Mexico)에서 방문교수로 활동했습니다.
뉴멕시코(New Mexico)의 광활한 공간과 강렬한 빛은 그녀의 회화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왔습니다. 뉴욕의 밀도 높은 도시적 에너지와 달리 미국 남서부의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공간과 거대한 자연의 힘으로 그녀를 압도했습니다.
그녀는 뉴멕시코의 산들이 마치 자신을 향해 움직이는 것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중요합니다.
그녀에게 풍경은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자연은 화가에게 다가오고, 화가는 다시 자연 속으로 들어갑니다.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 사이의 경계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녀는 멕시코 후아레스(Juárez)에서 투우(Bullfight)를 관람한 뒤 그 격렬한 운동감과 색채에서 영감을 얻은 연작을 제작했습니다. 산타페(Santa Fe)에서는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남서부의 강렬한 햇빛과 황금빛 나무, 거대한 산맥과 투우장의 역동성은 그녀의 붓질을 더욱 자유롭고 대담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쿠스, 취기와 생명의 춤
1976년부터 약 7년에 걸쳐 제작한 《바쿠스(Bacchus)》 연작은 일레인 드 쿠닝의 후기 작품세계를 대표합니다.
그녀는 프랑스 파리(Paris)의 뤽상부르 정원(Jardin du Luxembourg)에서 보았던 로마 신화의 술과 황홀경의 신 바쿠스(Bacchus)를 표현한 조각에서 강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매혹된 것은 신화의 이야기 자체라기보다 조각 속 인물들의 뒤틀림과 회전, 술에 취한 육체가 만들어내는 혼돈과 생명력이었습니다.
이 연작에서 형태는 서로 얽히고, 선은 소용돌이치며, 색채는 화면 위에서 춤을 춥니다.
고대 조각이 현대 회화의 격렬한 제스처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바쿠스는 일레인에게 과거의 신이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력, 육체와 감각의 해방, 그리고 회화 그 자체가 지닌 황홀한 운동성을 상징했습니다.
라스코에서 발견한 추상표현주의의 오래된 조상
1983년 일레인은 프랑스의 라스코(Lascaux)와 스페인의 알타미라(Altamira) 동굴을 방문했습니다.
수만 년 전 인간이 남긴 구석기시대(Paleolithic) 동굴벽화를 마주한 그녀는 현대미술과 원시미술 사이에 존재하는 놀라운 정신적 연속성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그곳에서 추상표현주의의 먼 뿌리를 보았습니다.
동굴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따라 움직이는 동물의 형상, 반복되는 선, 손의 흔적과 즉흥적인 움직임은 그녀에게 회화란 문명 이후에 발명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가장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본능적 행위임을 일깨웠습니다.
그 경험에서 탄생한 것이 《동굴 벽(Cave Walls)》 연작입니다.
여기에서 그녀의 예술은 다시 하나의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그린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살아 있다는 흔적을 남기는 행위라는 원점입니다.
너무 오래 ‘거장의 아내’였던 화가
일레인 드 쿠닝의 미술사적 재평가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후 더욱 본격화되었습니다.
2015년 폴록-크라스너 하우스 및 연구센터(Pollock-Krasner House and Study Center)는 그녀를 중심으로 한 초상화 전시를 열었고, 2016년 덴버 미술관(Denver Art Museum)의 《추상표현주의의 여성들(Women of Abstract Expressionism)》은 남성 중심적으로 서술되어온 추상표현주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리 크래스너(Lee Krasner), 그레이스 하티건(Grace Hartigan), 조앤 미첼(Joan Mitchell), 헬렌 프랭컨탤러(Helen Frankenthaler) 등과 함께 전후 미국미술을 다시 읽게 만드는 핵심 여성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메리 게이브리얼(Mary Gabriel)의 저서 《나인스 스트리트 우먼(Ninth Street Women)》 역시 이 여성들이 현대미술의 주변인이 아니라 그 변혁의 중심에 있었음을 조명했습니다.
이후 파리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의 여성 추상미술 전시와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Whitechapel Gallery)의 《액션, 제스처, 페인트(Action, Gesture, Paint)》 등은 그녀의 작업을 보다 넓은 세계미술사의 맥락에서 재평가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MoMA),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 등 주요 미술기관의 컬렉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붓질 속에서 인간을 놓치지 않은 화가
일레인 드 쿠닝의 예술적 성취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허문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추상표현주의가 화면에서 형상을 해체하던 시대에도 끝내 인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인물은 붓질이 되었지만 사라지지 않았고, 얼굴은 색채 속에서 흔들렸지만 존재감을 잃지 않았습니다. 풍경은 추상적 리듬으로 변했지만 자연의 힘은 더욱 강렬하게 살아났습니다.
그녀의 그림에서 추상은 인간을 지우는 방법이 아니라 인간을 더 깊이 발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일레인 드 쿠닝이 오늘날 더욱 새롭게 보이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녀는 한 가지 스타일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습니다. 초상에서 풍경으로, 풍경에서 신화로, 신화에서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로 끊임없이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한 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어떤 모습이며, 그 생명은 어떻게 선과 색으로 붙잡을 수 있는가.”
일레인에게 삶은 이미 완성된 형태가 아니었습니다.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다시 해체되며, 매 순간 새롭게 나타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붓질에는 주저함보다 움직임이 있고, 완결보다 생성이 있으며, 정답보다 발견의 기쁨이 있습니다.
빌렘 드 쿠닝이라는 거대한 이름의 곁에서 너무 오랫동안 ‘누군가의 아내’로 불렸던 화가.
그러나 미술사의 시간이 충분히 흐른 지금, 우리는 비로소 그녀의 그림 앞에서 남편의 이름을 잠시 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자유롭게 질주하는 선과 뜨거운 색채, 그리고 한 인간의 존재를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던 화가의 시선입니다.
일레인 드 쿠닝은 추상과 구상 사이에 서 있었던 화가가 아닙니다.
그녀는 그 경계 자체를 자유롭게 횡단하며, 회화가 결국 ‘살아 있음’을 기록하는 예술임을 보여준 화가입니다.
그녀의 화면에서 붓질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선은 움직이고, 색채는 흔들리며, 그 사이에서 인간은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