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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56이세진
빙화(氷花)가 아니라 빙화(氷禍)더라 – 각호산,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
1. 민주지산 가는 길, 민주지산과 근처 산들은 빙화로 곤욕을 겪고 있다.
갈바람 속에 우두커니 섰는 벌거벗은 허수아비들
어느 철없는 가마귀가 무서워할까요
저런 연빛 한울에도 별이 뜰 리 있나
장미가 피지 않는 한울에 별이 살 리 있나
바람이 떼를 지어 강가에서 우짖는 밤은
절망이 혼자 밤새도록 내 친한 벗이었읍니다
마지막 별이 흘러가도 아모도 소름치지 않읍니다
집마다 새벽을 믿지 않는 완고한 창들이 잠겨 있읍니다
―― 김기림(金起林, 1908~ ?), 「겨울의 노래」에서
▶ 산행일시 : 2024년 2월 14일(토), 흐리고 바람
▶ 산행코스 : 도마령,상용정,각호산,1,176.8m봉,민주지산 대피소,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삼마골재,물한계곡,
황룡사,주차장
▶ 산행시간 : 6시간 23분
▶ 산행거리 : 도상 13.2km
▶ 교 통 편 : 다음매일산악회(30명) 버스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00 – 양재역 1번 출구 200m 전방 스타벅스 앞
08 : 56 - 옥천휴게소( ~ 09 : 16)
10 : 20 - 도마령(刀馬嶺, 840m), 산행시작
11 : 10 - 각호산(角虎山, 1,202.0m)
12 : 30 - 민주대산 대피소, 점심( ~ 12 : 46)
13 : 00 - 민주지산(眠周之山, 岷周之山, △1,241.7m)
13 : 34 – 1,179m봉
14 : 10 - 마애삼면보살좌상
14 : 17 - 석기봉(石奇峰, 1,242.0m)
14 : 47 – 1,180m봉
15 : 05 - 삼도봉(三道峰, 1,177.7.m)
15 : 33 - 삼마골재, ╋자 갈림길
15 : 55 – 의용골폭포
16 : 35 – 황룡사(凰龍寺)
16 : 43 - 물한계곡(勿閑溪谷), 주차장, 산행종료(16 : 50 – 버스 출발)
17 : 57 - 신탄진휴게소( ~ 20 : 07)
19 : 45 - 양재역
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영동 1/25,000)
▶ 각호산(角虎山, 1,202.0m)
재작년 12월에 덕유산을 가는데 남대전 고속도로를 지날 무렵 갑작스런 대설로 출입이 통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민주지산으로 방향을 돌린 적이 있다. 그때 각호산에서 삼도봉 가는 길도 날이 흐리고 함박눈이 내렸다. 그때는 아
쉬운 대로 간간이 원경이 트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눈꽃보다는 원근의 설산을 좀 더 자세히 보자하고 갔다.
특히 삼도봉에서 가야산 석화성과 백두대간 대덕산, 삼봉산, 덕유산에 이르는 장쾌한 설릉이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그런데 미리 말하자면 오늘은 그때보다 날이 더 궂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대고 짙은 안개는 근경조차 가렸다.
빙화(氷花)는 각호산을 오르고 민주지산을 갈 때에는 사뭇 아름다웠으나, 석기봉을 넘고 삼도봉 가는 길에는 빙화
(氷花)가 아니라 빙화(氷禍)임을 목도하였다. 키 큰 많은 나무들이 수십 년 만에 빙화에 부러지고 꺾이는 일대 재앙
을 만났다.
* * *
안내산악회 버스가 집결하여 출발하는 양재역과 도중에 경유하는 죽전간이정류장은 한참을 지체하는 북새통이라
산행들머리 가는 길 또한 막히지 않을까 걱정하였으나 버스전용차로는 시원하게 뚫렸다. 버스가 예상보다 이르게
도마령에 도착할 것이라고 한다. 북한산이 산행대장님은 그 이른 시간을 회원들 산행에 이익이 되게 보태주는 것이
아니라 서울 출발을 그만큼 앞당기겠다고 한다. 또 날이 궂고 눈이 많다고 하니 가급적이면 석기봉이나 삼도봉까지
가시느라 고생하지 마시고 민주지산 넘으면 바로 왼쪽으로 물한계곡 주차장 가는 길이 있으니 그리고 하산하시는
편이 좋겠다고 한다.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언사일뿐더러 괜히 불안하게 한다. 산행대장인 내가 앞장설 테니 웬만하면 산행공지에는
없지만 삼마골재 지나 감투봉(1,124m)까지 갑시다 하면 용기백배이겠는데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도마령이 고자리에서 오를 때도 준령이다. 산굽이 돌아 오르기를 열두 구비 갑절은 더 돈다. 해발고도 800m. 대관
령이 832m이고, 미시령이 826m이니 그에 견주어 크게 뒤지지 않는다.
고갯마루에 너른 데크전망대가 있다. 덕유산 쪽으로 조망이 트인다. 가까운 백운산 정상부분에는 백운이 감돌고 그
왼쪽 뒤 덕유산은 안개구름에 가렸다. 지금 이때가 그나마 조망이 나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기불순으로 이어졌다.
아이젠과 스패츠 찬다. 데크계단부터 빙판이다. 가파른 데크계단 한차례 오르면 상용정 정자가 있고 능선길이 시작
된다. 상용정은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아무런 조망도 할 수 없다. 상용정이 무슨 사연이나 유래가 있는 이름인 줄 알
았는데 그 건립기를 읽어보니 싱겁기 짝이 없다.
2005년 6월에 건립하였다는 상용정(上龍亭) 안에 그 건립기 현판이 있다. 그 내용 중 일부다.
“상용정이 세워진 도마령(刀馬嶺)은 (…) 칼을 든 장수가 말을 타고 넘었다 하여 이름 지어졌으며 일명 답마령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남쪽으로 각호산 민주지산 삼도봉에서 백두대간을 만나 덕유산으로 이어지고 북으로 천만산 삼봉
산이 자리하며 서쪽 산 아래 조동마을에는 민주지산 자연휴양림이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다양한
종의 야생동물과 원시성을 유지한 여러 종류의 식물군락들이 분포한 생태계의 보고이다.”
“(…) 정자의 위치는 해발 八백四십미터로 상촌면(上村面)의 상(上)자와 용화면(龍化面)의 용(龍)자를 따서 상용정
(上龍亭)이라 이름하였고 (…)”
3. 도마령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운산, 왼쪽 멀리가 덕유산이다.
4. 천만산 주변
5. 각호산 가는 길의 빙화
9. 고도를 높일수록 빙화가 점점 탐스럽다.
12. 각호산 정상 주변
14.1. 각호산 정상
상용정 지나 조금 오르면 초소가 나오고 그 옆에 842m봉 삼각점이 있다. 설악산을 일찍 통제하여서일까. 이곳에
많은 등산객들이 몰렸다. 길게 줄이어 오른다. 좁은 눈길이고 그 좌우 사면은 눈이 깊다. 아무튼 내 걸음이 아닌 앞
사람 발걸음으로 간다. 각호산 정상 1.4km는 물론 그 너머 민주지산 가는 중간쯤 1,177m봉까지 그래야 했다. 두세
번은 앞사람을 추월하였지만 계속 길게 줄선 등산객 행렬이 나타나니 제풀에 지치고 만다.
점점 세게 이는 바람에 상고대가 움트는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빙화(氷花)다. 이때는 확실히 빙화였다. 점입가경
이다. 고도를 높일수록 빙화가 흐드러지고 뭇 나뭇가지들은 수양버들마냥 축축 늘어진다. 수대로 멋있다며 환성을
합성한다. 가뜩이나 느린 걸음에 이곳저곳 둘러보며 감탄하느라 또는 그 배경으로 사진 찍느라 가다 서다를 반복한
다. 이래서는 ‘삼신산이 어디메뇨’ 하고 ‘만고강산 유람할 제’ 이다.
눈꽃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눈꽃이 생기는 과정에 따라 설화(雪花, 雪華), 상고대, 빙화(氷花)로 나뉜다.
설화(雪花)는 말 그대로 눈꽃을 말한다. 눈이 나뭇가지나 마른 풀 위에 쌓인 것인데 산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바람이 불면 눈꽃이 날리며, 가지를 흔들면 떨어진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하 국어사전이라
함)에서는 나뭇가지 따위에 꽃이 핀 것처럼 얹힌 눈이라고 한다.
상고대는 겨울철 청명한 밤에 기온이 섭씨 영도 이하로 떨어질 때 대기 중의 수증기가 승화되어 냉각된 지물(地物)
에 부착된 것이다. 나무서리라고도 한다. 서리보다 다량으로 나뭇가지 등 지표면에서 떨어진 다소 높은 곳에 생긴
다. 고산지방과 한지(寒地)에 많이 나타나는 현상으로 침상 ㆍ 판상 ㆍ 수지상(樹枝狀) 등의 결정형으로 되며, 안개
가 있을 때에는 안개입자와 함께 부착되기도 한다. 바람이 약한 맑은 밤에서 이른 새벽에 나무나 지상물체의 바람이
받는 쪽에 생기기 쉽다. 나무에 흰 꽃이 핀 것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나타내며 수상(樹霜) ㆍ 수빙(樹氷) ㆍ 조빙(粗
氷)을 무빙(霧氷)이라고 한다. 상고대는 한자어가 아닌 순 우리말이다. 국어사전은 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
로 목가(木稼), 무송(霧淞), 수가(樹稼), 수개(樹介), 수괘(樹掛), 수빙(樹氷), 수상(樹霜)과 같은 말이라고 한다.
빙화(氷花)는 말 그대로 얼음 꽃이다. 설화나 상고대가 녹으면서 물이 되어 가지에 흐르다가 기온이 급강하할 때
그대로 얼어붙은 것이다. 햇살을 받은 빙화는 맑고 영롱한 아름다움이 있어 사진작가들이 좋아하는 촬영소재이기도
하다. 빙화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많이 볼 수 있다. 국어사전은 빙화를 식물 따위에 수분이 얼어붙어 흰 꽃처
럼 되는 현상이라고 한다.(산길따라 님의 블로그에서)
아이젠 덕 본다. 가파른 눈길이다. 설벽이거나 빙벽이다. 고정밧줄이나 나무줄기는 얼음으로 코팅하여 숫제 고드름
이다. 처음에는 그 고드름을 붙잡으면 털장갑 낀 손이 착착 달라붙지만 이내 주르륵 미끄러진다. 각호산 정상을 좀
남겨두고 가파름이 수그러든다. 비로소 숲길 벗어나 조망이 훤히 트이는데 오늘은 먹먹하다. 잠깐 민주지산 가는
하얀 능선만 보이곤 한다. 이윽고 각호산 정상이다. 만천만지한 안개다. 정상 표지석이 바쁘다. 함께 인증사진을 찍
으려는 사람들이 줄섰다.
각호산 정상 주변의 관목들은 빙화에 온통 눈으로 짙게 분칠(혹은 상고대에 설화가 피어)하여 산호초를 닮았다.
각호산(角虎山)은 옛날에 뿔 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배거리산(각호산 북동쪽에
0.45km 떨어진 1,131m봉을 ‘배걸이봉’이라고도 한다)이라고 하며 정상은 두 개의 암봉으로 멀리 북동쪽이나 남서
쪽에서 보면 쌍봉이다. 정상 표지석 알현하고 뒤돌아 나와 왼쪽 가파른 사면을 내린다. 설벽이고 고정밧줄은 고드름
이라 내리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14.2. 각호산 정상 주변
16. 민주지산 가는 능선
18. 민주지산 가는 길의 빙화
22. 뒤돌아본 각호산 쪽 능선
23. 민주지산 가는 길, 상고대에 가깝다
▶ 민주지산(眠周之山, 岷周之山, △1,241.7m)
살금살금 내렸다가 잠시 따박따박 오르면 각호산의 또 하나 뿔이다. 여기도 조망은 무망이다. 민주지산 3.4km.
빙화 혹은 설화의 터널을 내린다. 오르기보다 내리기가 더 까다롭다. 숨 돌릴 겸 걸음 멈추고 둘러보면 사방이 백색
지대다. 아까의 환성의 함성은 침이 말랐는지 시들었다. 0.8km 내리면 ┫자 갈림길인 안부로 왼쪽 물한계곡 주차장
가는 길 3.0km도 잘 났다.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그 끄트머리는 1,176.8m봉이다. 이어 고만고만한 봉봉을
넘는다.
1,176.8m봉 넘고부터 혼자 가는 산행이다. 비로소 적막한 산중이다. 이따금 나무들이 빙화에 신음하는 소리가 들린
다. 조망 트일 법한 등로 벗어난 전망바위에 들러보는 건 괜한 발품이다. 어느덧 대피소가 오른쪽 사면 아래로 보인
다. 갑자기 허기를 느낀다. 대피소로 들어간다. 환한 눈밭에 있다가 방에 들어가니 어둑하다. 이 너른 방에 나 혼자
다. 늦은 점심 도시락 펴고 탁주부터 거푸 들이킨다. 역시 술은 빈속이 제 맛이다. 금세 얼근해진다. 내 발걸음이
더욱 용감해질 것이다.
점심 마치자 단체 등산객들이 연이어 몰려든다. 대피소가 활기를 띤다. 그들에게도 겨울 산 산중진미는 무엇보다
라면이다. 버너 불 재촉한다. 내 자리도 그들에게 물려주고자 일어난다. 눈밭 추모비를 들여다본다. “세계 최강의
특전용사 이곳에 영원히 잠들다.” 1998년 4월 1일 천리행군 중이던 특전용사 6명이 폭설과 강풍이 몰아친 기상이변
으로 이 근방에서 순직하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고개 숙여 묵념한다.
이정표는 민주지산 0.3km이라고 하지만 0.2km 더 가면 오른쪽으로 민주지산 자연휴양림 3.0km 갈림길이 나오고,
민주지산은 여전히 0.3km다. 그래도 금방 민주지산 정상이다. 오른쪽 데크로드 따라 180도 돌고 정상을 오른다.
사방이 캄캄하다. 민주지산의 이름 유래에 대하여는 나무위키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현재 불리는 민주지산이라는 이름은 일제 강점기에 처음 공식화 되었는데, 일제가 없던 지명을 지어내지는 않았다.
원래 지역 주민들은 이 산을 민두름산이라고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음차 하면서 민두름을 민주지(岷周之)라고 하였
던 것. 이는 이두식 표기이다. '두름'에 대응 하여 두루 주(周)를 따온 것. 그래서 한자로 민(岷) 대신 민(眠)이라고 쓰
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음이 중요하고, 한자의 뜻과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고문헌을 근거로 백운산이라고 이름
을 바꾸자는 운동도 있었으나 호응이 없어 흐지부지 되었다. 한자를 잘 모르는 현대 한국인들은 민주주의의 민주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지레 짐작하기도 하지만 전혀 관련이 없다.”
▶ 석기봉(石奇峰, 1,242.0m)
곧장 석기봉을 향한다. 완만한 내리막 한차례 내리고는 봉봉을 오르내린다. 등로는 곳곳에 빙화(氷禍)로 부러지고
꺾인 나뭇가지들이 막고 있다. 어디선가 탕! 하는 굵고 짧은 소리가 섬뜩하게 들린다. 아마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이
리라. 등로 눈길 헤친 발길이 불과 서너 사람이 오간 흔적이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자주 지도를 들여다보게 된다.
안부마다 이정표가 안내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석기봉 정상 직전 설벽 앞에서 ‘등산금지’라는 팻말을 만나고 오른
쪽 사면을 길게 돈다. 180도 돌면 내북마을 2.4km 갈림길이 나오고 그쪽 설릉을 몇 미터 올라서 뒤돌면 근접한
석기봉의 당당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다시 오른쪽 사면을 돌면 무주 대불리 마애삼면보살좌상이 나온다.
최근에 전북특별자치도에서 안내문을 세웠다. 그 일부다.
“삼두마애불 혹은 삼두불로도 불리는 무주 대불리 마애삼면보살좌상은 민주지산의 동남쪽 석기봉 아래 바위 경사면
에 조각된 마애불이다. (…) 마애불이 조각된 바위 아래 쪽에는 바위에서 흘러내린 물이 고인 용천(湧泉)이 있다.
민주지산은 일제 강점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본래 백운산(白雲山)이라 불렀다. 고문헌에 ‘불두사는 백운산에 있다
(佛頭寺 在白雲山)’라는 기록이 확인되는데, 사찰 이름으로 흔치 않은 불두사라는 이름이나 설천면 산자락에 불대
(佛臺), 중고개(中峴), 불당골(佛堂谷) 등 불교와 관계가 깊은 지명과 전설이 많이 남아 있다.”
가파른 사면 한 피치 돌아 오르면 삼도봉 갈림길이 나오고 왼쪽으로 60m 오르면 석기봉 정상이다. 이름 그대로
뾰족하게 솟은 암봉이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사방은 안개가 자욱하다. 이 막막한 산중에 나 혼자다. 석기봉을 내릴
때는 북쪽 슬랩을 달달 더듬거린다. 바람이 받쳐준다. 삼도봉 1.2km. 한 달음일 것 같은 거리인데 오늘 산행의 하이
라이트가 시작된다. 부러지고 꺾인 나무들이 번번이 등로를 막고 있어 비켜가야 하고 빙화의 무게를 견디느라 낮게
축축 늘어진 나뭇가지를 뚫고 나아가려면 잔뜩 허리를 굽혀 지나야 한다. 함부로 머리 들어 빙화에 부딪치기라도
하면 돌덩이에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하다.
24. 민주지산 주변
28. 석기봉 가는 능선
29. 민주지산 정상
30. 석기봉 가는 길
32. 석기봉 주변
34. 석기봉
35. 석기봉 주변
▶ 삼도봉(三道峰, 1,177.7.m), 물한계곡
눈길 러셀보다 빙화 뚫기가 더 힘들다. 우지끈하고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가깝게 들리면 그에 깔릴까봐 근처 나무들
을 올려다보며 몸 사린다. 1,180m봉을 넘고는 혹시 엉뚱한 데로 가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봉봉을 오르내린다.
믿을 것은 지도와 나침반이다. 진득하게 올라 너른 설원인 헬기장 지나 삼도봉 정상이다. 삼도봉 대화합 기념탑 한
쪽에 기대어 바람 피하며 휴식한다. 남은 탁주 마저 비운다. 탁주 맛이 쓰디쓰다. 여기서 보는 설산의 조망을 기대했
는데 지척도 캄캄하니 아쉽기 그지없다.
이런 날씨에도 비박배낭을 짊어지고 올라오는 젊은이들이 있다. 부럽다. 백두대간 대덕산 쪽으로 간 사람이 있을까
다가가 살피니 수적만 있을 뿐 조용하다. 그쪽으로 발길이 있었더라면 그 또한 부러워할 뻔했다. 삼도봉에서 삼마골
재 지나 황룡사 가는 길은 줄곧 완만한 내리막이다. 더구나 눈으로 매끈하여 포장하여 발걸음이 편하다. 등로 주변
북동 사면은 빙화나 상고대가 아니라 함박눈 설화(雪華)다. 마음이 놓인다. 이용악(李庸岳, 1914~1971)의 「그리움」
이 생각나는 그런 함박눈이었음에 틀림없다.
눈이 노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겨울에는 시인들의 마음이 진지해지는가 보다. 이용악의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어쩌자고 잠을 깨어” 생각
에, 김기림의 “절망이 혼자 밤새도록 내 친한 벗이었습니다” 생각에 삼마골재 0.8km가 금방이다. 이어지는 백두대
간 감투봉 가는 길도 조용하다. 왼쪽 하산 길 데크로드를 간다. 주변의 산죽 숲에도 미역줄나무 덩굴 숲에도 설화(雪
華)가 화려하다. 6.25. 전쟁 때 시체가 즐비하게 버려졌다는 무덤골 입구 지나고 저 아래 골짜기 계류는 물소리가
낭랑하다.
쉼터 장의자 놓인 산등성이 대깍 넘고 하늘 가린 울창한 잣나무 숲 지나 본격적인 물한계곡 길에 들어선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진다. 그런 계류 들여다보며 내린다. 물한계곡은 수많은 골짜기 지류가 모여든다. 백미상자골,
어영골, 속세골, 대호남골, 배나무골, 신암골, 험한골, 보리밭골, 줄밥나무골, 무지막골, 뒷산골 등. 폭포는 옥소폭포,
의용골폭포, 음주암폭포가 있다는데 음주암폭포만 알아보겠다.
명품숲길 낙엽송 숲을 지난다. 등로는 임도다. 산행마감시간인 16시 55분에 대기가 빠듯하다. 잰걸음 한다. 다른 때
보다 시간이 30분 남짓 더 걸리겠다. 각호산 오르고 내릴 때 줄 이은 등산객들로 지체하였고, 삼도봉 가는 길에 빙화
(氷禍)를 헤치느라 발걸음이 더뎌서다. 출렁다리 건너 계류만이 법문하는 황룡사 절집에 든다. 대웅전이 적막하다.
날이 어둑한 산골이라서 음식점은 불 밝혔다. 산자락 임도 길게 돌아 주차장이다.
너른 주차장에 승용차 대여섯 대와 대형버스는 우리 버스뿐이다. 우리 일행 대부분이 이미 왔다. 대단한 준족들이거
나 또는 북한산이 대장님 사전 권고대로 민주지산 넘어 곧바로 쪽새골로 하산하였으리라. 서울 가는 길. 31석 버스
가 쾌적하지만 너무 허기지고 지쳐 잠도 오지 않는다.
36. 무주 대불리 마애삼면보살좌상
37. 석기봉 주변
38. 삼도봉 가는 길
40. 삼도봉 대화합 기념탑
41. 삼마골재 가는 길
44. 물한계곡 가는 길
45. 미역줄나무 덩굴
46. 음주암폭포
47. 물한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