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를 아시나요』(작사 정태권, 작곡 유성민)는 1973년 9월
발매된 「조미미」독집 음반 A면 타이틀 곡입니다.
이 노래는 1970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과 '제주도'로
무전 여행을 왔던 작사가 '정태권'이 5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
가서 가사를 쓴 것을 작곡가 '유성민'에게 곡을 의뢰하면서 시작
됩니다. 이 곡은 「오은주」가 '유니버샬 레코드사'에서 취입한 일이
있었는데 그해 '태풍'으로 공장이 침수돼 마스터 테이프가 소실돼
음반을 내지 못게 됩니다.
『서귀포를 아시나요』는 결국 1973년 「조미미」가 부르면서 알려
지게 됐고, 제주도의 "서귀포"를 알리는데 큰 공을 세우게 되었죠.
「조미미」는 1947년 전남 영광 출생으로 목포여고를 졸업한 후,
1965년 7월 동아 방송의 가요 콩쿠르인 ‘가요 백일장’에서 1등에 입상
함으로써 가요계에 데뷔했습니다. 「조미미」의 본명은 ‘조미자’였는데
‘지구 레코드사’를 드나들 때, 이곳의 전속 가수인 '이미자'와 이름이
같아서 ‘유정 천리’ ‘대전 부르스’ 등을 만든 작곡가 '김부해'가 직접
지어준 예명(藝名)이라고 합니다.
당시 가수의 꿈을 품고 서울로 올라온 「조미미」 는 '신세기 레코드사'에
전속 되어 "강화도 처녀"란 노래로 선을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초창기
「조미미」의 주가는 그다지 높은 게 못되었습니다.
극장 방송국의 '출연료'로 따져봐도 그녀는 항상 B급 가수로 한번도
화려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녀와 비슷한 시기에 출발한 이른바 민요 삼총사인 '김세레나', '김부자',
'조미미' 이들 세 가수 중 '김세레나'는 국내 가수 중 최고 수입의 가수가
돼 있었고, '김부자'에 대한 대중적 인기도 부쩍 상승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가요계의 특징은 신민요의 부흥으로 요약됩니다.
트롯 가요는 왜색(倭色)가요 공방(攻防)으로 몸살을 앓으면서도 기존의
신민요(新民謠)는 부흥기를 맞았습니다.
그 대표 주자의 하나 였던 「조미미」는 1970년대 초반 "선생님" 이란 곡
으로 스타 반열에 오른 그녀는 공전의 히트곡 "바다가 육지라면",
"단골손님", "연락선" 등을 발표하면서 1960~70년대를 풍미했습니다.
당시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발표된 "선생님"이 담긴 앨범은 발매
1개월 만에 3만 장을 돌파했습니다. 전례 없는 불경기라고 울상인
당시에 3만 장 돌파 기록은 확실히 사건이 아닐 수 없었죠.
1만 장이 팔려도 음반 업계가 온통 떠들썩한 판에 3만 장이란 기록은
1년 만에 몇 개 나올까 말까 한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통 기타 음악이 유행하던 1970년대의 포크 음악 물결 속에서
신민요의 계보를 꿋꿋하게 이어간 가수가 바로 「조미미」 였습니다.
그녀의 노래는 고향을 떠나온 서민들이 애절한 향수를 그리기 시작
하면서, 그녀의 음악 세계는 호감을 주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향수, 이런 것 때문에 그녀의 노래는 지금도 애창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바다가 육지라면","선생님","단골손님" 에 이어지는
그녀의 노랫말 속에는 지금도 우리 어버이들의 그 시절 추억이
이른 아침, 호수에 피어 오르는 물 안개처럼 새록 새록 피어 오르고
있지요. 2012년 「조미미」는 지병인 간암(肝癌)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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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감 향기 풍겨오는
가고 싶은 네 고향 칠백 리
바다 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
동백꽃 송이처럼
어여쁜 비바리들
꽃 노래도 흥겨웁게
미역 따고 밀감을 따는
그리운 내 고향
서귀포를 아시나요?
수평선 에 돚단배가
그림 같은 내 고향 칠백 리
바다 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
한라산 망아지들
한가로이 풀을 뜯고
줄기 줄기 폭포마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그리운 내 고향
서귀포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