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모 토요칼럼 2026.7.4 >
☆박정희 대통령의 찬란한 방산을 끝내면서 대통령 각하의 조국을 위한 방위산업 육성을 위한 집념의 위대성을 재조명해 봅니다☆
1. 한국의 방위산업 육성의 진실
박정희 대통령은 70년도 국방부 초도 순시와 10월 국군의 날 행사에서 국가안보를 구축하기 위하여 방위산업을 육성해야 된다고 주창하였습니다.
전쟁물자를 수입해서 당면 과제인 국가 안보로 대처하는 임시 방편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바로 경제기획원 (EPB)에 1년의 기간을 주고 방산육성계획을 작성 보고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EPB가 보고한 방산육성 계획내용은 착공조차 불가능한 거대 4대 핵공장 건설이란 브리핑을 들으시고 실망에 가득차 계셨습니다.
방산육성 포기의 눈물진 상황하에서 오원철 상공부 광공전 차관보가 별도로 김정렴 비서실장의 주선으로 극적으로 대통령께 보고드릴수 있었습니다.
돈도 기술도 없는 개도국이 실천할수 있는 방산 착수는 "병기는 부품의 결합체"란 기계공업 원리에 의거 부품공장을 건셜하고 1/100mm 정밀가공사를 양성하고 ADD(국방과학 연구소)를 강화시키면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시제에 착수하여 돈 한푼 안들이고 방신에 착수할수 있다고 보고 드렸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병기는 부품의 결합체이므로 방산을 육성한다는 기계공학 원리안에 의거 방산을 육성한다고 발표학니 내각이 일어나 맹렬히 반대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내각의 맹렬한 반대에 대해 기합대신에 조용히 설득하고 박정희는 대통령으로서 "내가 책임질테니 따라 오라고 하시면서 오원철 상공부 광공 차괸보를 경제2 수석비서관으로 발령하고, 쵱와대 방산업무 TF팀 팀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정부는 이를 제도적으로 확립시키기
위하여 법령에의한 방위선업 추진위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관계장관이 위원인 추진위는 법적으로 국무총리가 위원장인데도 대통령인 박정희가 위원장이 되어 주재하는 월권행위를 하였습니다. 위원장(김종필)으로서의 서명은 추후에 받았습니다.
경제기획원(EPB)의 4대핵공장이라고 하는 것은 (1)대단위 기계가공 공장 (2) 주물선 공장 (3) 합금 공장 (4) 조선소를 건설해서 방위산업을 육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재경당국은 고가의 4대핵공장 건설을 주장하고서는 부품공장 건설로 방산에 착수한다고 하니까 이번에는 방산자체를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국방부는 품목별로 병기창을 건설하여야 한다고 했으며 어느 단체는 미국과 합작사를 만들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만약 박정희가 이중의 어느 하나의 반대(안)을 채택했더라면 오늘날의 방산은 생겨날수 없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이상 사실은 후세에 남기는 박정희 대통령의 방산육성 진실이므로 계속해서 기록 드리는 것입니다.
박정희의 지시에 따라 ADD는 시제에 착수하여 번개작전이라는 명령아래 한국 최초의 병기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성공으로 국방부의 율곡사업으로 국내에서 병기와 장비를 양산하게 되었고 중화학에 의한 기계공업의 하나로 민간에 의한 병기별 방산업체가 지정되어 한국형 방위산업 공장이 건설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자금도 돈도 없는 후진국에서 막 신생 개도국이 자체기술을 개발하여 돈들이지 않고 실천할수 있는 한국식으로 만들어 방산에 착수하여 육성시킨 것입니다.
위대한 지도자 한사람의 예지와 집념이 나라를 살린 것입니다. 박정희의 방산육성에 대한 애착과 결심은 인간의육아 과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박정희는 대통령 집무실 옆에 국산시제 병기 전시실을 만들어 두고 청와대 집무실에 들어 오는 각료를 위시해서 모든 분들에게 스스로 자랑하실 정도였습니다.
박정희가 하계휴가시 진해 저도에 휴가 가실때는 언제나 창원 기계단지의 방산과 중화학공장에 들러 시찰하시고 좌우명을 써 주시고 건의사항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실무 담당자 였던 필자는 시찰 스케듈을 작성하였는데 샘플하나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박정희는 이와 더불어 방산공장에 보낼 기능사를 양성하는 기계공고 시찰도 잊지 않았습니다. 국가를 위하는 부지런한 꺠끗한 대통령 박정희를 어디든지 불수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몸소 챙기신 방위산업은 창원기계 기지내에 마런된 방산단지를 중심으로 건전하고 체계적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79년 마지막 연두기자회견에서 창원 기계 방산기지는 만들고 싶으면 뭐든지 만들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영국의 Economist지는 79년 방산단지를 둘러 보고 창원단지는 10년내에 세계일류의 방산단지가 될것이며 미국과의 License 문제만 해결되면 세게최대의 방산수출 단지가 되겠다고 했는데 예칙이 딱 들어 맞았습니다.
한국의 방산은 중화학 원칙에 의거 세계 First- class 생산기술과 제조공정은 도입하여 국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생산한다는 원칙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Economist 지의 예칙이 맞은 것입니다.
2. 오늘날의 한국의 방위산업의
빛나는 활약
오늘날 현재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의 종교 분쟁으로 일어난 전쟁 그리고 강대 국가군의 헤게모니 쟁탈전의 여파장으로 한국의 방산품 수출은 대폭적으로 증대되고 있습니다.
최근의 매스컴에서 보도된 수출 대종 품목을 관찰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K2 흑표전차, 레드백 장갑차, MLRS 다연장 로케트, 105 mm 곡사포, K9 155mm 자주포, 그리고 FT FA 젯트 훈련기와 전투기 등입니다.
지대공 중거리 미사일인 천궁2가 UAE에 이어 사우디에 수출되고 있습니다. 이들 품목은 자체 개발하여 추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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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품목 수출입은 대부분이 국가
사업이므로 국가가 수출하는 중국과
경쟁하여야 하고 유럽 선진국가들이 수츨 대상이나 NATO 회원 생산국가들과 경쟁하여야 하는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의 방산제품이 대환영을 받고 있는 이유는 (1)성능이 우수한데다가 (2)염가이고 (3)공기가 짧으며 (4)공급에 신의를 지킨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방산은 일시적이 아닌 영속적인 것은 방산을 수출 지향성인 중화학 원리를 준수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출지향성 우리 방산은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AI 활용으로 국제경쟁에 이겨야 합니다.
70년대초 박정희 대통령에 의하여 방산이 중화학과 상부상조하여 도약한 한국의 방위산업은 한국식 육성계획에 의거 일개 개도국에 지나지 않은 한국이 방산대국이 되는 반석을 구축하였습니다.
병기는 부품의 결합체라는 기본 원리로 개발에 착수한 이래 50여년의 기간에 방산 강국이 되어 전세계에 태극기를 휘날리는 세계에 자랑하는 방산국가가 되었습니다. (박정희의 방산 상세 원론) ( 끝)
(백곰 지대지 개발로 계속)
(시사 단상 한마디)
작금의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개발 지역별 평준화 정책에 대하여 한마디 합니다.
한반도 남해안의 우주 항공단지 건설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부터 있었던것으로 전연 새뢰운 것이 아님니다
경북 구미의 전자공윕단지는 한국의 반도쳬의 발원지로서 수도귄에 이어 새로운 반도체 단지 선정지로서는 구미 전자공업단지가 선정되어야 합리적이고 공명 정대합니다.
대지, 용수, 전력, 인럭, 관련업공급등이 용이함이 틀림 없습니다
부산에 반도체 공장 없어도 수산,관광, K Culture등으로 한국 졔2의 도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모든 도시는 지역의 쳔연조건에 따라 대소의 차는 있을지라도 대한민국의 하나의 도시입니다. 한국의 중화학 공업단지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끝)
2026.7. 4 김광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