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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추수감사절 예배 특강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살전5:12-18
요절/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세브란스 병원에 이런 기도문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독하고 외로운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이 공부를 기대만큼 안하고 때로 남편이 미워지고 어머니와 형제들이 짐스러워질 때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의 우상이 되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허무를 느끼게 하고 몸이 늙고 아프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부정이 득세하는 세상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잠 못 이루며 뒤척이게 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병들고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해 중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을 더욱 감사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진정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과 내적인 열매가 무엇인가 깊이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의 데살로니가 교회는 개척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교회요, 작은 교회였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을 통한 핍박과 환난, 자기들의 목자였던 바울에 대한 비방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나가야 했던 교회였습니다. 교회 내부적으로도 윤리적인 훈련의 부족으로 음란과 같은 죄에 빠지는 사람, 잘못된 종말론에 빠지는 사람,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깊은 슬픔과 낙심에 빠지는 사람이 나오는 등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 가운데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목자 바울은 이런 그들을 편지를 통해 권면과 격려를 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첫째, 바울은 먼저 성도들이 교회 지도자들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왜 이 문제를 말할까요? 교회가 올바로 서려면 지도자를 바로 세워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흔들면서 하나님이 역사해주시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4절에 보면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이들이 아마도 데살로니가 교회의 지도자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런 지도자들과 성도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어떻게 말합니까? 12,13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바울은 왜 교회 지도자들을 귀하게 여겨야 하는지 말해줍니다. 바울은 교회 지도자들을 가리켜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 ‘수고한다’는 것은 농부가 농사짓는 것을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농부가 얼마나 열심히 일합니까? 농사가 씨만 뿌려놓으면 잘됩니까?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합니다. 잠시라도 눈을 떼고 있으면 어느 틈에 잡풀이 자라고 벌레도 생기고 원수들이 밭을 망쳐놓기도 합니다. 교회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로 농부처럼 할 일들이 많습니다. 때마다 적절한 말씀을 공급하고자 말씀을 연구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매주일 메시지를 준비하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영혼의 문제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 지도자들은 늘 말씀 문제로 긴장하며 더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도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심방하고 전도에 나섰습니다. 또 교회 성도들의 성장을 위해 늘 고민하고 기도하고 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합니다. 대외적으로 유대인들의 핍박과 세상의 죄악된 영향력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고 변호하며 굳게 세워나가야 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행정적으로 처리해야할 일도 많습니다. 깊이 생각해보면 그들은 농부처럼 수고하는 자들입니다. 또 교회 지도자들을 가리켜 ‘주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영혼의 감독자입니다. 성도들을 말씀에서 벗어나고 있지는 않은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 기도하며 섬겨야 하고 성도들 서로 간에 교제를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다 문제가 발견되면 대화하며 권면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 너희가 이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 ‘알아야한다’는 말은 교회 지도자들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고 ‘존경하라, respect’ 이런 의미입니다. 만일 성도들이 교회 지도자들을 존경하지 않고 무시하고 비판하면 지도자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일할 수 없습니다. 당시 교회 성도들은 자기들이 하는 말이 얼마나 지도자들을 힘들게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말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다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나름 최선을 다해 섬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맡은 직분의 고귀함과 수고를 알고 존경하라고 권면합니다. 성도들이 교회 지도자들의 수고와 헌신을 잊어버리고 무시하고 존경하지 않으면 교회의 영적인 질서는 흔들리게 됩니다.
13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바울은 교회 지도자들이 하는 일들을 생각해보고 사랑 안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라고 권면합니다. “Hold them in the highest regard in love.” 그러므로 성도들은 교회 지도자들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또한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이럴 때 서로 격려도 해주고 감사도 표현하면서 더러는 문제점들에 대해 진솔한 대화도 나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 지도자로서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유대인들이 달려들어 방해하고 그 메시지를 비방하고 심지어는 그의 멱살을 잡아 끌어내 짱돌로 내리치기도 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바울을 비판하는 소리도 많이 들려왔습니다. “바울은 말이 어눌해 말씀을 잘 전하지 못한다. 말씀이 은혜가 없다. 우리를 버리고 도망갔다. 바울이 없어도 우리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 바울은 이런 말들이 얼마나 지도자를 힘들게 하고 낙담하고 상심하게 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최고지도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보면 ‘권하는 자들’ 복수로 되어있습니다.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 즉 직분을 담당하고 있는 분들이 여기에 다 해당합니다. 우리는 이들이 하는 일들의 귀함을 알고 인정하고 세워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교회의 직분자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 안에서 인정하고 세워주므로 질서 있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바울은 성도들 상호간의 가져야할 자세에 대해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믿음의 동역자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여기 ‘게으른 자’는 ‘규모 없는 자’를 가리킵니다. 대열에 머물러 있지 않은 군사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열심히 섬기고 있는데 이 사람은 교회를 위해 정한 질서나 형태에서 이탈하여 제멋대로 살아갑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1절에 보면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했습니다. 당시 게으른 자들은 섬기지는 않고 이런 저런 문제들에 참견하여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한편으로는 잘못된 종말론으로 인해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금방 오시는데 일은 해서 뭐하냐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를 병들게 합니다. 바울은 이들을 엄하게 훈계하라고 권면합니다.
반면 교회 안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곧 오시면 나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면서 근심 걱정에 싸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의 유혹과 핍박으로 믿음이 연약해져 있었습니다. 힘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격려하고 붙들어주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격려만큼 큰 힘도 없습니다. 실은 생각해보면 격려가 필요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 세상에 격려가 필요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면 믿음으로 살지라도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어떻게 격려해야 할까요?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동역자들의 격려의 말은 큰 힘이 됩니다. 동역자들의 한마디의 격려가 나를 살리고 교회를 살립니다.
우리의 말은 일종의 ‘양날의 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말은 상대를 격려하기도 하지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동역자를 ‘들었다 놓았다’ 합니다. 우리는 섬세함과 따뜻함과 진심으로 서로를 격려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기도해줌으로 상대를 격려할 수 있고 모이기에 힘쓰는 것으로 격려할 수 있습니다. 초대 성도들의 가장 큰 특징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쓴 것’입니다. 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서로 모이기를 힘씀으로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모이기를 중단하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는 일에 힘쓰라(히10:25).” 같이 예배하고 함께 모여 서로 기도제목을 나누며 기도하고 함께 속마음을 터놓으면서 위로를 얻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됩니까? 우리가 전도하러 동역자들과 함께 캠퍼스에 올라가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격려와 힘이 됩니까? 나 혼자서는 연약해서 신앙을 지키기도 버겁지만 함께 격려하며 위로하며 힘을 서로에게 실어주며 함께 할 때 그 교회 공동체는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
14b절을 보십시오. “모든 사람들에게 오래 참으라.” 우리는 이 말씀 한마디를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참지 못하고 본성을 따라 언성을 높이며 화내고 신경질을 부리기 쉽습니다. 사람에게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죄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교회 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이기적인 죄성에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입니다. 이들은 성령 충만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오래 참아주는 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교회는 따뜻한 어머니 품과 같은 곳이어야 합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의 연약함을 다 알고도 오래 참으면서 사랑과 헌신으로 감당해주며 섬깁니다. 우리는 서로를 품고 인내하며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친히 역사하시고 인내와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또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당한 것에 대해서는 하여간 원수 갚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누구에게든지 마음으로 귀하게 여기며 사랑과 섬김으로 대해야 합니다.
바울의 권면은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 된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바울의 권면처럼 서로를 존경하고 격려하고 인내하며 선행으로 섬기는 공동체를 이루어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가 더욱 성숙해지고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고 복 주실 줄 믿습니다.
바울은 이어서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말해 줍니다. 16-18절을 보십시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우리 신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아주 분명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첫째,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이런저런 어려운 일, 슬픈 일, 고난을 겪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이런 일을 안 겪는 게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더 많은 어려움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자칫 신앙생활을 힘들어하고 회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소유나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죄 사함을 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확증하시고 영생을 주셨습니다. 장차는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요,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까? 사람에게는 소망이 있을 때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단순한 소망, 자그마한 소망이 아니라 나를 구원해주신 예수님과 함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함께 할 소망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기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향한 꿈, 하나님의 나라의 꿈이 심령에 살아있는 사람은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소망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항상 기뻐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뻐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합니다. 하물며 교회 공동체가 모이기를 힘쓰고 쉬지 않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 공동체를 얼마나 크게 복주시겠습니까? 물론 기도할 때 그 응답이 지체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에 힘쓰라 하십니다. 그러면 곧 응답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새벽기도, 밤 기도, 하루 3번 기도 등 이렇게 정해서 기도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 자체가 주님과 동행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주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주님, 제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순간순간 주님께 묻고 주님께 듣고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께 순종하는 삶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입니다.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 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과의 교제시간입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의 은혜와 능력이 옵니다. 기도하는 삶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에 기도하는 삶이야말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응답해주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복된 삶의 원천입니다.
셋째,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에 대해서는 우리가 새롭게 쓸 것이 없다 할 정도로 많이 배웠습니다. 우리 입술의 최고의 미덕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사를 빠뜨리는 것은 새가 두 날개에 상처를 입고 날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축복의 때에 감사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외관상 불행해 보이는 환경 속에서 감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일처럼 보이거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에 감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들이 나를 힘들게 하고 불행하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힘든 일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을 때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가까운 형들로부터 노예로 팔리고 억울하게 성추행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고 은혜를 베풀어주었음에도 그것을 까먹는 사람 등등 그의 삶만 단순히 보면 숨 막히고 그런 삶 살라고 하면 도망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영접했을 때 이겨낼 수 있었고 그런 요셉을 하나님은 높이시고 생명구원역사에 귀하게 써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실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주관하고 계시며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질 때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입술의 불평, 원망은 우리 영혼을 파괴시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 되면 병든 내면이 치료됩니다. 그 영혼에 빛과 생명이 임합니다. 하물며 우리 교회 구성원 모두가 범사에 감사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해주시고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 늘 지키시며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꿈을 간직하며 살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이 하나님과 동행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마귀의 세계는 감사가 없다’ 했습니다. 우리는 마귀가 심어준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불만불평으로 가득하게 되고 감사할 수 없습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은 교만한 마음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린 마음이요, 욕심으로 가득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늘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감사가 답이다”라는 책이 있는데 정말 감사가 답입니다.
말씀을 저의 감사로 끝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가정불화로 인한 가정운명주의와 정욕, 인생의 허무로 방황하며 살던 저를 구원해주시고 주님을 따르고 캠퍼스 영혼들을 섬기는 목자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왕기상, 창세기, 로마서와 여러 특강 등 말씀공부 강의안을 준비하고 말씀공부를 하고 메시지를 쓰면서 말씀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하시고 주님과 교제하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별히 창세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깊이 영접하게 되고 은혜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부터 광신대에서 M. Div. 과정을 하면서 체계적인 신학공부를 하면서 학문의 지경과 깊이를 넓혀주시고 말씀을 볼 줄 아는 안목을 조금씩 넓혀주심에 감사합니다. 주4회 학교채플 1시간 동안 찬양과 말씀과 기도로 은혜주시고 여러 목사님들과 교수님들의 말씀을 통해 매일 은혜를 공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는데 있어서 부족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 때도 많았지만 설교대회 입상을 통해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부하면서 많은 책들을 읽게 하시므로 하나님에 대해 더욱 깊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장학금도 주시므로 공부에 대한 자신감도 가지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나에겐 은사가 별로 없다고 위축이 들 때가 많았는데 이런 저를 본부에서 주제식 교재연구, JBF양식집필, 학생수양회 등을 꾸준히 섬기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하고 올해부터는 학복협 서기로 섬기게 되었는데 진주 청년대학생들을 위한 집회를 이루고 섬기면서 진주 캠퍼스에 대한 소망과 더불어 우리 모임에 대한 비전과 소망을 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늘 곁에서 동고동락하며 신경 쓸 일이 많을 때 때로는 투정과 짜증을 부리기도 했는데 이런 저를 다 용납해주며 건강을 챙겨주고 사랑과 기도와 섬김으로 동역해주고 늘 지지해주는 정민 목자님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너무나 사랑스런 두 딸의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힘이 되고 사이좋게 지내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 감사합니다. 하윤이가 소심하고 목소리도 작아 걱정이 되었는데 점차 목소리도 커지고 조금씩 담대해지고 암송대회에서 입상하므로 자신감을 갖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매주 서울을 오가면서, 또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큰 사고 나지 않고 다치지 않게 지키시고 보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가 부모님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때마다 먹을 양식을 목자님들과 양가 부모님들을 통해 풍성하게 섬김 받게 하시고 채워주심을 감사합니다. 목자님들의 여러모로 섬김을 인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때로는 여러 상황 형편들로 인해 힘들고 낙심이 되기도 하고 특히 캠퍼스를 밟지만 섬길 양들을 얻지 못할 때 마음이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새 힘주시고 다시금 기쁨으로 주와 복음역사를 섬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그 외에도 제게 많은 은혜들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제가 이 순간뿐만 아니라 저를 섭리와 주권 가운데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을 품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인생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따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