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 박희선
밭두렁에 광대풀이 무리지어 웅성거린다. 인간세상에서는 다섯만 모여도 엄포를 놓는데 줄기를 죽죽 벋어 세를 넓힌다. 그것도 모자라 자줏빛 꽃을 피우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밭둑을 따라 십여 분 걷다보니 홍 수필가의 농장 근처다. 십이 월인데 개망초가 피어있다. 개울가엔 보랏빛 구절초도 홀로 앉아 물소리를 듣는다. 못다 피운 서정이 남았는지 겨울 한복판에서 가을을 물고 있다. 끈질기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걸까.
홍 수필가는 경주 농장을 정리하고 개곡에 새 농장을 일구었다. 우리도 채소밭이 있어서 자주 가는 편이었다. 만날 때마다 가까이 있으니 놀러오라고 했지만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볼일이 있어 외지에 가 있을 때 경주에 살고 있는 최 수필가가 왔다고 연락을 받았으나 갈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다. 어쩌다 시간이 나서 찾아가면 농장 문이 닫혀 헛걸음으로 돌아왔다. 미리 약속을 하면 못 만날 일도 아닌데 미루다보니 그가 먼저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사는 것은 다 엇비슷해 유한한 삶에서 후회 되지 않고 아쉽지 않은 인연이 어디 있을까.
나는 운 좋게 실상문학상 본상을 받았다. 문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받은 큰 상이었다. 그동안 문학 밭에서 누린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인데 상까지 받다니, 시상식 날 홍 수필가가 색소폰 연주를 했다.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한껏 멋을 냈다. 나만큼 행복해 보였다. 이날을 빛내기 위해 얼마나 긴 시간 연습 했을지 참으로 고마웠다. 사람은 가도 그의 표정은 오래토록 남아있다.
경주 그의 농막에 들렀다. 나무그늘에 평상을 만들어 현수막까지 걸어놓고 일행을 반겼다. 신라 땅엔 구덩이도 마음 놓고 팔 수 없어 불편하다는 넋두리를 했다. 그래도 우리는 주변 환경이 좋아 오래 머물고 싶었다. 소나무 냄새가 발끝마다 매달렸다. 꽃은 보이지 않고 치자 꽃향기가 은은하게 번졌다. 청객을 위한 이보다 더 나은 선물이 어디 있을까. 늦게 온 최 수필가는 경주 법주 화랑 서른 병을 들고 왔다. 달짝지근하고 향긋한 화랑을 그날 처음 맛보았다. 말벗만 좋으면 밤새 마셔도 좋을 부드러운 술이었다.
동석한 배 시인과는 참 오래된 인연이었다. 팔십년 대에 서울에 있는 <시와의식> 잡지사를 통해 그는 시로, 나는 수필로 등단하여 동인활동도 십여 년을 함께 했다. 문인이 그리 많지 않던 때라 동인의 세력이 광대풀 만큼 번성했다. 피붙이처럼 끈끈한 정을 나누었고 누군가가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면 아무도 모르게 주머니를 털어 돕기를 자청했다. 술김에 언성이 높아져도 별 탈이 없었다. 한 달이 지나 다시 모이면 말간 얼굴로 반갑게 맞아 술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시와 수필이 다르듯 시인과 수필가의 성향이 달라 영원 하자던 모임은 해체 되었다. 생은 멸滅을 품고 있다는 이치는 비단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수필가들만 모여 필맥 동인회를 만들어 또 십 여 년이 흘렀다. 건강이 좋지 않은 송 수필가의 퇴장으로 우리는 침묵 기에 들었다. 가끔 안부만 물을 뿐 문학에 대한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 건강이 어떠하신지, 식사는 좀 하셨는지, 집을 못 찾아오셨다는데, 겉도는 말만 하다가 끊고 말았다. 배 시인이 “그때가 의욕이 넘치고 좋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술기운 탓인지 목이 멨다. 그리운 얼굴 몇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한때 외국 사람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국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사람이 모여 한글 교육을 받고 토론도 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스승의 날이 되면 마음 맞는 몇몇이 모여 선생을 집으로 초대했다. 다문화 가정은 그들이 일군 따뜻한 보금자리였다. 주방에서 음식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거실에서 결혼 사진첩을 보며 놀았다. 화려하게 꾸민 신부가 신랑과 나란히 서 있는데 주례자가 낯이 익었다. 홍 수필가였다. 주례봉사를 하신다더니 이렇게 또 인연이 맺어졌나 싶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된 제자는 주례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고 적응한 덕분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머잖아 이들의 후손이 대한민국을 빛낼 것이다.
홍 농장 사립문이 굳게 닫혀 있다. 저 농막에서 색소폰을 불고 닦으며 소중한 하루를 엮었지 싶다. 문학과 술을 사랑하고 음악을 즐겼던 수필가의 흔적이 소리로 들린다. 실존과 사라진 것에 대한 애틋한 반란이 주변을 맴돈다.
우리 밭 양지에도 광대풀 세력이 들끓는다. 빈 땅만 있으면 무리지어 발을 내린다. 내안에 가두었던 울분을 토하기 위해 자주색 작은 촛불을 든다. 침묵하는 열기도 뜨겁다. 그러나 한없이 벋어날 것 같지만 관리기 앞에선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운명이다. 예측하지 못한 파열음,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앞에서 서둘러 댈 일은 아무것도 없다. 광대풀이 우거진 주름진 땅에 쓸쓸함만 감돈다.
가멸찬 기운이 전신을 휘감는다. 사람이든 초목이든 생명이 있는 것은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바친다. 그러다 서서히, 때로는 다급하게 사라진다. 도도한 생이 멸滅을 감추고 겨울바람에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