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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
白石 백 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작가 : 백기행(白夔行) 혹은 기연(基衍), 필명은 ‘백석(白石/白奭)’
핵심 정리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어려운 현실을 살아갔던 한 여인이 여승이 되기까지의 삶을 보여 줌으로써 민족의 비극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갈래 : 자유시, 서정시*성격 : 서사적, 애상적*제재 : 여인의 일생*주제 :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특징① 회상적인 어조로 표현함.② 역순행적 구성 방식③ 시상의 압축과 절제*출전 : “사슴”(1936)
시어 풀이
*합장 : 두 손바닥을 마주 합침. 불교의 인사 예법.*가지취 : 취나물(산나물)의 일종.*금점판 : 금광의 일터.*파리한 : 몸이 몹시 여위거나 핏기가 없고 해쓱한.*섶벌 : 재래종의 꿀벌.*마당귀 : 마당의 한 귀퉁이.*머리오리 : 머리카락의 가늘고 긴 가닥.
작품의 구성
[1연] 여승과 ‘나’의 대면[2연] 여인과의 첫 만남[3연] 여인의 비극적인 삶[4연] 한을 이기지 못하고 여승이 되는 여인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일제 강점기에 비극적 삶을 살아가는 한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가난 때문에 가족을 잃고 여승이 되기까지의 일생을 서사적으로 잘 그려 내고 있다.이 시는 역순행적 구성 방법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1연은 여승의 현재 모습이며, 2~4연은 여승이 되기까지의 여인의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서사적 구조를 지닌 이 시는 작품 속에 드러난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적해 보면서 감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여인의 남편은 가난 때문에 일거리를 찾아 집을 떠난다. 몇 해를 기다려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어린 딸을 데리고 남편을 찾으러 집을 나서게 된다. 어느 날, 금광까지 찾아온 여인에게서 ‘나’는 옥수수를 사게 된다. 남편이 집을 나간 지 십 년이 되는 해에 어린 딸은 죽게 되고, 여인은 머리를 깎고 한 많은 속세를 떠나 여승이 된다. ‘나’는 쓸쓸한 모습의 여승을 다시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눈다.우리는 이 시를 통해 일제 강점기 속에서 한 여인이 겪은 비애감과 한 많은 삶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던 한 여인이 세속을 떠나 여승이 되기까지의 삶을 보여 줌으로써,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 때 가족들과 헤어지고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의 현실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시적 화자가 관찰자가 되어 서사적 사건을 압축된 형태로 참신한 비유를 통해 제시함으로써, 서사성과 서정성이 조화를 이루는 시적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 (주)천재교육 | BY-NC-ND
작품 연구실
작품 속 시어 사전
*가지취 : 후각적 이미지를 통해 속세와의 단절을 강하게 암시함.*불경 : 종교로 귀의할 수밖에 없던 여인의 기구한 삶의 역정을 보여 주는 소재*옥수수, 섶벌 : 여인과 남편의 가난한 삶의 모습과 관련되는 소재*도라지꽃 : 나이 어린 딸의 죽음의 이미지를 함축함.*산꿩 : 여인이 승려가 되는 날의 서러운 심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소재
작품 속 화자와 시적 대상
이 작품은 시적 화자와 시적 대상이 분리되어 있다. 따라서, 시적 화자가 처한 상황과 시적 대상, 즉 여인이 처한 상황을 분리해서 이해할 수 있어야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이 작품 속에서 시적 화자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알고 있는 관찰자로, 화자는 회상적인 어조로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노래하고 있다. 즉, 화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인생사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시적 화자의 감정과 태도가 노출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간결한 문장으로 감정을 절제하며 표현하고 있다.
역순행적 구성 방식
이 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성이 아닌 그 순서가 뒤바뀐 역순행적 구성 방식으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1연은 현재의 상황으로 시적 화자가 여승이 된 여인과 재회하는 장면이다. 2~4연은 과거의 상황이다. 먼저 2연은 시적 화자와 여인이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이고, 3연은 그 이후의 여인의 비극적인 삶의 과정이 나타나 있고, 4연은 여승이 되기 위해 삭발하던 날의 정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 서사적 사건을 이 시는 4연 12행의 압축적인 구성으로 밀도 있게 보여 주고 있다.
‘여승’에 반영된 시대 상황
1930년대는 일제 강점기로 일본의 착취와 억압이 심해지던 시기이다. 당시를 살아가던 민중들은 극빈한 생활 속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어려웠고, 목숨을 이어 간다고 하더라도 행복한 가정을 꾸려 평범하게 사는 일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니거나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이 시 속의 여인의 삶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를 찾아다니며 행상을 하다가 아이마저 죽게 되어 자신이 정착해 살 수 있는 가족이 사라졌다. 이런 이 여인의 삶은 식민지 현실에 희생당한 우리 민족의 삶을 대변해 준다고 할 수 있다. 화자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여인을 애처롭게 바라보면서 농촌이 몰락하고 그로 인해 가족들이 흩어지는 시대 현실의 아픔을 잘 그려 내고 있다.
서술시
사건, 이야기 등의 서사적인 내용을 시적 형식으로 보여 주는 형태의 시로, 우리 근대 시사에서 서술시의 출현은 1920년대 초반의 감상적인 시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이런 시적 경향은 전통적 시가인 서사 민요나 사설시조와 같이 민중적인 삶을 표상하는 전통적 시가의 내적 구조들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서술시는 1935년 카프가 해산하기까지 많은 시인들에 의해 창작되었는데, 카프 계열의 작가들과 동반자 계열의 임화, 이찬, 백철과 같은 시인들뿐 아니라, 주요한, 김동환, 김억 등의 민족주의 시인들도 이 같은 시를 많이 썼다. 1935년 이후에는 백석, 이용악 등의 시인들이 서정성을 내포하는 서술시를 시도했다.
작가 소개 - 백석(白石, 1912 ~ 1995)
시인. 평안북도 정주 출생. 서민들의 삶을 토속적인 언어로 현실감 있게 그려 내면서 우리 민족 공동체의 정서를 드러내었다. 또한 여행 중에 접한 풍물이나 체험을 표현한 기행 시와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창작하였다. 작품으로 ‘여승’, ‘여우난골족’,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등이 있다.
백석의 시 세계
백석의 시 세계의 주인공은 공동체의 품속에 깊이 잠겨 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 세계에 잠겨 있는 만큼 그러한 공동체적 세계로부터 멀어져 있는 현실의 자신과 모순되어 있는 상태를 심화시킨다. 바로 이 모순이야말로 백석의 시를 의미 있게 만드는 창조적 힘인 것이다.
'고향'은 타관에서 떠도는 자의 절절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백석의 향수는 단지 고향의 풍물이나 인정 세태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적 소재들은 보다 깊고도 지속적인 고향의 삶의 역사와 관련을 맺으려 할 때에만 선택된다. 풍속이나 이야기로서의 설화가 시 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풍속과 이야기야말로 유랑자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바로 그에게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유랑자에게 있어서 가장 그리워지는 대상은 가족공동체인데, 백석은 유랑의 여로 속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고 있다. <신범순, '백석의 공동체적 신화와 유랑의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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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이 암송은 했는데
시 해설 올려 주시니 틈나면
다시 다듬어 낭송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네~~경란낭송가님
시를 이해하고 낭송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