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14]
윌리엄 J. 맥켄지(William John McKenzie, 1861-1895)③
1895년 6월 23일, 윌리엄 맥켄지는 조선에 들어온 지 1년 반 밖에 되지 않았는데 34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쓴 일기장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매일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전도를 했고 밤늦은 시간까지 이슬을 맞으면서 복음에 대해 이야기한 것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된 것이 자신의 실수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일사병으로 쓰러졌고 치료도 받지 못한 상태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는데, “예수님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어머니,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너무 아픕니다. 어머니….라고 글을 남겼습니다. 결국 권총으로 자신을 쐈는데, 당시 사람들은 정신착란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은 여러 선교사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고, 언더우드와 웰즈(James Hunter Wells) 선교사가 찾아와서 추모회를 인도했고 세례식도 거행했습니다. 이때 세례를 받은 사람이 바로 김필순(金弼淳)이었습니다. 그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제1회 졸업생이 되었으며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주치의를 하며 독립운동에도 참여했습니다. 서상륜의 동생 서경조는 맥켄지가 사망하자 캐나다 장로교회 해외선교부에 편지를 썼고, 이 편지에 감동을 받은 캐나다 장로교회가 조선선교를 결정하고 1898년부터 180명이 넘는 선교사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맥켄지의 약혼녀 루이스 맥컬리(Louise H. McCully)는 조선으로 오던 중에 사망 소식을 들었지만 입국해서 차분히 유산을 정리해서 소래교회에서 헌금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1900년 함흥과 원산 지역 선교사로 파송되어 한국 최초 여자신학교를 설립하는 등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선교와 교육에 헌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