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초 탄생지 강릉역 앞
아버지가 산림청 공무원이어서 어머니는 지독한 장난꾸러기였던 나를 감당할 수 없어, 외갓집에 나를 맡기고 아버지 근무지를 따라다녔다.
나로서는 그것이 더 반가운 일이었다. 답답한 시골 보다 너무나 할 일이 많았던 강릉역은 나로서는 즐거운 하루의 연속이었다.
나는 강릉역 앞에서 어린 마초가 되어갔다.
그때 강릉역은, 통학 열차의 종착지였다.
삼척 북평 묵호 옥계 정동진 안인진에서 강릉여고 강릉여중 다니던 여학생들이 등하교를 하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의 마초가 시작되었다.
동네 형들이 시키는데로 여학생들에게 돌을 던졌다. 욕도 했다.
여학생들은 돌을 던지는 우리들을 피해 도망을 갔다.
그때 나는 머리를 빡빡 깍고 다녔는데. 한번은 그런 머리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내 머리를 만지며 장난을 쳤다.
뒤돌아 보니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었다.
내가 귀엽다며 깔깔거리며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이 간나들 다 죽인다!”
나는 이렇게 소리 쳤던 것 같았다. 내 손에는 줄톱을 갈아만든 작은 칼이 들려 있었다.
나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여학생들은 겁내지 않고 더욱 깔깔 거렸다.
“얘 너무 귀엽다”
그 소리를 듣고 그날은 기분이 너무 않좋았던 기억이 있다.
강릉역 앞은 창녀촌이었다.
그곳에는 바다로 흘러가는 작은 개울이 있었는데 겨울이면 그곳으로 썰매를 타러 갔다.
햇볕을 즐기는 창녀 누나들과도 많이 어울렸다. 만화책을 같이 보기도 했다.
누나들은 과자도 많이 사 주었다.
그러다가 손님이 오면, 잽싸게 씻고 방으로 갔다가 순식간에 나와서 같이 이불속에서 만화를 보았다.
누나들이 가끔은 내 고추를 만지기도 했으나, 나는 게의치 않고 만화만 보았다. 만화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오 때가 되면 강릉역 광장에는 서커스 일행들이 내렸다.
커다란 코끼리 원숭이 이상한 옷을 입은 무용수들, 빨간코의 희극인들,
일행들이 단오장으로 향하면 큰길을 따라 우리들도 남대천까지 달려가곤 했다.
길에는 물건을 실어나르는 노새가 커다란 성기를 흔들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작대기로 노새의 커다란 성기를 찔렀다. 마부는 우리들에게 욕을 하며 노새 짐칸에 실려있던 모래를 던졌다.
당시 묵호항은 동해안 유일의 무역항이었다.
묵호항에서 잡히는 생선들과 무역항을 통해 들어 온 밀수품들이 강릉의 지역 경제의 도화선이었다.
동네 엄마들은 묵호항으로 들어 온 밀수품 화장품을 사서 발랐다.
묵호항의 오징어는 강릉역 앞에서도 말렸다.
강릉역 앞의 넓은 도로는 비포장이어서 풀들이 많이 자랐다.
항상 염소들이 풀을 뜯어 먹었다.
외할머니는 나에게 산양유를 먹이려고 했지만, 나는 안먹으려고 도망다녔다.
그러다가 외할머니에게 잡히면 두둘겨 맞았다.
여름 방학때는 강릉역에서 경포대 역까지 철길을 따라 걸어서 해수욕을 갔다. 여름방학이 지나면 등짝에서 거풀이 벗겨졌고 심지어는 빡빡 깍은 머리껍질도 벗겨졌따.
그때 배운 수영이 나중에 인명구조원 아르바이틀 했고, 스쿠버강사가 되기도 했고, 데모로 육군에 끌려갔다가 수영 잘한다고 해군으로 차출 된 원인이 되었다.
강릉역 앞은 아이들에게는 대단히 흥미로운 곳이었지만, 내가 마초가 될 수 밖에 없는 비교육적인 곳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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