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영월에서 잊지 못할 추억 26일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 버스 공영 주차장에 용인시 시 낭송회 해피투어 회 회원들과도 영월 일원으로 8월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영월 일원을 찾아 단종 임금의 애틋한 숨결을 느끼고 시원한 숲길을 걸으며 즐거운 시간, 지난 2월에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600만 명을 돌파하여 많은 분이 다녀온 곳이다.
영월은 배를 타고 들어가는 신비로운 섬, 청령포는 영화 같은 풍경 속에 단종의 슬픈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된 명소다. 먼저 조선의 어린 임금 단종이 유배되어 한양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래던 곳, 청령포와 단종이 유배길에 잠시 쉬어 가며 그 절경에 감탄했다 기암괴석인 선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비운의 왕 단종이 잠든 역사적 장소인 장릉, 자연이 빚어낸 오묘한 우리나라 지도 형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영월의 대표 명소인 한반도 지형 등 영월의 4대 핵심 명소를 살펴보기로 했다.
청령포에서 전순희 해설사(강원도 문화관광)의 안내를 받으며 주요 명소를 살펴보았다. 전순희 해설사는 “청령포는 조선 제6대 임금님인 단종이 유배되었던 역사가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입니다. 기암괴석의 절벽을 휘돌아 나가는 강과 울창한 송림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송림 속에는 유배된 단종의 생활상을 보고 들었다는 천연기념물 제349호 관음송이 있습니다. 청령포 숲은 2004년에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에서 공존상인 우수상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단종어소를 둘러보았다. 옛 모습을 재현한 기와집으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했던 행랑채, 어소 담장 안에 있는 단묘재본부시유지비를 둘러보았다. 162cm 높이인 오석으로 제작된 이 비는 영조 대왕의 친필이 음각되어 있었다.
방부목으로 단장된 산책로를 따라 금표비와 관음송을 둘러보았다. 금표비는 1726년 영월부사 윤양래가 녹봉으로 세웠다고 하며 이곳이 단종이 머물렀던 곳으로 함부로 출입하거나 훼손하면 안 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600여 년이 되었다는 관음송은 높이가 30m, 둘레가 5m로 두 갈래로 갈라져 있으며 노산군이 이 나무에 걸터앉아 슬피 울며 한양을 그리워했다는 전설을 들려주었다.
청령포 뒷산, 망한대와 노산대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서강을 내려다보며 빼어난 풍광을 감상했다. 노산군이 유배 생활을 할 때 자주 올라와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 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 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고 했다.
수도권이 아닌 유일한 능으로 잘 조성된 숲길 따라 올라가 단종이 잠든 장릉(莊陵)을 찾았다. 1457년 단종이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고 승하한 지 59년 만에 왕릉을 꾸몄다고 했다. 장릉을 둘러보며 단종의 가련한 삶과 ‘왕과 사는 남자’ 영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6호로 지정된 영월읍 방절리 선돌(立石)을 찾았다. 양옆으로 우뚝 선 기둥 모양의 70m 높이의 기암괴석이었다. 우뚝 솟은 바위기둥과 서강 풍경이 장관을 이루었다.
국가지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된 한반도 지형을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찾았다. 80m 오르는 길은 100여 그루의 무궁화동산과 우리나라 지형, 영월지방의 지형을 설명한 안내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우리나라 모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지형이 서강 주변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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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고시절 '단종애사' 역사 소설을 읽으며 눈물지었었는데 '왕과 사는 남자' 영화를 보며 또 다시
눈물을 짓게 했던 단종이 유배가서 기거했던 청룡포와 단종의 릉인 장릉 등지를 지난 봄에 가서
돌아보았었는데 기사의 달인님의 자세한 기사를 읽고 사진을 보니 더욱 실감이 납니다.
좋은 기사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