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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_심청전에서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을 찾다.
안씨맹인 종을 불러 차를 들여 권한 후에,
“거주는 어디 오며 어떠하신 댁이오니까?”
심봉사가 자기 신세 전후수발을 낱낱이 말하며 눈물을 흘리니 안씨맹인이 위로하고 그날 밤에 동침(同寢)할 제, 한창 조흘 고비에 둘이 다 없는 눈이 벌떡벌떡할 듯하되, 서로 알 수 있나. 사람은 둘이나 눈은 합하면 넷이로되 담배씨만큼 보이지 아니하니 하릴없어 잠을 자고 일어나니, 주린 판이오 첫날밤이니 오죽 좋으랴마는 심봉사 수심으로 앉았거늘, 안씨맹인이 묻되,
“무슨 일로 즐거운 빛이 없사오니 첩이 도리어 무안하오이다.”
심봉사 대답하되,
“본디 팔자가 기박(奇薄_운수가 사납고 복이 없음)하여 평생을 두고 징험한즉 막 좋은 일이 있으면 언짢은 일이 생기고 생기더니, 또 간밤에 한 꿈을 얻으니 평생 불길할 징조라. 내 몸이 불에 들어가 보이고, 가죽을 벗겨 북을 메우고, 또 나뭇잎이 떨어져 덮이어 보이니 아마도 나 죽을 꿈 아니오?”
안씨맹인 듣고 왈,
“그 꿈 좋소. 흉즉길(凶則吉_흉한 것이 즉 길한 것이다'는 점괘)이라 내 잠깐 해몽하오리다.
다시 세수하고 분향(焚香향로에 향불을 피움)하고 단정히 꿇어앉아 산통을 높이 들고 축사를 읽은 후에 괘를 풀어 글을 지었으되,
“신입화중(身入火中)하니 희락가기(喜樂可期)요_몸이 불에 들어가니, 기쁘고 즐거워 팔짝팔짝 뛸만한 일이 있을 것이요). 거피작고(去皮作鼓_가죽을 벗겨 북을 메움)하니 고(鼓)는 궁성(宮城 또는 宮聲_오음 궁.상.각.치.우 중 궁성(宮聲), 동시에 궁성(宮城)과 동음이의 관계)이라, 궁에 들어갈 징조요. 낙엽이 귀근(落葉歸根_낙엽이 뿌리로 돌아가니)하니 자손을 가봉(子孫可逢_자손을 가히 만나리라)이라. 대몽이오니 대단 반갑사오이다.”
심봉사 웃어 가로되,
“속담에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이오, 피육불관(皮肉不關_가죽과 고기가 아무 관련 없음)이오, 조작지설(造作之說_꾸며낸 말)이오. 내 본디 자손이 없으니 누구를 만나며, 잔치에 참여하면 궁에 들어가고, 녹밥도 먹는 짝이지.”
안씨맹인이 또 말하되,
“지금은 내 말을 믿지 아니하나 필경 두고 보시오.”
아침밥을 먹은 후에 궐문 밖에 당도하니 벌써 맹인잔치에 들라 하거늘, 궐내에 들어가니 궐내가 오죽 좋으랴마는 빛 쬐어 거무충충하고 소경 내가 진동한다.
이 적에 심황후 여러 날을 맹인잔치할 제, 성명성책(姓名姓冊)을 아무리 들여놓고 보시되 심씨맹인이 없으니, 자탄하사,
“이 잔치 배설한 바는 부친을 뵙자고 하였더니 부친을 보지 못하였으니, 내가 인당수에 죽은 줄로만 아시고 애통하여 죽으셨나? 몽운사 부처님이 영검(靈驗)하사 그간에 눈을 떠서 천지만물을 소비시 맹인축에 빠지셨는가? 잔치는 오늘이 망종이니 친히 나가 보리라.”
하시고 후원에 전좌(殿座_경사스러운 행사 때, 황제나 황후가 나와 앉는 자리)하시고 맹인잔치 시키실새 풍악도 낭자하며 음식도 풍비(豊備)하여 잔치를 다한 후에 맹인 성책을 올리라 하여 의복 한 벌씩 내어 주실새 맹인이 다 하례하고, 성책 밖으로 맹인 하나가 우뚝 섰으니 황후 물으시되,
“어떠한 맹인이오?”
여상서(女尙書_여자 상서. 상서는 벼슬 이름)를 불러 물으시니 심봉사 겁을 내어,
“과연 소신이 미실미가(靡室靡家_몹시 구차하여 들어 있을만한 집조차 없음. 집도 절도 없음)하여 천지로 집을 삼고 사해로 밥을 부치어 유리(流離)하여 다니오매 어느 고을 거주 완연히 없사오니 성명성책에도 들지 못하옵고 제 발로 들어 왔삽나이다.”
황후 반기시사,
“가까이 입시(入侍_대궐 안에 들어가 임금에게 뵙)하라.”
하시니, 여상서 영을 받자와 심봉사의 손을 끌어 별전(別殿)으로 들어 갈새, 심봉사 아무런 줄 모르고 겁을 내어 걸음을 못 이기어 별전에 들어가 계하에 섰으니, 심맹인의 얼굴은 몰라 뵐러라.
백발은 소소하고 황후는 삼 년 용궁에서 지냈으니 부친의 얼굴이 의의_어렴풋하다.)하여 물으시되,
“처자 있느냐?”
심봉사 복지(伏地)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여쭈오되,
“아무 연분(年分_일년중의 어떤 때)에 상처하옵고 초칠일이 못다 가서 어미 잃은 딸 하나 있삽더니, 눈 어두운 중에 어린 자식을 품에 품고 동냥젖을 얻어 먹여 근근 길러내어 점점 자라나니 효행이 출천하여 옛 사람에 지나더니, 요망한 중이 와서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오면 눈을 떠서 보리라 하니, 신의 여식이 듣고, 어찌 아비 눈 뜨리란 말을 듣고 그저 있으랴.'하고 달리는 판출(辦出_변통하여 마련해 냄)할 길이 전혀 없어 신도 모르게 남경 선인들에게 삼백 석에 몸을 팔리어서 인당수의 제수로 빠져 죽사오니 그 때에 십오 세라. 눈도 뜨지 못하고 자식만 잃었사오니, 자식 팔아먹은 놈이 이 세상에 살아 쓸데없사오니 죽여 주옵소서.”
황후 들으시고 체읍하시며, 그 말씀을 자세히 들으시매 정녕 부친인줄은 알으시되, 부자간 천륜에 어찌 그 말씀이 그치기를 기다리랴마는 자연 말을 만들자 하니 그런 것이었다.
그 말씀을 맡듯 못 맡듯 황후 버선발로 뛰어 내려와서 부친을 안고,
“아버지, 내가 과연 인당수로 빠져 죽었던 심청이오.”
심봉사 깜짝 놀라,
“이게 웬말이냐?”
하더니 어찌 하 반갑던지 뜻밖에 두 눈이 갈라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두 눈이 활짝 밝았으니 만좌(萬座_여러 사람이 늘어앉은 자리) 맹인들이 심봉사 눈 뜨는 소리에 일시에 눈들이 헤번덕 짝짝, 갈치새끼 밥 먹이는 소리 같더니 뭇 소경이 천지명랑하고, 집안에 있는 소경 계집 소경도 눈이 다 밝고, 배안의 맹인 배 밖의 맹인 반소경 청맹(靑盲_보기에는 멀쩡하나 못 보는 눈. 또는 그런 사람)까지 몰수(沒數)이_있는 수효대로 온통) 다 눈이 밝았으니 맹인에게는 천지개벽(天地開闢) 하였더라.
심봉사 반갑기는 반가우나 눈을 뜨고 보니 도리어 생면목(生面目_처음으로 대함. 또 그 사람)이라. 딸이라 하니 딸인 줄은 알것마는 근본 보지 못한 얼굴이라 알 수 있나. 하도 좋아서 죽을 둥 말 둥 춤추며 노래하되,
“얼시구 절시구 지아자 좋을시구. 홍문연(鴻門宴_홍문에서 한 고조 유방과 초왕 항우가 베푼 장치. 항우는 범증의 권에 따라 유방을 죽이려 했으나, 유방은 장량의 꾀로 번쾌를 데리고 도망쳤음) 높은 잔치의 항장(項莊_항우의 신하로 홍문연에서 유방을 죽이려고 칼춤을 추었던 장수)이 아무리 춤 잘 춘다 할지라도, 어허 내 춤을 어찌 당하며, 하고조 마상득천하(馬上得天下_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함을 이르는 말) 할 제 칼춤 잘 춘다 할지라도, 어허 내 춤 당할소냐. 어화 창생(蒼生_세상의 모든 사람)들아, 부중생남중생녀(不重生男重生女_아들 낳기를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딸 낳기를 중히 여김)하소. 죽은 딸 심청이를 다시 보니 양귀비_楊貴妃. 당나라 현종의 ?妃. 才色을 겸비한 것으로 유명함)가 죽어 환생하였는가? 우미인이 도로 환생하여 왔는가? 아무리 보아도 내 딸 심청이지. 딸의 덕으로 어두운 눈을 뜨니 일월이 광화(光華_환하고 아름답게 빛남. 또는 그 빛)하여 다시 좋도다. 경성이출 경운이 흥하니 백공상화이가(景星出 卿雲興 百工相和而歌_天意를 얻으면 나타난다는 상서로운 별이 나고 구름이 이니 백공이 서로 화답하여 노래한다.)라. 요순천지 다시 보니 일월이 중화(重華_거듭 빛남)로다. 부중생남중생녀는 나를 두고 이름이라.”
무수한 소경들도 철도 모르고 춤을 출 제,
“지아자 지아자 좋을시고 어화 좋구나. 세월아 세월아 가지 마라. 돌아간 봄 또다시 돌아오건마는 우리 인생 한 번 늙어지면 다시 젊기 어려워라. 옛글에 이렀으되 시자난득(時者難得_좋은 기회는 얻기 어렵다)이라 하는 것은 만고명현(萬古名賢_영원히 이름이 변치 않을 어진 사람) 공맹(孔孟_공자와 맹자)의 말씀이요. 우리 인생 무슨 일 있으랴.”
다시 노래하되 상호 상호 만세를 부르더라.
즉일에 심봉사를 조복(朝服_조회 때 입는 예복)을 입히어 군신지례(君臣之禮)로 조회하고, 다시 내전에 입시하사 적년(積年_여러 해) 그리던 회포를 말씀하며 안씨맹인의 말씀 낱낱이 하니, 황후 들으시고 채교(彩轎_채색을 한 교자. 또는 채단으로 꾸민 교자)를 내어 보내어 안씨를 모셔 들여 부친과 함께 계시게 하시고, 천자 심 학규를 부원군(府院君_왕비의 친아버지나 정일품 공신의 작호)로 봉하시고 안씨는 정렬부인(貞烈夫人_정렬이 있은 부인에게 내리던 벼슬이름)을 봉하시고, 또 장승상부인을 특별히 금은을 많이 상사하시고, 도화동 촌인을 연호잡역(煙戶雜役_전날 민가 매호마다 부과하던 잡역)을 물시(勿施_하려던 것을 그만둠. 해온 일들을 무효로 함)하시고 금은을 많이 상사(賞賜)하여 동중의 구폐(救弊_폐해를 바로잡음)하라 하시니 도화동 사람들이 은혜 여천여해(如天如海)하여 천하 진동하더라.
무창태수를 불러 예주자사로 이천(移遷)하시고, 자사에게 분부하여 황봉사와 뺑덕어미를 즉각 착대_捉待. 잡아 대령함)하라 분부 지엄하시니 예주자사 삼백육 관에 행관(行關)하여 황봉사와 뺑덕어미를 잡아 올리거늘, 부원군 청루(廳樓)에 좌기_坐起. 관청의 으뜸 벼슬에 있는 이가 나와 일을 잡아 함)하시고 황봉사와 뺑덕어미를 잡아들여 분부하사,
“네 이 무상한 년아, 산첩야심(山疊疊夜深)한데 천지 분별치 못하는 맹인 두고 황봉사를 얻어 가는 게 무슨 뜻이냐?”
즉시 문초하니,
“역촌(驛村)에서 여막(旅幕_주막 따위의 조그마한 집으로 나그네를 치기도 하고 술이나 음식을 팔기도 함)질하는 정연이라 하는 사람의 계집에게 초인(招人_어떤 대상을 꾀어 끌어 냄)함이로소이다.”
부원군이 더욱 대로하여 뺑덕어미를 능지처참(陵遲處斬_머리, 몸, 손, 발을 토막 치는 극형)하신 후에 황봉사를 불러 이르는 말씀이,
“네 무상한 놈아, 너도 맹인이지? 남의 아내 유인하여 가니 너는 좋거니와 잃은 사람은 아니 불쌍하냐? 속설에 탐화광첩(探花狂蝶_꽃을 탐하는 미친 나비)이라 하기로 그러할까. 소당(所當_마땅히 할 바)은 죽일 일이로되 죽일 일이로되 특별히 정배(定配_배소를 정하여 죄인을 유배시킴)하니 원망치 말라. 추일 증시(證示_증명하여 보임)하여 훗세상 사람이 불의지사(不義之事)를 본받게 하지 못하는 일이라.”
하시고 하교하시니라.
만조백관이며 천하백성들이 덕화(德化_덕행으로 감화시킴 또 그 감화)를 송덕(頌德_공덕을 칭송함)하더라.
“자손이 창대(昌大)하고 천하에 일이 없고, 심황후의 덕화 사해에 덮였으며, 만세만세 억만세를 계계승승(繼繼承承_자자 손손이 대를 이어감) 바라오며 무궁 무궁하옵기를 천만 복망(伏望)하옵니다.”
하더라.
황후 천자에게 여쭈되,
“이러한 즐거움이 없사오니 태평연(太平宴_태평한 세월을 축하하는 잔치)을 배설하오이다.”
황제 옳게 여기사 천하에 반포하여 일등 명기 명창(名妓名唱)을 다 불러 황극전에 전좌하시고 만조백관 모아 즐기실새, 천하 제후(諸侯_고대 중국에서 천자에게 일정한 영토를 받아 가지고 그 영내의 백성을 지배하던 작은 나라의 임금) 솔복(率服_좇아서 복종함)하고 사해진보(四海珍寶_천하의 진귀한 보물) 조공(朝貢_옛날 종주국에게 속국이 때맞추어 예물로 물건을 바치던 일)하며, 일등명창 일등명기 천하에 반포하여 거의 다 모았으며, 태평성대 만난 백성 처처에 춤추며 노래하되,
“출천대효 우리 황후 높으신 덕이 사해에 덮였으니 요지일월 순지건곤(堯之日月 舜之乾坤_중국 고대의 요임금의 순임금의 시대)에 강구동요(康衢童謠_중국 요임금이 자신의 정치가 잘 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길거리(康衢)에서 동요를 들어 보고 기뻐했다는 데서 나온 말) 즐거움이, 창해로 태평주(太平酒) 빚어 여군동취(與君同醉_임금과 더불어 취함)하며 만만세를 즐겨 보세. 이러한 태평연에 누가 아니 즐길소냐.”
이렇듯이 노래할 제, 천자며 부원군이 황극전에 전좌하시고, 명무 명창을 패초(牌招_승지를 시켜 왕명으로 신하를 부름)하시와 가무금슬 희롱(歌舞琴瑟 戱弄)하며 삼일을 대연하사 상하동락(上下同樂) 즐긴 후에 천자와 황후와 부원군이며 다 각기 환궁하시더라.
[각설]
이때에 황후며 정렬부인 안씨 동년 동월에 잉태하여 동월에 탄생하며, 둘이 다 득남하신지라. 황후의 어진 마음 자기 앞은 고사하고 부친이 생남(生男)하심을 들으시고 천자께 주달(奏達_임금께 알림)하신대 황제 또한 반기사 피륙_옷감이 될만한 아직 끊지 않은 천을 통틀어 이르는 말)과 금은 채단(綵緞_비단의 총칭)을 많이 상사하시고 예관을 보내어 위문하신대, 부원군이 망팔쇠년(望八衰年_망팔은 여든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의 일흔 한 살을 이르는 말이고, 쇠년은 늙어 기력이 점점 쇠하여 가는 나이를 말함)에 아들을 낳아 놓고 기쁜 마음 측량없어 주야를 모르던 차에, 또한 황제께옵서 금은채단이며 피륙과 명관(命官_임금이 직접 임명한 관리)을 보내어 위문하시니 황공감사하와 국궁배례(鞠躬拜禮_존경의 뜻으로 몸을 굽혀 절하는 예)하고 예관을 인도하여 황은을 못내 축사하신대 부원군이 더욱 기꺼하며, 일변 조복을 갖추고 예관을 따라 별궁에 들어가 황후께 뵈온대 황후 또한 생남하였거늘, 즐거운 마음을 어찌 다 측량하리오.
황후 부친의 손을 잡고 옛일을 생각하며 일희일비(一喜一悲_한편 기쁘고 한편 슬픔)로 즐거워 하매 부원군도 또한 슬퍼하시더라.
이 때 부원군이 집에 돌아와 명관을 따라 옥계(玉階_대궐 안의 섬돌)하에 다다르니 상(上_임금)이 극히 칭찬하시되, 들으매 경이
“노래(老來_늘그막'을 달리 이르는 말)에 귀자(貴子)를 얻은 바, 또한 짐의 태자와 동년 동월의 동근생(同根生_근본이 같은 사람)이니 그 아니 반가우리오. 언야선명(言也鮮明_말이 똑똑하고 명확함)하면 타일에 국사를 의론하리라.”
하시더라. 군이 여쭈되,
“석일(昔日)에 공자께서도 하시기를 생자가 비난양자난이오 양자가 비난교자난이라(生子非難養子難 養子非難敎子難_아들은 낳기보다 기르기가 어렵고, 기르기보다는 잘 가르치기가 어렵다는 말)' 하였으니 후사를 보사이다.”
하고 물러나와 아이 상을 보니, 활달한 기상(氣像_사람이 타고난 기개나 마음씨, 또는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몸가짐)이며 청수(淸秀_얼굴이 깨끗하고 준수함)한 골격이 족히 옛사람을 본받을러라.
이름을 태동이라 하여 점점 자라 십 세에 당하매 총명 지혜가 무쌍(無雙_서로 견줄 만한 짝이 없음)이오 시서음률(詩書音律_시와 글씨 그리고 음악)을 능통하매 부모의 사랑함이 장중보옥(掌中寶玉_손 안에 든 보물이란 뜻으로, 자식이나 소중히 여기는 물건을 보배롭게 여김을 비유한 말)에다 비할소냐.
무정세월약류파(無情歲月若流波_무정한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라 십삼 세를 당한지라. 이 때 황후 태자를 여의고자_결혼시키고자) 하사 동월 동일에 구생(舅甥_외삼촌과 생질)간 혼사를 주달하신대 황제 기꺼하사 광문(廣問_널리 물어 봄)하라 하신데, 이때에 마침 좌각로(左閣老_당나라,명나라 때의 재상의 일컬음) 권 성운이 일녀를 두었으되, 태임의 덕행이며 반희의 재질을 가졌으며 인물은 위미인(衛美人_위장공(衛莊公)의 처 장강(莊姜)을 말하는 듯)을 압두(壓頭_서로 비교되는 상대자를 압도해서 앞서거나 또는 첫째 자리을 차지함)할지라. 이 때 연왕(燕王_중국 하북성 지방을 맡은 지방을 맡은 제후국 연국의 왕)이 공주 있으되 안양공주라. 덕행이 탁이(卓異_보통사람 보다 뛰어나게 다름)하고 백사 민첩함을 듣고 상이 전교하사 연왕과 권각로를 입시하야 어전(御殿)에서 구혼하신대, 공주와 소저 또한 동갑인데 십육 세라. 기꺼이 허락하거늘, 상이 하교하시되,
“권소저로 태자의 배필을 정하시고 연왕의 공주로 태동의 배필을 삼음이 어떠하뇨?”
하신대 좌우(左右) 다,
“옳사이다.”
주달하거늘, 황후와 부원군이며 조정이 즐기더라.
즉시 태사관을 명하여 택일하라 하신대, 춘삼월 망일(望日)이라. 국중의 대경사라. 길일이 당하매 대연을 배설하고, 각장 제후와 만조백관이 차례로 시위하고, 두 부인은 삼천궁녀가 시위하여 전후좌우로 옹위 하여 교배석(交拜席_혼인 때 신랑과 신부가 서로 절을 주고받는 예를 하는 곳)에 친영(親迎_몸소 나아가 맞음. 신랑이 신부를 친히 맞음)할새, 일월같은 두 신랑은 백관이 모셨으니 북두칠성의 좌우보필이 모신 듯하고, 울태화용 고운 태도 녹의홍상(祿衣紅裳_연두저고리에 다홍치마. 곧 젊은 여자의 곱게 치장한 복색)에 칠보단장(七寶丹粧_여러 가지 패물로 몸을 꾸밈)이며 각색 패물 요상(腰上)으로 느리우고 머리에는 화관(花冠_칠보로 꾸민 여자의 관)이라. 삼천 궁녀 모인 중에 일등 미색을 초출(抄出_골라서 뽑아 냄)하여 두 낭자를 좌우로 모셨으니 반드시 월궁항아라도 이에서 더 휘황치 못할러라. 금수단광무장(錦繡緞廣모帳_아름답고 화려한 직물로 만든 넓은 장막)을 반공(半空)에 솟아 치고 교배석에 친영하니 궁중이 휘황함을 일구난설(一口難說_한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려움)이라.
두 신랑이 각기 처소로 좌정하니 동방화촉(洞房華_신랑이 첫날밤에 신부 방에서 자는 일.燭) 첫날밤에 원앙이 녹수를 만나듯 쇄락(灑落_기분이 시원하고 깨끗함)한 정으로 은은히 밤을 지내고 나와 태자는 각로를 먼저 보니 각로 양주(兩主_부부) 즐거워함을 이루 측량치 못할러라.
즉시 태자를 연통(緣通_연락하기 위한 기별이나 통지)하여 조회에 국궁(鞠躬_존경의 뜻으로 몸을 굽힘)하니 상이 즐거워 하사 부원군을 입시하여 동좌(同座)에 신행 인사를 받으시고, 만조백관을 조회 받으신 후에 하교하시되,
“짐이 진작 태동을 조정에 들이고자 하되 미장지전(未丈之前_아직 어른이 되기 전. 아직 장가를 들기 전)이라 지어금 무명직(至於今無命職_지금까지 관직을 내리지 않았음)하였으니 경(卿-임금이 2품 이상의 관원에게 자신을 일컫는 말)등의 소견에는 어떠하뇨?”
하신대, 문무백관이 주왈,
“인야출등(人也出等_다른 사람들중에서 출중함)하오니 즉교(卽敎_즉시 전교를 내림)하옵소서.”
하거늘, 상이 즉시 태동을 입시하사 품직을 내리실새 한림학사 겸 간의대부 도훈관에 이부시랑을 하게 하시고 그 부인은 왕렬부인을 봉하시고, 금은 채단을 많이 상사하시고 왈,
“경이 전일은 서생이라 국정을 돕지 아니하였거니와 금일부텀은 국록지신_國祿之臣. 나라의 녹을 받는 신하)이라 진충갈력_盡忠竭力. 충성을 다하여 있는 힘을 다해 애씀)하여 국정을 도우라.”
하신대, 시랑이 국궁하고 물러나와 모친께 뵈온대 즐기고 반기는 마음이야 어찌 다 형언하리오.
또 별궁에 들어가 황후전에 배사(拜謝_삼가 사례함)한대, 황후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나 말씀하시되,
“신부가 어떠하더뇨?”
하신대 피석(避席_공경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웃어른을 모시었던 자리에서 일어남) 대왈,
“숙행(淑行_정숙한 행실)하더이다.”
황후 또 문왈,
“금조 입시에 무슨 벼슬 하였느냐?”
대왈,
“이러이러 하였나이다.”
황후 더욱 즐거워 태자와 시랑을 데리고 종일 즐긴 후에 석양에 파연(罷宴_잔치를 끝냄)하시고 왈,
“쉬이 신행(新行_신부를 신랑 집으로 데려감)하라.”
하시거늘, 신랑이 대왈,
“쉬이 데려다가 부모 전에 영화를 보시게 하오리다.”
한대, 황후 대열(大悅)하사,
“내 말도 또한 그 뜻이로다.”
하시더라.
이날 태자와 한림이 물러나와, 수일 후 부원군이 택일하여 왕렬부인을 신행하시니 부인이 구고(舅姑_시부모) 양위 전에 예로써 뵈온대 부원군이며 정렬부인이 금옥같이 사랑하시더라. 별궁을 새로 지어 왕부인을 거처하시게 하니라.
각설 이 때 한림이 낮이면 국사를 도모하고 밤이면 도학(道學)을 힘쓰니 무론대소사서인(毋論大小士庶人_대인, 소인, 선비, 평민 할 것 없이 모두) 하고 칭찬 아니 할 이 없더라.
이럭저럭 한림의 나이 이십 세라. 이때에 상이 한림의 명망과 도덕을 조신에게 문의하시고, 일일은 심학사를 입시케 하사 가라사대,
“짐이 들으매 경의 명망과 도덕이 국내에 진동한지라. 어찌 벼슬을 아끼리오.”
하시고 승품(昇品_품계를 내림)하사 이부상서 겸 태학관을 시키시고,
“태자와 동유(同遊)하라.”
하시며 그 부친을 또 승품하여 남평왕을 봉하시고, 정렬부인 안씨로 인성황후를 봉하시고, 또 상서 부인은 왕렬부인 겸 공렬부인을 봉하시니, 남평왕이며 상서와 인성왕후며 다 황은(皇恩)을 축사하고,
“우리 무슨 공이 있어 이다지 품직(品職)을 하느뇨?”
하며 주야 황은을 송덕하시더라.
이때에 남평왕이 연당팔순(年當八旬)이라. 우연히 득병하여 백약이 무효라. 당금(當今)의 황후의 어지신 효성과 부인의 착한 마음 오죽이 구병(救病_병구완을 함)하랴마는 사자는 불가부생(死者不可復生_죽은 자는 다시 살아나지 않음)이라 칠일 만에 별세하시니 일가가 망극(罔極_망극지통(罔極之痛)의 준말로 그지없는 슬픔)하고, 또한 황후 애통하사 황제께 주달하니 상이 왈,
“인간팔십고래희(人間八十古來稀_사람이 팔십까지 사는 것은 고래로 드문 일임)니 과도히 애통치 마소서.”
하시고,
“명릉후원에 왕례(王禮)로 안장하라.”
하시고,
“왕후는 삼년 거상(三年居喪_3년 동안 상 중에 있음)이라.
하시니라.
부원군의 조년(早年) 고생하던 일을 생각하면 무슨 여한이 있으리오. 에화 세인들아 고금이 다를소냐. 부귀영화 한다 하고 부디 사람 경(輕)히_업수이) 마소. 흥진비래 고진감래(興盡悲來 苦盡甘來_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고생 끝에는 낙이 온다.)는 사람마다 있느니라. 심황후의 어진 이름 천추의 유전(遺傳)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