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벌써 입춘(立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지난(2월12일)진짜 새해 시작의 '설'을 맞이하였습니다.
봄이 저만치 마당가에 다가온 느낌입니다.
그러면서도 언제라도 성난 구름이 찬바람과 함께 몰려와
눈발을 내리쏟을지도 모를 그런 날씨입니다.
그런 날씨에 꽃을 피우는 매화가 있습니다.
智異山 동쪽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단속사지(斷俗寺址)에 가면 600살이 훨씬 넘은 매화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고려 말기의 문신(文臣)이었던 통정(通亭) 강회백(姜淮伯 ;1357∼1402)이 심은 매실 나무입니다.
그 시절 의정(議政)을 담당하는 재신(宰臣)을 일컬어 정당문학(政堂文學)이라 하는데, 강회백이 곧 그러한 사람이었기에
그가 단속사 마당에 심어 오늘까지 오랜 풍상을 견디며 봄의 화신(花信)으로 매화꽃을 피우는 그 나무를 ‘정당매(政堂梅)'라 부릅니다.
그 절 마당에 매화를 심고 책을 읽던 강회백이 읊은 시(詩)가 있습니다.
천지(天地)의 기운이 돌아가고 또 오니,
하늘의 뜻을 납전매(臘前梅)에서 보는구나.
바로 큰 솥 가득 맛있는 국을 끓이는데,
하염없이 산 속을 향해 졌다가 또 피는구나.
이 시에 나오는 ‘납전매(臘前梅)'는 줄여서‘납매(臘梅)'라 부릅니다.
섣달, 즉 납월(臘月)에 추위 속에서 피는 매화를 일컬어 납매라 하는데,
설매(雪梅) 또는 설중매(雪中梅)라 부르기도 합니다.
또 이른봄의 춘매(春梅)와 구분하여 동매(冬梅)라 부르기도 하는데,
춘매 보다는 동매가 그 은둔자적 생태로 선비의 기상에 제격입니다.
납매의 그 냉염(冷艶)이 선비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뜻을 납매에서 보노라"면서 通亭 강회백은 뜬 금 없이
“큰 솥 가득 맛있는 국을 끓이노라"고 시를 읊습니다.
한 겨울 사군자의 으뜸인 매화꽃을 옆에 두고 맛있는 국을 한 솥 끓인다니,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여기서 매화와 국의 관계를 알아봐야 합니다.
맛있는 국을 끓인다는 것은
좋은 재료에다가 아마도 갖은 양념을 잘 넣어 적당한 시간 알맞은 불을 잘 때야 할 일입니다.
재료와 양념도 중요하고 끓이는 사람의 조화력 또한 중요하지요.
봄이 가득 채워오기까지는 아직 저만치 볕이 머뭇거리는 때에 매화 피고 있는데, 선비가 국을 끓이는 노래로써 현실을 논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고독한 이상(理想)의 소지자가 현실을 향하여 그 이상의 접점을 가리키고 있는 노래인 것입니다.
매화꽃은 선비의 기상입니다.
그 기상으로 현실의 갈등을 조정하고자 고민하는 심정을 강회백은 그렇게 노래한 것입니다.
현실 정치라 할 맛있는 국을 끓이는 일은 조화와 균형감으로 조정해야 하는 일입니다.
중국에서는 그 맛있는 국을 끓일 때 기본적으로 소금과 매실을 썼습니다.
서경(書經)에서는 “국을 끓이려느냐. 우선 소금과 매실을 잘 써라."라고 했습니다.
소금의 짠맛과 매실의 신맛을 적절히 조화시킬 줄 알아야 맛있는 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금과 매실이 기본 조미료가 되는 것이었지요.
이 기본 조미료는 그래서 조화(調和)를 뜻하여 ‘염매(鹽梅)'라 일컬어집니다.
간을 맞추고 입맛을 돋우는
짠맛과 신맛의 조화가 음식의 맛을 기본적으로 좌우하는 것이지요.
간단히 말하여 소금과 초가 어우러져 음식의 맛을 내듯이
사람 사는 일을 조화롭게 하는 일을 일컬어 ‘염매(鹽梅)'라 하는 것이었지요.
사람 사는 일의 조화 요소, 그것을 ‘염매'라 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의 조화술(調和術),
소금과 매실처럼 인재를 잘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염매'는 그래서 인재(人材)를 뜻하게도 되었습니다.
“아직 눈발이 오락가락하는 현실에서도 매화는 오랜 추위 속의 고독으로 기상을
가슴에만 품던 선비의 방안에 먼저 화신(花信)을 들여주듯이,
이제 새날을 꿈꾸는 이상(理想)을 현실(現實)의 마당에 펼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6백년 전의 선비가 심은 매화가 그 사연을 전해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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