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 외 1편
김창훈
모서리가 말라가고 있다 방안에서는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는다 잎이 입으로 변해 침묵에 관해 이야기한다 수다스럽던 입이 멈추면 방안은 어두워진다
라디오에서는 사연을 말하고 음악이 흘러나온다 눈동자가 별이 빛나지 않는 밤에 멈췄다 나무를 해부하자 눈과 눈이 마주친다 사연을 듣기 위해 창문이 떨린다
창문의 안쪽은 내일과 오늘이 같고 형광등은 어제처럼 반복해서 깜박인다 입안에서 알이 깨지고 비린내가 쏟아진다 벽에는 새의 상처가 걸려있다 흔들리는 둥지를 깃털만이 지키고 있다 바람이 달려든다
잠을 자다가 비명을 지른다 균형을 잃어버린 뒤 옥상에서 떨어지는 악몽을 꾼다 새벽마다 베개를 껴안는 버릇이 있다 다리를 오므려서 끌어당기는 사이, 창밖의 그림자가 소란스럽다
검은 가면을 쓰고 이야기하는 법을 배운다 나는 마우스피스를 끼고 그림자를 상대한다 성대를 잃어버린 나무 사이로 듬성한 깃털이 떨어진다
방안에 또 하나의 방이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철야
밤이 되었다
하루의 문장이 소금에 절인 듯 쪼그라든다
바다를 피해 사막으로 갔다
천장에는 달과 별이 보이지 않는다
목이 말랐고 모래는 차갑다
낮에 보였던 발자국을 바람이 가져갔다
방향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
사막과 달의 색은 잘 어울린다
모래에서 살냄새가 난다
얼굴을 묻어버리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다
한쪽은 사라지고
눈썹 사이에서 시계 소리가 난다
먼 곳으로부터 가까운 곳을 기억하는 습관
내일의 문장을 여러 번 연습해 본다
자주 몸을 뒤집는다
입에서 모래가 씹힌다
새벽 네 시,
내가 나를 밀어내고 있다
김창훈
2023년 시와산문 신인문학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