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서해는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활동가이다. 이 글은 2026년 녹색순례 ‘빼앗긴 갯벌에도 봄은 온다’를 마치고 돌아와 순례의 기억을 떠올리며 쓴 글이다.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
해의 시간으로 시작하는 아침입니다. 방 안을 밝히는 것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뿐 입니다. 먼저 눈을 뜬 이가 침낭과 깔개로 꾸려진 단출한 이부자리를 사부작 정리하는 소리에 알람보다 조금 일찍 깨어납니다. 세수와 양치로 간단히 씻고 나와 전날 손빨래한 양말과 속옷, 옷가지를 살핍니다. 축축한 것들은 떠나기 전 조금이라도 더 말려보기 위해 온기가 남은 바닥을 더듬으며 얼른 널어봅니다.
가방을 챙기다 보면 벌써 선식 받을 시간입니다. 미숫가루와 두유를 적절히 섞어 간단히 배를 채웁니다. 곧바로 어제 말려둔 도시락통을 찾아 밥과 반찬을 적절히 나누어 담습니다. 순례 반찬은 냉장고에 두지 않아도 상하지 않는 것으로 각자 챙겨오고, 그중에서 빨리 먹어야 하는 순서로 점심 도시락을 쌉니다. 선식을 먹고, 도시락을 챙기고, 꾸려둔 짐을 밖으로 빼면 숙소를 정리할 차례입니다. 전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걸레와 쓰레기봉투를 들고 이곳저곳에서 분주합니다.
정돈이 끝나면 하나둘 마당에 모입니다. 오늘 걷게 될 길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나누고, 식사와 체조를 담당하는 모둠에서 나와 몸풀기를 진행합니다. 모르는 이가 없는 국민체조부터 자신이 아팠던 경험으로 익힌 자세, 전날 밤 영상으로 공부한 체조까지 동원해 오늘도 모두 무사한 몸으로 걸어주길 기도합니다. 순례단을 보살피는 지원팀과 인사하면 드디어 길을 나설 차례입니다.
큰 몸집만큼 느리게, 낮게
맨 앞에는 길을 안내하는 순례 대장과 깃발을 든 이가 걷습니다. 행렬의 앞과 뒤에서는 조끼와 경광봉을 든 이가 찻길에서 안전히 걸을 수 있도록 차량을 통제하고, 차가 오는 것을 알아차린 즉시 크게 외쳐 알립니다. 길을 건널 때는 최대한 모여 한 번에 걷지만 신호등의 깜박임은 어김없이 우리를 재촉합니다. 도로 위에서 한없이 취약해진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오는 차를 대신 봐주고, 뒤떨어진 누군가와 함께 걷는 서로입니다. 차량이 적은 둑방길, 마을길로 들어서면 긴장에 움츠러들었던 몸이 널널해집니다.
봄답지않게 빗방울이 세찼던 어느 날 인도가 달팽이로 가득했고, 해가 쨍하던 어느 날은 지렁이가 아스팔트 위에 길게 늘어져 있었습니다. 밟히는 달팽이가 하나라도 생길까 손짓으로 알려주기 바빴고, 뜨거운 온도에 지렁이가 놀라지 않을까 나뭇잎을 잔뜩 가져다 옮겨주었습니다.
옆을 지나쳐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 그 무엇보다 느립니다. 적게는 20km 모자라게, 많게는 30km 가까이 오늘의 숙소까지 걸어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지만 빠르게 도착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가장 느린 속도지만 걸어서 가지 못할 곳은 없습니다. 걸으면서 만나는 존재들을 허투루 대할 수 없습니다. 이름을 찾고, 생김새를 익히고, 이곳에 있는 이유를 헤아립니다.
꿋꿋하게 갯벌이라 부르는 이유
부안군의 해창갯벌에는 ‘장승뻘’이라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2001년부터 4대 종단이 컨테이너로 세운 법당, 성당, 교회, 교당이 아직 입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한때는 바닷물이 축대까지 들어왔지만 이제는 간데없고 갯벌의 회복을 염원하는 수십의 장승으로 가득한 벌판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지킨 장승은 누워 흙으로 돌아가지만 곧 또 새로운 장승이 그 옆을 채웁니다.
장승 뒤로는 새만금 잼버리 부지로 들어가는 도로가 선명하지만 이곳에 있을 때만큼은 모든 것이 온전해지는 기분입니다.
도로 너머로는 한때 ‘산’이라 불리던 해창산이 보입니다. 해창산을 깎아 해창갯벌을 메우는 데 썼습니다. 산과 갯벌에 깃들어있던 생명들이 ‘간척’이란 이름 아래 한꺼번에 묻혔습니다. 깎여나간 산보다 무지하고, 바다를 메운 흙보다 오만한 짓입니다.
누군가는 활동가가 되기 전, 무엇으로 살지 고민하던 시기에 이 자리에서 모습을 잃어가는 갯벌을 목격했습니다. 누군가는 활동가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삽을 들어 방조제를 허물었습니다. 누군가는 이 싸움이 100년은 갈 것임을 알고 시작했으며, 또 누군가는 언젠가 방조제가 부서지는 날이 올 거라 확신합니다.
곁을 지키는 수많은 누군가들이 있는 한, 새만금은 여전히 갯벌입니다.
새만금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천수만이 있습니다. 바닷물이 통하지 않아 쌓인 오니는 물을 방류하는 날마다 악취를 퍼뜨립니다. 이곳에서는 최근 역간척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어딘가에서는 느리지만 되돌리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장승뻘에 바닷물이 들어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만큼, 다시 바다가 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습니다. 장승뻘 사이를 거닐며 다시 떠날 기운을 차린 우리는 언젠가 그랬듯 바닷바람에 닳아 없어진 글자를 채우며 장승께 인사합니다.
“갈대밭에 들어가지 마라, 호랑이 물려간다.”
수라갯벌은 여전히 생동합니다. 갯벌 못지않게 염습지에도 수많은 생물이 서식합니다. 염생식물과 습지식물이 한데 섞이며 양서류와 조류, 포유류까지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라에 머문 몇 시간 동안에도 갈대 사이를 스치는 고라니, 방게의 집, 누군가의 뼈와 수많은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이곳을 감히 갯벌보다 못하다고말할 수 있을까요?
갯벌 뒤 배후습지는 바다와 육지의 영양분을 교환하고 오염을 걸러냅니다. 논, 배후습지, 자연제방, 염습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그물코와 같이 얽혀있습니다. 우리는 그 관계를 보지 않은 채 끊어내고 바꿔버립니다. 흙으로 된 제방에 콘크리트를 바르는 것처럼요. 그럼에도 자연은 시간을 들여 오래된 인공 구조물 마저 포용합니다. 낡고 부서진 틈새마저도 다시 생명이 머무는 자리가 됩니다.
민물가마우지는 새만금 간척을 위해 쓰이고 버려진 옥녀봉 채석장에 모여 살아갑니다. 먹이를 찾아 수라갯벌을 오가는데 그 사이에는 미군과 활주로를 공동 사용하는 군산공항이 있습니다. 먹이 활동을 마치고 옥녀봉 으로 돌아가는 민물가마우지는 군산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와 하늘에서 교차합니다. 군산공항 옆을 걷는 동안 귀를 막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소음이 몇 차례 헤집고 지나갔고, 옥녀봉 으로 돌아가던 민물가마우지 두 개체가 마주 오는 비행기에 방향을 잃고 어지러이 날았습니다.
인근에 거주하는 누군가는 소음피해 보상으로 달에 3만 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겨우, 고작 그만큼의 피해를 인정받는데 인간 아닌 그들은 또 얼마나 절하되고 있을까요. 수라갯벌에 들어가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도 머리 위로 비행기 한 대가 또 날아갑니다.
부둥켜안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활동가에게는 현장이 있습니다. 두 번째 케이블카만은 막아야 하는 설악산, 4대강 재자연화를 위해 700일 동안 천막을 친 금강,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로 파괴된 맹방해변, 신공항을 짓겠다는 가덕도, 탈플라스틱 대책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는 국회의사당, 수화기와 화면 너머 당신과 소통하는 그 모든 곳이 우리의 현장입니다.
저마다의 현장에서 무진히도 애씁니다. 그럼에도 농성장에 방문하지 않아서, 기자회견에 연대하지 않아서, 최근 상황에 빠삭하지 않아서 떠올리기만 해도 미안함에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몇 번이고 깨진 헛된 꿈에도 기어코 헤집어놓고 말겠다는, 아무리 되새겨도 와닿지 않는 이름을 가진 “새만금”이 그중 하나입니다. 부채감이 나를 더 무겁게 만들기 전에 그곳에 있고 싶었고 운 좋게도 녹색순례로 진득한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마지막 숙소를 앞에 두고 쉬어간 갈숲에서 누군가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새만금에 대해 뭐라도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전북의 동지들에게 미안했다고. 삼보일배, 오체투지가 끝나고 나면 나에게도 새만금에 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관계가 생기며, 이 길은 그 관계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라고.
함께하지 못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은 모두 같습니다. 그러니 그런 마음은 접어두고 이 땅 곳곳으로 갑니다. 그곳을 지키는 동지의 곁으로, 그들을 부둥켜안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닿을 수 있는 곳까지 걷고 또 걷습니다.
기고 : 자연생태팀 서해
문의 : 자연생태팀 김원호 (제26회 녹색순례 대장 / 070-7438-8523, democracist@greenkorea.org)
첫댓글 한달에 고작 3만원 소음피해 보상을 한다니...
동물들에게는 그마저도 아예 없으며 터전을 지킬 권리조차 뺏기려 하고 있으니 ....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