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심랑의 계략(計略)
고묘에는 기이한 변화가 많았다. 주칠칠이 깨어났을 때 그녀의 머리는
숙취 후처럼 어지러웠으며 자기 자신이 습기가 가득찬 석실의 한 귀퉁이에
누워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사지는 비록 묶여 있지는 않았으나
전신은 흐물흐물하여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눈을 돌려 바라보자 심랑과 화예선도 그녀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 듯 꼼짝을 안 하고
있었다.
주칠칠은 깜짝 놀라 외쳤다.
"심랑! 당신......! 당신도 이 지경이 되었어요?"
그녀는 자기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심랑이 이러한
지경에 빠진 것을 보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심랑이
가볍게 웃으며 머리를 가로젓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평상시처럼 태연하였다. 화예선의 얼굴에는 오히려 득의에 찬
기색이 가득했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이 미향도 화경선이 독문비방으로 조제한 것이지. 어떻게 조제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그 이름은 신선일일취(神仙一日醉)라고 하지.
비록 신선이라 할지라도 조금이라도 이 미향의 냄새를 맡기만 한다면 하루
이상을 취한다는 뜻이지. 정신은 멀쩡하다 할지라도 사지가
흐물흐물하여서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지. 너희들이 만약 지금이라도
영원히 이곳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내가 화경선을
만났을 때 너희 둘을 위해서 약간의 변명을 해줄 수 있어."
주칠칠이 온 힘을 모아서 큰소리로 말했다.
"헛소리 마라!! 네가 이렇게 은인을 배신하고 은혜를 모르는 노파인 줄은
생각지도 못했구나! 무림계 인사들이 너를 죽이려고 하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군!"
화예선이 노한 소리로 말했다.
"악랄한 기집애! 이러한 지경에 빠져서도 감히 나를 욕하다니!"
석문이 천천히 열리면서 한 줄기의 눈을 부시게 하는 등불빛이 문 밖에서
비쳐 들어왔다. 화예선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됐어! 됐어! 우리 큰오빠가 오셨군! 너의 성질이 언제까지 그렇게
표독스러운지 한 번 보기로 하자."
불빛이 '번쩍' 하더니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비췄다. 그 불빛은 어떠한
등에서 나오는 것인지 너무 강렬했다. 불빛이 너무 강렬하여 그들은 순간
눈을 뜰 수도 없을 지경이었으며, 눈 앞에 어떠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때 한 명의 회색옷을 입은 인형이 번쩍
날아들어와 거만한 모습으로 그 등불 뒤에 앉으면서 천천히 말했다.
"세 분이 멀리서 여기까지 오시는데 본인이 마중하지 못한 점
용서하시오."
그의 말은 비록 겸양하는 투였으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워 조금의
인정도 없어보였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모두 이미 혀끝에서
뭉쳐져서 꽉 다문 이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화예선은 사람 모습이 번쩍 그들이 있는 석실 안으로 날아 들어오자
큰오빠가 온줄 알고 얼굴에 기쁜 기색을 드러내었다. 그렇지만 그
회의인의 목소리를 듣고 얼굴색이 변하여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누구냐? 우리 큰오빠 화경선의 문하인가? 빨리 나의 미약을
해독시켜라."
회의인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다만 냉랭한 목소리로 말할 뿐이었다.
"세 분께서 먼길을 달려서 여기까지 오셨으니 마음 푹 놓으시고 여기에서
편히 쉬시오. 무슨 필요한 것이 있거든 한 마디 분부만 하시면 본인이
금방 사람을 시켜서 보내드리겠소."
주칠칠은 마음이 조급해져서 얼굴마저 붉어졌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우리를 여기까지 끌어들인 목적이 도대체 뭐지?
너......, 너는 도대체 우리를 어떻게 할 작정이지? 죽일 것인지 살릴
것인지 빨리 말해라!"
회의인의 목소리가 그 등불 뒤에서 들려왔다.
"강남(江南) 주백만(朱白萬)에게 귀한 딸이 있다고 들었는데 바로
아가씨였군......? 귀한 몸으로 이렇게 누추한 곳에 왕림하셨으니, 만나서
반갑소!"
주칠칠이 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뭐가 반갑다는 거지?"
회의인이 말했다.
"무림계에 이미 이름이 알려진 명인들이 적지않게 본인의 청에 의해
이곳에 올 수 있었소. 본인이 왜 그분들을 청해 왔는지 그리고 왜 세
분들을 청해 왔는지는 세 분이 편히 쉬신 다음에 말할 예정이었으나, 주
아가씨가 먼저 물으셨기 때문에 본인이 미리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더구나 후일 본인은 주 아가씨의 도움을 받을 일이 많으니."
주칠칠이 큰소리로 말했다.
"빨리 말해라."
이때 그녀가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었다면 상대기 누구인지간에
뛰어 일어나 상대방과 생사의 대결을 펼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회의인은
목소리를 조금도 바꾸지 않고 얼굴색도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인이 여러분들을 이곳에 청한 것은 조금도 악의는 없소. 세 분께서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라도 돌아가셔도 좋소. 본인은 절대 돌아가시는 것을
막지 않을 뿐 아니라 송별연까지 베풀어드리겠소."
주칠칠이 멍청한 자세로 생각했다.
(그것 참 이상한데......!)
회의인은 계속 이어서 말했다.
"그렇지만 세 분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간단한 편지 한 통만 써주기를
원하오."
주칠칠이 말했다.
"무슨 편지말이오?"
회의인이 말했다.
"바로 세 분이 편안하다는 것을 집에 알리는 편지를 말이오. 그 편지에 세
분 모두가 매우 안전한 상태에 있으며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을
쓰시오. 그리고 세 분의 안전에 대해서는 미력이나마 본인의 힘이 약간
가미되었으니, 만약 본인에게 조금이나마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면
편지에 몇 글자만 더 넣어주시오. 그 내용은 부모형제에게 약간의 돈을
보내서 본인의 세 분에 대한 보호에 대해서 보상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오."
주칠칠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너는....... 너는....... 인질을 잡고 돈을 긁어내는 녀석이로구나?
회의인의 목구멍에서 마치 짧고 날카로운 늑대소리와 같은 웃음소리가
순간 들렸으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정하게 들려나왔다. 그것은
우아하고 부드러우나 상당히 냉혹한 평정이었다. 회의인은 이어서 천천히
말했다.
"위대한 화가를 아가씨는 어떻게 장인(匠人), 혹은 길거리의 화가들로
비유할 수 있단 말이오? 본인과 같은 금은수집가(金銀收集家)를 아가씨는
어떻게 인질범이란 말로 표현한단 말이오?"
주칠칠이 말을 받았다.
"금은수집가? 흥! 흥! 미친 녀석!"
그러나 회의인은 화도 내지 않고 여전히 천천히 말했다.
"본인이 그렇게 장기간에 걸친 계획을 세워서 여러분들을 청해
왔는데......, 또 여러분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으며 이렇게 주도면밀하게
대접하고 있는데....... 이 몇 가지 점에 근거해서라도 세 분에게 몇 푼
안 되는 돈을 요구하면서 본인은 상당히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끼고 있소.
그 몇 푼 안 되는 돈이 아깝다고 말한다면 어찌 본인이 상심하지
않겠소?"
심랑이 미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말도 맞소. 그런데 귀하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 돈을 요구하는 거요?"
회의인이 말했다.
"물건에는 귀하고 천한 것이 있으며 사람도 고귀한 신분과 비천한 신분이
각자 다르오. 세 분의 몸값은 당연 많고 적음이 있겠죠. 방천리나 전령송
그런 평범하고 어리석은 자에게 본인이 많은 은자를 요구한다면, 도리어
본인이 그자들의 신분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 셈이 될 것이오. 본인은 그런
일은 절대 할 수가 없소."
그는 돈을 요구하면서 도리어 체면을 세워주는 척 하고 있었다.
주칠칠은 그의 말을 듣고 화도 나고 우습기도 하여 참지 못하고 물었다.
"도대체 얼마를 요구하시는 거죠?"
"본인은 전령송 등에게는 십오만 냥을 요구했소. 그렇지만
아가씨께는......, 아가씨께는 적어도 백오십만 냥은 되야 할 거요."
주칠칠이 놀라서 말했다.
"백오십만 냥이오?"
"그렇소. 아가씨께서 이처럼 총명하고 고귀한 분인데, 전령송 등보다 열
배는 더 받아야 하지 않겠소? 본인이 만약 이 백오십만 냥에서 조금이라도
액수를 낮춘다면 바로 아가씨를 무시하는 것이 될 것이오. 보건대
아가씨도 절대 본인이 아가씨를 무시하도록 놔두지는 않겠지요?"
주칠칠은 어리벙벙해져서 한참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노한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헛소리! 당신. 당신은 미친 사람이에요."
그러나 이미 회의인의 얘기 대상은 심랑에게 돌아간 듯 그녀가 뭐라고
욕하든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이 분 공자의 용모는 옥을 깎아 만든 나무가 바람 중에 서 있는 듯, 다른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빼어난 기품을 지녔고, 총명하기가 만사를
꿰뚫어보는 듯한 분이니, 본인이 아가씨와 마찬가지로 백오십만 냥을
요구한다 해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겠지요?"
심랑이 대소하며 말했다.
"고맙소! 고맙소! 귀하께서 이처럼 나를 높이 평가해 줄 줄은 몰랐군요.
본인은 당신에게 감격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소. 백오십만 냥 정도가
대단한 숫자겠소? 그 정도는 충분히 드릴 수가 있겠지요."
회의인이 날카롭게 웃으면서 말했다.
"공자께서는 과연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시는 분이군요. 이 분 화, 화
화......."
화예선이 대갈했다.
"화 뭐란 말야? 나한테도 돈을 요구하겠다는 거요?"
"당신의 외모는 비록 난장이 같고 늙고 추해 볼품 없지만, 그렇다고 한
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화예선이 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개 같은 자식, 짐승 같은 자식, 너...... 너......."
회의인은 화예선의 욕지거리에 개의치 않고 계속 자기 말만 할 뿐이었다.
"당신은 자신을 너무 낮춰보지만, 본인의 생각은 다르오. 적어도 당신에게
이삼십만 냥은 요구해야 되겠소. 그래야 무림계에서의 당신의 명성에
조금이라도 경의를 표하는 것이 되지 않겠소?"
주칠칠의 가슴에는 분노와 조급한 마음이 가득차 올랐고 화예선의
이마에는 푸른 핏줄들이 울근불근 솟아나왔다.
"짐승 같은 자식! 우리 큰 오라버니께서 오시면 네 놈의 근육을 한 조각
한 조각 뽑아내고, 껍질을 다 벗기고, 천 가닥 만 가닥으로 찢어서
죽여버릴 것이다."
"당신의 큰 오라버니가 누구요?"
"화경선! 모른단 말이냐?"
"화경선? 그렇소. 그는 확실히 약간의 재주는 있었지요. 그렇지만 아주
오래 전 형산싸움에서 이미 죽었소. 본인은 다른 것은 몰라도 귀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니오."
화예선이 노해서 부르짖었다.
"우리 오라버니는 여기를 주재하시는 분인데, 네가 감히......."
"이곳을 주재하는 사람은 바로 본인이오!"
그의 목소리는 담담하고 낮았으나 다른 사람의 말을 자르는 힘이 있었다.
화예선이 몸을 부르르 떨었으나, 순간 곧 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헛소리! 짐승 같은 녀석! 화경선이 죽었다면 그 쉽게 부서지는 보석과
신선일일취 같은 미혼 약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단 말이냐?"
회의인이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했다.
"그것은 바로 본인이 직접 만든 것이오."
화예선의 얼굴색이 참담하게 변해서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말 ! 나를 속일 생각은 하지 마라. 이 세상에 우리 큰오라버니를
제외하고는 이 독문비법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화경선! 오라버니! 당신은 어디......?"
갑자기 한줄기 바람소리가 들리더니 그 바람 소리는 그녀의 목 아래 쇄골
좌측에 있는 아혈(啞穴)을 정확히 맞았다.
화예선이 "...... 있어요?" 라는 말을 끝맺기도 전에 그녀의 목소리는 목
안에 맴돌며 더이상 한 마디도 뱉어낼 수 없었다.
회의인의 격공타혈(隔空打穴) 수법의 악독함과 정확함은 이미 일반 무림
고수가 꿈에도 꿀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회의인이 말했다.
"본인이 무례를 범하는 게 아니고, 다만 화 부인께서 너무 큰 소리를
질러서 몸에 이상이 생길까 염려되어 아혈을 점했을 뿐이오."
주칠칠이 냉소하면서 말했다.
"아주 마음이 좋으신 분이군요?"
"본인이 여러분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이상, 당연히 여러분들의
신체상에 이상이 없도록 해야겠지요."
주칠칠은 그의 조롱하는 듯한 말에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심랑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귀하께서는 시옥관 쾌락왕(快樂王)의 밑에 있는 분이군요. 귀하의 이와
같은 높은 무공과 행동들을 볼 때 틀림없이 쾌락왕의
주(酒),색(色),재(財),기(氣) 사대 사자(四大使者) 중의 재
사자(財使者)임이 분명한 것 같은 데......, 내 말이 맞소?"
그는 회의인의 안색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볼 수 없었으나, 주칠칠은 크게
놀라서 금방 그 말을 받았다.
"당신이 어떻게 그것을 알죠 ?"
심랑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화경선의 독문비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그렇지만 이 분이
독문비법을 알고 있으니, 이것은 다만 한 가지의 방법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거요."
"저는 도대체 어떠한 방법으로 해석한다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데요?"
"아마 화경선이 죽기 전에 독문비법을 옥관 선생에게 남겼으리라는 거요.
이 친구는 금은 수집가로서 옥관 쾌락왕 문하의 재 사자임에 틀림없소."
주칠칠은 놀라서 한동안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심랑이 또 말했다.
"화경선은 죽기 전에 이 고묘의 비밀을 알았을 거요. 그리고 이 고묘의
비밀과 그의 무공이나 독약 제조에 대한 독문비법을 같이 남겼을 거요.
그래서 옥관 선생은 이분 재 사자로 하여금 이곳에 와서 보물을 캐게
하였던 거요. 그렇지만 이 고묘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요언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소? 이 고묘에는 아무 것도 없었던 거요.
재 사자는 급한 마음에 무림 친구들의 돈을 울거낼 계책을 세웠던 거요.
그는 바로 이 고묘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을 이용해서 무림
친구들을 이 고묘로 끌어들였던 거요."
"그렇다면......, 그렇다면 사람들을 이 고묘로 끌어들이고는 어째서
그처럼 사람을 놀래키는 잔재주를 피운 거죠? 그 잔재주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나아가서는 사람들을 이 고묘 속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잖아요?"
"그것도 재 사자의 계책의 하나였소. 이 재 사자는 무림 친구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거요. 이 고묘가 신비하고 공포스러울 수록 무림계의
이름있는 인사들은 더욱 이곳에 와 보고 싶어 할 것을 알았던 거요.
이곳이 조금도 사람을 놀라게 하지 못했다면 이 고묘로 달려올 사람들은
강호의 무명배들에 불과했을 거요. 이들 집안에는 아마 반푼의 은자도
없었을 것이오."
주칠칠이 몇 번 한숨을 불어 내쉬며 중얼거렸다.
"아! 그랬었군. 틀림없어. 아....... 왜 저 사람이 생각하는 걸, 나는
생각해낼 수가 없는 것이지?"
회의인이 한참을 조용히 있더니 비로소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공자의 대명은 심랑이죠? 음! 심 형은 과연 총명한 분이오. 본인이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총명한 분이오."
"귀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본인의 생각이 맞았다는 얘기이겠군요?"
"옛사람이 이르기를 하나를 듣고 셋을 안다면 이미 기재라고 말씀하셨소.
그런데 심 형은 하나를 듣고 일곱을 알 줄이야. 본인은 생각지도 못한
바이오. 화예선의 몇 마디 말을 듣고 모든 비밀을 하나 하나 전부 알아낼
수 있다니 말이오. 다만, 본인의 이름이 재사 김 무망(財使金無望)이라는
것과 내 뒤에 서 있는 것이 나의 제자 아도(阿堵)라는 것, 이 두 가지
점을 제외하고 심 형이 추측했던 것은 조금도 틀림이 없소. 꼭 직접
눈으로 본 것처럼 말이오."
아까부터 그의 뒤에는 한 명의 동자가 서 있었다.
심랑이 말했다.
"김 형께서는 상당히 담백하시군요. "
"심 형과 같이 총명한 사람 앞에서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겠소 ?
그러나 심 형은 총명한 사람은 반드시 하늘의 미움을 받는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소 ? 그래서 재자(才子)는 요절하고, 홍안는 박명하는 법이오."
"그러나 본인은 안심해도 좋다고 생각하오. 김 형께서 본인에게 은자를
요구하는 이상 결코 본인의 목숨을 요구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본인은 본인과 대적할 만큼 똑똑한 사람이 있다는 점이 싫소.
특히 당신, 심 형처럼 똑똑한 사람 말이오!"
주칠칠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 당신,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할 작정이죠?"
김무망이 가볍게 웃자 야수와 같은 날카로운 흰 치아가 드러났다.
"본인이 오늘 그의 목숨은 건드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의 한 손
한 발은 빼앗아야 되겠소. 이 세상에 심 형과 같은 무서운 적이 한 사람
없어진다면, 후일 본인의 잠자리가 더욱 편해질 거요."
주칠칠이 놀라움이 극에 달해서 비명을 질렀으나, 심랑은 도리어 웃으면서
말했다.
"김 형이 그렇게 독한 마음을 쓸 수가 있소?"
"심 형께서는 본인이 자비에 가득찬 부처라고 보시는 거요?"
"그렇지만 김 형이 본인 신상의 머리털 하나라도 그렇게 쉽게 빼앗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김무망이 냉소하면서 말했다.
"본인이 직접 시험해보면 금방 알 수 있겠죠."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심랑이 갑자기 앙천대소하면서 말했다.
"본인은 김 형이 총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소. 그렇지만 지금에야 비로소
김 형이 그렇게 뛰어난 사람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소."
웃음 소리가 갑자기 멈추며, 그는 눈을 들어 김무망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김 형께서는 본인이 정말로 그 신선일일취에 중독됐다고 생각하시오?"
김무망이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그 짙은 연기가 생기자 마자 본인은 즉각 호흡을 멈췄소. 비록 그
신선일일취라는 미혼향이 천하를 떨어 울리게 할 수 있을지라도 본인은
조금도 마시지 않았소."
김무망이 한참을 그 자리에 가만히 있더니 입가에 다시 그 빽빽이 박힌
하얀 치아를 드러내 보이면서 말했다.
"심 형께서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본인은 속일 수 없을
거요. 만약 신선일일취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나 김무망의
포로가 될 수 있었겠소?"
"김 형께서는 그 이유도 모른단 말이오?"
심랑의 얼굴에 웃음이 더욱 짙어지며 이어서 말했다.
"생각해 보시오. 이 고묘 중의 비밀통로는 상당히 복잡하고 위험하오.
본인이 직접 그 통로를 찾는다면 며칠 내로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오. 허나 본인이 그 신선일일취가 스며들어 왔을 때, 그 미약에 취한
듯이 있으면 편안히 다른 사람이 이 통로의 핵심부로 나를 찾아 오지
않겠소? 천하에 이것보다 쉽고 편한 방법이 어디 있겠소?"
순간 김무망의 얼굴색이 약간 변했으나, 입에서는 여전히 냉소를 날리며
말했다.
"심 형의 말은 틀림이 없소. 그러나 본인은......."
심랑이 그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그러나 김 형께서는 어떻단 말씀인가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심랑은 벌떡 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무망의 얼굴은 이미 잿빛으로 변해 있었으나, 이때에는 더욱 놀라서
'헉' 소리를 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심랑은 눈에 빛을 번쩍이며 김무망의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오늘, 본인이 김 형과 이곳에서 생사일전을 벌여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오. 나나 당신 중 누가 싸움에서 죽든 다시 다른 곳에 묘 자리를 찾을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오."
김무망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차가운 눈빛은 계속
심랑을 주시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으나 누구도 눈 한번
깜짝이지 않았다. 심랑의 눈빛은 더할 수 없이 냉정하고 굳세 보였다.
주칠칠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 크게 기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심랑! 그에게 삼 초를 양보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그가 감히 당신하고
맞싸울 수가 있겠어요?"
"삼 초를 양보한다는 것은 양보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주칠칠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칠 초를 양보해 주세요."
"그래야 말이 되겠지. 본인은 김 형에게 칠 초를 양보하겠소. 자,
시작하지요."
김무망의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 변해갔다. 그는 온갖 의지력을 발휘해서
심랑과 주칠칠이 주고 받으며 상대방을 충동질하여 이성을 잃게 하는
계책에 말려 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했다.
주칠칠이 웃으면서 말했다.
"왜요? 저 사람이 칠 초나 양보했는데도 덤비지 못하겠다는 건가요?"
김무망이 갑자기 몸을 돌려서 뒤쪽으로 달려갔다.
그에 따라 대청의 석문이 '우르릉'하는 가벼운 소리를 내면서 닫혀버렸고
그는 이미 석문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주칠칠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큰일났어요. 그가 도망가버렸어요."
심랑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어쩌면 도망가버린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소."
말을 마친 그는 갑자기 몸을 기우뚱하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주칠칠이 크게 놀라서 말했다.
"당신, 당신 어떻게 된 일이죠?"
심랑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신선일일취라는 미혼약은 대단한 것이오. 내가 어떻게 그 약에
중독되지 않을 수가 있었겠소? 방금 나는 몸 안에 남아있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겨우 일어섰던 것이오."
멍하게 심랑을 바라보던 주칠칠의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방금 그가 덤벼들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군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지 않았다면......."
심랑이 탄식하며 말했다.
"그러나 나는 김무망 같은 사람은 절대 다른 사람이 충동질하여 이성을
잃게 할 수 없을 줄 알았소. 그런데......."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일진의 광소가 석문 뒤에서
들려왔다.그리고 석문이 다시 열리더니 김무망이 큰걸음으로 들어왔다.
주칠칠의 안색이 참혹하게 변했으며, 김무망이 대소를 하고 말했다.
"심 형, 과연 총명하신 분이군요. 그러나 누구라도 한 가지의 실수는 있게
마련이오. 심 형이 모든 일을 주도면밀하게 생각했지만, 이 석실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거일동은 석실 밖에서도 정확히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못했던 것 같소."
웃음소리가 멈춰지는 곳에서 다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사태가 이에 이르렀는데 다시 더 할 말이 있소?"
심랑은 탄식을 하며 눈을 감고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무망이 한 걸음 한 걸음 심랑에게 가까이 다가와 험악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심 형과 같은 사람과 적이 된다는 것은...... 본인은 부득불 심 형의 팔
한쪽을 잘라내지 않을 수 없군요."
말을 마치고 그는 심랑의 앞으로 다가들어 험악한 표정으로 웃으며 팔을
뻗었다.
주칠칠은 참지 못하고 찢어지는 듯한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다시 기적이 나타날 줄이야.
즉, 김무망이 손을 뻗치는 순간 심랑의 손이 번쩍 들리더니 김무망의
혈도를 움켜쥐었던 것이다.
심랑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오른손으로는 김무망의 완맥의 대혈을
움켜쥐고 왼손으로는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면서 말했다.
"본인의 이러한 일 초는 김 형도 생각하지 못하신 것이겠죠?"
김무망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한 방울 뭉쳐나왔다.
주칠칠이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놀라고 기쁨에 차서 참지 못하고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이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본인은 그 신선일일취라는 미혼향에 중독된 것이
아니었소. 이 점 김 형께서는 이미 알아차렸으리라고 생각하오."
"당신이 중독된 것이 아니라면, 금방은 왜......?"
"방금 내가 김 형과 싸움을 했다면, 누가 지고 누가 이길지 확실한 자신이
없었던 거요. 그리고 또 설혹 내가 김 형을 이길 수 있었다 해도 김 형을
이렇게 사로잡을 수 있으리라고는 장담할 수가 없었소. 그러나 본인의 몇
가지의 수단으로 김 형은 이미 본인에 대해서 조금도 경계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되었던 거요. 이러한 상황에서 갑자기 손을 쓰면, 김 형께서
피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거요."
주칠칠의 얼굴이 기쁨에 차서 환하게 밝아졌다.그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 당신! 방금 저 사람을 속였을 뿐만 아니라 나 마저도 간이
콩알만해지게 만들었잖아요. 조금 있다가 단단히 앙갚음을 하고야
말거예요."
김무망이 한참을 멍하게 있더니 비로소 고개를 쳐들고 장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나 김무망이 오늘, 심랑과 같은 사람 손에 죽어도 그렇게 억울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구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렇게 말씀하시니 김 형께 약간 귀찮음을 끼쳐드려야 할 것 같군요.
먼저, 우리들을 이 석실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시오. 그리고 또
오늘, 김 형의 계책에 말려들어서 김 형의 포로가 된 강호의 친구들을
석방해 주시오. 그러면 본인이 김 형께 감사하겠소."
김무망이 깊이 숨을 들이키고 나서 말했다.
"좋소, 나를 따라 오시오."
심랑은 등에 주칠칠을 업고, 손으로는 김무망의 혈도를 움켜쥔 채 석실을
나왔다.
몇 개의 모퉁이를 돌아서 다시 다른 석실 앞에 도착했다.
주칠칠은 전신이 무력했으나, 두 손으로 심랑의 목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가 큰소리로 물었다.
"이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죠 ?"
김무망의 눈에서 이상야릇한 웃음이 번쩍이더니, 천천히 말했다.
"신안응 방천리, 복천조 이정, 천운안 이여풍 및 위무표국의 전령송
이렇게 네 사람이오."
주칠칠이 깜짝 놀란듯 말했다.
"그들 네 사람 말예요?"
"그렇소. 그들을 놓아 줄까요?"
"기다리세요! 그 사람들을 놓아 줄 수 없어요."
심랑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왜 그들을 놓아 줄 수 없단 말이오?"
주칠칠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그들 네 사람은 모두 제 원수들이에요. 그들이 나오기만 한다면,
당신들께 감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 목숨을 빼앗으려 들 거예요.
어떻게 그들을 놓아 줄 수 있단 말인가요?"
김무망의 눈빛이 차갑게 심랑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놓아 주느냐, 놓아 주지 않느냐는 문제는 오직 상공(相公)이 결정할
문제요."
주칠칠이 크게 노해서 말했다.
"그러면 저는 조금도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건가요? 지금 저는 전신에
조금의 힘도 없는데, 만약 그들이 나오게 된다면 어찌 내 목숨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 수 있겠어요? 그 네 사람이 손을 쓰게 된다면
심랑도 그들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게 될 거예요."
김무망의 눈빛은 여전히 심랑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냉랭하게 심랑이
결정할 것을 재촉하고 있었다.
"도대체 놔 줄거요, 안 놔 줄거요?"
심랑이 길게 탄식하고서 말했다.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결정하기 어렵소. 이 사람들도 신선일일취에
중독되지는 않았소?"
김무망이 냉소하면서 말했다.
"신선일일취가 무슨 영단이나 묘약은 아닐지라도 방천리나 전령송 정도의
인물들에게 어찌 그렇게 귀한 약을 쓸 수가 있단 말이오."
"저 석문은 어떻게 여는 것이오?"
"석문에는 기관장치가 되어 있소. 저기 조그만 구슬처럼 생긴 돌이
보이지요? 그 돌이 바로 기관을 여는 장치요. 그것을 왼쪽으로 세 번
돌리고 오른쪽으로 한 번 돌린 다음 위쪽으로 밀어올리면 석문은 자연히
열리게 되어 있소."
심랑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발걸음을
앞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주칠칠의 얼굴에 즉시 기쁨에 가득찬 기색이 넘치면서 고개를 숙여 심랑의
귓등에 가볍게 두 번 입맞춤을 하고 예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그러나 김무망은 도리어 냉소를 하면서 말했다.
"나는 심 상공이 고난에 빠진 영웅호걸들을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구하는 군자인 줄 알았소. 그렇지만 지금 보니...... 하하!"
그는 고개를 쳐들고 그치지 않고 냉소를 날렸다. 그를 쫓아가고 있던
아도는 비록 나이가 어리나 마음 씀씀이는 그렇게 어리지 않았다.
눈알을 한 번 굴리고 나서 김무망의 말을 받아서 아도가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영웅은 미인관을 돌파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영웅은 미인을 위해서 자신의 오래된 친구들도 돌보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심 상공만 탓할 수 있겠습니까 ?"
말을 마친 그도 역시 냉소를 날리고 있었다.마치 심랑이 전령송 등을
구하지 않고 주칠칠의 말을 따르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심랑은 그들의 비웃음을 듣고도 못 들은 척 흘려버렸다.
그러나 주칠칠은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심랑은 김무망을 끌고서 다시 모퉁이를 하나 돌아서 갑자기 어두컴컴한
곳에 발걸음을 멈추고 신중한 음성으로 물었다.
"이 고묘 중의 비밀을 김 형께서는 어떻게 알게 되셨소?"
"본인의 선친이 어느 분인지 당신은 알고 계시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시오."
김무망이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본인의 선친을 사람들은 금쇄왕(金鎖王)이라고 칭하지요."
심랑이 얼굴을 펴고 웃으면서 말했다.
"바로 그랬었군요. 금쇄왕은 기관에 정통하기가 천하무쌍이라고 하더니 김
형이 선친의 기관에 대한 배움을 이어 받으셨군요. 자연히 이 고묘 중의
비밀이 김 형의 눈과 귀를 속이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소.
쾌락왕이 김 형을 이곳에 파견했던 것은 결국 김 형의 장기(長技)를
적절히 이용하려 했던 것이군요."
그는 말을 잠깐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김 형께서 이 고묘 중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던 흔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틀림이 없겠지요?"
"그것은 귀하가 판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오."
"좋소."
그의 손가락 끝이 가볍게 떨리더니 갑자기 김무망 신상의 세 곳의
혼수혈을 짚고, 다시 손을 돌려 아도의 겨드랑이 밑 세 곳의 혈도를
짚었다.
그가 손을 쓴 것은 선후가 있었으나, 그 손 씀씀이는 마치 전광석화
같았다.
김무망과 아도 두 사람은 동시에 쓰러지는 듯했다.
주칠칠이 이상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물었다.
"당신 뭘 하는 거죠?"
심랑이 어깨를 돌려 그를 안아내려서 조심스럽게 석벽에 기대어 앉히면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시오. 이 고묘 안에는 더 이상의 적들의
종적은 찾아 볼 수 없으니 안심하셔도 될 거요."
주칠칠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당신...... 당신. 가서 그들을 풀어......."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소. 내가 먼저 가서 그들 네 사람을 풀어 주고 이곳을 떠나도록
말하고 돌아오겠소.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면 충분히 돌아올 수 있을
것이오."
주칠칠은 얼굴 가득 놀라움과 분노의 기색을 드러내었으나 곧 체념한 듯
장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나는 당신이 그들을 풀어 주지 않고는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일시도 마음 편하게 있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죠."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내 금방 돌아오리다."
말을 마친 그는 벌써 몸을 돌려 그들이 갇혀 있는 곳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주칠칠이 갑자기 가볍게 그를 불러 세웠다.
"기다려요. "
"뭘 기다리라는거요?"
"당신, 당신......."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두려움인지 애걸인지 모를 기색이 가득차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가볍게 말했다.
"웬일인지 갑자기......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어요. 마치...... 마치
어떤 악마가 저를 해치려고 기다리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어요."
심랑이 가볍게 웃으면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착한 아이지! 김무망과 아도가 이미 나한테 제압을 당했으니 당신이
더이상 겁을 낼 게 뭐가 있단 말이오? 여기서 착하게 기다리고 있으시오.
내 곧 돌아오리다."
말을 마친 그는 손을 흔들면서 급한 걸음으로 사라져갔다.
주칠칠은 그의 신형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어쩐 일인지 갑자기 뼈를
에이는 듯한 한기가 몰려오는 느낌을 받아 더이상 참지 못하고 가볍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석문에 붙어 있는 기관장치를 심랑이 왼쪽으로 세 바퀴, 오른쪽으로 한
바퀴를 돌리고 다시 위로 밀어올리자 석문은 과연 소리없이 열렸다. 그 문
안에 있는 동으로 만든 등잔 받침대 위의 기름은 이미 거의 다 말라가서
꺼질락 말락 하는 불빛만 내고 있었다. 그 꺼질락 말락한 붉은 불빛은
이미 한 줄기의 검은 연기를 뿜기 시작하고 있었으며, 그 검은 연기는
공중에서 마치 악마가 그 꼬리로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듯한 형상을
보이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이 번쩍이는 속에서 심랑은 석실 속을 자세히 살펴봤으나, 그
석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 석실 안 어디에도 방천리, 전령송 등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심랑은 깜짝 놀라서 당황한 듯 눈을 똑바로 뜨고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그 석실 안에는 먼지가 가득차 있었으나, 석실 바닥의 네 곳은 상당히
깨끗하여 마치 사람들이 앉았던 자리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앉았던
자리만 있을 뿐 이미 사람들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니 그들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미 이곳을 빠져나갔단 말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이미 그들을 구해갔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들을 구해간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또 이들이 지금 어디에 가 있단 말인가?
심랑은 이리저리 생각을 해봤으나 정확한 답안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그는 갑자기 가슴 속에서 차가운 기운이 훅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몸을
돌려 그가 방금 달려왔던 길을 향해 되돌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속으로 가볍게 부르짖고 있었다.
(주칠칠! 당신 별일 없죠?)
그는 방금 주칠칠 등이 있던 모서리까지 달려와서 신형을 멈췄다.
마치 피가 얼어붙는 듯 전신이 차가워짐을 느꼈다.
방금 그 모서리 벽에 등을 기대게 해서 앉혀 둔 주칠칠과 화예선, 김무망,
아도는 이 차 한 잔 마실 만큼도 되지 않는 시간에 전부 실종되고 말았던
것이다.
마치 악귀가 한입에 그들을 삼켜버린 듯이.......
심랑은 놀라서 멍하니 그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마치 가을날 아침 나무 이파리에서 이슬이 맺혀나오듯 송글송글
배어나왔다.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험악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심 상공! 오랜만이오."
심랑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입언저리와 볼 아래 근육이 분노와
놀람으로 일그러졌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토해내면서 지금부터 벌어질 위험에 대처할 준비를
하려는 듯 냉정을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이 사람이 나타난 후에는 어떠한 더럽고 흉악하고 음험한 일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심랑이 이미 이 사람을 상대할 준비를 갖췄으나 그는 여전히 몸을 돌리지
않았다.
다만 큰소리로 웃으면서 말했다.
"이틀 동안 뵙지 못했는데 김 형께서 이미 오랜만이라고 생각하실
줄이야......? 김 형께서 이처럼 동생을 생각해 주시는 줄은 미처
몰랐구려!"
그 찢어지는 듯한 음성이 '하하'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확실히 본인은 심 상공을 많이 생각했소. 그런데 심 상공께선 어째 몸을
돌려서 본인에게 당신이 요 이틀 동안 더 말랐는지, 살이 붙었는지도
보여주지 않는 거요?"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김 형께서 이처럼 소제(小弟)를 생각해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소."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갑자기 몸을 틀고 신형을 '번쩍' 하더니
이미 그 몸 뒤의 말소리가 들려나오는 곳을 향해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그가 몸을 돌렸을 때, 눈에 흐릿한 그림자가 들어오자 손을 뻗쳐 이미 그
그림자를 낚아챘다.
그가 흐릿한 그림자를 발견했던 시각과 손이 이미 그 그림자를 낚아챘던
것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 검은 그림자가 어떻게 심랑의 이 재빠른 일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러나 그 흐릿한 그림자는 어느새 피했는지 웃음소리만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밝은 불빛이 그곳을 활짝 밝혔다.
견리용위 김불환은 비스듬히 석벽에 기대서서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매우 한가로운 모양으로 왼쪽손에는 방금 밝혀든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는
조그마한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그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나무 막대기에는 한 벌의 겉옷이 걸쳐져 있었다.
심랑이 낚아챘던 것은 이 나무 막대기에 걸쳐져 있던 겉옷이었다.
김불환이 만면에 득의한 기색을 드러내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 겉옷은 바로 심 상공께서 본인에게 주신 것인데......! 심 상공께서는
지금 다시 이 겉옷을 거둬가고 싶으신 것인가요?"
심랑은 비로소 김불환이 아주 간사한 무리라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심랑은 비록 속으로는 크게 실망했으나, 입으로는 도리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본인은 김 형의 목소리를 알아 듣고 다가가서 껴안고 오랜만에 악수라도
나누고 싶었던 거요. 그렇지만 본인이 잡은 게 여우 가죽일
줄이야......!"
그는 손을 뻗쳐 그가 움켜 쥔 겉옷의 털들을 가볍게 몇 번 쓰다듬고 나서
말했다.
"다행히 본인이 그렇게 독하게 손을 쓰지 않아서 이 겉옷의 털들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군요. 김 형께서는 어서 이 겉옷을 다시 받아 가시죠.
차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옷을 내주는 행동은 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김불환도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심 상공께서는 농담도 잘 하시는 군요. 본인 몸 어디에 가죽과 털이
있다는 거요? 심 상공께서는 잊으셨소 ? 이 여우 가죽은 원래 본인이 심
상공 당신 몸에서 벗겨낸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오?"
그는 손을 뻗어서 심랑이 건네주는 그 여우털 겉옷을 받아서 어깨에
걸치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심 형의 이 여우털로 만든 겉옷은 확실히 따뜻하기는 하오."
심랑이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 녀석은 입으로도 남한테 지려들지를 않는군!)
그러나 겉으로는 도리어 웃으면서 말했다.
"보검은 열사에게 주어야 하고, 홍분(。紛)은 미인에게 주어야 한다는
옛말이 확실히 맞소. 이 여우 가죽으로 만든 겉옷은 김 형이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는 어울릴 것 같지 않소."
두 사람은 서로 '히히', '하하' 하고 주거니 받거니 내가 한 마디
풍자하면, 네가 한 마디 풍자하면서 누구도 서로 상대방에게 양보하려들지
않았다.
그러나 심랑은 결코 주칠칠이 실종된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김불환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미칠 듯한 심정이 되어서 마침내
물었다.
"주 아가씨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데 심 상공은 이상하다고 생각지도
않소?"
심랑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주 아가씨는 이미 서약우 서 소협이 곁에서 보살피고 있는데, 본인이
그렇게 조급해 할 필요가 있겠소?"
김불환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심 상공은 과연 뛰어난 분이오. 그 서 노제(徐老弟)가 본인과 같이
왔다는 것까지 알아차리다니 말이오. 그렇소. 그 서 노제는 천성적으로
정이 많은 인간이라서 주 아가씨를 아주 친절하게 보살피고 있소. 그들 두
사람은 지금쯤 어쩌면, 아마......."
그의 눈빛은 심랑이 그의 말을 듣고 화를 내는지를 살펴보려고 슬쩍슬쩍
심랑의 모습을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심랑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있을 뿐이었다.
심랑이 김불환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본인은 김 형이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었는지, 또 이곳의 기관에 어떻게
그렇게 익숙하게 알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뿐이오."
김불환이 눈을 굴리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심 상공께서는 본인을 쫓아와서 보도록 하시오."
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서 심랑의 앞에서 걸어 나갔다.
심랑은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 뒤를 따라갔다.
불빛이 현란하게 김불환이 걸치고 있는 그 여우털 겉옷을 비추고 있었다.
심랑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속으로 탄식하면서 생각했다.
(이 망할 녀석이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은 내 겉옷이고 주머니에 가득
들어있는 것은 내 돈인데 이 녀석은 도리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나를 해치려 들다니. 이러한 인간은 천하를 다 뒤져도 몇 안 될 거야.)
일순간 그는 분노인지 무엇인지 모를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두 사람은 문이 열려 있는 하나의 석실로 걸어 들어갔다.
그 석실에서는 등불빛이 매우 밝게 빛나고 있었다.
주칠칠, 화예선, 서약우, 김무망, 아도는 모두 그 석실 가운데 있었다.
김무망의 혈도는 아직 풀리지 아니한 상태였으며 주칠칠은 마침 이를
악물고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서약우는 그녀의 욕설로 멀찌감치 한구석에 피해 있다가 심랑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즉각 화살처럼 주칠칠 곁으로 쏘아 들어와 장검을 들고
주칠칠의 목을 겨누었다.
주칠칠은 마치 배고픈 어린애가 엄마를 만난 듯,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몇 번 비죽거리더니 참지 못하고 울면서 말했다.
"저는...... 저는 당신께 가지 말라고 했는데...... 지금은......
지금은......."
서약우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마치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가슴이
아파 더이상 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김불환은 몸으로 주칠칠과 심랑의 사이를 갈라 놓으면서 손가락을 뻗쳐
맞은편 구석 자리에 있는 돌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으시오."
심랑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천천히 그 돌의자 쪽으로 걸어가 침착하게
앉았다.
김불환이 손을 뻗쳐 서약우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형제! 심 상공이 조금이라고 움직인다면 형제의 손에 쥔 검을 움직여도
괜찮소. 예쁜 꽃을 아끼는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천하에 더 예쁜 꽃도 있는
법이니까!"
서약우가 말했다.
"본인도 생각하는 바가 있소이다."
김불환이 말했다.
"우선, 심 상공의 마음에 몇가지 답답해 하는 점이 있으니 우리가 먼저
설명해 줘도 괜찮겠지. 그가 너무 답답해서 미쳐버리면 안될 테니까. 심
상공! 본인이 연극 한 토막을 심 상공께 보여드리겠소. 괜찮겠소?"
말을 마친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서 김무망의 신상의 세 곳의 혼수혈을
풀었다.
그러나 동시에 손을 써서 그의 허리 아래에 있는 혈도를 짚어버렸다.
심랑은 일순간 김불환의 이러한 행동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김무망은 마른 기침을 하고 몸을 일으켜 사방을 쓸어보았다.
그는 먼저 차가운 눈빛으로 심랑을 바라본 다음 김불환을 발견하고 얼굴에
놀라운 기색을 나타내더니 예리한 소리를 지르면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동시에 처참한 비명을 지르면서 그 자리에 다시 주저 앉았다.
김불환이 방금 짚었던 것은 바로 그의 허리 아래에 있는
장문대혈(章文大穴)이었던 것이다.
이 장문혈은 갈비뼈의 제일 아래쪽 겨드랑이 말단에 있는 것으로 다른
말로는 혈낭(血囊)이라고도 한다.
바로 족궐(足厥) 음간(陰肝) 경중(經中) 대혈의 하나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팔상수법(八象手法)으로 이 혈도를 짚었을 경우
하반신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쓰리고 저리고 풀어지고
가려움이 대단하여서 마치 천만 마리의 거미들이 두 다리를 어지러이
오르내리고 물어뜯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김무망이 비록 무쇠 같은 사나이이긴 했으나 그가 이처럼 가볍게 움직임에
따라 일어나는 그 아픔을 참을 수가 없어서 눈물을 흘렸다.
심랑은 차가운 눈으로 방관하고 있었으나 김무망의 얼굴 표정을 보고
확연이 깨달아서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이 두 사람은 옛날 서로가 원수지간이었군. 그렇지만 김불환이
이처럼 독한 수단으로 그를 상대하다니 너무 잔혹한 면이 있군!)
김불환은 멀찍이 떨어져서 그 손에 든 나무 막대기를 뻗어서 김무망의
몸을 툭툭 건드리며 웃으면서 말했다.
"형님 ! 이곳에서 이 동생을 만난 것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 한마디 '형님'이라는 말은 심랑을 놀라게 하기에 족했다.
그는 이 두 사람이 형제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김불환이 김무망에게 대한 수단은 원수에게 사용해도 너무 잔인한
수단이데 그가 자기와 같은 핏줄에게 이러한 수단을 사용하다니......?
진짜 짐승만도 못한 놈이군!)
김불환이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형님은 천하에 어떤 사람도 이 고묘 중에 있는 몇 되지 않는 기관을
알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으나, 동생이 기관의 명수라는 것은 전혀
잊어버렸던 모양이오."
김무망이 이를 악물고 욕설을 퍼부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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