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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처음 소개되는 노르웨이 소설가 셰스티 스쿰스볼
(왼쪽)과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쓴 스웨덴 소설가 요나스 요나손. |
밀레니엄등 스릴러 중심에서 최근 순수문학으로 확장
인종·복지 문제 등 앞선 고민 다뤄
'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태양은 바다로 가라앉자마자, 술을 마시러 잠깐 내려가기라도 한 것처럼 원기를 되찾고 불그레한 얼굴로 다시 떠올랐다.'
노벨문학상(1920년)을 수상한 노르웨이 소설가 크누트 함순(1859~1952)의
중편 '목신 판'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백야(白夜)를 이렇게 묘사했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깃든 생명력의 원형을 스칸디나비아 반도 특유의 아름답지만 혹독한 자연에서 찾으려 한 함순의 대표작 중 하나
이 작품이 최근 김석희의 번역으로 시공사에서 출간됐다.
대형 출판사들이 북유럽 소설 번역에 잇달아 뛰어들면서 영국·프랑스·독일 등 서유럽과 일본이 장악해 온 국내 번역 소설 시장에 스칸디나비아 바람이 거세다.
북유럽 소설에 대한 관심은 2000년대 들어 '밀레니엄' 시리즈와 '아이언맨' 등 스릴러 중심으로 형성됐지만
최근에는 순수문학으로 확장되고 있다.
2013년 여름 번역된 스웨덴 소설가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순수문학 작품으론 예외적으로 13만부 넘게 팔린 것이 계기가 됐다.
출판사 열린책들은 올여름을 겨냥한 대표 상품으로 요나손의 신작 '셈을 할 줄 아는 문맹 여인'(가제)을 선택했다.
민음사도 스웨덴 소설가 요나스 하센 케미리의 '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가제)를 올해 안에 내놓는다.
신인급 작가의 데뷔 소설이나 최신작도 영미권이나 독·불어권에 먼저 소개되던 과거 관행을 깨고 시차 없이 우리말로 번역되고 있다.
시공사는 노르웨이 신예 작가 셰스티 스쿰스볼의 2009년도 데뷔작 '더 빨리 걸을수록 나는 더 작아진다'와 스웨덴 소설가 카타리나
비발드가 지난해 발표한 '브로큰힐의 독자들이 추천함'을 낼 계획이다.
시공사 문학팀장은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에서도 우리나라처럼 몇몇 인기 작가를 제외하면 문학 독자층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며 "국내 스칸디나비아 문학 붐은 북유럽 소설에서 새 돌파구를 찾으려는 세계적 추세와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순수문학을 중심으로 소개되는 최근 북유럽 소설들은 살기 좋은 북유럽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파열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훗날 우리가 마주하게 될 고민을 미리 경험하는 기회를 준다.
케미리의 '나는 형제들에게…'는 2010년 스톡홀름 시내에서 일어난 차량 폭탄 테러와 이듬해
노르웨이가 이민자 천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총기를 난사한 브레이빅 테러 사건을 모티브 삼아 이민자 복지 문제로 갈등하는
북유럽 사회를 그린다.
소설에서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하자 이민자 유입을 반대해온 이들은 아무 근거 없이 이슬람계 과격 단체를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다.
스쿰스볼의 '더 빨리 걸을수록…'에서는 100세를 앞둔 여성이 남편을 잃은 뒤 비로소 자신이 맺은 유일한 인간관계가
남편뿐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한다.
국가의 복지 시스템은 장수와 편안한 노후를 보장하지만, 외톨이 문제만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실존적 고민을 다뤘다.
요나손의 '셈을 할 줄 아는…'도 문맹(文盲)에 성차별이라는 이중의 제약에 억압당하는 여성이라는 익숙한 주제를 다루지만
핵(核) 전문가로 성장한 여성을 통해 국가 간 핵 외교의 이면을 보여준 점이 새롭다.
김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