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채명신(87) 초대 주 월남 한국군 사령관이 별세하셨습니다.
6.25의 영웅은 백선엽 장군이고 월남전의 영웅은 채명신 장군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월남전의 영웅이 별세하셨습니다.
널따란 장군 묘역보다 좁은 사병묘역을 택하여 어려운 이 시대의 귀감(龜鑑)과 참 군인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육사5기생인 그는 6.25때 소위로 참전하여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을 수없이 치렀고 월남전에서는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명령으로도 유명하신 분입니다.
채명신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20대 나이에 중대장으로 참전했고 1965년 육군작전참모부장 시절 주월 한국군 초대사령관에 임명돼 4년8개월간 지휘했습니다.
당시 주월 미군으로부터 독자적인 작전권을 확보하고 태권도를 이용한 심리전과 대대급 소규모 작전으로 탁월한 전과를 올렸지요.
69년 이세호 장군에게 사령관직을 물려주고 귀국한 그는 군인의 최고 영예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지만 3년 뒤 대장 진급이 좌절되며 2군사령관(중장)으로 전역했습니다.
1926년 황해도 곡산 출신으로 평양사범학교를 나와 교사로 일하다 47년 월남한 뒤 육사 5기로 군 생활에 들어섰습니다.
516 당시 5사단장으로 병력을 이끌고 동대문까지 진출해 박정희 장군의 쿠데타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을 꺼내 들고 월남전을 회고하는 채명신 장군
1966년 7월 일시 귀국한
채명신 주월(駐越) 한국군 사령관(가운데)이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묻힌 월남전 전사자의 묘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
월남전 참전용사 제2묘역의 사병의 묘비와 똑같은
고 채명신 중장의 임시 묘비
전쟁(戰爭)은 인간에게 가장 큰 비극(悲劇)입니다. 대 참극(大慘劇)입니다. 그러나 그 참극은 역사라는 들판에서 잠시도 멈춘 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전쟁을 치르며 가족과 나라를 지키는 군인은 역사와 함께 병존하고 대 참극의 현장 속에서 직무를 수행하며 삽니다.
채명신 장군은 바로 그 역사의 현장 속에서 살다간 주인공입니다. 그는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루고 쳐내려 온 공산군과 싸워야 했고 국가의 명을 받아 주월 한국군 사령관으로 군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전쟁에서 죽어가는 젊은 부하들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습니까?
실제로 그는 병사들의 주검을 보면서 막사에서 남몰래 통곡을 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업적도 모두 부하들의 공로로 돌렸다고 합니다.
그 같은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라 진실임을 증언하는 것이 바로 먼저 간 젊은 부하 사병 곁에 자신을 묻어달라는 그의 유언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령관이 장군의 묘역이 아니라 사병과 함께 영면(永眠)한 것입니다.
채 장군은 이 나라 고난의 역사와 소인배(小人輩) 같은 지도자들이 판 치는 세태(世態)에 벼락과 같은 빛과 힘으로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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