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 언론(Yellow journalism)의 유래]
미국에서 19세기 후반은 대중신문이 급속히 성장한 시기였다. 읽기 쉬운 흥미 위주의 기사거리와 다양한 광고를 싼 가격에 제공하는 대중신문은 일종의 오락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1890년 미국의 일간지 발행부수는 830만 부에 달했다.
이 시기의 신문들은 살인사건, 특권층의 생활, 정치 스캔들 등 선정적인 뉴스를 드라마틱하게 과장된 삽화와 함께 게재했다. 판매 부수에 열을 올린 신문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선정적인 헤드라인으로 포장된 기사를 내보냈다. 이 과정에서 사실을 왜곡하거나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도 허다했다.
1890년대 이러한 언론의 보도 행태를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이라 불렀다.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말은 당시 최대 판매 부수를 기록했던 ’Sunday World’에 게재된 리차드 펠튼 아웃콜트(Richard Felton Outcault)의 만화 ‘노란 꼬마(The yellow kid)’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웃콜트는 만화 연재 도중 경쟁 신문인 ‘Sunday Journal’로 옮겨 ‘노란 꼬마’의 연재를 계속했는데, 인기 만화를 경쟁사에 뺏긴 ‘Sunday World’가 다른 만화가를 고용해 ‘노란 꼬마’를 계속 연재했다.
이제 영향력 있는 두 대중신문에서 노란 꼬마를 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두 신문사들은 ‘황색 언론(Yellow press)’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것이 선정적인 기사 위주의 대중신문들을 가리키는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용어로 확대되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은 황색 저널리즘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쿠바에서 스페인의 지배에 항거하는 폭동이 일어나자 미국의 신문들은 경쟁적으로 스페인의 폭동 진압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대중들을 흥분시켰다.
당시 ‘Sunday Journal’의 경영자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쿠바에 파견된 삽화 기자에게 보냈다는 전보는 유명하다.
”자네가 그림만 그려 보내면 전쟁은 내가 만들어 내겠네.“
1898년 1월 미국 정부가 쿠바 내 미국인 보호를 목적으로 파견한 전함 메인호가 원인불명으로 아바나 항구에서 폭발하자 황색 언론은 일제히 폭발을 스페인의 소행으로 보도했다. 이에 여론이 동조했고 스페인이 메인호를 공격한 것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스페인에 복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여론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매킨리 대통령은 결국 1898년 4월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선언하고 쿠바에서 스페인을 몰아냈다.
이후 조사에서 메인호의 폭발 원인은 엔진 고장으로 밝혀졌지만 이미 전쟁은 끝난 뒤였다.
일부 역사가들은 허스트와 같은 황색 언론인들의 선정적인 보도가 없었다면 미국-스페인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이 전쟁을 ‘허스트의 전쟁(Hearst’s war)’라고 부르기도 한다.
출처:홍세훈 저 " 미국, 어디까지 알고 있니"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