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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해방 을 읽었다. 저자는 하루 2불미만으로 살아가는 극빈층이 모기장이나 깨끗한 물이 없어 아이들이 죽어간다며 생필품을 사고 남는 돈은 기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몇년전부터 법이 허용하는 만큼 기부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대해 키울 능력도 되지않는 사람이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합리적인지 궁금해졌다. 단순히 “가난한 사람이 아이를 많이 낳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잘못이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아이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복적으로 출산하고, 그 결과 아이가 심각한 굶주림·질병·방임에 놓이게 된다면 부모의 책임은 분명히 커진다. 핵심은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1.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출산을 비난할 수는 없다; 가난은 개인이 완전히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실업, 질병, 전쟁, 사회적 불평등, 가족환경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다. 따라서 “돈이 없으니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라고 일률적으로 말하면 가난한 사람의 인간적 존엄이나 출산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게 된다.
2. 그러나 부모에게는 아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 아이를 낳는 순간 부모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인간에게 상당한 책임을 지게 된다.
따라서 부모가 이미 여러 아이를 부양할 능력이 없고, 식량이 지속적으로 부족하고 필요한 의료를 제공할 수 없으며 아이가 심각하게 위험해질 것이 명백하고 그 상황을 개선할 현실적인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출산에 대해서는 도덕적인 비판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때 비판의 대상은 가난이 아니라 아이에게 발생할 것이 예측 가능한 심각한 피해를 무시한 결정이다.
3. 특히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잘못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선택에 대한 책임과 아이의 생존권은 별개의 문제다. 부모가 무책임하게 출산했다고 해서 아이가 굶주림이나 질병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아이가 죽어가는 상황이라면 사회가 아이를 돕는 것은 정당하다. 동시에 부모에게도 부양 책임과 향후 출산에 대한 책임 있는 선택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4. 철학적으로 보면
공리주의; 결과를 중시하기 때문에, 아이가 심각한 고통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면 추가 출산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크다.
칸트; 아이를 단순히 부모의 욕망이나 종교적·사회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고,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
롤스; 개인의 선택뿐 아니라 사회가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하는 공정한 제도를 갖추었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가난한 부모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기 전에 그들이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있었는가를 따져야 한다.
“가난한 사람이 아이를 많이 낳았다”는 사실만으로 도덕적으로 비난해서는 안 되지만,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을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그 위험을 반복적으로 무시하는 출산은 도덕적 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역으로 그 부모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것과, 이미 태어난 아이를 적극적으로 구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둘을 구분해야 이 문제를 공정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도움을 받은 아이는 그 아이를 위해서라도 입양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부모는 아이를 키울 능력이 되지않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서도 그렇다.
저자는 아기가 혼자 물에 빠졌을 때 구해야 하느냐로 질문하고 중국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차에 치인 아기를 구하지않아 죽었다는 사례를 들었는데 중국뿐아니라 성경에도 선한 사마리아인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이스라엘도 그랬기에 중국탓을 할 것은 아니고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없다는 것을 알고도 출산한 부모와 익사위기에 놓인 부모를 같게 취급하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같은 인간을 구해야 하는 것은 바르지만 그 아기를 키우는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과 혜택을 받는 사람이 불일치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나라면 공리주의적 입장이기에 예상하기 어려운 질병이나 사고를 당한 수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을 병원건축에 수십억을 기부하는 것보다 거의 확실하게 예상하고도 출산한 극빈층에 1만원의 모기장이나 물을 지원하는 것은 더 어려운 문제다. 1
저자게 제시한 ‘키티 제노비즈(Kitty Genovese) 살인 사건(1964년 뉴욕)’도 사실과 다르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38명의 목격자가 지켜보면서도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로 알려지면서 사회심리학의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당시 보도를 조사한 연구에서는 ‘38명이 모두 살인을 지켜봤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상당히 과장·왜곡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부 주민은 소리를 들었고, 도움을 요청하거나 경찰에 연락한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오히려 흥미로운 교훈을 준다. 사람들이 무관심했다는 사건 자체보다,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어떻게 하나의 사회적 통념을 만들어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저자가 빈국에 태어난 것이 극빈층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그런 나라에서 양육이 불가능한 자녀를 출산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아이는 책임이 없기에 부양능력 있는 부모를 만나는 것이 세계효용에 도움이 된다. 112
저자가 언급하는 유명인사의 기부이야기중 “버핏이 왜 처음에는 게이츠재단에 거액을 맡겼고, 왜 2026년에 더 이상 기부하지 않기로 했는가”를 검토했다.
1. 처음 기부를 시작한 이유; 워런 버핏은 2006년부터 자신의 버크셔해서웨이 주식을 매년 게이츠재단에 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핵심 이유는 자신보다 게이츠재단이 거액을 더 효과적으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버핏은 특히 자신의 재산을 자녀에게 대규모로 물려주기보다는 사회적 목적에 사용하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게이츠재단은 세계적인 빈곤·질병·보건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고, 버핏은 빌 게이츠와 오랜 신뢰관계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버핏은 2006년 이후 게이츠재단에 약 479억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2. 그런데 2026년에 왜 중단했나?;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함께 작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첫째는 제프리 엡스타인과 빌 게이츠의 과거 관계에 대한 새로운 공개 자료입니다.
2026년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엡스타인 관련 자료에서 게이츠와 엡스타인의 접촉 및 게이츠재단 관계자들의 과거 접촉이 다시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게이츠는 범죄 혐의를 받은 것은 아니며, 엡스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후회한다고 밝혔습니다. 게이츠재단도 과거 엡스타인과의 접촉을 외부기관에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버핏은 2026년 3월경 이미 “무슨 일이 밝혀지는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보였고, 6월에는 정기적인 게이츠재단 기부를 일단 보류했습니다.
둘째는 버핏 자신의 유산 계획 변화입니다.
7월 2026년 버핏은 게이츠재단 대신 자신의 세 자녀가 관여하는 4개 재단에 약 60억 달러 상당의 버크셔 주식을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남은 버크셔 주식도 2034년 말까지 네 가족 재단에 넘기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즉, “엡스타인 사건 때문에 게이츠와 절교해서 전 재산을 회수했다”라고 단순화하면 정확하지 않습니다. 버핏 자신은 오히려 자녀들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준비가 됐다고 판단한 것이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AP 보도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 재미있는 점은 버핏의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버핏은 여전히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자선 목적으로 사용하는 원칙 자체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전에는 “내 재산 → 게이츠재단 → 세계적인 자선사업”이라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내 재산 → 자녀들이 운영하는 가족재단 → 자선사업”으로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버핏은 게이츠재단이 이미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고, 빌 게이츠 자신도 막대한 재산을 재단에 투입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게이츠재단은 2025년 말 기준 버핏으로부터 받은 기부가 약 479억 달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 기부를 시작한 이유 “내 돈을 내가 직접 관리하는 것보다 게이츠재단을 통해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중단한 이유 ① 엡스타인 관련 문제에 대한 신뢰·검증 문제 + ② 자신의 자녀들이 이제 막대한 재산을 책임지고 기부할 준비가 됐다는 판단 + ③ 자신의 유산을 가족재단에 직접 맡기려는 계획 변화
나도 인니아동에 대한 1대1결연 기부를 하다가 투명성문제로 중단한 적이 있다. 기부는 좋은 것이지만 더 잘 활용되는 곳으로 기부하는 것은 더욱 좋다. 윤미향은 기부받은 돈을 유용하고 투옥되었지만 이재명정권이 조국과 같이 2025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했다. 위안부할머니들이 통곡할 일이다. 내 견해가 합리적인지 궁금해서 챗에 질문했고 아래는 답변이다.
윤미향 전 의원의 사면이 합리적인가는 정치적 찬반보다 형사처벌의 성격, 피해 정도, 사면의 목적을 나누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우선 사실관계부터 보면, 대법원은 2024년 11월 윤미향 전 의원에 대한 후원금 관련 횡령 등 사건에서 유죄를 확정했고, 대법원은 이를 언론보도 판결로 공개했습니다.
사면을 긍정할 수 있는 논리; 사면이 반드시 부당하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형벌의 목적에는 응보뿐 아니라 사회복귀와 갈등의 해소도 있습니다.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나 처벌의 필요성이 감소했다면 사면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고령, 건강, 초범 여부, 형 집행의 필요성 등 개인적인 사정도 고려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법원의 판결을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제도라기보다, 확정판결 이후 국가가 형벌권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에 관한 헌법적 권한입니다.
반대로 사면에 반대할 이유도 상당히 강합니다; 윤미향 사건의 경우 특히 후원금과 공적 신뢰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후원금을 모금한 단체나 그 관계자가 자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면, 단순한 개인의 재산범죄와 달리 기부자와 사회의 신뢰를 침해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따라서 “형이 확정됐지만 정치적으로 우리 편이니까 사면한다.”는 식이라면 사면의 정당성이 매우 약해집니다. 특히 사면이 정치적 보상처럼 보이는 경우에는 법치주의와 형평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제가 판단 기준을 세운다면
① 사면의 일반적 기준이 존재하는가?→ 다른 유사한 범죄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이어야 합니다.
② 범죄의 성격상 특별히 사면할 필요가 있는가?→ 단순한 정치적 논쟁이나 지지율이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③ 피해자와 기부자 등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고려했는가?
④ 사면이 정치적 특혜로 보이지 않는가? 이 네 가지를 통과해야 합리적인 사면이라고 보겠습니다.
따라서 “윤미향이 유죄를 받았으니 절대로 사면해서는 안 된다”도 지나치고, “정치적 인물이니 사면해도 된다”도 충분한 이유가 아닙니다. 특히 후원금·기부금과 관련된 범죄라면 일반적인 사면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모금한 돈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일반적인 재산범죄보다 높은 책임을 요구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하시면 윤미향 사건에서 법원이 실제로 인정한 범죄와 인정하지 않은 혐의를 구분해서, “사면할 정도의 범죄였는가”를 사실관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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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년 기념 한국어판 서문_우리가 구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작지 않다; 추천사_“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_마이클 슈어; 머리말_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
1부 도울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1장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2장 돕지 않으면 부도덕한가 3장 기부를 거부하며 우리가 흔히 하는 말
2부 왜 기부를 망설이는가
4장 기부를 가로막는 5가지 심리 5장 기부 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1
3부 타인을 돕는 최선의 방법
6장 한 생명을 구하는 데 얼마면 될까? 7장 더 나은 구호 방법 모색하기
4부 기부의 새로운 기준
8장 내 아이와 남의 아이 9장 너무 지나친 요구인가? 10장 현실적인 기준
맺음말_한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후기_생각에서 행동으로_찰리 브레슬러, LYCS 전무이사; 부록_얼마나 기부해야 할까-기부율표; 감사의 글 ; 옮긴이 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