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사에는 용산리 전투가 격전지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용산리는 남북을 잇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그때 1950년 7월 24일에는 우리 국군이 2만명
인민군들이 4만명이 집결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황간에는 미군들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어저 우리를 인솔한 어른이 우리 피난민 50여명을 두 집에 나누어 묵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9시에 나갈 것이니 미리 준비하라고 합니다.
그때 용산리를 우리 국군이 포위하고 있었는데
하루 전에는 군인들이 용산리를 조사하여 피난민들이 한 사람도 없다라고 보고 했지만 밤중에 수많은 사람들의 움직임과 목소리가 새어나와 국군들은 인민군들이 이미 용산리에 숨어 들어온 것이라고 함부로 말을 합니다.
날이밝자 사람들이 삽작문을 열고 밖을 나갔다가 성급하게 들어오면서
"군인들이 우리집을 포이하고 있어요"
라고 놀라워 합니다.
그리하여 피난민들을 재촉하여 빨리 아침을 해 먹고 9시에 나가자고 합니다.
이제 9시가 되자 사람들이 다시 마당에 모입니다.
청주고등학교 학생 하나가 삽작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자
"탕 !"
한방의 총소리에 푹 고꾸라져 죽는게 아닌가?
우리 피난민들이 그 모습에 경악을 합니다.
밖의 실황이 이상하여 피난민 어른들이 밖을 나갓다가 되돌아오며 우리집이 군인들에게 포위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전날 우리국군들이 이 용산리마을을 샅샅히 조사하여 사람들이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데
밤중에 사람들 소리가 마구 들려
"인민군들이 밤새 몰래 들어왔다"
라고 짐작을 합니다.
그리하여 주위에는 우리국군들이 용산리를 포위하고 있고 산에는 20000명의 국군들이 포진하고 있는데
아주 가까운 거리에는 인민군들 40000명이 집결하여 용산리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일부 인민군들이 용산리에 잠입하여 피난민으로 위장하지만 우리국군들은 피난민이고 뭐고 모두 인민군들이 용산리에 숨어들어와 잇다고 오판을 합니다.
첫댓글 오늘도 행복해지세요.
어서오세요 김옥춘님 감사합니다.
어제 우리를 만난 몇명의 국군들은 미을에 피난민들이 묵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무관심이 큰 화를 들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