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적벽부(後赤壁賦)'는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문인 소식(蘇軾, 소동파)이 지은 부(賦)로, 그가 황주(黃州)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 '전적벽부(前赤壁賦)'와 함께 적벽부라고 불리며, 전적벽부보다 3개월 뒤인 음력 10월에 쓰였습니다.
아래는 '후적벽부'의 원문과 한글 번역, 그리고 해석입니다. 여러 번역본이 있을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내용들을 종합하여 제공합니다.
후적벽부 (後赤壁賦)
원문 (原文) 및 한글 독음
是歲十月之望 步自雪堂將歸於臨皐
시세시월지망 보자설당장귀어임고
二客從予過黃泥之坂
이객종여과황니지판
霜露旣降 木葉盡脫
상로기강 목엽진탈
人影在地 仰見明月
인영재지 앙견명월
顧而樂之 行歌相答
고이락지 행가상답
已而歎曰 有客無酒 有酒無肴
이이탄왈 유객무주 유주무효
月白風清 如此良夜何
월백풍청 여차량야하
客曰 今者薄暮 舉網得魚
객왈 금자박모 거망득어
巨口細鱗 狀似松江之鱸
거구세린 상사송강지로
顧安所得酒乎 歸而謀諸婦
고안소득주호 귀이모제부
婦曰 我有斗酒 藏之久矣 以待子不時之須
부왈 아유두주 장지구의 이대자불시지수
於是 攜酒與魚 復遊於赤壁之下
어시 휴주여어 부유어적벽지하
江流有聲 斷岸千尺
강류유성 단안천척
山高月小 水落石出
산고월소 수락석출
曾日月之幾何 而江山不可復識矣
증일월지기하 이강산불가부식의
予乃攝衣而上 履巉巖 披蒙茸 踞虎豹 登虯龍
여내섭의이상 리참암 피몽용 거호표 등규룡
攀栖鶻之危巢 俯馮夷之幽宮 蓋二客不能從焉
반서골지위소 부풍이지유궁 개이객불능종언
劃然長嘯 草木震動 山鳴谷應 風起水湧
확연장소 초목진동 산명곡응 풍기수용
予亦悄然而悲 肅然而恐 凜乎其不可留也
여역초연이비 숙연이공 름호기불가류야
返而登舟 放乎中流
반이등주 방호중류
化吾不知其所止也
화오부지기소지야
浩浩乎 不知其所止 飄飄乎 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
호호호 부지기소지 표표호 여유세독립 우화이등선
忽夢若一道士 羽衣蹁蹮 過臨皐之下 揖予而言曰
홀몽약일도사 우의편선 과임고지하 읍여이언왈
赤壁之遊樂乎 問其姓名 俛而不答
적벽지유락호 문기성명 면이불답
嗚呼 吾知之矣 昔者子之從余者 非夫也
오호 오지지의 석자자지종여자 비부야
今者之從余者 彼也 而今何為寂寂乎
금자지종여자 피야 이금하위적적호
吾亦驚而起 開戶視之 不見其處
오역경이기 개호시지 불견기처
한글 번역 및 해석
이해 시세(是歲), 시월(十月) 보름날(之望) 에, 나는 설당(雪堂) 에서 걸어 나와 장차 임고(臨皐) 로 돌아가려 하는데, 두 손님(二客) 이 나를 따라 황니(黃泥) 고개(之坂) 를 넘어갔다. 서리와 이슬이 이미 내리고 나뭇잎은 모두 떨어져 있었다. 사람 그림자가 땅에 드리워져 있었고, 고개를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았다. 주위를 돌아보며 즐거워하며, 걸어가면서 노래를 주고받았다.
잠시 후, 탄식하며 말했다. "손님은 있는데 술이 없고, 술은 있는데 안주가 없으니, 달은 희고 바람은 맑은데 이 좋은 밤을 어찌할 것인가?" 손님이 말했다. "오늘 해 질 녘에 그물로 고기를 잡았는데, 입이 크고 비늘이 가는 것이 송강(松江) 의 농어 같더군요. 그런데 술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돌아가 아내에게 물으니, 아내가 말했다. "저에게 술 한 말이 있는데, 오랫동안 간직해 두었습니다. 당신이 갑자기 필요할 때를 대비한 것이지요."
그리하여 술과 물고기를 가지고 다시 적벽 아래로 가서 노닐었다. 강물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깎아지른 절벽은 천 길이나 되었다. 산은 높아 달은 작게 보이고, 물이 줄어들어 바위가 드러났다. 지난 세월이 얼마나 지났다고 강산의 모습이 다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했단 말인가?
나는 옷소매를 걷어 올리고 험준한 바위를 밟고 올라가, 무성한 풀숲을 헤치고, 호랑이나 표범처럼 생긴 바위에 걸터앉고, 규룡(虯龍) 처럼 생긴 나무 등걸에 올랐다. 매가 둥지를 튼 위험한 곳을 기어오르고, 풍이(馮夷) 의 깊은 궁궐(물속)을 내려다보았다. 두 손님은 나를 따를 수 없었다.
갑자기 길게 휘파람을 부니, 초목이 흔들리고 산이 울려 골짜기가 응답하며, 바람이 불고 물결이 솟구쳤다. 나 또한 고요히 슬퍼지고 엄숙하게 두려워져, 그곳에 더 머무를 수 없을 것 같았다.
돌아와 배에 올라 강 한가운데로 나아가 배를 놓아두니, 배는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다. 넓고 넓어 어디로 갈지 모르고, 가볍게 떠다니는 것이 마치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된 듯했다.
갑자기 꿈에 한 도사가 깃옷을 나부끼며 임고정 아래를 지나다가 나에게 읍하며 말했다. "적벽강의 뱃놀이가 즐거웠는가?" 그의 이름을 물으니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아! 나는 알겠구나! 옛날 나를 따르던 이가 저 사람이 아니었구나. 지금 나를 따르던 이가 바로 저 사람이었는데, 어찌하여 지금은 고요히 사라졌는가? 나도 놀라 깨어나 문을 열고 보니,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후적벽부의 의미와 특징
'후적벽부'는 '전적벽부'와 마찬가지로 소동파가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연과 벗하며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전적벽부'가 인생의 덧없음과 영원한 자연의 대비 속에서 위안을 찾는 철학적 사유를 중심으로 한다면, '후적벽부'는 좀 더 현실적인 공간과 시간 속에서의 유랑과 탐색, 그리고 다시 찾아온 깨달음을 그립니다.
* 시간적 배경 변화: '전적벽부'가 가을 7월 보름의 밝고 낭만적인 밤이었다면, '후적벽부'는 10월 보름, 서리와 이슬이 내리고 나뭇잎이 떨어진 쓸쓸하고 차가운 겨울의 초입을 배경으로 합니다.
* 자연과의 교감: 소동파는 술과 안주를 구해 다시 적벽에 찾아가는데, 이번에는 단순히 배를 타는 것을 넘어 험준한 바위를 직접 오르며 자연을 깊이 체험합니다. 이는 현실의 어려움을 몸으로 부딪히며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 변화와 불변: "산은 높아 달은 작게 보이고, 물이 줄어들어 바위가 드러났다"는 구절은 자연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지난 세월이 얼마나 지났다고 강산의 모습이 다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했단 말인가?"라는 탄식은 변해버린 현실에 대한 아쉬움과 동시에 불변하는 자연의 섭리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 신비로운 만남: 꿈속에서 도사를 만나는 장면은 소동파의 내면적 갈등과 해소를 상징합니다. '전적벽부'에서 객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면, '후적벽부'에서는 도사와의 신비로운 만남을 통해 세상의 덧없음과 진정한 자유에 대한 성찰을 더욱 심화합니다. 이는 당시 유행하던 도가 사상과도 연결됩니다.
* 초월적 경지: 마지막 부분에서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된 듯했다"는 표현은 소동파가 현실의 고통을 넘어 자유롭고 초월적인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후적벽부'는 소동파의 깊은 사유와 탁월한 문장력을 엿볼 수 있는 명작으로, 유배지에서의 고통 속에서도 자연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그의 정신세계를 잘 보여줍니다.
첫댓글 AI의도움으로 후적벽부를 번역해보고 읽어봅니다.명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