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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침대의 덜컹 거리는 흔들림에 맞춰 침대 머리맡에 있는 탁자가 함께 부딪히며 움직였다. 탁자 위에 있는 유리컵 속 물이 아슬아슬하게 출렁였다. 그 흔들리는 물을 보고 있자니,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예쁘게도 빛나고 있었다. 수안는 그 예쁜 반짝임이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의 귀걸이 처럼 예쁘다고 생각했다. 바쁘게 자신의 애인 위에서 헐벗고 움직이는 여자의 아래로는 물론 자신의 애인인 재환이 여자와 같이 헐벗고 뿌듯한 얼굴로 누워있었다. 재환은 수안이 방 안으로 들어왔는지도 모른채 자신의 아랫도리에 집중된 열락에 빠져있었다.
‘저 귀걸이, 내가 사고 싶어했던 건데’
수안이 방 문에 기대어 섰다. 여자는 그 작은 움직임 소리를 들었는지 그제서야 수안이 있는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여자는 자신의 입꼬리를 한껏 올려 미소지었다.
저 빨간 입술이 좋았던 걸까. 저 탐스런 몸이 좋았던 걸까. 재환은 수안보다 더욱 화려한 그 여자에게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여자의 움직임이 빨라 질수록, 여자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쥐고 있는 재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제만 해도 자신의 자그마한 손을 맞잡고 있던 손 이었다. 재환의 손을 바라보는 수안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여자는 자신의 허벅지를 잡은 재환의 손을 잡고는 자신의 허리에 갖다대었다. 그 움직임이 매력적인지 재환은 뿌듯하게 미소지었다.
“역시나 예쁘다.”
수안의 목소리에 재환이 그제서야 침대 머리맡에 있는 수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 쯤 세운 그의 상체에 땀방울이 가득하다.
“수안아?”
당황한 자신의 애인의 목소리와 표정. 그에 비해 여유로운 모습의 여자는 이 모든 상황이 저 여자의 계획이었음을 보여준다. 차분하고 오빠같은 성격의 재환은 수안을 보 챈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왠일로 다급하게 집으로 와달라는 문자를 했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자신의 애인과 다른 여자의 정사였다. 답지 않은 여자같았던 말투를 이제서야 이해한다.
“귀걸이, 예쁘다. 나보다 더 잘 어울리네.”
자신을 바라보는 재환의 눈동자를 바라본 수안이 뜬금없이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오빠도”
“수안아, 그게..”
“저 여자랑 더 잘 어울린다"
“아니야, 그런게 아니야!”
수안은 재환과 여자를 뒤로 한 채 방을 빠져나왔다. 수안의 뒷 모습에 뒤따라 나오려던 재환은 자신의 헐벗은 나신에 당황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수안을 잡을 타이밍을 놓쳤다.
수안은 참담했다. 실망했다.
재환이 아닌 자신에게 또 다시 실망했다. 이 전의 연인들과 헤어졌을때의 그 자괴감이 다시 밀려왔다. 나는 이렇게 또 다시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자괴감이었다. 이번에는 꼭 3 달을 채워가는 중이었는데.. 결국 넘기지 못했다. 3개월. 그것은 수안에게 징크스 같은 기간이었을까? 그 짧다면 짧은 숫자를 넘기며 사귀어 본 사람이 없다. 이제는 그 기간을 넘기고 오롯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그런 사랑을 느껴보는 것이 소원이 될만큼 절실했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사랑을 알고 싶었다. 가족에게서 조차 받아본적 없는 그런 오롯한 사랑.
“이수안, 기다려!”
재환을 뒤로 한 채 그의 집 앞에 주차된 자신의 차를 타려는데, 뒤 늦게 수안을 따라나온 재환이 그녀를 붙잡았다. 급하게 챙겨입은 듯한 셔츠와 바지가 마치 그의 머리카락처럼 제멋대로 구겨져 있었다.
“그냥 가버리면 어떡해?”
“그러면?”
“그러면이라니, 나한테 할 말 없어? 나한테 듣고 싶은 말 없어?”
소리쳐 자신을 붙잡은 재환을 바라보는 수안은 담담하다. 속으로만 스스로가 참담하다. 그러나 재환에게 화가 나거나 원망스럽지 않아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이수안, 뭐라고 말이라도 해봐!"
“......”
“욕이라도 해봐. 왜 아무 원망도 안해?"
재환은 그 조용한 자신의 애인이, 이 상황까지도 조용한 수안이 믿어지지 않는다. 잘못은 자신이 했는데 냉정해 보이는 그녀가 탐탁치 않다. 되려 언성을 높이는 그의 물음에 수안은 당연하게 대답한다.
“밉지가 않아.”
그 말에 재환이 이때다 싶어 더 언성을 높이며 자신의 죄를 정당화 한다.
“너는 원래 그랬어. 너는 내가 뭘 해도 미워하지를 않아.”
“.......”
“뭘 해도 좋아하지도 않잖아.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너는 나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
“그게 나쁜 거야?”
“이것 봐. 너는 정상이 아니야"
그래서, 그 여자는 정상이야? 나에게 너 인척 연락해, 내가 가지고 싶던 귀걸이를 하고, 내 눈앞에서 너랑 춤을 추듯 정사를 벌이던 그 여자는 정상이라서 나를 속이고 만나?
그 말들을 차마 입밖으로 내지 못하고 수안은 재환만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수안에게 그 질문들은 전부 부질없는 것들이었다. 재환은 자신의 모진 행동과 말에도 입을 앙다물고 있는 자신의 애인이 어이없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또 처량하고 안타까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너를 사랑하기가 쉽지가 않아. 너는 항상 이러니까. 그래서 그랬어. 저 여자는 그냥 잠깐 논 것 뿐이야. 너를 사랑하려면 나도 어디서 기분전환을 해야했어. 정상이 아닌 너를 좋아하려면 그래야 했어. 응? 이해하지?”
재환이 가만히 서 있는 수안의 앞으로 한발짝 다가섰다. 조용히 멈춰있는 그녀의 양 어깨를 손으로 감싸듯 잡았다.
“힘들었어. 쉽지가 않았어. 그러니까 그렇게 가버리지 말고 이번만 봐줘. 응?”
쉽지 않았겠지. 그랬을것이다. 나는 사랑받아 본 적이 없어 사랑하는 법을 모르니까. 그래도 그 많은 이전의 관계보다는 너가 다정했기에, 너는 그 사랑을 내게 가르쳐 줄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수안은 자신의 어깨에 놓여진 그의 손을 잡아 끌어 마주 잡았다.
“오빠도 아니었나 보다"
“응?”
재환이 자신의 손을 잡은 수안을 보고 안도하며 되물었다.
“나한테 사랑하는 거, 그거 알려줄 사람. 오빠도 아니었나 봐."
수안은 마주 잡았던 재환의 손을 내려 놓고 그를 뒤로 했다.
.
.
.
.
..
..
...
...
EN이라고 적혀있는 네온사인이 어두운 밤거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시끄러운 밤 길거리를 거쳐 수안과 그녀의 친구 제이는 EN으로 들어갔다. 그녀들이 자주 찾는 바였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두운 실내에 은은한 조명들이 달린 통로가 이어졌다. 어지러운 밤 거리와는 대비되는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바였다. 꽤나 긴 통로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 넓직한 바 내부가 보였다. 붉은 빛이 띄는 바 안에는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제각각 테이블에 자리잡고 있었다. 값비싸 보이는 유리 잔을 든 사람들은 수안과 제이가 바 안으로 들어오자 모두들 아닌척 하지만 한번씩은 눈을 흘겨 그녀들을 보았다. 입장하는 이들을 관람하는, 그리고 평가하는 눈빛들. 이곳은 그런 곳이었다. 자신들의 등급을 높게 치는 이들이 모여 그런 높은 등급의 사람들을 사귀고 싶어하는 장소. 수안의 친구는 이 곳을 좋아했다. 이 곳에 모이는 자신의 먹잇감들을 좋아했다. 이 곳에 오기 전 수안의 이별소식을 들었던 제이는, 핸드폰 안에 달력을 보며 숫자를 세더니 옳다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그녀의 연애 기간이 3개월이 다 차지 않았음에 네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수안을 이끌고 이 곳으로 온것이었다. 수안도 이 곳의 조용함과 분위기를 좋아했지만 꺼려지는 부분도 있었다.
“제이!”
한 남자가 제이를 반기며 그녀들 쪽으로 걸어왔다. 잘 차려 입은 남색 정장이 고급스럽지만 튀지 않았다. 수안이 이 곳을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인 ‘민재’였다.
“오빠, 오랜만~”
“수안이도 왔네. 안녕”
제이에게 인사했던 민재는 제이가 덩달아 자신을 반기는 데도 불구하고 그녀를 보기보다는 그 옆에 있던 수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물론 민재는 수안을 첫 눈에 알아 봤으리라. 그럼에도 마치 그녀를 처음부터 보고 다가온 것이 아닌 마냥, 제이에게 인사하고 그리고 수안을 알아본 척 너스레를 떨었다. 그것은 제이도 아는 사실이었고, 수안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 수안이도 왔겠지 당연히. 아까 내가 온다고 오빠한테 연락했으니까”
제이의 말에 민재가 당황하며 그녀의 옆구리를 찔렀다.
“하하, 너네 뭐 마실래? “
어색하게 웃는 민재가 제이와 수안을 테이블 바 앞으로 데리고 갔다. 단정하게 재킷과 셔츠를 입은 바텐더가 그녀들 앞으로 다가왔다. 웃는 상이 호감인 사내였다. 민재가 그에게 손짓을 하자 바텐더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무언가 꺼내기 시작한다. 크리스탈 병안에 든 황금색 술이 값어치가 꽤나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을 열어 술을 따라 주는 바텐더는 망설임이 없다. 그녀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런 좋은 술을 주는 것은, 민재가 이 곳 EN의 사장이기 때문이었다. 술이 잔에 채워져 나오자 민재는 얼른 그것들을 제이와 수안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민재가 건네준 황금색 술 잔을 바라보던 수안은 입을 열었다.
“이거 너무 독한데”
그 말에 민재는 얼른 술잔에 있던 술을 가지고 가 바닥에 버린다. 바닥이 더럽혀 지는데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 비싼 술이 바닥을 적시자 그 모습을 본 제이가 아깝다는 듯이 혀를 찬다.
“그럼 그냥 칵테일 마실래? 기다려봐”
수안의 행동 하나하나에 허둥대는 민재의 꼴이 우습다. 민재는 어느샌가 바텐더에게 다시 다가가 무언가 열심히 이야기 중이다. 수안에게 좋은 칵테일 한잔 내오는 것이 민재에게는 어느때보다 어려운 과제였다.
“이수안. 그냥 민재오빠 만나라니까”
“........”
“민재 오빠 너 좋아하는거 몰라서 그래? 너 여기 올때마다 저러는데 왜 안만나는거야?”
제이가 옆에서 ‘만나- 만나-’ 라며 수안을 재촉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안은 민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저 사람은 나 안만나”
수안의 대답에 제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곧 수안의 말을 이해했다. 민재는 분명 수안을 좋아했다. 자신이 친구인 수안을 이 가게에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기회를 엿보는것 같았지만, 곧 수안이 어느 남자를 만나도 3개월을 채우지 못하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기간을 두려워했다. 자신도 곧 수안의 전 애인들 처럼 3개월만에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수안은 민재를 거절하지 않을것이다. 그것은 민재에 대한 호감이라던지 그런 좋은 이유에서가 아니다. 수안에게 애인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걸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 것을 얻지 못하면 민재는 수안의 전 애인들과 같은 처지가 될 뿐이다. 저 남자는 그런 리스크는 죽어도 두려워 하는 남자라, 이렇게 바보처럼 질질 끄는 것 밖에는 하지 못했다.
지금도 바보처럼 허둥대는 남자를 한번 흘겨본 제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방금 이별을 하고 왔는데도 담담해 보이는 수안이 답답했다. 한숨을 쉰 제이는 혼자 입에 술을 머금고는 바를 둘러보았다. 어디 수안에게 좋은 짝이 될만한 남자가 있나 훑는 것이었다.
“저 남자는 어때?”
제이가 앉아있는 한 남자를 향해 고개짓을 했다.
“별로야”
대답은 수안이 아니었다. 어느새 새 술잔을 가지고 온 민재였다. 민재는 붉은 색을 띈 칵테일을 수안의 앞에 놓으면서 입을 열었다. 미간에 주름이 진 것이 무언가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수안이한테 물어봤지, 오빠한테 물어본게 아니잖아”
“그냥 봐도 별로라니까”
“그럼 저 사람은?”
민재의 말에 제이는 다른 남자를 향해 손짓을 했다. 민재는 여전히 불편한 얼굴로 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안은 아무말도 없는데 둘이서 여기저기 쑤시고 나디는 꼴이었다.
“더 별로네”
“저 사람도?”
“오늘 물이 안좋아. 다 별로야”
제이는 자꾸만 훼방놓는 민재에게 따끔하게 눈짓을 했다.
“오빠 안 바빠? 좀 가”
그가 있으면 세상천지 완벽한 남자라도 오늘만큼은 별로인 남자가 될게 뻔했다. 제이는 민재를 향해 그만 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런 손짓으로 자리를 뜰만한 남자는 아니었다. 제이는 그 모습이 답답해 옆에 앉아있는 수안을 어깨로 툭하니 쳤다. 가만히 술만 들여다 보고 있던 수안이 그제서야 제이와 민재를 보았다. 제이가 흘기는 눈빛이 좀 전보다 좋지 않다. 어서 한마디 하라는 제스처였다. 수안은 그런 제이를 한 번 보고는 작게 한숨쉬었다.
“오빠. 바쁘시면 먼저 들어가셔도 되요”
그 말은 안바쁘면 함께 있자는 말이 아니라, 그냥 자리를 비켜달라는 말이었다. 생긋 웃으며 하는 말이지만 그 불편한 속 뜻을 민재는 알아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주는 것 밖에는 답이 없었다.
“그래? 그럴까 그럼..”
어물쩡 거리는 민재를 향해 제이가 어서 가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민재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가게 2층에 자리잡은 개인실로 향했다. 한두 걸음 걸어 가는 것 같더니 다시 뒤돌아 보는 민재가 비맞은 강아지처럼 애처롭다. 그럼에도 그 누구하나 붙잡지 않는다. 민재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몸을 돌려 개인실로 향했다.
민재가 사라지자 제이는 잔 안에 있던 남은 술을 마저 입에 털어 놓고는 바텐더를 불렀다.
“오늘 진짜 손님들 물 안 좋아요?”
빈 잔들을 닦고 있던 바텐더는 제이의 물음에 생긋 웃으며 그녀들 앞으로 다가왔다.
“글쎄요. 사장님이 안좋다고 하시면 안좋은거겠죠?”
그 말은, 사장이 안좋다고 했으면 자신도 그렇게 말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제이는 혀를 차며 ‘텃다 텃어’ 라며 중얼거렸다. 아쉽게 입맛을 다시던 제이는 빈 술잔을 바텐더에게 들이밀었다. 그 행동을 본 바텐더는 다시 웃으며 그녀의 빈 잔에 아까와 같은 술을 따라 주었다. 제이는 독하지도 않은지 다시 그 것을 한입에 털어넣더니 이리저리 가게 안을 물색했다. 아직도 아쉽다는 듯이 눈을 굴리던 그녀의 시선이 바 끝 쪽으로 자리잡는다. 금방 비워 버린 잔을 ‘탁’소리가 나게 내려놓는다. 눈치 좋은 바텐더는 다시 빠르게 그녀의 술잔안에 술을 따라 넣는다. 술을 채우려 상체를 숙인 바텐더의 목에 걸린 넥타이를 제이가 손가락으로 잡아 끌었다. 그 덕에 바텐더의 몸이 바 넘어 제이 쪽으로 기울듯 숙여졌다. 제이의 빨간 입술이 입맛을 다시더니 다시 열렸다.
“어디 저 남자도 별로라고 해봐요”
“네?”
깜짝 놀란 바텐더가 제이의 손가락에 넥타이가 걸린채로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바 끝에 있는 키가 큰 모델 같은 사내. 누가봐도 잘나고 멋져보이는 사내였다. 만점으로 10점을 준다고 하면 20점을 줘야할것 같은 남자는 이 바의 단골이었다. 그럼에도 사장이 당부하듯 ‘별로’를 외치고 갔으니, 바텐더는 난감하게 웃으며 자신을 잡은 제이를 바라보았다. 바텐더가 어색하게 웃으며 또 다시 ‘별로’ 그 단어를 입밖으로 꺼내려는데 제이가 엉뚱한 말을 했다.
“저 사람은 손님아니니까, 물 안좋다는 핑계는 안되는거 알죠?”
무슨말인가 싶어 다시 바 끝을 바라보니, 그 잘난 사내 앞에 자신과 같은 셔츠와 재킷을 입은 남자가 술과 잔을 정리 중 이었다. 얼마전에 새로 들어온 바텐더였다.
“아..네? 저 바텐더요?”
놀란 눈으로 바 끝에 자리잡은 새로운 바텐더와 제이를 번갈아 보는 남자는 무언가 곤란하다는 얼굴을 했다. 웃음기가 사라진 바텐더의 얼굴에 궁금증이 생긴 수안도 그들이 바라보는 쪽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바텐더가 자신의 넥타이를 잡고 있는 제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풀었다.
“저 형은 진짜 안되요”
“아니 왜? 잘만 생겼는데”
“잘생기고 아니고가 문제가 아니라..”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무는 바텐더는 제이의 궁금증을 더하게 만들었다. 수안도 덩달아 호기심이 생겼다.
“좀 위험해요”
연신 안된다고 말하던 바텐더가 위험하다는 말을 할때에는 자기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 것에 더 흥미가 생긴 제이는 눈을 크게 뜨고 계속해서 바텐더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그는 어쩔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냥, 소문도 안좋고.. 하는 행동은 더 안좋고.. 좀 그래요”
“자세히 얘기 좀 해봐요”
“소문까지는 좀 그렇고.. 괴팍하다고 할까. 아니지, 사람이 좀 무섭다고 할까”
“얼굴은 고운데?”
“저게요? 눈은 완전 칼바람 불 것 같은데요”
“잘생겼으면 고운거지. 그래서요?”
어느센가 제이의 맞장구에 바텐더는 마음이 풀렸는지, 자신이 형이라고 부르는 새 바텐더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 하고 있었다.
“저번에는 사장님이 진상 손님 생기니까 일하는 애들한테 치우라고 하셨거든요. 근데 취한 사람이 나가란다고 나가나요, 애들 둘셋이 붙어서 가게 밖으로 끌고 나가기 시작했죠”
“그래서?”
“막 안나가고 소리지르고 가게 애들 때리려는데.. 저 형이 오더라구요”
바텐더는 거기까지 이야기 하고는 입을 다시 한번 다물었다. 제이는 답답할 노릇이라며 빨리 이야기하라고 재촉했다. 남자는 다시 한번 그 재촉에 못이겨 입을 열면서도 저 끝에 있는 남자한테 목소리가 들릴까봐 소리를 죽여가며 이야기 했다. 수안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바 끝에 있는 이야기 당사자를 보고 있었다.
“그.. 빈병 하나 들고와서는 손님 머리를 그냥 내리치려는걸 겨우 말렸어요. 사장님 기겁하시고, 손님은 겁먹어서 도망가고.. 뭐 그랬죠. 무슨 사람이 그렇게 망설임 없이 내리치려고 하던지..”
“완전 터프하다”
“미친게 아니구요?”
“잘생겼으면 터프한거죠”
“사람 무서운 줄 모르시네요”
바텐더가 제이의 반응에 안타깝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곧 말을 이어 붙였다.
“사람 죽여봤다는 소문도 있어요 저 형.”
바텐더가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제이에게 말했다. 제이는 그제서야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범죄자에요?”
“아니, 그냥 소문이에요 소문. 좋아하는 여자 때문이라나.. 더는 몰라요. 좀처럼 말을 안하거든요”
“그런 무서운 사람을 막 써요 여기?”
“왜 겠어요? 여자들이 좋아해요. 얼굴을”
아니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안보이는데 말이야.. 등등 궁시렁 거리던 제이가 아깝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누구는 곱다하더라구요. 터프하다고도 하고”
자신이 했던 말을 이어 붙이는 바텐더를 향해 제이가 눈을 흘겼다. 그 모습에 바텐더는 작게 웃어보인다. 제이는 궁시렁 대며 남자에게서 흥미를 잃고 다시 술잔을 비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안은 눈을 떼지 않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다른 바텐더들과는 다르게 묵묵하게 잔을 정리하고 있는 사내의 곁으로 몇명의 여자들이 흘끔거리는게 보였다. 몸매가 여실이 드러나는 딱붙는 원피스에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한 여자들이 자신을 보는데도 남자는 관심이 없는지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저런 망부석 같은 사내가 좋아하는 여자 때문에 사람도 죽여봤다는 소문이 돈다. 그 무서운 소문이 수안은 마음에 든다.
“차라리 저기 뒤쪽 테이블 남자 분들이랑 노시는게 어떠세요”
바텐더가 제이와 수안의 뒤 쪽에 자리잡은 테이블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아까부터 제이와 수안을 보던 남자 둘이 앉아있었다. 그 시선을 바텐더도 알고 있었는지 그 쪽으로 주제를 돌렸다. 아무렴 저 무시무시한 소문의 남자보다는 저 쪽이 낫겠다 싶어하는 눈치다. 제이는 뒤를 흘끔 보더니 어느세 자신의 뒤의 남자들을 스캔하고는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이제야 제대로 추천해주네. 수안아, 저리로 자리 옮기자”
제이가 붉은 입술에 다시 한번 립스틱을 덧대더니 수안의 팔을 잡았다. 이미 제이는 뒤 쪽 테이블에 갈 마음이었다. 그러나 수안은 대답하지 않고 무언가 생각하듯 앉아만 있는다.
“이수안, 가자니까?”
“너 혼자 가”
“같이 가야 짝이 맞지. 가자, 응?”
아무리 보채도 수안이 반응이 없자 제이는 하는 수 없이 혼자 자리를 떴다. 네가 안가면 내가 둘 다 잡아먹지 라는 생각으로 그녀는 신나게 뒤 테이블로 향했다.
혼자 남은 수안이 남아 있는 잔을 비웠다. 앞에 있던 바텐더가 새로 잔을 채워주려는데 수안이 잔 위로 손을 올려 막았다. 시선은 아직도 바 끝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른 거로 드릴까요?”
“아뇨”
“그럼 다른 필요 한거 있으세요?”
“저 사람.”
한참을 바 끝을 바라보던 수안이 그제서야 자신의 앞에서 웃고 있는 바텐더에게 눈길을 돌렸다.
“저 바텐더 불러주세요”
마른꽃 1화 시작했어요.
분량조절을 잘 못하겠네요.
매화 분량이 조금 들쭉날쭉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타도 난무 할 수 있습니다..ㅜ
연재는 주 2-3회 예정이니,
최대 3일에 한번씩 올라오도록 할게요.
잘 부탁드려요!
첫댓글 잘보고갑니다~
나윤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힘이 납니다~
잘 읽고 갑니다
momo9985님,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업뎃글 보고 왔어요. 잘봤습니다ㅎ
민트황새님, 내일 모레 2화 업뎃할게요. 잘부탁드려요~
수안은 어떤사람일까요...
매스로직님,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차차 인물들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입니다ㅎㅎ
잘 보고 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