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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X5898HzDo?si=-CeTgm1107M3rmra
( Mozart: Symphonien Nr. 39, 40 und 41 · Concentus Musicus Wien | Harnoncour)
명예의 전당 : 악보를 꿰뚫는 혜안과 시대를 앞서가는 용기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1929년생으로 우리 식의 나이로 따진다 해도 이제 겨우 69세,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에는 아직 너무 젊은 나이가 아닐까? 하지만 그가 이룩해 낸 여러 선구자적 업적과 거의 종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그의 음악 여정을 살펴본다면 오히려 그의 이름을 명예의 전당에 올리는 것 자체가 뒷북치는 일인지도 모른다. 가디너가 '항상 10년은 앞서가는 사람'이라며 칭찬하는 아르농쿠르의 40년에 걸친 작업들을 순서대로 살펴보자.
1.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의 결성
아르농쿠르는 독일과 프랑스의 경계에 있는 로렌 지방의 귀족 후예로(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배출한 합스부르크가문의 후손이다) (그의 성을 아르농쿠르로 읽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성장은 주로 오스트리아에서 이루어졌고 그라츠와 빈에서 첼로 수업을 받으며 음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아르농쿠르가 원전악기나 정격연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빈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공부하면서부터 였다.
졸업 후 빈 심포니의 첼로 주자로 취직한 것이 1952년, 우리 식 나이로는 24세 때였다. 하지만 아르농쿠르는 정격연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빈 심포니의 멤버들을 일부 규합하여 (여기에는 그의 아내가 된 바이올린 주자 알리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Concentus Musicus Wien)'라는 원전악기 앙상블을 결성하게 된다. 이것이 1953년으로, 이들은 4년 후인 1957년에 데뷔 연주회를 가질 수 있었다.
https://youtu.be/QbVTxRicMGM?si=NLZ0Xi96MtBkV0oV
( Johannes Passion BWV 245 - Harnoncourt)
2. 1960년대, '다스 알테 베르크' 시리즈
이들은 곧 텔레푼켄(현재의 텔덱) 레코드사와 계약을 하게 되었고 1960년대 초반에 만하임 악파의 작품들 및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등으로 음반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정식 데뷔 음반은 1963년의 '만하임 궁정에서의 음악'이었다.) 워낙 정격연주라는 단어가 생소했던 시절이었기에 그들의 음반들은 애호가들에게 신선함을 불러 일으켜 많은 각광을 받게 되었고 그 후 아르농쿠르라는 이름은 정격연주의 선구자로 각인되었다. 물론 정격연주 태동기의 여러 선각자들이 있었기에 아르농쿠르가 있을 수 있었지만, 그가 재현해낸 정격음악이 앞서의 선각자들과 달리 본격적인 정격연주였던 데다가 음악적으로도 세련되고 완성도가 높은 것이어서, 그를 '선구자'로 지칭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 영국 정격음악의 선구자로 지칭되는 데이빗 먼로가 정격 연주단체를 결성한 것이 60년대이고 호그우드나 가디너가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결성한 것이 70년대이고 보면 아르농쿠르는 이들보다 10년 이상 앞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텔덱 레이블의 고음악 시리즈인 '다스 알테 베르크(Das Alte Werk)'는 거의 아르농쿠르와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의 몫이 되었다. 당시 이들의 레퍼토리는 바흐의 기악곡이 주종을 이루었으며, 주요 녹음들로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 관현악 조곡 전곡, 바이올린 협주곡 전곡 등이 있다. 어느 것이나 신선한 표현과 참신함이 돋보이지만 원전악기의 연주기술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때라 여러 군데 기술적으로 미숙한 데가 보인다. 특히 아르농쿠르의 아내인 알리스의 바이올린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무미건조하고 차다는 비판이 많았다.
여기서 잠시 원전악기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원전악기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고전음악 창간준비호에 최지영 필자가 문답식으로 자세히 설명한 것이 있다.) 현악기는 모두 현이 거트로 통일되어 음색이 균일하며, 비브라토를 쓰지 않는 주법으로 정격연주의 가장 큰 특색을 이룬다. 하지만 음량이 작고 연주 도중 자주 튜닝을 해야 한다는 단점도 아울러 생긴다. 관악기의 경우 키의 숫자가 적다거나 관의 길이가 짧다는 등의 구조의 단순함 덕분에 연주는 어려워졌지만 음색은 훨씬 투명하고 빛이 난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트럼펫으로 바로크 시대의 내츄럴 트럼펫의 찬란함과 팡파레적인 특성은 현대 트럼펫으로 표현해내기 힘들다. 게다가 음량이나 음색이 다른 관악기들과는 물론 현악기들과도 비슷하여 앙상블을 이룰 경우 밸런스에 전혀 문제가 없다. 연주 방법에 있어서도 피치, 다이내믹 등의 사용에 차이가 있으며, 연주 장소 또한 정격연주를 다른 연주와 구별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바로크 음악들은 이런 악기들을 감안하고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원전악기로 연주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실제로도 최근의 바로크 음악 연주는 거의 모두 정격연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원전악기는 오늘날의 악기들에 비해 연주하기 어렵다. 60년대의 아르농쿠르와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도 바로 그런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결국 아르농쿠르는 '절충주의'의 방법으로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하였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1번에서의 호른 파트가 대표적인 예다. 원전연주에 쓰이는 내츄럴 호른은 밸브가 없어 순전히 입 모양만으로 모든 음을 다 내야만 했는데, 특히 반음이나 트릴 연주가 대단히 어려웠다. 따라서 관에 손을 집어넣어 반음을 내는 주법인 핸드 스토핑이 고안되었는데, 이것은 바흐 사후의 일이다. 아르농쿠르는 이 핸드 스토핑 주법이 음색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정하여 바흐 작품의 연주에도 이 주법을 사용하였다. 물론 최근에는 연주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순수주의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경향이다.
녹음과 연주회가 거듭될 수록 아르농쿠르는 이런 절충주의적인 면모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물론 일정한 한계 이내이기는 했지만, 음악의 표현에 있어 더 낫다고 생각될 때에는 과감히 역사성이나 악보의 지시를 무시하기도 했던 것이다. 아르농쿠르는 악보와 역사성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정격연주는 살아있는 음악이 아니라고 보았던 것이다. 나중에 아르농쿠르 스스로 술회했듯이 완벽한 정격연주란 있을 수 없고 악보란 것도 완벽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주자 스스로 작곡가의 의도를 찾아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가 원전악기로부터 취한 것은 '역사성'이 아니라 '새로운 표현'이었던 것이다.
https://youtu.be/vSYQMtiGry0?si=7pom3QdZiFiukOgM
( Beethoven: Symphony No. 5 / Harnoncourt · Berliner Philharmoniker)
3. 1970년대, 바흐 칸타타 전곡 착수, 몬테베르디 오페라
바흐의 기악곡에 주력했던 60년대와 달리 70년대에는 성악곡이 녹음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 크리스마스 오라트리오, 칸타타들, 몬테베르디의 오페라들이 70년대의 주요 레퍼토리였다. 하지만 연주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오히려 몇 안되는 기악곡의 녹음이 더 훌륭하다. 이들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바흐 음악의 헌정, 비발디 사계, 모차르트 호른 협주곡집을 꼽아볼 수 있다.
https://youtu.be/S3MsbVlVvHs?si=IFZS1iQjYw83VBVk
( Claudio Monteverdi - L'Orfeo (Full opera / N.Harnoncourt 1978)
CHOICE 1 - 바흐 : 음악의 헌정, 연주 :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 텔덱, 1970년.
아르농쿠르가 우리나라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서울음반에서 라이선스 LP로 텔덱 음반들을 찍어내기 시작했던 1980년대 말이었다. 당시 이렇다할 클래식 음반을 내놓지 못하던 서울음반이 갑자기 성음 못지않게 다양한 레퍼토리의 음반을 발매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음반사의 배포권이 이리저리 넘어가던 시절의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음반은 그렇게 발매된 것들 중의 하나로, 당시에는 원전악기에 의한 챔버 앙상블 형태로 연주된 유일한 라이선스 음반이기도 했다. (뮌힝거는 챔버 오케스트라로 연주했고 매리너는 챔버 앙상블이기는 했지만 원전악기가 아니었다.) 당시의 우리나라 애호가들은 뮌힝거의 챔버 오케스트라판 연주에 가장 익숙해 있었기에, 거의 실내악곡으로 연주되는 아르농쿠르의 연주에 큰 신선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전곡에 걸쳐 나타나는 강렬한 표현과 뚜렷한 대비는 애호가들에게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여러 면에서 신선하고 또 훌륭한 음반이지만, 엉뚱하게도 아르농쿠르 부부의 연주에 작은 단점이 발견된다. 알리스 아르농쿠르의 바이올린은 60년대에 비해 크게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썰렁할 정도로 차가운 연주를 들려줄 때가 많으며, 첼로를 맡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자신의 강인한 이미지와는 달리 꽤 소극적인 연주를 펼쳐 보인다. 연주는 아르농쿠르 부부를 포함하여 6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플루트 1, 쳄발로 1, 바이올린 2, 비올라 1, 첼로 1) 헤르베르트 타헤치의 이지적이고 확신에 찬 쳄발로가 단연 빛을 발할 정도로 뛰어나다.
CHOICE 2 - 비발디 : 사계, 바이올린 : 알리스 아르농쿠르, 연주 :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 텔덱, 1977년.
이 무지치의 사계가 부드러움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전통적인 연주라면, 아르농쿠르 부부가 만들어낸 사계는 차갑고 파격이 난무하는 현대적인 사계이다. 물론 최근에는 비온디(Opus 111), 카르미뇰라(Divox) 등의 연주들이 등장하여 아르농쿠르의 파격도 빛이 바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이 음반의 가치는 수십 년이 지나더라도 크게 퇴색할 것 같지 않다. 템포와 완급과 강약의 대비를 극한까지 몰고 간 데다가 상식을 거부하는 템포 설정, 차디찬 바이올린, 이해하기 힘든 프레이징 등등이 듣는 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것이 비발디 당대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냐에 대한 논란도 많았지만, 최근에는 기존의 소위 '전통적' 연주들이 크게 잘못되어 있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으로 되어, 아르농쿠르에게 큰 영향을 받은 비온디 등의 연주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의 기타 주목할 만한 기악곡 녹음으로 모차르트의 호른 협주곡(1974년)이 더 있다. 헤르만 바우만이 호른을 맡은 이 음반은 원전악기인 내츄럴 호른으로 연주된 것인데, 이 악기는 거친 힘을 표현해 내는 데에 유리하지만 연주하기가 극도로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다. 그런데도 내츄럴 호른으로 이만큼 자유자재의 기교를 구사한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적이다.
70년대에 아르농쿠르가 주력했던 바흐의 성악곡들 중에서는 1971년에 착수한 바흐 칸타타 전곡 녹음이 가장 값진 수확이다. 200여곡에 달하는 교회 칸타타 전곡을 레온하르트와 분담하여 완성시키겠다는 이 야심찬 전략은 여러 비평가들의 호평을 얻어내며 1980년대 말에 완성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최근에는 아르농쿠르-레온하르트 보다 더 세련된 바흐 칸타타 녹음들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이룩해낸 최초의 위업은 그 역사적 가치가 퇴색하지 않을 것이다. 바흐 칸타타 연주에서 이들은 여성 성악가들 대신 소년 합창단을 쓰고 있는데, 신선하고 색다르다는 느낌은 들지만 아무래도 전문 여성 성악가들에 비해서는 많이 떨어진다. 때문에 최근의 경향은 알토 성부에 남성 카운터 테너를, 소프라노 성부에 여성 가수들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르농쿠르의 오페라 데뷔는 1971년 빈에서 몬테베르디의 '율리시즈의 귀환'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그 이전에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를 녹음한 것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몬테베르디 오페라에서 아르농쿠르는 확고한 명성을 얻게 되었고 명 연출가 장-피에르 포넬과 콤비를 이루어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세 작품을 차례로 영상물로 만들어 내게 되었다.
CHOICE 3 - 몬테베르디 : 오르페오, 연주 :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몬테베르디 앙상블, 연출: 장-피에르 포넬, 런던, 영상물, 1978년.
이 녹음은 아르농쿠르의 두 번째 오르페오이다. 첫번째 것은 1969년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를 지휘한 것으로 2장 짜리 CD로 발매되어 있으며, 이 두번째의 것은 LD 및 비디오 테이프로만 발매되어 있다. (이 영상물은 포넬과 함께 한 영상물들인 '율리시즈의 귀환', '포페아의 대관'까지 묶여 6장의 전집물 형태로도 발매되어 있으나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극장 실황이 아닌 영상이기 때문에 (앞 부분에 관객들이 자리에 앉는 모습이 나오기는 하지만 철저히 연출된 것이다.) 영화에서와 같은 기법을 사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포넬은 오페라 무대가 갖는 제한 속에서 연출을 시도하고 있다. 그래도 화려한 의상과 자연스러운 연기, 그리고 음악과 딱 맞아떨어지는 연출은 역시 포넬이 오페라 연출의 귀재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포넬만큼 음악을 아는 연출가가 몇이나 될까. 음악적인 면을 살펴보면, 아르농쿠르는 절충적인 지휘를 해주고 있다. 벌써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가 아닌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몬테베르디 앙상블이라는 이름 자체가 절충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지 않은가. (연주자 가운데에는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의 낯익은 멤버들이 대거 눈에 띈다.) 이 영상물의 LD는 과거 구하기가 용이했지만 최근 LD 생산이 중지됨에 따라 잘 보이지 않는 편이다. 비디오는 아예 수입된 적이 없기 때문에 부득이 인터넷 등의 방법으로 주문해서 받아보는 방법밖에는 없다. 한글 자막이 붙은 비디오가 빨리 발매되기를 바란다.
4. 1980년대, 모차르트에의 여행
https://youtu.be/fS2pgUM5quA?si=aCeNhrb4CfXpwpDE
( Nicolaus Harnoncourt in Salzburg 1995_Mozart Le Nozze di Figaro_rehearsals)
1970년대 말부터 아르농쿠르는 자신의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 대신 일반 오케스트라들을 자주 지휘하기 시작했다. 레퍼토리는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이었지만 모차르트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르농쿠르 스스로도 '모차르트에의 여행'이라 불렀을 만큼 이 시기 그가 모차르트에 들인 공은 대단했다. 아르농쿠르는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장르별로 나누어 각기 다른 오케스트라를 기용해 녹음했는데, 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로얄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 교향곡, 오페라 부파(피가로의 결혼 등)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바이올린 협주곡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 - 세레나데
빈 모차르트 관악 앙상블 - 관악 합주곡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 징시필(마술피리 등), 오페라 세리아(이도메네오 등)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 - 종교음악, 약간의 초기 세레나데와 초기 교향곡
모차르트를 연주하면서 아르농쿠르는 더욱 거칠어지고 더욱 절충주의로 기울어져 갔다. 비록 현대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주로 썼지만, 모차르트 당대에 맞게 편성을 조절하기 위해 현악기의 숫자를 줄였고, 거트 현을 사용하고 바로크 주법을 사용하였으며, 팀파니 스틱도 당대의 재질과 같은 것을 사용하여 훨씬 또렷하고 세부 표정이 낱낱이 드러나는 연주를 해준 것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지휘자들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약주로 연주시키는 트럼펫 파트를, 멜로디 악기가 아닌 팡파레 악기라는 관점에서 되살려 내어 전면에 강조시켰다. 트럼펫과 팀파니의 위치를 오른쪽이 아닌 바이올린의 뒤인 왼쪽에 배치하여 묻히지 않도록 한 것도 그의 오랜 연구에서 나온 결과이다.
발터, 뵘, 카라얀 등에 익숙한 애호가들에게 아르농쿠르의 모차르트 연주는 '미친 놈의 연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고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르농쿠르가 작곡가의 의도를 무시하고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창조해 낸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한 일은 단지 그 동안 왜곡되어 묻혀져 왔던 부분을 고스란히 되살려 내고 그것을 현대의 전통과 융합시킨 것뿐이었다. 순수주의자들은 이런 절충에 대해 반박하겠지만 아르농쿠르는 현대악기를 이용함으로써 부수적인 몇 가지 장점들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장 큰 장점은 역시 큰 규모의 연주회장에서도 자신이 지휘를 할 수 있다는 것. 음반이 아닌 실황 연주에서 원전악기 오케스트라는 음량의 한계 때문에 다이내믹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현대악기 오케스트라는 그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의 현대악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정격연주 지휘자들 모두가 아르농쿠르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또 상당수가 그의 아류임을 생각한다면 그가 이룩한 위업이 역시 대단한 것임을 실감할 수 있다.
CHOICE 4 - 모차르트 : 중-후기 교향곡집, 연주 : 로얄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텔덱, 1981-88년, 6CD.
일련의 모차르트 녹음 가운데 가장 획기적인 것이 바로 이 교향곡집이다. 서곡인 26번 및 32번을 포함하여 25번 이후의 15개 교향곡(27, 37번 제외)이 6장의 CD에 담겨 있는데, 각기 낱장으로도 구입 가능하다. 이 음반에 대해서는 필자가 고전음악 창간준비호에 자세히 다룬 바 있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창간준비호가 없는 독자분들을 위해 다시 요약한다면, 피아노(p)와 포르테(f)의 원시적 대비, 과장된 점음표, 빠른 미뉴엣 악장, 상식 밖의 과장된 다이내믹, 넘치는 힘, 장대한 금관악기, 강렬한 팀파니 등으로 묘사할 수 있다. 원전악기와 현대악기의 절충이라는 기본적 줄기에 전혀 '모차르트답지' 않은 강렬함을 조합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 '모차르트적'이라는 명제는 절대적 명제가 아니며 오히려 모차르트 스스로 의도했던 것과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아르농쿠르는 모차르트의 의도를 현대적으로 되살려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집 구입에 금전적 부담이 가는 분들은 뒷 쪽 2장, 즉 38/39번, 40/41번 녹음을 먼저 구입하시기 바란다. 아르농쿠르의 모든 녹음 가운데 베토벤 교향곡집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필청의 음반이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연주로는 나중에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38/39번, 40/41번 두 종이 더 있는데, 오케스트라가 달라진 탓인지 힘에 있어서는 많이 밀린다. 이 중 39, 40, 41번 3곡은 모차르트 사망 200주기 기념 콘서트 실황을 녹음한 것이며, 이 콘서트는 LD 및 비디오로도 발매되어 있다.
모차르트의 협주곡 녹음 중에서는 프리드리히 굴다와 함께 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6/23번, 기돈 크레머와의 바이올린 협주곡 전곡이 돋보인다.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피아노가 쉬는 부분에서도 피아노가 콘티누오 악기로서 저음부를 따라 연주하는 '피아노 콘티누오'의 개념을 도입한 것으로 유명한데, 유약한 피아노에 비해 오케스트라가 너무나 강렬한 것이 흠이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기돈 크레머의 냉철하고 거친 톤과 아르농쿠르의 각진 프레이징이 만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음반인데, 아르농쿠르로서는 드물게 텔덱이 아닌 DG를 통해 발매가 되었다. (크레머가 DG 소속이기 때문이다.)
CHOICE 5 - 모차르트 : 돈 죠반니, 연주 : 로얄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텔덱, 1989년.
https://youtu.be/sgcWe-PMvQA?si=Dvox4VBiyMrXfplm
( W. A. Mozart - Don Giovanni - N. Harnoncourt (Salzburg Festival, 2002)
토마스 햄슨이 돈 죠반니 역을 맡은 음반으로, 햄프슨은 이 음반 덕분에 스타가 되었다. 텔덱의 레퍼토리 늘리기 전략에 발맞추어 아르농쿠르는 모차르트의 모든 오페라들을 녹음하기로 계약을 맺었는데, 이미 이전에 발매해 두었던 '이도메네오',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마술피리'가 수많은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어 '돈 죠반니'의 발매는 애호가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이 음반에서는 햄프슨 뿐 아니라 체를리나 역을 맡은 바바라 보니의 목소리도 들어볼 수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아르농쿠르가 이전부터 키워 왔던 성악가들이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햄프슨은 아르농쿠르의 바흐 칸타타 녹음에도 참여했었다.) 오페라 지휘자로서의 아르농쿠르가 얼마나 가수들을 잘 통제하고 앙상블의 균형을 맞추는지를 알 수 있는 음반이다. 모차르트 오페라, 그 중에서도 특히 '피가로의 결혼', '돈 죠반니' 만큼 가수들과 지휘자간의 호흡이 중요한 작품도 없기 때문이다.
기타 터키 악기들을 대거 강조한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포넬의 연출이 돋보이는 영상물 '코지 판 투테'(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스튜디오 녹음과 다른 연주이다.)도 주목할 만한 연주들이다.
CHOICE 6 - 하이든 : 교향곡 103, 104번, 연주 : 로얄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텔덱, 1987년.
6장으로 된 모차르트 교향곡집과 짝을 이루는 것이 바로 하이든의 런던 세트(교향곡 93-104번, 6CD)이다. 하이든 교향곡의 녹음은 1986년에 시작되어 최근에서야 완성된 것인데, 녹음이 나중에 이루어진 탓인지 모차르트 교향곡집 만큼의 파격은 없다. 그러나 80년대 말에 이루어진 녹음들만큼은 매우 주목할 만하며 그 중 가장 뛰어난 것이 바로 이 103/104번의 녹음이다. 모차르트 교향곡 연주에서 보여주었던 특징들이 고스란히 살아있을 뿐 아니라, 뒤의 베토벤에 이어지는 측면들을 눈에 띄게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특징이 미뉴엣 악장으로, 거의 스케르초에 가까워져 가는 과도기의 특성을 반영하여 굉장히 빠른 템포로 강력하게 휘몰아쳐 간다. 특히 103번 교향곡의 팀파니 연타(drum roll)를 강타(强打)로 바꾸어 처음부터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준 효과는 대단하다.
기타 빈 심포니를 지휘한 음반으로서는 하이든의 오라트리오 '사계',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정도가 주목할 만하다.
5. 1980년대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와의 정격연주
모차르트에 집중했던 1980년대에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가 쉰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들은 정력적으로 연주활동을 펼쳤으며, (다만 아르농쿠르 스스로 첼로나 비올라 다 감바 연주를 맡는 일이 드물어졌을 뿐이다.) 바흐의 칸타타 전곡 녹음의 완성, 모차르트의 초기 오페라 녹음 및 공연, 모차르트의 소편성 실내악 및 종교음악 녹음 등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CHOICE 7 -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전곡, 연주: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 런던, 영상물, 1983년.
아르농쿠르와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는 60년대에 이미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녹음하여 좋은 평을 받았던 바 있지만, 연주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약간 미흡한 감이 있었다. 이 새 녹음은 그들의 연주 수준이 이미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과시하는 것이며, 특히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아내인 알리스의 바이올린이 크게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상물은 라이선스 비디오로도 발매되어 있어 구입이 용이하다. 원전악기의 모습들을 직접 살펴 볼 수 있는 좋은 시청각 교재이기도 하다. 아르농쿠르는 지휘자로, 첼로 주자로, 비올라 다 감바 주자로 왔다갔다하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CHOICE 8 - 모차르트 : 미트리다테, 연주 :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 연출 : 장-피에르 포넬, 런던, 영상물, 1987년.
이미 포넬과 몬테베르디 오페라들로 확고한 성공을 거두었던 아르농쿠르는 모차르트의 초기 오페라로 눈을 돌려 몬테베르디 못지 않은 뛰어난 작품을 남겨주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연주는 강렬하고 확신에 차 있으며 가수들도 최상급이지만, 무엇보다도 칭찬해야 할 것은 지루할 기회를 주지 않는 포넬의 흥미로운 연출이다. 특히 레치타티브에서 보여주는 가수들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는 일품이다. 약간의 삭제가 있는데, 오히려 이 편이 전곡 감상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되며, 이 정도 연주와 연출이라면 모차르트의 다른 유명 오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6. 1990년대,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와 아르농쿠르의 레퍼토리 늘리기
CHOICE 9 - 베토벤 : 교향곡 전집, 연주 :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 텔덱, 1991년, 5CD
(이 자켓은 원래의 것이 아닌 작년에 플라스틱 케이스로 새로 내놓은 자켓, 그만큼 이 레코드의 인기를 반영하고 있음.)
90년대로 넘어오자 아르농쿠르는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베토벤의 교향곡 전집을 내놓았고 이것이 전대미문의 히트를 기록하며 그를 '거장'의 위치로 격상시키게 된다.(1992년 베토벤 교향곡 전집으로 그라모폰 상을 수상함. 그리고 클래시컬 음반으로는 드물게 밀리언 셀러를 기록함. 베토벤 교향곡 입문자들에게는 필청의 음반!!) 80년대의 모차르트나 하이든에 비한다면 그의 강렬함이나 파격은 많이 완화되었으나 (art : 그러나 내 느낌으로는 강렬함과 파격이 곡의 곳곳에 묻어나 있음.. 많이 완화되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나 싶음)그 표현의 신선함과 현대적인 절충주의는 베토벤 교향곡 연주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한 것이었다. 정격풍의 현과 유일한 원전악기인 내츄럴 트럼펫의 팡파레적인 특성은 아르농쿠르의 강렬함과 어우려져 이때까지의 어떤 베토벤 교향곡 연주와도 다른 독특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 베토벤 교향곡 전집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숨겨진 세부 드러내기'이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 같은데, 다른 지휘자들이 못보고 지나쳤던 작은 부분을 부각시켜 전혀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것이다. 5번 교향곡 마지막 악장의 호루라기 같은 피콜로나 6번 교향곡의 호른 등이 좋은 예다. 전집 중 6번과 8번 교향곡, 그리고 리허설과 인터뷰 장면들을 묶어 '아르농쿠르와 베토벤'이라는 타이틀의 영상물도 발매되어 있는데, 관심 있는 분이라면 이것도 놓치지 마시기를 바란다.
이후 아르농쿠르는 주로 유럽 챔버를 지휘하여 베토벤, 멘델스존, 슈만 등을 녹음했고 슈베르트와 브루크너에도 도전했지만 모차르트나 베토벤만큼은 못하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바흐나 모차르트에서는 학자 입장에서의 심도 깊은 연구와 분석을 통하여 연주를 해낸 것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지만, 베토벤 이후부터는 그런 방식의 접근이 큰 실효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또 과도한 녹음과 연주 스케줄에 쫓겨 매너리즘에 빠진 아르농쿠르 스스로의 문제도 컸을 것이다.
이들 중 관심을 가질 만한 음반으로는 기돈 크레머와 함께 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아르헤리치와 크레머가 협연한 슈만 피아노 협주곡 및 바이올린 협주곡, 멘델스존 교향곡 4번 및 서곡, 슈베르트 교향곡 전집, 브루크너 교향곡 3번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은 베토벤이 스스로 남긴 스케치에 근거한 특이한 카덴차가 돋보이며, 브루크너 교향곡 3번은 베토벤 교향곡처럼 연주시켜 브루크너의 색다른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CHOICE 10 - 베토벤 : 서곡집, 연주 :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 텔덱, 1996년.
이 음반은 여러 콘서트에서 실황으로 녹음된 베토벤 서곡들을 모아 발매한 것으로(녹음은 1993-96년), 아르농쿠르의 음반 카탈로그를 붙여 '아르농쿠르의 예술'이란 박스물로 나와 있다. 최근 주춤하던 아르농쿠르의 다른 녹음들과 달리 베토벤 교향곡에서 보여지던 명쾌함과 박력이 고스란히 살아있어 또 다른 빅 히트가 예상되는 음반이기도 하다. 여기에 80년대 전성기 시절의 모차르트에서 보여주던 활화산 같은 타오름이 더하여져 있다면야...
7. 에필로그: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 카라얀과 아르농쿠르
푸르트벵글러는 카라얀을 싫어해서 그가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로 올까봐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푸르트벵글러의 말 -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카라얀(푸르트뱅글러는 카라얀을 지칭할 때 항상 'k' 라는 호칭을 써서 아예 격하시켰다고 함.. 예를 들어 "그 k라는 녀석..." 당시에는 K라는 머릿글자를 가진 지휘자가 카라얀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길래...지금 생각해보니 크나퍼츠부쉬였다... 구별하기 위해 그렇게 썼다고 함)에게 베를린 필의 지휘봉을 넘겨줄 수 없다. 왜냐하면 베를린 필이 카라얀처럼 단순한 기능적 연주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푸르트벵글러가 죽은 지 불과 5개월만에 카라얀은 베를린 필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와 거의 유사한 상황이 아르농쿠르에게도 있다. 몬테베르디와 모차르트의 오페라들로 날로 높은 명성을 얻어가던 아르농쿠르는 카라얀에게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과는 음악적 성향이 적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정반대였고, 아르농쿠르를 칭찬하는 비평가들도 과거의 잘못된 해석으로 자신의 음반들을 선정하는 상황이다 보니 심기가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아르농쿠르에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나 베를린 필은 넘지 못할 성역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제왕같았던 카라얀도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고 아르농쿠르는 곧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메인 프로그램들을 하나 둘씩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베를린 필도 점령하여 현재까지 2종의 녹음(슈베르트와 슈만의 교향곡 4번, 베버의 마탄의 사수)을 내놓았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로 아르농쿠르가 적임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아마 아르농쿠르 스스로도 그런 야심을 불태우고 있을 것이다. (art : 지금 베를린 필의 수장은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뒤를 이어 사이몬 래틀이 이어받았는데 사견이지만 아르농쿠르는 미안하게도 베를린 필의 수장이 될 수 없다. 아르농쿠르처럼 실험적인 지휘자에게 전권을 내줄 베를린 필이 아니기에... 그들은 현대적인 악기를 이용해 요즘 연주법으로 연주하면서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지휘자를 선호하지 ... 내가 암만 아르농쿠르를 좋아한다 해도 베를린 필의 수장이 되기에는 뭔가 부족한 감이 없지않아 있어보인다.)
CHOICE 11 - 슈베르트/슈만 : 교향곡 4번,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텔덱, 1996년.
이 음반은 필자 스스로가 고전음악 창간호에 리뷰를 실었던 바 있다. 요약하자면, 카라얀에 의해 다듬어진 지극히 세련되고 투명한 베를린 필의 소리와 아르농쿠르 특유의 거칠고 파격적인 측면을 절묘하게 융합시킨 연주이다. 특히 슈베르트 교향곡 4번이 뛰어나서, 베토벤을 닮고 싶어했던 청년 슈베르트의 이상을 그대로 실현시킨 명연주다.
필자의 선택
모차르트 중-후기 교향곡집, 6CD
베토벤 교향곡 전집, 5CD
art의 선택
모차르트 중-후기 교향곡집, 6CD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붙어있다. 음악 초보자는 일단, 카를 뵘이나 네빌 마리너의 연주를 먼저 들어보고서 들어보길 강력히 권한다!!)
베토벤 교향곡 전집, 5CD
브루크너 교향곡 9번, 2CD (4악장의 워크샵 포함!!)
요즘 아르농쿠르는 텔덱 클래식과의 오랜 밀월관계(?)를 끝내고 BMG로 소속을 옮겨 새로 두 종류의 음반을 내놓았다고 함. 브루크너의 마지막 미완성 교향곡 9번과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 그것임. 글: 윤정열
글쓴이 : Easy( 고전음악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