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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성회 인도차 '인도네시아'에 갔을 때 일이다. 자카르타 시에서 하루를 호텔에서 묵고 난 다음 날 미리 예약한 비행기를 타기 위해 비행기 회사에 가니 그날 것은 취소되고 그 다음날에야 비행기가 뜬다는 것이다. 비행기 계획이 변경되어 하루를 더 호텔에서 지내야 했는데 호텔 예약은 하루밖에 안 했었다. 호텔측에서는 단 하루도 더 숙박시킬 수 없으니 12시만 되면 호텔에서 나가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옮길 만한 형편도 못되고, 내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다.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시며 지도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께서 나에게 '태국 항공사로 가보라'고 하는 마음을 주셨다. 그래서 그 마음의 음성을 좇아서 태국 항공사를 찾아가서 나의 애로를 말하였다. 그러자 나의 말을 듣고 있던 태국 항공사 직원이 묻기를, 당신은 한국에서 왔느냐? 한국의 순복음중앙교회를 아느냐? 순복음 중앙교회 조 용기 목사를 아느냐? 이렇게 연속적으로 질문하는 것이었다. 낯설고 물 선 이국 땅에서 순복음교회를 알고, 나의 이름을 아는 한 사람의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어렵고 궁핍한 처지에 놓였을 때 이렇게 자상하고 상세하게 인도하여 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인 '수루바야'로 내려가서 저녁부터 있게 되는 부흥성회에서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어려운 환난과 칠흑같이 어둡고 답답한 일이 생겨날 때 결코 당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우리들은 그러할 때일수록 성령께서 우리와 같이 계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하나님의 자비하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실 기회를 드려야만 되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 당신은 어렵고 궁핍한 처지에서 성령께서 당신을 인도하시고 지도하실 기회를 드리고 계십니까?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라(롬 8:26)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에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신29:29)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7월 7일(주일)에 목포에 있는 주소망교회에서 총동원주일을 가지는데 제가 가서 사역으로 돕고자 합니다. 6일에는 지역에서 찬양하며 전도하고 7일 예배 때에 교회에서 찬양하고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본문 / (롬 8:26-30) 정중관 목사 영국의 훈터가 1953년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이래 많은 등반가들이 죽음의 위험을 무릎 쓰고 그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많은 사고와 희생자가 있었음에도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 도전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서 그 일을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정복감 때문입니다. 그 높은 정상에 올라가 밑을 내려다볼 때 느끼는 정복감과 쾌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오르기까지의 온갖 역경과 고난을 감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사방이 확 트이고 온 세상이 한 눈에 다 들어옵니다. 그와 같이 우리 믿음의 세계에도 그런 장면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로마서는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 '이신득의'의 거룩한 삶, 그 성산의 절정이 로마서 8장입니다. 바울은 지금 그 절정에 올라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비로소 믿음생활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고, 믿음이란 것을 알게 되었으며 믿음으로 생활도 하게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온 세계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육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인생도 생각했는데 이제는 믿음으로 보게된 것입니다. 이 믿음의 성산에 올라보니 모든 것이 아름답고 생명이 넘칩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나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고, 온 천하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뿌듯함이 그 산 정상에서 맛보는 쾌감인 것입니다. 믿음의 정상에 올라가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됩니다. 가시밭 헤치고, 계곡물 건너 땀흘리고 정상에 올라가 보니 온 천하가 다 보이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세상을 보면 비관적이요 절망적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정상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면 성령이 나를 인도하는 것을 알게 되고 성령의 도움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26절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도우시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인간을 하나님의 신이 나를 도우시고 계심을 신앙의 절정에 올라가서 알게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이렇듯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기에 우리가 이 세상 모든 풍랑을 헤치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있게 되었고, 오늘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그래서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구나를 알게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에게 성령이 계속해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전도 여행을 떠난 한 선교사가 말레지아의 조그만 동네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길을 가는데 뒤에서 칼을 든 한 강도가 가진 모든 것을 내 놓으라고 협박을 합니다. 벌벌 떨다가 선교사가 얼떨결에 서투른 말레지아 말로 "물러가시오 나도 당신처럼 가난한 사람이오" 했는데 그러자 갑자기 그 사람이 칼을 거두고는 너무도 친절히 데리고는 자신의 거처로 가서 차를 대접하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강도가 말을 잘못 알아들은 것입니다. 선교사는 "물러가시오 나도 당신처럼 가난한 사람이오"라고 했는데, 강도는 "물러가시오. 나도 당신처럼 강도요"로 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하고 도와주시려면 이렇게 분명히 말을 바로했는데 듣기는 딴 말로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성령의 도움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니 그 위험한 순간에도 성령이 역사 하더란 밀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불과 몇 안되는 사람이 걸어갈 때에도 적군에는 대군의 말굽 소리로, 혹은 벼락을 치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리곤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도우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내용을 보니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고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살지만 언제나 성령의 방법과 도움으로 산다면 믿음으로 담대해지고, 감사하게 됩니다. 나를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와 함께 하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에게 성령이 탄식하며 도와주고 계시는데 그것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모든 일에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께서 도우시는 사실들을 믿고 체험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28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사람은 구원사적 역사관을 가지고 산다고 그랬습니다. 이 말은 모든 거이 다 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솜씨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다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구원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들의 세계관은 근시안 적입니다. 그 시야가 짧고 좁고 하나만 압니다. 하나만 보고 좋아하고, 안 좋은 일이 있으면 하나만 보고 웁니다. 그래서 웃고 울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누리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종합을 해가면서 삽니다. 하나 가지고는 모르겠다. 다 모아라. 나의 생애의 모든 것, 웃었던 것, 울었던 것, 성공했던 것, 실패했던 것, 다 끌어 모아 종합해보니 하나님이 나를 천국으로 보내는 구원을 위한 솜씨이더라는 것입니다. 종합을 해보지 않으면 정확한 답이 안 나옵니다. 오늘 좋다고 정말 좋을까? 오늘 괴롭다고 정말 나쁜 것일까? 종합해 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절정에 올라가 보니 그런 여유가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나타난 모든 것은 지금은 해석이 잘 안 되지만 나중에 가면 다 유익하고 선한 일이다. 실패해서 괴로운 일이 있어야 조심할 것이고 겸손할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에게 기도하라는 제목을 주셨을 것이다. 전부 구원과 관계시켜서 설명을 합니다. 좋은 일이 생겨서 유익하고 기분이 좋다면 하나님이 내 기도 들으시고 복을 주셨다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필요하다며 이곳 저곳에 맞추고 조립해 놓으면 귀한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모든 것을 종합할 줄 압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종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버릴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다윗의 삶을 보십시오. 한가지만 가지고 인생을 논하면 안됩니다. 지금 행복하다고 그것이 나의 전부인 줄 안다면 잘못 안 것입니다. 지금 괴로운 것 때문에 안될 줄 알면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다 필요합니다. 마지막에 종합을 해서 하나님의 일등 국민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자녀를 만들고 싶어서 하나님이 나의 삶에 이 모든 것을 주신다고 하는 종합할 줄 아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사는 생활입니다. 29-30절에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사는 삶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강해집니다. 예정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나의 남자된 것도, 여자된 것도, 이 시대에 태어난 것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다 예정 아래서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한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우리는 움직이는 것입니다. 믿음의 정상에 올라가 보니 사랑이 충만한데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느냐하면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산다는 그것을 알게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것을 정해 놓으셨단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이며 담대하게 하는 일입니까? 이 예정론을 우리 나라에서는 운명론처럼 보는 잘못된 사고가 있습니다. 한국인의 생활습성에 다지고 다져진 사상이 운명론입니다. 이 동양의 운명론이 민족을 망하게 하는 무서운 병입니다. 운명론이 무엇입니까? 나는 어느 해, 어느 날, 어느 시에 태어났으니 죽는 날도, 성공할 것도, 출세할 것도 모두 정해져 있어서 아무리 해도 그 사주팔자란 것을 뛰어넘지 못하니 쓸데없는 노력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사주팔자가 좋은 사람은 '나는 놀아도 잘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밤낮 내 운수가 어떤지 묻고 다닙니다. 운명론은 인간을 망하게 합니다. 과거에만 집착하게 합니다. 결혼이니, 이사니 모든 것에 매인 인생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정론은 운명론처럼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하는 것은 같지만 이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예정론은 지나간 일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래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이 있기에 오늘 나에게 좋은 일도 괴로운 일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셉은 17세에 총리대신이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장래를 결정해 놓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갔고, 성실히 머슴살이를 했음에도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안되어도 이렇게 안됩니까? 운명론에 빠지겠습니까? 팔자가 나빴다고 할 것입니까? 아닙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어 7년 흉년에서 많은 사람을 살리는 위대한 인물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예정하셨기에 고생도 하고, 억울한 옥살이와 고난을 겪은 것입니다. 이것이 예정론의 방법입니다. 오늘 나의 사건은 지난 날의 문제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하나님의 예정이 있기 때문에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미래 하나님의 예정 때문에 오늘 나의 모든 역사가 진행된다고 믿어야 희망적이고, 노력하고 적극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정론은 사람을 복되게 하며 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다. 나의 생애는 하나님의 손안에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이렇게 사랑했구나! 역사가 나 때문에 이렇게 움직이고 있구나!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에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또한 담대해 지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임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해되어지는 대로 하나님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때 그 예정하신 시건이 바로 내 역사이고, 내 인생관이고, 내 모든 삶이 되는 것입니다. 등산하는 사람이 산 위에 올라가서 온 천하를 내려다 볼 때에 느끼는 그 상쾌함처럼 이 믿음의 성산, 이 믿름으로 의롭다하는 거룩한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하나님의 사랑이더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성령으로 살아가게 해 주시고, 무슨 일이 생겨도 종합해 보면 다 유익하여 버릴 것이 없는 삶이 되게하시며, 내 모든 삶을 하나님이 잡고서 움직이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정상에 올라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에 도취됩시다. 무슨 일이 생겨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살아가는 사랑을 입은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첫댓글 말4:2
내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
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아멘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선교와 설교와 목회와 치유와 민족을 구원하는 구원사역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만경강 목사님, 존재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