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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사경공덕 이야기 (2)
정진스님은 노인을 부르다 꿈이 깨었다.
꿈을 깨고 나서도 너무나 선명하여 오래도록 앉아 있던 그는 일단은 사경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 자신은 참선하는 중으로 신도들의 반연도 없었고, 그 자신 또한 무일푼이라 사경할 비용이 없었다.
둘째, 그는 독경을 하고 염불을 하고 참선을 했지만 글씨에는 자신이 없었다.
부처님의 고귀한 말씀을 쓸 줄 모르는 자신의 운필로 개발새발 그려 놓고 싶지는 않았다.
셋째, 누가 글씨를 잘 쓰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하기야 그것은 찾아다니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정진스님은 속가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찾았다.
그녀는 홀로 된 몸으로 외손자 하나를 거두고 있었다.
정진스님을 보자 대뜸 말했다.
"속세로 치면 아들이지만 불가로 치면 스님이오. 스님이 속가를 찾아다니는 것은 그리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니 특별한 일이 아니면 들어오지 말고 그대로 돌아가시오."
그리고는 방문을 닫아 버렸다.
정진스님은 문 밖에 서서 꿈 얘기를 하고 함께 화주하러 다닐 것을 제안했다.
그제서야 노파는 방문을 열어 주고 정진스님을 아들로 받아들였다.
두 모자는 전국을 돌며 3년 동안이나 탁발화주를 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법화경>과의 인연을 맺어주기 위함도 깃들여 있었다.
3년이 지나니 제법 많은 돈이 모였다.
정진스님은 당시 명필로 소문이 난 통도사의 김경운스님에게 특별히 부탁을 했다.
경운스님은 본디 순천 조계산 선암사가 재적본사이며 통도사 백련암에 머물고 있었다.
경운스님은 검은 비단에 금니로 <법화경>을 쓸 것을 제안했다.
그런데 문제는 붓이었다.
여기에 쓰이는 붓은 살아있는 족제비의 꼬리털을 뽑아서 맨 붓이라야 했기 때문이다.
경운스님이나 정진스님이나 산 족제비를 구할 수가 없어 애를 태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녹차를 우려 마시노라니 난데없는 황금빛 족제비 한 마리가 방으로 뛰어들었다.
사람을 보고도 달아나려고도 않았다.
족제비는 방 한가운데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경운스님이 비로소 알아차리고 시자를 시켜 족제비 꼬리를 조금 자르게 하니 그제서야 족제비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하여 금니로 쓴 <법화경>한 질이 무사히 이루어지는데 일곱 달이 걸렸다.
정진스님은 <법화경>을 부처님 앞에 모셔 놓고 기도를 올렸다.
꼬박 하루 만에 '나무묘법연화경'만 번을 하고 회향했다.
회향할 때는 <법화경> 사경 비용을 제하고 남은 돈으로 음식을 장만하고 스님네 옷을 한 벌씩 하여 고루 공양하였다.
성대한 회향식이었다.
그날 밤 정진스님과 그의 어머니 꿈에 손유상이 나타나 화사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가 <법화경>을 사경하고, 옷가지와 음식을 스님네에게 공양하며 천도제까지 겸하여 지내준 공덕으로 나는 지옥고를 면하고 천상락을 받게 되었구나."
그리고는 구름을 타고 하늘 저편으로 가물가물 사라져 갔다.
그 후로 정진스님은 참선하고 염불하는 사이사이 늘 <법화경>을 독송하였고 또 널리 강설하였다고 한다.
#동봉스님 #불교설화
첫댓글 나무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
감사합니다 옴 아비라훔캄 스바하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훔()()()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