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팔 것인가 비싸게 팔 것인가. 럭셔리 제품의 딜레마는 이 두 사이에 있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 매출을 늘리는 것은 당연히 모든 회사가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럭셔리 제품은 다르다. 갖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열망은 럭셔리의 중요한 속성이다. 모두가 알아보는 명품을 오직 자기만 갖고 싶어하는 것이 럭셔리 구매자의 공통된 심리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 제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럭셔리로서 가치를 희석시켜 결국 비싸게 파는 데 걸림돌이 된다.
명품 시계와 보석 브랜드로 유명한 까르띠에도 이러한 딜레마에서 자유롭진 않다. 까르띠에는 고급 시계 브랜드로서는 압도적인 매출액과 시장 점유율을 자랑한다. 시계나 보석 매출이 각각 연간 20억유로가량인데 고급 시계 분야에서 이 정도의 매출을 기록하는 브랜드는 드물다. 하지만 너무 높은 대중적 인기가 희소성이란 가치를 퇴색시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고급시계박람회(SIHH)에서 만난 티에리 라무루 까르띠에 시계 디렉터(Watch Marketing Development Director)는 그런 지적에 대해 "까르띠에는 럭셔리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매출도 올리기 위해 초고가 제품군과 대중적 제품군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까르띠에에서 시계 마케팅과 신제품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다음은 라무루 디렉터와의 일문일답.
-까르띠에는 매출액이나 신제품 수가 럭셔리 제품치고는 매우 많은 편이다. 그러나 너무 많은 물량은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우려도 있다.
▶희소성이 있는 제품과 대중적으로 많이 팔리는 제품 사이의 균형이 럭셔리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초고가 상품만 내놓으면 이윤을 남길 만한 고객 수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매출만 생각해 대중적인 제품만 내놓는다면 럭셔리가 가지는 예술성이 사라져 장기적인 수익모델에 문제가 생긴다.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치면 안된다는 얘기다.
초고가 시계로 브랜드의 기술력과 예술성을 보여주되 여러 사람들이 살 만한 것도 함께 내놓아 매출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렇다면 까르띠에는 양자 간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고 있나.
▶예술성을 강조한 최고의 상품을 내세우되 이것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품군도 함께 내놓는 것이다.
올해 나온 모델 중 12개의 모델은 단 한 점씩만 나왔다. 극단적인 희소성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계를 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예를 들어 첨단 기술이 집약된 로통 드 까르띠에 미스터리 아우어스는 가격이 15억원이 넘는다. 이 가격대 시계를 소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까르띠에의 가치를 그대로 전해줄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의 시계를 내놓고 매출은 여기서 올려야 한다. 가령 이번 시즌에 주력으로 밀고 있는 탱크 MC의 경우 700만원 후반대여서 예물 시계용으로 살 만한 가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럭셔리 브랜드의 가치를 유지하는 초고가 제품에 예술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대량생산이 일반화되고 기술력이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럭셔리가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장인의 정성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장인의 예술정신은 럭셔리만 구현할 수 있는 대체불가능한 것이다.
가령 까르띠에는 이번 시즌에 색색의 꽃잎 조각으로 시계 다이얼에 앵무새를 수놓은 시계를 선보였다. 이건 수작업이 아니면 안된다. 우리는 이걸 시계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다.
-고급 시계에서는 사실 순위나 고객들의 충성도에 변화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까르띠에는 새로운 고객층을 만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다양한 방법이 있다. 광고나 기사, 이벤트와 같은 전통적인 방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의 브랜드 가치를 알리고 확산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아직 기계식 시계의 매력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고급 기계식 시계의 매력을 알려 새로운 고객층으로 편입시키면 된다. 흔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이 가장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하지만 잠재 고객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까르띠에는 보석 브랜드로 오히려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보석 부문은 150년가량의 역사지만 시계 부문은 100년 정도다.
▶우리의 장점은 시계와 보석을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 분명한 시너지다. 최근 들어 아시아권의 수요가 늘면서 점점 더 많은 보석을 시계에 박아넣는 주얼리 와치가 유행하고 있다. 우리는 잘 세공된 보석을 시계에 가장 잘 장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보석을 다루지 않는 시계 브랜드와 비교할 때 분명한 강점이다.
-그렇다면 보석 마케팅과 시계 마케팅에 차이점이 있는가.
▶보석은 감성적, 시계는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보석은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 그 제품을 잘 설명하고 선전할 수 있다. 이벤트에 능하고 화려함을 잘 아는 사람이 고객들을 보석과 사랑에 빠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비해서 시계는 좀 더 냉정하다. 감성적인 호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능에 대한 신뢰가 우선시돼야 한다. 시계의 기능과 역사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 기술이 가진 의미를 전달하는 마케팅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