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 생태공원을 찾아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해 온 지 30년에서 몇 해 모자란 세월이 흘렀다. 지은 지 10년 된 중층 아파트로 당시는 드문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였다. 입주로부터는 지금껏 40년이 된 아파트단지다. 최근 당국의 안전진단을 통과 받아 그동안 물밑 논의되던 재건축 조합이 결성되었다. 앞으로 재건축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면서도 사는 날까지 불편을 겪지 않으면 싶을 뿐이다.
같은 아파트단지 이웃 동에는 서로 경쟁이다시피 몇 사람이 뜰에다 꽃을 가꾸고 있어 덕분에 눈 호강을 잘하고 지낸다. 나보다 먼저 와 살던 초등학교 친구가 원조로, 가꾸는 꽃을 영상으로 제작해 ‘꽃대감 TV’ 유튜버로 활동해 구독자를 늘려가고 있다. 친구와 같은 동 밀양댁 안 씨 할머니가 뒤늦게 합류했고, 그 이웃한 구역에도 두 아주머니가 동참해 연중 꽃 대궐을 이루게 한다.
바로 건너편 동에는 한 노인이 수국을 가꾸어 몇 해 전부터 초여름 한철 풍성한 꽃을 피워 눈길을 끌게 한다. 그는 허물어진 언덕에 돌을 주워 와 축대를 쌓더니 어디선가 구한 수국 묘목을 심었다. 겨울 이른 새벽 거름을 주고 가지를 잘라주는 모습도 본 바 있다. 꽃송이가 무거워 쓰러질까 봐 지주까지 세워주었다. 나이 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에게 시범을 보여주는 듯했다.
수국과는 퇴직 직전 근무지였던 거제 시절이 떠올랐다. 거제 남부면 저구 일대와 해안도로에는 수국 꽃길이 잘 조성되어 해마다 초여름에 수국 축제가 열렸다. 거제에서 3년 지내며 근무지와 상당한 거리에 멀리 떨어진 남부면을 찾아 수국 꽃길을 걸었다. 수국은 부산 태종대 산책로도 알려져 꽃이 피었을 때 한 번 다녀온 적 있는데 김해 대동 수안마을은 가볼 겨를을 내지 못했다.
오월 하순 수요일 자연학교 등굣길에 아파트단지로 내려서니 이웃 동 뜰에는 수국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수국꽃을 폰 카메라에 담아 원이대로로 나가 대방동을 출발해 본포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차를 타고 가는 이동 중 지기들에게 수국 사진을 보냈다. 통성명하지 않아도 만나면 인사를 나누는 같은 아파트단지 이웃 동 노인이 가꾼 꽃이라고 소개했다.
동읍 주남저수지를 비켜 본포에 닿아 둑으로 올라 학포로 가는 본포교를 건넜다. 질주하는 차량 말고는 자전거를 타는 동호인이 라이딩을 나서기는 해도 1킬로미터가 넘는 본포교를 걸어서 건너는 이는 드물지 싶다. 나는 더러 본포교를 걸어지나 임해진이나 인교를 거쳐 부곡 온천까지 가서 목욕도 하고 왔다. 이번에는 청도천에 놓인 반학교를 지나 반월 습지 생태공원으로 향했다.
본포교 중간쯤에서 바라본 강변은 차로 다닌 이들은 볼 수 없는 멋진 풍광이었다. 원호를 크게 그린 제방을 따라 반월 생태공원으로 드니 금계국이 피어 황금빛 세상을 펼쳤다. ‘초동 연가길’로 이름을 붙인 산책로에는 개양귀비꽃이 피어 절정이었다. 주말은 차를 몰아온 탐방객이 더러 찾아오겠으나 주중이라 산책 나온 이가 없어 혼자 열병을 받고 지나기가 호사스럽게 느껴졌다.
반월 습지 생태공원은 4대강 사업 이후 국토부 선정 ‘아름다운 강변길’ 100선에도 들었다. 늦은 봄과 초여름은 개양귀비꽃이 장관이고 여름에는 코스모스를 가꾸어 늦가을까지 꽃을 피웠다. 어디선가 씨앗이 날아왔는지 수레국화도 꽃 대열에 동참하고 기생초도 다음 순서로 출연을 대기했다. 개양귀비꽃이 만발한 초등 연가길을 걸어 성북을 거쳐 곡강을 지나 수산다리를 건너왔다.
대산 일동에서 자주 이용한 1번 마을버스로 가술로 와 콩국수로 점심을 때웠다. 오후는 국도변에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다 ‘개양귀비꽃’을 남겼다. “‘개’라고 붙인 사물 대개가 하품이라 / 못난이 이르거나 보잘 것 없는데도 / 우미인 가리키는 꽃 양귀비는 달라라 // 자잘한 씨앗 싹터 잎사귀 마주해서 / 가냘픈 꽃대 솟아 선홍색 꽃을 피워 / 바람결 하늘거리면 홀린 만도 하여라” 24.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