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
[연재] 박정섭의 ‘내 집짓기 해법’-10회
현대인들이 도심에서 전원으로 삶의 터를 옮기고 싶어 하는 욕구가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임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러한 주거문화의 변화에 동참하여 내 집을 짓는다는 것은 분명 큰 즐거움이다. 더구나 도시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 전원주택을 마련한다는 것은 일생동안 단 한번 있을까한 가슴 벅찬 기쁨이고 기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연습 삼아 한번 집을 지어본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람은 늘 착각이나 오류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어 집짓기의 첫걸음부터 시행착오가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현상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도처에서 이와 같은 시행착오가 반복되고 있는 까닭은 아마 사람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만큼만 볼려고 하며 그 테두리 안에서 매사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습성이 있다는 사실을 가끔 망각하기 때문일 것이리라 본다. 또한 해당분야 전문가의 조언에 귀 기울이는 척 하지만 진정으로 건축주가 마음의 문을 열어젖히고 전문가의 기술력과 오랜 경험을 인정하는 데는 더더욱 인색하기 때문인 것으로도 짐작된다.
누구든 돈 없애고 속 편한 사람 없듯이 내 집을 짓기 위한 과정에서의 지나간 시행착오에 대해 “얼마짜리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해버리고 넘기기엔 그로 인한 비용 낭비는 너무나 큰 액수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에, 다가오는 전원주택 대중화 시대를 앞두고 찌든 도시의 울타리를 벗어나 전원생활의 정취와 여유로움을 설계하는 분들에게 터 고르기부터 준공ㆍ입주해서 터다지기까지 전반적인 과정상 겪기 쉬운 시행착오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그 요령에 대해 여섯가지 주제로 나누어 실무지침적인 내용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글 싣는 순서 】Ⅰ. 택지를 살 때 기본적으로 「체크」해야할 사항Ⅱ. 설계의 중요성 인지는 예산절감의 지름길Ⅲ. 공법의 선택에 따라 쾌적성이 달라진다Ⅳ. 시공업체 선정시 이런 점을 유념하라Ⅴ. 무조건 저렴한 「평당공사비」선택은 부실주택으로 돌아온다Ⅵ. 건축주와 설계ㆍ시공자가 지켜야할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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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자우환(識字憂患)
건강에 대한 유의사항들을 이것저것 너무 많이 알다보면 신경이 온통 그것들에 쏠리기 쉬워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건강에 역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어설프게 아는 것보단 차라리 모름이 일의 원활한 진행을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
만약 건축주가 설계나 시공, 자재 등의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분야까지 설익은 지식으로 습득해서 집을 지으려고 한다면 세세한 부분까지 과민현상과 함께 시공자와 마찰을 유발시키고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전문성을 요하는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해당 분야에 정통하고 양심적인 업체에게 역할을 분담하여 믿고 일임하는 건축주의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건축주가 원하는 형태나 기능, 패턴, 개념 등을 설계ㆍ시공자에게 객관성 있는 대화로 정확하게 전달함으로써, 초기단계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제반 경비의 낭비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 일상 중에는 공짜를 좋아하거나, 요즘에 어떤 물건을 사든지 공짜임을 가장한 끼워주기식 서비스가 광범위한 업종에 걸쳐 만연해 있는 실태이다. 주택시공도 그 예외는 아니다. 겉보기에는 좋은데 속을 들여다보면 하자 투성이인 집과 다를 게 없다.
타사와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어쩔 수 없이 수주하게 된다고 털어놓는 업체들이 의외로 많다. 언뜻 보기에는 서비스 항목들이 공짜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결국 건축주가 부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사를 맡기는 조건으로 설계는 서비스 해달라고 건축주가 요구한다면 그 설계비만큼을 공사비 견적 어디에든 반영시킬 수밖에 없고, 그 외에도 다른 옵션을 서비스로 요구한다면 그 만큼을 보충하기 위해서 또 다른 쪽에서 부실하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통상 건축주가 요구하는 여러 가지 서비스항목들이 있지만 건축주의 이와같은 공짜나 서비스 요구는 결국 스스로 부실을 자초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선거의 마지막 책임이 유권자에게 돌아오는 것처럼 공짜나 서비스문화로 인한 부실에 대한 책임의 절반 이상은 시공자 뿐만 아니라 발주자인 건축주 자신에게도 있음을 서로가 인식해야 한다.
▲동호인주택단지 성공 조건
전원주택 선호도가 상승되면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동호인조합을 구성하여 더불어 살기를 희망하는 모임이 늘고 있다. 시작단계에서는 말 그대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지만 단지조성을 위한 부지를 선정하거나 또는 선정된 단지 내에서 각자의 주택부지를 결정하거나, 주택형태 및 층수, 높이 등을 정하는 협의단계에서부터 조망권 등 각자의 이익을 위한 의견충돌을 피하지 못해 불행히도 무산되어버리는 동호인 주택조합의 사례가 많다.
조합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유리한 고지를 주장하고 개인의 취향만을 우선 고집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전원주택 동호인모임은 각 건축주가 이해관계에서 빚어지는 타산적인 습성을 버리지 않고서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함을 인지하고 서로가 양보하는 자세여야만 동호인 전원단지 조성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
▲신용은 곧 생명
기술자가 정상에 오르는 비결은 ‘기술력’이고, 오른 정상을 지키는 비결은 ‘신용’이라고 본다. 어떤 일을 하건 어느 위치에 있건 그만큼 ‘신용’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재산이다.
신뢰나 신용은 다른 물건처럼 분배해서 나누어 가질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도 없는, 자기 스스로 꾸준히 쌓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한번 허물어지면 다시 쌓기는 더욱 어렵다.
그런데, 단순히 수주를 위해 책임지지 못할 일을 약속하고 실제 건축과정에서 그 약속을 이행하지도 않으며, 합당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며 현장 뒷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두 차례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수주를 해야 하는 시공업체가 고객에게 신용을 잃었다면 생명력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건축주에게 신뢰감을 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며 그런 시공업체만이 오래 영위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건축주는 ‘진정한 프로에게서 느끼는 신뢰감’을 선택해야만 집 짓는 전체 과정상 빈틈없는 구성이 좋은 결실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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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력이 경쟁력
설계자나 시공자는 자가당착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실제로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일만을 수주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전문기술자라면 경우에 따라 이익이 없는 "빛좋은 개살구"격인 공사를 수주했더라도 일단 조건을 결정해서 수주한 이상, 정석대로 공사를 마무리해야 진정한 프로라고 할 것이다.
같은 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젖소가 마시면 신선한 우유가 되듯이 똑같은 품질의 자재도 설계ㆍ시공자의 기술력에 따라 건축물의 결과가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말은 아무리 잘해도 그것만으로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정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창출된 공사결과물로써 평가되어져야 하며, 시공자는 장기적 포석을 염두에 두고 ‘이 땅에 부실만 남겨 놓고 가서야 되겠는가’를 항상 상기해야 한다.
‘눈 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기술로 축조한 건축은 오래가지 못하고 부실함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기술자는 일 ‘꾼’의 기질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꾼’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갈고 닦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하겠다.
진정한 ‘꾼’이란 끊임없는 연마의 과정에서만 바로설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기술자로서의 ‘꾼’이 아니라 수주영업 위주, 매출목표 위주의 경영처럼 장사꾼으로서의 ‘꾼’으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므로 ‘정직한 전문기술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아낌없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상호간 호응 바탕 돼야
내 집을 짓는 것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건축주와 설계ㆍ시공자 공동의 노력과 실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만큼 서로의 호응을 바탕으로 서로의 의도가 최대한 수용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또 그래야만 올바른 건축문화가 형성되고 훌륭한 집이 탄생될 것이다.
과거 1990년대 국내에 전원주택 개념이 보급되기 시작한 직후 수년간 건축주, 단지개발시행사, 설계사, 시공업체의 각각의 시행착오들로 인하여 부실주택과 무분별한 전원주택지 개발이 여러 곳에 난립하고 산재하기도 했다. 이런 결과로 산림이나 토지의 훼손 등 손실도 많았고 미분양택지로 방치된 사례도 많았다. 동시에 전원주택에 대한 이미지가 한 때 추락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과거의 시행착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첫 단추부터 잘 끼워서 퇴색되지 않는 주택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설계자, 시공자 그리고 건축주 모두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6가지 소제목으로 기술한 이 지침들이 내 집 짓기 과정에서 겪기 쉬운 많은 시행착오들을 조금이라도 예방하고, 아울러 잘못된 인식과 공사 및 계약관행 등이 올바르게 뿌리 내리기를 희망한다.
집짓기 과정상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실무적이거나 기술적인 내용들로 원고의 틀을 구성하다보니 다소 지루했을지도 모르나, 불합리한 점들을 개선하는데 다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끝으로, 건축주의 취향과 예산에 적합한 택지를 선택해서 실용적이고 편안한 집을 짓고 난 후, 그 다음부터 적극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가족 구성원 전체의 정서에 걸맞는 목가적 분위기로 잘 연출해 나가느냐에 따라 풍요로운 전원생활의 보장과 성공 여부가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건축주와 설계ㆍ시공자 모두가 시행착오 없는 "좋은 집"이라는 매개체로 인하여 함께 맺은 인연의 끈을 오래토록 잘 이어가고, 호젓한 전원의 뜰 안에 피는 이야기꽃이 만발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박정섭
- Hi-housing 대표- 박정섭 목조건축디자인연구소 소장- 한국건설기술인협회 정회원
출처 위클리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