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나를 업고 정신없이 앞만 바라보고 뛰어 갑니다.
눈 앞에 보이는 신작로 에서 어제 미군이 오늘 아침 9시에 나오면 차를 태워 안전하게 피난시켜 준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그저 그 말만믿고 신작로를 행하여 뛰어 갑니다.
이제 어머니 시야를 가리는 사람이 한명도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에게 총을 쏜 국군이나 인민군들은
부인이 병든 아이를 업고 뛰어가는 것을 차마 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다행히 신작로에 이르렀는데 거기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머니는 신작로 따라 길게 늘어서 야트막한 산위로 올라갑니다.
거기에는 작은 밭이 하나 잇는데 콩을 심었고 옥수수도 띠엄띠엄 자랍니다.
어머니는 그곳을 지나산으로 올라가는데
그동안 어머니가 병든 아들을 업고 가는 것을 국군이나 인민군들은 차마 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용산에서 나올 때 우리와 같이가던 50여명의피난민들이 다죽었습니다.
"어 아이를 업고 가는 여자 누가 한 번 맞춰봐 !"
국군이 그런 말을 했던지
인민군이 그런말을 했을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산을 오르는데 그곳의 산이 수만명의 총알이 날라와 박히면서 산이 허물어집니다.
어머니가 몇발작 가지 못하고 주저 앉아 나를 동여맨 포대기를 풀어버립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바짝 업드립니다.
나도 어머니 따라 업드렸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방금우리가 지나온 용산을 내려다 보자 저 멀리 용산에서는 전투가 심하게 벌어지고 있고
한쪽에서는 제트기 4대가 어딘가를 맹폭격함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신작로가 산을 따가 곧방 뻗어간 곳을 바라봅니다.
거기에 150m거리에 미군이 보이는데 우리에게 총을 쏘고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1950년의 6.25전쟁 비화를 기록한 일반인들이 글이 거의없습니;다
그러니까 6.25 전사에 관한 글이 없다는 뜻입니다.
나는 그때 14살이기에 아주 생생하게 기억을 합니다.
우리들의 부모님이 어떤 고생을 하였는가 기다려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