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 (외 2편)
최동은
나는 죽었는데 뻐꾸기가 우네
나는 죽었는데 비행기가 날아가네
흰나비를 따라가며 개가 짖네
개를 따라가며 사람이 짖네
자두꽃이 떨어지네
나는 죽었는데 시외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가네
나는 죽었는데 옥수수들 하늘을 이고 서 있네
회오리바람 속으로 빨려들어 간 술래
느티나무 길을 다시 걸어와
오래 밥을 먹고 있네
회전문
유리문이 돌아가요 당신은 검은 가방을 들고 내 앞 칸에서 튕겨져나가요 당신을 따라 정오의 햇빛도 가로수도 튕겨져나가요 창밖에선 빗줄기가 멈췄다가 다시 쏟아져요
당신은 이 문을 뚫고 나갔지만 나는 아직 문 안에 있어요 십년 전에도 지금도 여기 있어요 당신이 나를 찾아다니며 울었다고요? 수억 년 동안 혼자였다고요 후후 머리 속에 소름이 돋네요
문이 자꾸 나를 돌려요 당신은 또 행방불명이 되지요 싸이프러스 숲을 산책하고 돌무덤 길을 따라갔다고요 당신의 말소리는 마른 잎사귀 너머에서 살랑거려요 나는 당신의 가방을 들고 구름을 들고 문 안에서 계속 돌고요
풋살구
그와 떨어진 살구를 주웠을 뿐인데
자꾸 신맛이 돌아
나는 덜컥 애를 배고
덜컥 스무 살이 되고
멀뚱 서 있는 오동나무에게
풀냄새가 싫어, 투정을 하고
집에 가자가자 손잡아 끄는 바람에게
질질 끌려가다, 그만
풋살구처럼 포르스름 눈매가 시어져서는
처음 보는 아이 둘을 업고 걸리고
염소가 내려오는 언덕길을
터덜터덜
그렇게
—시집『술래』(201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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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은 / 경기도 광주 출생. 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2002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