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어투에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선동하고 유혹하려는 냄새가 배어 있었다. 대청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손가락이 지적하는 곳을 바라봤다. 그 순간 그들의 입에서는 경탄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박피가 말했던 기적이라는 것은 바로 검고 치렁치렁한 머리를 어깨까지 내려뜨리고 있는 백의 소녀였던 것이다. 백의 소녀는 겁먹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름답고 맑은 얼굴은 창백하여 혈색이 없었으나, 그녀의 표정과 자태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한쌍의 부드럽고 맑은 눈동자에는 놀람과 부끄러워하는 빛이 스쳐지나갔다. 마치 한 마리의 암사슴처럼. 그녀의 날씬하고 풍만한 신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자 가볍게 떨었다. 그 떨림으로 인해 그녀는 더욱 부드럽고 연약하고 가련하게 보였다. 바로 이순간에 모든 사람들은 이 가련한 작은 사슴을 꼭 품고, 자기가 알고 있는 가장 부드러운 말로 그녀를 위로해 주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하는 듯했다. 가 대상공은 그들의 표정을 바라보고 입가에 엷은 웃음을 떠올렸다. 그는 교활하고 득의에 찬 웃음을 흘리며, 한 손으로 그 소녀를 자기쪽으로 끌어당겨 큰소리로 말했다. "이 여인은 원래 천상의 선녀이고, 제왕(帝王)의 비빈(妃嬪)이어야 할 사람이오. 그렇지만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이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아서 이러한 행운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는지 본인도 모르겠소이다. 적당한 가격만 낼 수 있다면 이 천상의 선녀는 영원히 그 사람에게 속하게 될 것이오. 답답하고 고민이 있을 때는 그녀가 부드럽고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서 그 답답함과 고민을 해소시켜 줄 것이며, 적막할 때에는 그녀가 당신 옆에 꼭 붙어서 그녀의 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몸으로 당신의 적막을 달래 줄 것이오." 사람들은 가 대상공의 말을 홀린 듯 취한 듯 들으면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갑자기 한 사람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녀가 그렇게도 매력적이면 당신은 왜 당신 곁에 두려고 하지 않소?" 사람들은 모두 가 대상공의 속임수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말에 가 대상공이 '하하' 하고 웃으며 말했다. "본인인들 어찌 그녀를 내 곁에 두고 싶지 않겠소? 그렇지만 솔직히 말씀드려서 내 늙은 마누라가 그렇게 가만 놔두지 않소이다. 그렇지 않다면 본인이 어찌 그녀를 이곳에 내놓을 생각이나 했겠소?"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여전히 의심스러운 듯, 믿지 못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가 대상공이 크게 외쳤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더 기다리시는 겁니까?" 그가 갑자기 소녀의 눈처럼 흰 옷을 잡아 한 귀퉁이를 찢어내자, 그녀가 입고 있는 옷보다 더 하얀 어깨와 비둘기의 가슴보다 더 부드럽고 윤기나는 젖가슴이 사람들 눈앞에 드러났다. 가 대상공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들은 이런 계집을 본 적이나 있습니까? 만약 이 계집이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장님일 거요."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얼굴에 부스럼딱지가 잔뜩 난 대한이 벌떡 일어서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좋소. 내가 일천 냥을 내리다. 아니, 일천오백 냥을 내리다." 사방에서 즉각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서 가격을 말하기 시작했다. "일천팔백 냥이오." "이천 냥이오. 아니, 삼천 냥이오." 사람들이 다투어 가격을 부르는 것을 보고 소녀의 몸은 더욱 심하게 떨렸으며, 부드러운 눈에서는 수정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주칠칠은 그 소녀의 모습을 보자 가련하게 느껴져 견딜수가 없었다. (저처럼 매력적인 여자아이가 돼지 같은 남자들 손에 떨어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지.) 그녀는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며 큰소리로 외쳤다. "제가 팔천 냥을 내겠어요." 사람들은 이 소리에 모두 깜짝 놀란 듯했다. 그러나 주칠칠의 맞은편 옆자리에 앉아 있던 금의 소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본인은 일만 냥을 내겠소이다." 가 대상공의 눈빛이 번쩍이며 얼굴에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다른 사람들은 이들 두 사람이 제시한 가격에 이미 놀란 듯했다. 주칠칠은 입술을 다시 깨물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만 냥을 내겠어요." 주칠칠이 제시한 가격은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대청에는 다시 일진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그 소녀는 고개를 들고 주칠칠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기쁨과 놀라움이 교차하는 듯했다. 가 대상공이 웃음을 머금고 그 소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왕 공자, 어떠시오?" 금의 소년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 대상공의 눈빛이 다시 주칠칠에게 돌아가며 포권을 하고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축하드리오. 이 하늘의 선녀와 같은 계집애는 이미 아가씨의 소유물이오. 그렇지만 아가씨의 은자는 어디에 있는지......? 하하. 이만 냥이라면 그 무게만도 상당하리라고 생각되는데?" 주칠칠은 그제서야 생각난 듯 우물쭈물 얘기했다. "저는 오늘 은자를 갖고 오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틀 내에......." 가 대상공의 안색이 갑자기 신중해지면서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농담을 하시는 거요? 은자도 없이 물건을 흥정했단 말이오?" 대청에는 즉각 비웃음소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주칠칠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으며, 나아가 부끄러움이 화로 변하여 얼굴을 쳐들고 욕설을 퍼부우려 할 때, 처음부터 구석자리에 앉아 있던 허약해 보이는 초라한 늙은이가 갑자기 눈을 뜨고 말했다. "괜찮소. 내가 은자를 저 아가씨에게 빌려드리리다." 사람들은 더욱 놀랐다. 주칠칠도 깜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저렇게 초라해 보이는 늙은이가 어디에 이만 냥이라는 은자가 있어 그녀에게 빌려준단 말인가! 그러나 가 대상공이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이 아가씨를 조금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초라한 늙은이가 픽 웃으며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은 그녀를 믿지 못하겠지만 이 늙은이는 그녀를 믿소이다. 당신들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지만 이 늙은이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소." 가 대상공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 아가씨가 도대체 누군데요?" "당신 가박피가 비록 사람들을 속여서 은자를 잘 빼앗지만, 다시 속임수를 삼십 년을 더 배운다 해도 그녀 부친의 머리카락 하나 속여서 뽑아내지 못할 것이오. 다른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다만, 그녀의 성이 주씨라는 것만 말해 두리다." 가 대상공은 깜짝 놀란 듯이 말했다. "그...... 그렇다면 그녀가 바로 주씨 집안의 따님이란 말씀인가요?" 초라한 늙은이는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의 눈은 모두 왕방울만하게 커졌으며, 약속이나 한듯 주칠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자고 이래로 돈의 마력이란 것은 어떤 사람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가 대상공과 같은 사람은 돈의 마력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나 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즉각 웃음이 번졌다. 그 웃음 속에서 심지어 그의 눈마저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는 아첨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께서 보증을 서시겠다면 더 드릴 말씀이 있겠습니까? 헤헤. 비비야!지금 이 순간부터 너는 바로 이 분 주 아가씨의 사람이다. 빨리 건너가서 인사드리지 못할까?" 대청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놀란 것은 주칠칠 자신이었다. 이 초라하게 생긴 늙은이가 어떻게 자기를 알아보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더욱더 가박피 같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초라한 늙은이를 신임할 수 있는지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 초라한 늙은이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아무리 훑어봐도 몸에 은자 한 푼 지니고 있지 않을 듯해 보였다. 그 백의 소녀는 이미 주칠칠의 면전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무한한 기쁨과 따뜻한, 그리고 부끄러운 기색이 넘치고 있었다. 그녀는 공손히 주칠칠을 향해 절을 한 다음, 앵무새 같이 아름답고 흐르는 물처럼 우아하고 비단처럼 윤기나고 비둘기처럼 따뜻한 음성으로 말했다. "천녀(賤女) 백비비가 주 아가씨를 뵈옵니다." 주칠칠은 황급히 손을 뻗쳐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주칠칠이 아직 그녀에게 뭐라고 말도 하기 전에 대청에서는 또다시 중원맹상 구양희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재미있는 상담은 뒤에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본인과 마찬가지로 냉이 어르신께서 어떠한 물건을 가져오셨는지 보고 싶으시겠지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렇소이다." 주칠칠은 또 호기심이 발동했다. (냉이 어르신이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존경하는 모습을 보이니 틀림없이 대단한 인물이겠지?) 그녀가 눈을 들어 대청 안을 쓸어보았으나, 대청 중에 있던 수십 개의 눈들은 모두 그 구석자리에 앉아 있는 초라한 모습의 노인에게 쏠리고 있었다. 주칠칠이 깜짝 놀랐다. (냉이 어르신이란 바로 저 늙은이란 말인가?) 주칠칠이 고개를 들었을 때, 홀연 그 금의 소년의 뒤에 또 한 사람 생김새가 아주 준수한 서동이 서 있었다. 이 서동이 언제 나타났는지는 모르나 그의 두 눈은 깜박거리지도 않고 주칠칠을 쳐다보았다. 주칠칠은 이 서동의 생김새가 매우 눈에 익다고 생각했으나, 어디서 보았는지는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이때, 그 초라한 기색의 노인이 두 눈을 뜨고 마른 기침을 한 다음 말했다. "고아(苦兒)야! 우리가 무슨 물건을 가져왔는지 하나씩 이 분들께 말씀드려라. 이 분들이 얼마의 가격을 제시하는지 보기로 하자꾸나." 그 검고 비쩍 마른 소년 동자가 힘없이 그 노인의 말에 대답하고 천천히 걸어나와 말했다. "오룡차(?籠茶) 오십 짐이요." 일순간의 소란이 지나간 후 낙양성의 거상이 오천 냥에 그 물건을 사들였다. 고아가 다시 말했다. "오동기름 오백 통이요. 또 휘묵(徽墨) 일천 개요." 그는 계속하여 일곱, 여덟 가지의 물건 이름을 말했다. 그가 말하는 물건들은 모두 전국 각지에서 모은 토산품들로 순식간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높은 가격으로 사들였다. 주칠칠은 은자들이 한 꾸러미 한 꾸러미 냉이 어르신께 전해지고 있었으나 물건은 하나도 보이지 않음을 보고 속으로 깜짝 놀라 생각했다. (저 냉이라는 사람은 과연 거상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구나. 사람들이 이렇게 그를 신임하다니. 그렇지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음, 그렇지! 저 사람은 틀림없이 구두쇠일 거야.) 그녀가 속으로 비웃음을 띠고 있을 때 그 고아가 다시 이어서 말했다. "벽경향도미(?梗香稻米) 천오백 석이요." 가 대상공은 지금까지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으나, 벽경향도미란 말을 듣는 순간 눈을 빛내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그 물건은 제가 사도록 하지요." 고아가 물었다. "얼마를 내시겠습니까?" 가 대상공이 가볍게 신음을 하더니 선심쓴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만 냥을 내겠소." 이 벽경향도미는 비록 많이 생산되지 않는 물건이나 시가(時價)는 많아야, 일 석에 이십 냥 남짓일 뿐이다. 가 대상공이 천오백 석의 벽경향도미에 일만 냥을 내겠다는 것은 확실히 낮은 가격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금의소년이 갑자기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일만 오천 냥을 내겠습니다." 가 대상공이 깜짝 놀랐으나, 마침내 이를 깨물면서 말했다. "일만 육천 냥이오!" 왕 공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만 냥을 내겠습니다." 가 대상공은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이만 냥이오? 왕 공자께서는 혹시 농담하시는 건 아닙니까? 벽경향도미는 자고이래로 이처럼 높은 가격에 매매된 적이 없소이다." 왕 공자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형씨께서 사고 싶지 않으시다면 아무도 형씨에게 억지로 사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가 대상공의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 하더니 이를 깨물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다음 큰소리로 말했다. "좋소, 이만 일천 냥이오." 그 가격은 이미 시가를 휠씬 초과한 것이었다.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가박피가 이렇게 손해를 보는 가격으로 쌀을 사들이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다. 사방에서는 즉각 쑥덕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왕 공자가 다시 말했다. "삼만 냥이오!" 가박피는 앉았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삼만 냥? 당신...... 당신 미쳤소?" 그러나 왕 공자의 안색이 침울하게 변하며 냉랭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가 형께서는 말씀을 삼가시오!" 안하무인격인 가박피가 처음으로 집 밖을 나서는 듯한 왕 공자에게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는 듯 더이상 악담을 하지 않고 '풀석' 하고 의자에 도로 주저앉았다. 그의 안색은 이미 백지장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고아가 다시 말했다. "더이상의 가격을 제시하는 분이 안 계신다면 이 물건은 왕 공자께서 사들이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가박피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그는 앉았던 자리에서 뛰어일어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본인이...... 본인이 삼만 일천 냥을 내겠소. 왕...... 왕...... 왕 공자! 본인은...... 본인은 이미 능력의 범위를 벗어났소이다. 부탁이오. 더이상 나를 난처하게 만들지 말아주시오." 왕 공자가 얼굴을 펴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럽시다. 오늘은 당신께 한 번 양보해드리는 걸로 합시다." 가박피의 얼굴에 미칠 듯한 기쁨의 기색이 나타나며 즉각 은자를 헤아려 초라한 노인쪽으로 건네었다.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가박피가 세 배가 넘는 가격으로 쌀을 사들이면서 이처럼 기뻐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가박피가 오늘 이렇게 손해를 보는 장사를 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고아는 가박피의 은자를 거두어들인 다음 대소하며 웃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일생 중 이처럼 시원한 일은 처음 본다는 듯이. 왕 공자의 얼굴에도 웃음이 나타났다. 이러한 모습을 본 가박피가 말했다. "당신......! 당신 왜 웃죠?" 고아가 말했다. "개봉성(開封城)에서 어떤 사람이 은자 오만 냥으로 쌀 오백 가마를 사들였다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추측컨대, 당신은 그 때문에 오늘 삼만 냥 은자로 벽경향도미 오백 가마를 사들인 것이겠지요. 제 말이 맞습니까?" 가박피의 안색이 즉각 변하며 말했다. "네......, 네가 어떻게 알지?" "개봉성에서 오만 냥 은자로 쌀을 샀던 그 거부는 바로 우리 냉이 어르신께서 일부러 파견한 사람이었소이다. 당신이 벽경향도미 오백 가마를 사들고 개봉성으로 찾아가면, 그 사람은 이미 사라진 후일 거요. 하하. 가박피! 가박피! 당신이 우리에게 속임을 당할 날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겠지요?" 가박피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푸르게 변했다. 그가 외쳤다. "그렇지만, 왕 공자께서......." 고아가 웃으며 말했다. "왕 공자께서도 우리 냉이 어르신의 부탁을 받아서 그렇게 했던 것이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박피는 미친 듯한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 덮쳐갔다. 그때 냉이 선생의 두 눈이 번쩍 뜨이며, 눈에서 차가운 기운이 폭사되어 나왔다. "그애를 어떻게 하시려는 거요?" 가박피는 그의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을 보고 회초리로 몇 대 얻어맞은 듯 뒤로 몇 걸음 물러서 한참을 멍하니 있더니,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쥐고 울기 시작했다. 주칠칠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어 웃었으며, 대청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의 얼굴에도 기쁜 기색이 드러났다. 그들은 가박피가 속임을 당한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마음이 시원해졌던 것이다. 냉이 선생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말했다. "시영귀가 금방 손해를 보았는데, 고아야! 은자 삼천 냥을 시 선생에게 드리도록 해라. 어떻든 그 돈은 시 선생이 억울하게 뺏긴 것으로 일부나마 찾아주는 것이니 시 선생께서는 사양하지 마시기 바라오!" 시영귀는 감격해서 어쩔줄을 몰라했으며, 주칠칠도 속으로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녀는 비로소 이 초라하게 생긴 냉이 선생이 비단 대단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 같은 구두쇠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냉이 선생은 다시 눈을 감아버렸으며, 고아의 표정도 금방 무표정한 모습으로 변해 천천히 말을 했다. "그리고 또 팔백 필의 준마가 있소이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대청중에 있던 두 무리의 패거리들의 표정이 긴장되었으며 그들의 눈도 '번쩍' 하고 빛이 났다. 그 두 패거리 중 한 패거리는 세 사람으로 얼굴이 거무튀튀한 건장한 대한들이었으며, 나머지 한 패거리는 두 명으로 그 중 한 사람은 병상에서 오랜 세월을 지낸 듯 얼굴이 누렇게 떠 있었고, 나머지 한 사람의 눈은 매눈처럼 날카롭고, 코는 매부리코였으며, 미간에는 거만스럽고 표독한 기색이 짙게 배어 있어 안하무인격인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주칠칠은 그들을 한 번 힐끗 바라본 후, 이 다섯 사람은 틀림없이 흑도의 고수이며 그 무공도 약하지 않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세 명의 건장하게 생긴 대한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첫번째 서 있던 사람이 말했다. "본인은 석문호라고 하오." 두번째 사람이 말했다. "본인은 석문표(石文豹)요!" 세번째 사람이 말했다. "본인은 석문사(石文獅)라고 하오!" 세 사람은 말할 때 모두 가슴을 치켜들고 배를 앞으로 쑥 내밀고 남들을 압도하는 듯한 기세를 보였으며, 그 말소리도 고의로 크게 하는 듯했다. 그들의 모습은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시위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시영귀 등은 이 세 사람의 이름을 듣고 얼굴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그때, 구양희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맹호강 석씨 세 분 영웅들의 대명을 강호 인물들 누가 모르겠습니까? 세 분께서는 하필 직접 이름을 밝히실 필요가 있습니까?" 석문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말씀이오! 구양 형께서는 바로 이 팔백 필의 준마 때문에 우리 형제가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 계신 여러분께서는 우리 형제들의 체면을 봐서라도 우리 형제가 빈 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세 형제가 소리를 내어 웃자 지붕 위의 기왓장이 흔들리는 듯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중에 비록 그 팔백 필의 준마를 사려는 생각이 있었던 사람들도 이 웃음소리에 놀라서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다시 집어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석문호는 사방을 돌아보며 더욱 득의한 기색을 나타냈다. 그러나 바로 이순간, 매부리코를 가진 흑의의 장한이 갑자기 냉소를 날리며 말했다. 석문호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하며 노한 소리로 말했다. "당신 지금 뭐라고 하셨소?" 매부리코의 장한이 말했다. "그 팔백 필의 준마는 우리 형제가 사려고 한다고 말했소." "무엇을 근거로 그 말들을 사겠다는 거요?" "냉이 선생께서 여기 계시니 자연히 은자로 말을 사야 되겠지요.누가 그 말들 을 강제로 뺏을까봐 그러오?" "당신.... ! 당신은 도대체 얼마를 내겠다는 거요?" " 당신이 얼마를 내든, 우리 형제는 당신들보다 한 냥을 더 내겠소! " 석문호가 노갈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서문교(西門蛟) ! 내가 너를 못 알아볼 줄 아는가 ? 우리 형제들은 네 녀석들이 우리와 같은 무리에 속해있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계속 약간의 양보를 했었는데..." 그렇지만 너.... 너 , 너무 사람을 업신여기... " 서문교가 냉랭하게 그 말을 가로채서 말했다.
"그랬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석문호가 손을 들어 탁자를 내리치며 서문교의 말에 대답하려는 순간, 석문표가 한 팔로 그를 잡아끌며 낮은 소리로 신중하게 말했다. "우리 맹호강의 천 명이 넘는 형제들은 바로 이 팔백 필의 준마가 도착하는 것을 기다려 큰 사업을 벌이려 하고 있소. 서문 형께서 만약 우리 형제들로 하여금 빈손으로 돌아가게 한다면 우리들의 입장이 난처해지지 않겠소?" 서문교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들 맹호강의 형제들이 이 팔백 필의 준마를 기다리고 있듯이, 우리 낙마호(落馬湖)형제들은 또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소 ? 당신들이 빈손으로 돌아가서 입장이 난처해지듯 내가 빈 손으로 돌아가면 또 입장이 난처해지지 않겠소?" 석문사 갑자기 말했다. "사실이 그렇다면 우리가 저 사람들에게 양보해 줍시다!" 그는 한편으로 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혹, 표 두 사람을 끌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 했다. 대청에 있던 사람들이 그들 형제들이 이처럼 순순히 물러나는 것이 이상 생각하는 순간, 눈앞에서 칼빛이 '번쩍' 하며 세 자루의 장도가 동시에 서문교를 내리치고 있었다. 그들이 내리치는 장도는 '휙휙'하는 바람소리를 내고 있었다. 서문교가 이 공격에 적중당한다면 즉각 고기토막이 될 듯한 그런 기세였다. 그러나 석씨 형제의 술수가 비록 음험하고 독랄하고 빨랐지만 서문교는 이미 이러한 상황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냉소를 날리며 신형을 '번쩍' 하는 순간 그 공격을 벗어났다. 다만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리며 그가 앉았던 붉은색의 나무의자가 그 장도에 맞아 네 조각으로 동강이 나버렸을 뿐이었다. 시영귀 등은 큰소리로 비명을 질러댔다. 석문호는 두 눈이 충혈되어 찢어지는 소리로 말했다. "오늘 네 녀석이 죽지 않는다면 바로 내가 죽는다. 한 번 해 보자! " 세 사람은 다시 장도를 휘두르며 동시에 덮쳐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소리 없이 가만히 앉아 있던 병색이 완연한 장한이 갑자기 몸을 일으켜 한 손으로 서문교를 멀찍이 잡아끌고 가더니 침중한 음성으로 외쳤다. "세 분께서는 잠시 손을 멈추고 제 말을 한 마디만 들어보시오!" 비록 그의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으나 그의 신법의 빠름과 정확함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족했다. 석문호는 내리치려던 장도를 거두고 말했다. "좋다. 용상병(龍常病)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자." "우리가 여기서 싸움을 한다면 강호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해칠 뿐만 아니라 구양 형의 체면을 깍일이 아니겠소? 차라리...."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석문호가 날카롭게 말했다. "어떻든 그 팔백 필의 준마는 우리 형제들이 반드시 차지해야겠소." 용상병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들이 반드시 차지해야 하듯이 우리도 반드시 차지해야 되겠소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생사의 결전을 벌이기 보다는 차라리 사백 필씩을 나눠 가지면 우리의 우정을 손상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석씨 형제들은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석문표가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용 형의 그 말씀도 일리는 있소! " 용상병이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우리 두 사람이 악수로 합의를 본 것으로 합시다!" 석문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마침내 결심한 듯 말했다. "좋소! 사백 필도 그런대로 괜찮소!" 말을 마친 그는 큰걸음으로 앞으로 걸어나갔다. 용상병도 미소를 머금고 마주 걸어나왔다. 두 사람은 각각 손을 뻗쳐 서로를 맞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용상병의 왼쪽 손에서 '번쩍' 하고 두 개의 물체가 날아왔으며 악수를 하려고 내밀었던 오른손으로는 '펑' 하고 석문호의 가슴을 내리쳤다. 그리고 그 왼쪽 손에서 뻗쳐 나온 두 점의 빛은 석문표와 석문사의 목젖을 정확히 맞췄다. 석씨 형제 세 사람이 동시에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부들부들 떠는 순간 그들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은 눈을 부릅떠서 용상병을 노려보며 찢어지는 듯한 음성으로 처참하게 외쳤다. "너.... ! 너....!" 그들은 더이상의 말을 입밖에 내지 못했다. 석문호는 입을 벌리고 검은 피를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었으며, 석문표와 석문사 두 사람의 얼굴색도 이미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세 명의 팔팔하게 살아 숨쉬던 대한들이 순식간에 세 구의 시신으로 변해버렸다.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용상병은 다시 오랜동안 병상에 시달린 듯한 무기력한 모습으로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구양희의 얼굴에 갑자기 노한 기색이 나타났으나 어찌된 일인지 애써 그 분노를 삼켜버리고 있었다. 주칠칠도 약간의 분노를 느꼈으나 곧 생각을 고쳐먹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데 내가 상관할 필요는 없겠지?) 이순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담담하게 그 세 구의 시체를 쳐다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사람을 죽인 후에도 매매에는 은자가 있어야 하오!" 서문교가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그야 당연하지요." 그는 그의 몸 뒤에서 하나의 보따리를 풀어 탁자 위에 얹어 놓았다. 그가 그 보따리를 풀어 헤치자 찬란한 금빛이 눈을 어지럽게 했다. 그 보따리는 황금 보따리였던 것이다. 고아가 물었다. "얼마나 되는 거지요?" 서문교가 웃으며 말했다. "황금 이천 냥이오.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하오." 그러나 지금까지 문약한 서생처럼 보이며 얼굴에는 아직 앳된티가 채 가시지도 않은 왕 공자가 갑자기 미소를 짓고 말했다. "본인은 이천일 냥을 내겠소이다! " 이 말이 나오자 주칠칠도 깜짝 놀랐으며 대청에 있는 사람들은 놀랐다. 서문교가 험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상공께서는 농담을 하시는 거겠지요?" 그러나 왕 공자는 웃음을 띠고 말했다. "이미 그 말들 때문에 세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농담을 할 수 있단 말이오?" 서문교가 몸을 돌려 그를 마주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대청에는 살기가 더해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를 보고 있을 때 용상병은 아무소리 없이 왕 공자의 뒤에 돌아가 있었다. 용상병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왕공자는 전혀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태평했다. 서문교가 냉소하며 말했다. "네 녀석이 나의 삼 장을 피해낼 수 있다면 팔백 필의 준마는 너에게 양보하마! "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쌍장을 번개처럼 내둘러 왕 공자의 두 어깨를 공격해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용상병의 쌍장에서는 일곱 개의 차가운 빛이 '번쩍'하고 폭사되었다. 이들 두 사람의 전후 협공으로 비단 왕 공자가 석씨 세 형제와 같은 운명에 빠질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서 있던 서동의 생명도 안전하지 못할 듯이 보였다. 주칠칠이 놀란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왕 공자의 소맷자락이 뒤로 휘둘려지자 마치 그의 등에도 눈이 달린 듯 그리고 그 소매에도 눈이 달린 듯 일곱 개의 번쩍이는 빛은 그의 소매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며 다시 한번 소매를 휘두르자 일곱 개의 빛이 날아오던 기세 그대로 그의 정면에서 공격해 들어오던 서문교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서문교는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휘청하고 넘어졌다. 용상병의 안색이 순간 참혹하게 변했으나 도리어 침착하게 쌍장을 거둬들이자 두 자루의 비수가 그의 소매에서 튀어나와 그의 손에 잡혔다. 그는 칼빛을 번쩍이며 왕 공자의 등 뒤를 찔러 들어왔다. 그 공격의 독랄함과 신속함은 차치하고라도 그 두 자루의 비수의 날은 시커멓게 변해 있어 극독이 칠해져 있는 것임을 쉽게 알수 있었다. 왕 공자가 이 비수에 약간의 상처라도 입게 된다면 더이상 살아서 말을 할 생각은 버려야만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왕 공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바로 이 급박한 순간에 앉았던 자리에서 의자를 들고 약간 일으키니 그 두 자루의 비수는 바로 그가 앉았던 의자의 등받이의 조각을 정확히 찔렀다. 이 등받이의 조각은 듬성듬성 구멍이 나 있어서 만약 왕 공자의 계산에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었다면 비수는 곧바로 그 듬성듬성한 구멍을 통해 정확히 왕 공자의 몸에 닿을 수 있는 것이었다. 왕 공자의 조각의 구멍 위치에 대한 계산의 정확함과 시간의 정확함은 실로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용상병이 크게 놀라 더이상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하더니 몸을 돌려 밖으로 달려나갔다. 왕 공자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 물건은 당신 것이니 가지고 가야 되지 않겠소? " '이 물건은'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의 소매에서는 한 줄기의 차가운 빛이 '번쩍' 하고 용상병의 등을 향해 쏘아져 나갔으며, '당신 것이니'라는 말에 이르렀을 때 그 차가운 빛은 이미 용상병의 등을 파고들었다. 그가 말을 마쳤을 때 용상병은 처참한 비명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져 사지를 부들부들 떨더니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왕 공자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다만 입으로 천천히 몇 마디를 했을 뿐이다. "대단히 독한 암기로군. 그렇지만 이 암기는 그 자신의 것이니...." 원래 그의 소매에는 용상병이 그를 암산했던 암기 하나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심지어 손 한 번 내보이지 않고 낙마호에 은거하고 있던 두 명의 표독한 도적들을 황천으로 보내버렸던 것이다.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옷소매로 암기를 거둬들이고 발사하는 무공과 이렇게 얘기하고 웃는 가운데 살인하는 그의 표독함을 보고 더욱 놀라서 멍청한 표정들이었다. 주칠칠도 심장이 오싹한 기분을 느껴 속으로 생각했다. (이 책벌레 냄새가 나는 소년이 이처럼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이처럼 독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니 진짜 이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인데.....) 고개를 들자 그 왕 공자 뒤에 있던 영준하게 생긴 서동이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한쌍의 초롱초롱한 눈에는 그녀에게 많은 말을 하고 싫어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주칠칠은 놀라고 이상하고 화가 나서 속으로 생각했다. (저 녀석은 왜 저렇게 나를 뚫어질 듯 노려보는 거지? 저 녀석이 혹시 나를 알고 있다는 말인가 ? 꽤 낯익은 녀석인데 어디서 만났던 녀석이지?) 그는 자리에 앉은 채 미간을 찌푸리며 이리저리 생각하기 시작 했다. 그가 사들인 백비비(白飛飛)는 마치 삭은 새처럼 그녀 옆에 의지하여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웃음을 띤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그러한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이 동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주칠칠이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서동을 어디서 봤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생각 저생각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심랑에게 생각이 미쳤다. (지금 심랑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 사람도 지금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갑자기 구양희가 그녀 옆에서 웃으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안상이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주 아가씨께서는 같이 참석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말은 며칠 동안 주칠칠이 들었던 말 중 가장 반가운 말이었다.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다음 웃음을 띠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때야 그녀는 비로소 대청 중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이미 대부분은 나가버렸으며 대청 가운데에 널부러져 있던 시신도 치워졌음을 발견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속으로 생각했다, (왜 나는 심랑만 생각하면 이처럼 멍청해지는 거지?) 마련된 요리들은 상당히 성대했다. 냉이 선생은 아무소리 없이 먹기만 했다, 주칠칠은 일생 중 이렇게 좋은 요리들은 처음 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비록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이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으나 그녀의 식욕이 체면을 차리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왕 공자와 그의 옆에 앉은 두 사람은 수저를 드는 둥 마는 둥하고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을 보는 그 자체로 자신들은 이미 배가 부르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구양희는 쉬지 않고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주칠칠을 미리 알아보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주칠칠과 같은 탁자에 앉은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기에 바빴다. 주칠칠은 먹는 데 바빠서 그가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다만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갑자기 구양희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이 분 왕 공자께서는 낙양의 세가공자(勢家公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 아가씨께서는 간판에 왕삼기 (王森記)라는 세 글자가 보이면 바로 왕 공자의 사업체로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왕 공자는 비단...," '왕삼기'라는 세 글자가 귀에 들어오자 주칠칠은 가슴을 방망이로 얻어맞은 듯 가슴이 철렁했으며 뜨거운 피가 머리로 솟구쳐올라옴을 느켰다. 구양회가 그 뒤에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는 한 자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눈을 들어 바라보자 왕 공자와 그 잘생긴 서동도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왕 공자가 웃으며 말했다. "본인의 성은 왕이고 이름은 련화라고..... " 주칠칠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 ! 당신..,. 그 장의사!" 왕 공자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주 이마씨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본인은 잘 알아 들을 수가 없군요! " 주칠칠은 방금까지 불그스레 윤기가 나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으며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공포의 기색이 역력히 떠올라 있었다. (왕삼기 ! 이 왕련화가 바로 그 악마 같은 소년....아! 서동은 그 백의의 여자였구나..... 어쩐지 그렇게 낯이 익다 했더니... 그녀가 남장을 해서 내가 제때에 알아볼 수 없었던 거야.) 구양희는 그녀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하게 변하고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을 보자 크게 이상하게 여긴 듯 참지 못하고 '음' 하는 소리를 내고 억지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주 이사씨께서는...."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주칠칠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순간 '펑'하는 소리가 나며 그녀가 앉았던 의자가 뒤로 그대로 넘어졌다. 주칠칠은 비틀비틀 뒤로 몇걸음 물러서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 당신...." 그녀는 말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몸을 돌려 밖으로 나는 듯이 달려나갔다. 그녀의 등 뒤에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 아가씨 ! 멈추시오 ! 주 아가씨....." 그 소리들 속에는 백비비의 애처로운 소리도 섞여 있었다.
"주 아가씨 ! 저를 데려 가세요." 그러나 주칠칠은 감히 뒤를 돌아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렸다. 밖은 언제부터인가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주칠칠은 이것저것 살펴볼 겨를이 없어 미친 듯이 앞으로만 달려나갔다. 그 왕련화의 악마와 같은 눈빛과 웃음이 계속 그녀를 쫓아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사실 어떤 한 사람이 그녀의 뒤를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기 만 한다면 그녀의 뒤를 쫓아오는 사람이 금방 그녀를 덮칠 듯했다. 주칠칠은 숨이 차너 더이상 앞으로 내달릴 수가 없었다. 두 눈은 쏟아지는 빗물에 제대로 뜨고 있기도 어려웠다. 그녀가 만약 계속 앞으로 이렇게 달린다면 틀림없이 기진맥진하여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눈앞에 어슴푸래하게 몇 채의 집들이 보였다. 그 집들에서는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으며 문도 열려져있는 듯했다. 주칠칠은 아무 생각없이 그 집 속으로 뛰어들어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비로소 이 집이 황폐한 사당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사당 안의 구석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으며 신상은 이미 부숴져있었고 신전 중앙에는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모닥불 옆에서 불을 쬐고 있는 것은 머리가 이미 하얗게 세어 버린 청색옷을 입은 부인이었다. 그녀는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주칠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밖을 살펴봤으나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을 뿐, 그녀를 쫓아온 사람은 없는 듯했다. 주칠칠이 비로소 숨을 돌리고 옷매무새를 고친 다음 웃으며 말했다. "할머니 ! 옆에서 불 좀 같이 쬐도 될까요?" 그 청의 부인의 표정은 보기에는 매우 자상해 보였으나 주칠칠을 바라보는 눈빛은 상당히 차가왔다. 그 부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 말은 하지 않았다. 주칠칠의 머리는 이미 풀어헤쳐져 있었고 옷은 모두 젖어서 몸에 찰싹 달라붙어 그녀의 몸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이 사람이 늙은 할망구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창피당했겠구나.)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하며 귓볼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그녀는 손을 들어 대충 머리를 손질하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냈다. 그 청의 부인은 이 낭패한 모습의 소녀가 이처럼 아름다운 미녀 였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듯 그 차갑던 눈빛이 점점 부드럽게 변 하더니 고개를 흔들고 탄식하며 말했다. "가엾은 이이로구나...... ! 옷이 전부 젖었으니 춥지 않으냐?" 주칠칠은 지금까지는 추위를 생각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말을 듣자 비로소 온 몸이 떨려왔다.
첫댓글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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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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